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22의 게시물 표시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요한복음 15장 18-27절)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그들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그들의 율법에 기록된 바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세상에서 미움 받는 제자들을 격려하고 돕는 말씀처럼 보인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성도들이 영을 살리기 위해 복음을 전할 때 악한 사탄이 사람을 통하여 미워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탄이 성도를 미워하기 전에 예수님을 먼저 미워했으며, 십자가에 못박았다. 『미워하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미세이』로『미워하다』뿐 아니라, 『미워서 박해하다』 라는 보다 강한 의미가 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그리고 세상이 왜 성도를 미워하는지 그 이유를 밝혀 준다. 바로 성도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세상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한복음 16장 1-11절)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보혜사』라는 말은 요즘 사용하지 않는다. 보호하시고 은혜스러우며 선생님이라는 말이다. 헬라어로 파라클레이토스『파라』는 『곁에』라는 말이고 클레이토스는 곁에서 『말하는 분』이라는 뜻이다. 성령은 이 땅에 부어져 있다. 진리의 영이 옆에 있다는 뜻이다. 그가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신다는 말씀이다.  오늘날은 성령을 은사를 주시는 성령으로 잘못 생각한다. 성령은 사랑의 성령이 아니라, 진리의 성령이시다. 세상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다. 인간은 육체는 부모로부터 받지만 영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다. 육체 속의 옛사람은 뱀의 DNA가 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난 영의 몸은 하나님의 DNA가 있다. 옛사람이 변화되어 영의 몸으로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전 것이 죽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사탄은 이것을 깨...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야고보서 1장 13-18절)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시험에는 두 가지가 있다. 사탄으로부터 받는 시험과 하나님의 시험이다. 사탄은 넘어지게 하지만 하나님은 시련을 통해서 믿음을 주신다. 사탄으로부터 받는 시험은 결국 탐욕으로 인한 것이다. 마음 속에 탐욕이 행동으로 나타날 때, 사탄에 의해 미혹을 받는다.『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그러므로 사탄의 시험을 받지 않기 위해서 야고보는 악을 버리라고 말한다.  경건에도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헛된 경건이고, 다른 하나는 참된 경건이다. 그러면 우리가 평소에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경건이란 스스로 생각할 때, 성실한 마음으로 예배드리고 거룩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런데 야고보는 이러한 기준들이 사실 참된 경건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는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고 말했다. 야고보는 여기서 스스로 경건하다고 생각하는 자의 헛된 경건 (자기의 의) 곧 자기 기만의 위험성을 말해주고 있다. 『경건한』이란 헬라어로 『드레스코스』인데, 이 단어에 상응하는 명사 『드레스케이아』는 신약성경에 네 번 나오며, 그 두 번이 26-27절에 나오고 있다. 형용사 『드레스코스』는 공중예배를 드리거나 금식을 하거나 혹은 빈궁한...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야고보서 1장 1-12절)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시험이 있다. 주기도문에도 있다. 주님을 바라는 자들은 시험 속에서 만들어진다. 시험 속에서 분별의 능력이 생긴다. 분별에 대해서, 로마서 12장에서는『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다.『분별하도록 한다』는 말은『분별의 결과로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인간이 분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분별되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변화를 받아야만 되는 것이다. 변화를 받아 새롭게 되는 것이다. 분별은 새롭게 되는 것과 연계되어 있다. 새롭게 되는 만큼 분별되는 것이다.『분별하도록 하라』는 헬라어로 도키마조 (δοκιμάζω)라는 단어인데, 이것의 형용사(도키마스)가 바로 야고보서 1장 12절에서 나오는『시련을 견디는』이다. 분별하기 위해서는 시험 속에서 옳다 인정하심을 받...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요한복음 21장 7-14절)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그물이 찢어지지 않고, 건져 올린 물고기가 153마리였다. 153마리는 오른편에 있던 물고기였다. 이들은 영생을 얻은 자들이다. 물고기는 예수를 상징한다. 100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사람들을 나타낸다.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어 이삭(그리스도를 예표)을 얻었다. 50은 희년을 의미한다. 안식년이 일곱번 지나서 희년이 되어, 매여있던 것을 풀어주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자유함을 주신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으로 의로움을 얻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회개하여 예수와 함께 죽어야만 한다. 3에 대해서는 요한복음 17장 21절에서 이해할 수 있다.『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이렇게 될 수 있는 것이 성령의 능력으로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3은 삼위일체를 말하는 것이다. 결국 153마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요한복음 21장 1-6절)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누가복음 5장에서도 유사한 이야기다 있다. 요한복음 21장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의 이야기이고,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베드로를 제자삼기 전에 이야기이다. 베드로가 밤새도록 고기를 잡지 못하자, 배를 육지에 대니,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베드로에게 배를 바닷가에서 좀 멀리 띄우라고 하시고, 거기에서 가르치시고,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셨다. 물고기가 많아서 그물을 들 수가 없었다고 한다.  예수님은 마지막 성찬에서 떡과 잔을 들고 난 후에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26장 32절에서『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이 갈릴리에 나타나셨다. 예수님과 함께 다녔던 여인들은 무덤에 가서 천사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천사가 말하기를 마가복음 16장 7절에서『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여자들이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런데, 제자들이 갈리릴로 가서 그물을 밤새도록 던졌는데, 한마리도 잡지 못했다. 그때 예수님이 바닷가에 서 계셨지만, 제자들은 아무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요한복음 20장 30-31절)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도마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다음에 기록된 것이다.『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이 말씀은 먼저 믿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도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믿었으며,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었다. 그러나 믿었다고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생명을 얻어야만 구원이 된다.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그 이름을 힘입어야만 하는데, 영어로 번역하면 in his name이지만, 그 이름을 힙입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다. 이 말씀은 자기부인의 회개를 통해서 십자가에서 못박히신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뜻이다.  베드로는 가장 많은 예수님의 기적을 경험했다. 이성과 경험을 뛰어넘어 풍랑 위에서 걷기도 했지만, 이것이 구원은 아닌 것이다. 구원의 기회가 시작된 것이다. 풍랑 위에 서 있는 주님을 따라갔지만 못박히신 주님을 따라 갈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도 간절히 기도하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되지만 회개하지 않으면 그것이 구원이 아닌 것이다. 요한복음에서 말하는 구원은 두가지다.『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기적을 체험한 베드로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었지만 생명을 얻지는 못했다. 생명을 얻는 길은 못박히신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오늘밤 다 나를 버리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베드로는『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부인하지 않습니다』라고 당당히 대답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회개는 단 하나다.『내 아들이 너 때문에 죽었어, 내 아들을 죽여야 할 만큼 넌 전적타락한 진노의 대상이야』라고 하나님 말씀이 들려야만 한다. 자신이 전적...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 질 것이요

(요한복음 20장 21-22절)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 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승천할 때까지 40일 동안 주님은 자기의 부활하신 모습을 자기를 따르는 소수의 자들 외에는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았다. 로마서 10장 9절에서『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하나님께서 예수를 다시 살리셨는데, 모든 사람에게 그 모습을 보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다들 부활을 믿을텐데, 그런데 주님은 안보여 주셨다. 주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따르는 사람에게만 사심일 동안 자신을 보여주셨다.  오늘날 많은 현대 교회는『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기를 원하노라』그것만 설교를 하는 형편이다. 성경은『왕의 아들의 혼인잔치에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다 오게한다』고 말한다. 악한 자나 선한 자나 차별이 없이 다 초대하지만,『예복을 입지 않은 자는 손과 발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던지라』고 말씀하신다.『거기서 슬피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하셨다. 예복을 안 입으면,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다 어두움에 던진다. 많은 현대교회는 이 말씀을 잘 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모습을 아무에게나 보이지 않으셨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말씀이 있다. 부자가 죽었고, 그 동네에 거지(나사로)가 죽었는데, 거지의 온몸에 헌데가 나 있었다. 그러나 거지는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갔고, 부자는 음부에 갔다고 했다. 부자에게는 형제가 다섯이 있으니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말하기를『저 나사로를 살려서 다시 보내면,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난 사람을 보고 그들이 회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때 아브라함이 말하기를『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자가...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요한복음 20장 1-20절)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요한복음 19장 17-19절)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예수께서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빌라도는 예수의 죄목을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은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쓸 것을 요구했다. 로마 황제가 지목한 왕 외에는 왕이 될 수 없었고 황제가 예수를 왕으로 임명한 적이 없었으니 유대인의 왕 예수는 반역자였다. 법적 논리가 그러했다. 그러나 예수의 십자가가 누명이라면, 음모라면, 정치적 술수라면 그 십자가에 걸쳐 있는 죄는 예수의 것이 아니다. 그 죄는 누명을 씌운 자, 음모를 꾸민 자, 정치적 술수를 쓴 자의 것이 되어야 마땅하다. 십자가의 가로대를 짊어져야 하는 자는 바로 그 죄를 진 자들이어야 한다. 내가 짊어져야 할 가로대를 남에게 지우는 것은 자기 죄를 쌓아올리는 것과 같다.  예수의 눈길이 머문 곳은 이리 같은 군인도, 늑대 같은 대제사장도 아니었다. 남의 죄를 자기 것처럼 짊어진 예수는 죽음의 자리에서 어머니를 향해 눈길을 둔다.『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그리고 사랑하는 제자에게 눈길을 돌렸다.『보라 네 어머니라』타인의 죄를 자기 것처럼 짊어진 예수의 눈길이 머문 곳은 어머니와 제자였다. 예수께서 죽음의 자리에서 눈에 담은 것은 그들을 향한 사랑이었다. 예수님의 사랑은 십자가의 죽음이다. 그 죽음은 하나님의 진노에 의해 모든 인류를 대속하는 죽음이었다.  그 죽음이 없었다면, 모든 인류는 구원받을 길이 없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진노만 있을 뿐이다.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을 떠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간들에 대한 하나님의...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요한복음 18장 1-14절)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 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 그 곳은 가끔 예수께서 제자들과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 곳을 알더라 유다가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이르시되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섰더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니라 하실 때에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신대 그들이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가 그니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 하시니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이에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 자러라 17장에서 제자들과 앞으로 구원해야 할 영들을 위해 기도하신 예수님은 기도를 마치시고 나서 예루살렘 동편에 위치한 기드론 시내를 건너 가셨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 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나아가신 동산은 겟세마네 동산으로 예수님과 제자들이 자주 기도하러 가던 곳이었다. 성전 경비병들과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의 하수인들이 예수의 제자였던 가롯 유다를 앞세워 그곳으로 들이 ...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요한복음 17장 20-26절)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하려 함이로소이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니다.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삽고 저희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삽나이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님이 십자가 사역을 앞두고 제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앞으로 부활하는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어떠한 결과가 도래하기를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이다. 그 내용은『하나가 되게 해 달라는 것』이다.『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 처럼 제자들과 그 제자들로 하여금 믿게되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에베소서 5장 30-32절에서『우리는 그의 몸의 지체임이니라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창세기 2장 22-24절에서도 같은 의미의 말씀을 하고 있다.『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이러므...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7장 9-19절)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는 다락방에서 하신 고별기도이며 주님께서 십자가 지심을 앞두고 드리는 기도였다. 십자가 고난 후 부활 승천하실 자신을 위한 기도와 그 후에 홀로 남겨질 제자들, 그리고 현재와 미래의 모든 성도들을 위한 기도다. 특히 사랑하시던 제자들을 위해 하는 기도다. 예수님은 십자가 사건 이후로 장사되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게 될 것을 알고 계셨다. 그리고 이 세상에 남겨질 제자들은 복음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조차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며, 온 세계와 민족을 향하여 나아가게 될 것을 잘 알고 계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남겨질 제자들의 입장에서 기도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관...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요한복음 17장 1-8절)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십자가의 수난을 당하시기 전 제자들과 가진 마지막 저녁 식사 자리에서 고별설교를 하신 이후 가지신 고별 기도장면이다. 예수님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예수님의 삶은 언제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데에 목적과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이지만, 이 땅에서는 아들로서 역할을 확실히 하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런 삶은 성도의 삶의 방향과 목적이 어떠해야 함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셨는지 말씀하고 있다.『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예수님은 아버지께서 하라고 주신 일을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666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https://youtu.be/Ss8Cf8XscFE 666 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   666 이라는 숫자에 대해서 사람들은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한다 . 적그리스도라는 의미로서 이해할 수 있지만 , 시대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것이 차이가 있으며 , 성경을 해석하는데도 다양하게 해석하므로 이단시비가 발생할 수 있다 . 666 과 관련하여 이 숫자는 짐승의 이름 ,   이름의 수 , 짐승의 수 , 사람의 수라는 이해하기 힘든 말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 따라서 오늘날 교회에서도 쉽게 이 부분에 대해서 설교하는 목사들이 많지 않다 .   1. 666 과 관련된 짐승에 대한 성경 귀절   요한계시록 13 장 17-18 절『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 』 666 에 대해서 , 숫자의 개념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 많은 교회 사람들은 초기 기독교 시대의 네로라고 생각했다 . 문자 그대로 666 이라는 숫자는 사람의 이름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 이름에 있는 철자들의 값을 더하는 헬라식 방법이었다 . 특히 네로는 기독교인들을 박해한 대표적인 독재자라고 알려져 있다 . 물론 로마제국에서 기독교인들을 박해한 황제들을 보면 네로 외에도 도미티아누스 등 10 여명의 황제가 기독교인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 심지어는 666 이 베리칩 , 바코드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 베리칩은 확인용 칩의 약어로 무선주파수 발생기인 RFID 칩의 일종이다 . 주사기를 통해 인체에 주입시키며 , 기본적으로 개인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유전자 정보 또는 고유번화가 저장되어 있다 . 그리고 바코드는 이름 그대로 막대기 (Bar) 로 된 부호 (code) 로서 ,   컴퓨터 가 판독할 수 있도록 고안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