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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7 장 20-26 절에서『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 ,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하려 함이로소이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니다 .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삽고 저희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삽나이다 .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 예수님이 십자가 사역을 앞두고 제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앞으로 부활하는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어떠한 결과가 도래하기를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이다 . 그 내용은『하나가 되게 해 달라는 것』이다 .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 처럼 제자들과 그 제자들로 하여금 믿게되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 에베소서 5 장 30-32 절에서『우리는 그의 몸의 지체임이니라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 창세기 2 장 22-24 절에서도 같은 의미의 말씀을 하고 있다 .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요한복음 6 장 1-13 절에서『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오병이어의 기적에 대한 말씀이다 . 이 말씀은 종말에 대한 말씀과 관련이 있다 . 예수님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의도를 잘 이해하고 있어야 종말에 대해서 알 수 있다 . 마태복음 8 장 5-12 절에는 로마의 백부장의 하인을 치유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 예수님이 이스라엘에 대해서 말씀하는 것이다 . 『 동 서로 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이스라엘은 쫒겨날 것이라는 말이다 . 이방인이 먼저 구원을 받고 , 이스라엘은 나중에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 이 말씀은 마태복음 19 장 27-30 절의 말씀과 일맥...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로마서 3 장 9-21 절에서『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은 물질세계로서 반드시 종말이 있다 . 즉 영의 세계와는 달리 유한하게 지으신 것이다 . 왜냐하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이 달성할 때 까지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 이 세상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계시는 영의 세계보다는 더 좋다고 할 수 없다 .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바 천국은 보석으로 되어있다고 표현한다 . 이 세상에 비할 수 없는 곳으로 표현한 것이다 . 왜냐하면 이 세상은 영이 갇혀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 누가복음 8 장에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 . 그런데 , 예수님이 살려주셨다 . 누가복음 8 장 54-55 절에서『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이르시되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그 영 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 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시니』 죽은 아이의 영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볼 때 , 영은 몸 속에 갇혀있는 것이다 . 영이 나가면 육체가 죽고 , 영이 들어오므로 육체가 살게됨을 알 ...

당신이 그 사람이라

  성경에는『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언급했다 . 다윗이 좋은 사람이었는가 ? 사무엘하 11 장 1 절 ~ 12 장 14 절까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윗이 자기의 신하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기 위하여 하는 행동들을 볼 수 있는데 , 정말 악한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보게된다 .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자기의 충실한 신하의 아내를 빼앗았는 것이다 . 그 내용을 잠깐 살펴보면 『어느날 왕궁에서 밖을 내려다 보는 다윗이 신하 우리야의 아내를 보는 순간 반해버려서 그녀를 궁으로 데려오게 하고 , 욕정을 불태웠는데 , 문제는 우리야의 아내가 임신해 버린 것이다 . 그녀의 남편 우리야는 전쟁터에 나간 장수였다 . 그래서 다윗이 임신의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는 우리야를 불러 그의 아내와 잠자리를 하도록 유도했지만 우리야는 전쟁 중이라 그럴 수 없다고 하고는 신하와 함께 잠을 잤던 것이다 . 다윗은 하는 수 없이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게 만들 결심을 하고 , 직접 편지를 쓰서 최 일선의 전쟁터에서 싸우도록 명령을 하는 편지를 우리야에게 주고 상관 요압에게 전달하라는 것이다 . 결국 우리야는 전쟁터에서 전사하게 되고 ,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를 왕궁으로 불러 마음껏 즐기는 이야기이다』 위의 내용을 통해서 볼때 , 다윗은 얼마나 악랄하고 , 파렴치한 인간의 모습인가를 알 수 있다 . 사무엘하 11 장 27 절에서는 『 그 장례를 마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를 왕궁으로 데려오니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낳으니라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라고 했다 .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하다는 것』은『죽어 마땅한 자』라는 것이다 . 그래서 하나님이 나단 선지자를 보내신 것이다 . 나단이 다윗에게 가서 예를 들어 설명했다 . 사무엘하 12 장 1-5 절에서 『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그가 다윗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하고 한 사람은 가난하니 그 부한 사람...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말라기 3 장 6-12 절에서 십일조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 말라기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한다고 말한다 .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과 오늘날 십일조를 바치지 않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 신명기 18 장 15-22 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는 것을 보면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 형제 중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우겠다고 하셨다 .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소리를 듣고 그렇게 말씀하시고 , 『그의 말을 들으라 듣지 않으면 벌을 내리겠다』고 하셨다 . 『내가 고하라고 명하지 않은 말을 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다 . 이스라엘 백성들이『그 선지자가 하나님의 지시대로 말씀하는지를 어떻게 아느냐』라고 물으니 , 『증험도 없고 , 성취함도 없으면 , 여호와의 말씀이 아니라 방자히 한 말이니 두려워 말찌니라』라고 하셨다 . 선지자가 자기 스스로 방자히 말한다면 죽임을 당한다는 것이다 . 구약성경에 예레미야와 하냐나 ( 거짓 선지자 ) 의 말이 소개된다 . 하냐나는 거짓 말을 하다가 죽었다 . 오늘날에도 자기 소견대로 성경을 해석하여 말한다면 방자히 말한 것이다 . 오늘날에도 십일조에 대해서 많은 교회들이 자기 생각대로 말하는 것을 본다 .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바치라고 하셨다 . 십일조를 바치라고 하신 것은 율법에 근거한다 . 레위기 27 장 30 절에『 그리고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라고 했는데 , 오늘날 십일조의 근거를 이 규정에 근거하여 찾기도 하고 율법 이전에 아브라함이 전쟁 후 멜기세덱에게 바쳤다 라든가 야곱이 서원한 기원을 찾기도 한다 .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은 것을 나름대로 생각해서『하나님께서 십일조를 내라고 하였다』라고 한다면 바로 방자히 말한 것...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다윗의 아들 ,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 성전 짓는 일을 허락하셔서 성전을 짓게된다 . 성소는 이동식이지만 성전은 일정한 곳에 건축한 건물이다 . 하나님께서 성소를 주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지 않는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하고 , 동시에 제사를 지내도록 하여 제사장이 대신해서 죄를 용서함을 받는데 , 이와 같이 장차 짐승이 죽는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십자가 위에 죽으셔서 모든 인간들의 죄를 사하시고 구속하여 내 백성이 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그 이유라고 설명한 바가 있다 . 그 약속 대로 예수님이 오셨다 . 구약성경에는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이 예언되었다 . 이사야 7 장 14 절에서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 제사가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것을 예표하지만 많은 선지자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실 것을 예언했으며 , 실제 오신 것이다 . 하나님께서 성전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는데 , 마태복음에 의하면 그 아들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했으며 ,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라는 뜻이다 . 성전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거할 처소를 말한다 . 하나님이 이스라엘 중에 거한다라는 말은 임마누엘과 같은 뜻이다 . 임마누엘 하나님이라는 말은 성전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성전이라는 말이다 . 성전에 예수님이 올라가 보시니 장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 예수님이 그들을 쫒 아내시고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 라고 하셨다 . 유대인들이 질문한다 . 『네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표적을 보여주겠느냐』라고 질문을 하니 예수님이『성전을 헐라 ,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라고 하셨다 . 성경은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하신 말씀이라고 하셨다 . 제자들도 의미를 몰랐다 . 이 의미는 이제 이 성...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거듭나지 못한 자다

누가복음 16 장 19-25 절에서『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빨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 이사야서 42 장 7 절은 메시야가 올 때 , 메시야가 세상에서 할 일을 설명하고 있다 . 『내 ( 메사야 ) 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 소경은 모든 인간을 말하며 , 감옥에 갇힌 자 , 흑암에 갇힌 자도 마찬가지로 세상에 있는 인간을 말한다 . 감옥이나 흑암은 바로 세상을 나타낸다 . 하나님의 빛이 없는 세상이 흑암이다 . 하나님을 떠난 것이 다 감옥에 갇힌 것이요 , 흑암에 있는 것을 말한다 . 이 세상은 하나님이 없는 악한 상태에 있다 . 이 세상의 임금이 사탄이기 때문이다 . 우리가 이 세상의 것을 바라고 원하게 되면 , 결국 사탄에게 구하는 것이다 . 사탄에게 구하는 자는 하나님과 관계없는 자가 되며 , 하나님에 대해서 죄인이 된다 . 『하나님의 아들된 자는 세상과 벗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야고보서 4 장 4 절에서 말씀하고 있다 . 『 간음하는 여자들 ( 죄인 상징 ) 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 세상의...

사단이 왜 이 세상의 임금인가

요한복음 1 장 1-3 절에서『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 예수 그리스도는 창세 전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 바로 하나님이시요 만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시고 ,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다 . 예수 그리스도가 창조주이신 것에 대해서 대부분의 교회사람들이 이견을 달지않는다 . 그런데 왜 사탄이 이 세상의 임금인가 ? 예수님이 요한복음 12 장 31 절에서 사탄이 이 세상의 임금이라고 말하고 있으며『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쫒겨나리라 』 요한복음 14 장 30 절에서도 말하고 있다 . 『이 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의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그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 요한복음 18 장 36 절에 보면『예수께서 대답하시되 ,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예수님이 창조주이신데 , 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속하지 않다』고 하신걸까 ? 결국 사탄의 나라다 . 요한 1 서 2 장 15-17 절에 보면『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육신의 정목 ,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는 말씀이다 . 즉 육신이 좋으면 , 하나님이 기쁘신 것이 아니라 육신을 사랑하는 내가 기쁜 것이다 . 이 세상이 주는 것은 단 한가지...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누가복음 12 장 33-34 절에서『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이런 제목으로 , 어떤 교회에서는 헌금을 많이 하는 것이 좋은 것처럼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 그러나 이 말씀은『헌금을 많이 하라』는 의미와는 다르다 . 구약에서『하나님께 무엇인가 바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멸하여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 짐승이 불에 타 죽는 것을 말한다 . 로마서 12 장 1 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몸을 드리는 것은 몸이 하나님 앞에서 멸하여지는 것이다 . 하나님 앞에서 드려지는 것은 구별되는 것이다 . 구별은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 구약시대는 하나님께 드려진 모든 것 중 태워지지 않은 것은『연보』라는 창고에 보관하여 구별하였다 .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태우는 것 , 즉 죽는 것이며 ,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것의 그림자인 것이다 . 십일조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뜻이 들어있다 . 하나님께 드려진 것 중 불에 태워지지 않은 것들은 다시 사람들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 제사장 등 레위지파 사람들이나 , 고아나 과부 등을 위하여 쓰이게 된 것이다 . 『바친다』라는 말은 구약의 마지막에 끝난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것을 이루셨다 . 헌금을 하나님께 바치는 개념은 끝난 것이다 . 『하나님 앞에 헌금을 드린다』는 말은 사용해서는 안된다 . 구약시대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는 성전에 가서 드리고 불에 태웠는데 ,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이 모든 것을 이루신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해결하신 것을 믿는다면 ,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말이 맞지않는 것이다 . 이제 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