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024의 게시물 표시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자매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자매 마가복음 3장 31-35절에서『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와 육신의 형제들이 예수님이 사역을 하는 것을 보고 귀신들렸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찾아왔는데, 예수님은 오히려 가족에 대해서 영적인 가족을 강조하신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걸림돌은 육적정체성인 것이다. 육적 정체성은 자기라는 것으로 성도의 심령 속에 견고한 진으로 자리잡고 있다. 예수님은 이를 부인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자기와의 영적 전쟁이다.  마가복음 10장 26-30절『제자들이 매우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제자들이 놀라는 것은 부자가 모든 것을 팔아서 남에게 다 주라는 것이다. 제자들은 표면적으로 받아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자기의 육적 정체성을 다 십자가에 못박고, 영적 정체성에 대해서 남에게 잘 말하라는 것이다.  성도가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져도 일곱가지의 육적 정체성은 그대로 나타난다. 마치 출애굽한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일곱 족속과 싸우는 것과 같은 것이다. 육적 정체성은 일곱가지로 등장한다. 가나...

잃어버린 양을 찾아오신 예수님

잃어버린 양을 찾아오신 예수님   누가복음 15장 1-7절『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예수님이 이 비유를 하신 배경은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불만이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은 의인들인데, 메시야가 오면 당연히 자기들에게 올 것이라고 확신했는데, 메시야라고 하는 예수가 죄인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식사를 하므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예수님이 이 사실을 아셨다. 그래서 이 비유의 말씀하신 것이다.  비유는 숨겨진 뜻이 있다. 듣고 깨닫는 자만이 알게된다. 들을 귀가 없는 자는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13장 11-13절에서 씨뿌리는 비유가 있다.『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서 55장 1절에서『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목마르고, 돈 없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면 하나님이 주신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세리와 죄인들이 하나님 나라를...

양과 염소의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 마태복음 25장 31-33절『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양과 염소는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존재를 상징한다. 스스로 존재한다고 했을 때는 미혹된 것이다. 미혹되면 각기 제 길로 가게된다. 미혹된 양과 염소는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하므로 세상의 흙속에 갇힌 자가 된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로부터 떨어져 나왔지만,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와서, 그들을 데려간다는 말씀이다.  마태복음 25장 34절에서『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오른편에 있는 자들은 양들을 의미한다. 왼편에 있는 자들은 염소가 된다. 그런데, 양은 왜 의인을 나타내고, 염소는 죄인을 나타내는가? 양은 주님을 만난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양을 만났다고 말한다. 염소도 주님을 만난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염소를 만난 적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25장 35-39절『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양들은 이렇게 한 적이 없다고 말을 하고 있다. 예수님이 주릴 때 라는 말은 세상에 있는 자들을 영적으로 자식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부활생명으로 거듭나는 자가 거의 없다는 말이다....

열처녀의 비유

열처녀의 비유   마태복음  25 장  1-2 절『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예수님이 본문의 말씀을 누구에게 말씀하셨는가를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  마태복음  25 장은  24 장의 마지막 시대에 일어날 일을 말씀하시면서 ,  연결하여 말씀하신 내용이다 .  성경의 원문은 장과 절이 없지만 , 16 세기 경에 들어와서 읽기 편하게 하기 위해 장과 절을 도입하였다 .  그래서 원문의 입장에서는  24 장과  25 장은 연결되어 있는 내용임을 기억해야만 한다 . 25 장에는 열처녀의 비유 뿐만 아니라 ,  달란트의 비유와 양과 염소의 비유도 함께 등장한다 .  따라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열처녀의 비유에서 그 대상은 달란트나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의 대상과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 므나의 비유에서와 같이 열 (10) 이라는 숫자는『완성 ,  충만』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  열처녀는 모든 처녀를 의미한다 .  처녀는 고린도후서  11 장  2 절에서『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그래서 처녀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는 교회 신도들을 의미한다 .  그런데 ,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랑으로 신부에게 주는 포도주를 마시는 자가 신부가 되는 것이다 .  이는 이스라엘의 혼인 전통에서도 등장한다 .  예비 신랑이 예비 신부 집에 방문해서 ,  포도주를 잔에 따르고 예비신부에게 주는데 ,  그녀가 마시지 않으면 ,  혼인...

중풍병자를 치료하심

중풍병자를 치료하심   마가복음 2장 3-12절에서 예수님이 중풍환자를 치료하는 모습을 본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환자에게 『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2장 9-12절에서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누가복음 5장   21 절에서는『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생각하여   이르되   이   신성   모독   하는   자가   누구냐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중풍병자는   병을   고치러   왔는데,   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는가?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라고   생각했다.   유대인들은   죄를   사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신데,   예수라는   ...

죽었던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다

죽었던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다 마가복음 5장 37-40절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예수님의 제자 중 세명인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는 예수님이 부활에 대한 개념을 심어주기를 바라셨다. 그래서 변화산 사건에서도 세명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셨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게되었다. 회당장이 바닷가에 계신 예수님께 와서 딸을 살려달라고 청을 하게 되었는데, 예수님이 허락을 하고 오시는데 중간에 혈루병을 앓던 여인을 만나게 되고 시간이 지체가 되어 야이로의 딸이 죽게되었다. 예수님께서 그 곳에 가시니까 이미 딸이 죽어서 울고 있는데, 예수님이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니 사람들이 모두 비웃었다. 그리고 예수님이 방에 들어가셔서『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살았다. 아이가 죽으니 영이 나갔다. 인간의 육체에 들어온 영은 갇힌 상태이다. 그런데 육체에서 나온 것은 놓인 상태를 말한다. 인간의 육체 속에 영이 들어와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 영을 가두신 것이다. 흑암에 갇혔다든가 옥에 갇혔다든가 포로가 되었다든가 이런 말과 같은 의미인 것이며, 하나님을 떠났다는 말과 같은 의미이다. 육체 안에 갇혀있다는 말은 그 영이 죽었다 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 곳에 생기를 불어넣으셨는데, 아담이 생령이 되었다고 한다. 생령은 영적 존재가 아니라 혼적 존재를 말한다. 흙이라는 물체가 생기로 인하여 숨을 쉬고 살아있는 생명체(혼)가 되었다는 설명이다. 아담의 상태나 회...

자라나는 씨 비유

자라나는 씨 비유   마가복음 4장 26-29절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는  헤   바실레이아   투   데우  (ἡ  βασιλε ί α το ῦ  θεο ῦ ) 로서   성부   하나님이   계시는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성부 하나님이 심령 속에 새성전이 세워진 성도에게 하나님 나라를 주신다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의미한다. 땅은 흙으로 된 사람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흙의 모양을 만드시고 영을 부어주셨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성전)이 있는 사람이 되었는데, 그 사람이 하나님을 떠난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이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심령 속에 있는 성전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옛성전(옛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새성전을 주시기 위해, 그리스도를 예정하시고, 마지막 사람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를 육신의 몸을 입고 세상에 와서 부활의 몸(새성전)을 주려고 하는 것이다. 새성전을 얻는 자는 예수님과 함께 옛사람(옛성전)이 죽고(파괴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새사람(새성전)으로 태어나는 것을 믿는 자가 되는 것이다. 새성전이 성도의 심령 속에 세워지면 그리스도가 그 성전에 재림하여 들어가는 것이다. 그 재림하여 들어가는 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 나라가 세워짐을 의미한다. 현재적 부활을 믿지 않으면 새성전이 세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첫열매라고 말을 하고, 그 다음에 성도가 부활의 열매를 계속...

잃은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의 비유

잃은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의 비유 누가복음 15장 8-10절)『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비유 중 두번째의 비유이다. 첫번째 비유는 백마리의 양 중 한마리를 잃어버려 그 목자가 한마리를 찾으로 나가는 비유이다. 양이 길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목자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목자가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한마리를 찾으로 가는 내용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신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두번째 비유는 어느 여자가 잃어버린 동전을 찾는 이야기이다. 성령께서 교회에 임하셔서 여자인 교회가 성령의 조명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죽어있는) 동전을 찾는 이야기다. 두번째 비유에서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왜냐하면 영이 죽어있기 때문이다. 오직 성령의 역사만으로 영을 살리는 일이 가능하다. 이 두가지 비유의 마지막 귀절은 다 똑 같다.『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목자를 잃어버리는 것이 죄의 시작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 따라 우리의 상태가 두번째의 비유에 이르런다.  인간의 영은 어두움 속에서 죽어있는 상태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빛(부활)이다. 그래서 주님이 교회를 세우셨는데, 교회는 주님의 피값으로 사서 주님이 세우신 것이다. 교회는 교회 건물이 아니라, 성도의 심령 속의 성전을 의미한다.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예수님이 교회를 세우는 것은 마른 뼈들이 붙고 거기에 가죽이 붙고 힘줄이 붙고 그리고 생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성도의 부활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오순절에 일어난 것이다.  생기를 불어넣어서 죽은 자가 영적으로 살아...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초대교회 당시에는 부활에 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부활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논쟁, 그리고 부활이 “육체적 생존인가, 영적 생존”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서, 예수의 시체가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었다고 믿는 자들이 많다. 그러나 예수님의 시체는 안식일에 하나님이 가져가신 것이다. 하나님이 시체를 없애버렸다.   요한복음 3장 13절『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잘못된 번역을 헬라어 성경을 통해, 다시 하면, 『하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아무도 하늘로 들어갈 자가 없다』인자외에 아무도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자가 없었다. 인자는 첫사람 아담으로 가장 먼저 하늘을 나온 자이다. 에베소서 1장 15절에서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두번째 부활로 에녹이 하늘에 올라갔다. 에녹의 죽음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 에녹은 첫사람아담 이후 여덟번째 자손 새창조 부활을 상징한다. 하브리서 11장 5 절에서『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에녹은 몸이 부활했으며(변했으며) 아무도 죽음을 보지 않았으므로  그를 찾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그가 변형 전에 하나님이 옮겨셨기 때문이다.   모세의 죽음도 아무도 보지 못했다. 그는 120세에 죽었다. 율법의 완성자로 죽었다. 모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이다. 결국 둘다 죽었지만 아무도 시체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갔다. 예수 그리스도는 마지막 아담이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었으며, 그리스도는 부활하였고, 부활전에 이미 시체는 사라졌다.   금요일에 예수의 시체를 장사하고 무덤에 넣었는데, 하...

서기관들을 삼가라

서기관들을 삼가라   마가복음 12 장 38-40 절『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서기관들은 회당의 상좌에 앉는 것을 좋아했다 . 회당 안에 두루마리 성경이 보존되어 있는 거룩한 궤 앞에 회중을 향하여 특별히 구별된 긴 의자가 있었다 . 그곳에 앉은 사람은 모든 사람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었는데 ,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은 존경심을 품은 회중의 주시를 받을 수 있었다 .   서기관들은 잔치의 가장 높은 자리를 좋아했다 . 연회의 상석은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었다 . 가장 상석은 주인의 오른쪽 자리이며 두 번째 상석은 주인의 왼쪽 자리였다 . 그리고 오른쪽과 왼쪽으로 번갈아가며 테이블을 돌아가면서 순서대로 자리가 정해졌다 . 어떤 사람이 갖고 있는 명성은 그가 앉아 있는 자리로 금방 알아낼 수 있었다 .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길게 기도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 그런 행동은 거의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었지 하나님께 보이려고 길게 기도 한 것이 아니었다 . 서기관들은 기도할 때 그들이 얼마나 경건한지를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장소와 방법으로 기도했다 . 누가복음 18 장에서 소개하고 있는 세리와 바리새인의 기도에서 그러한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 그들은 금식으로 수척해진 모습을 하고 사람들이 많은 사거리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했다 .   서기관들에 대한 비판에 이어 구체적 죄상을 폭로하는데 , 그들은 과부의 재산을 착취했다 .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삼켰다고 말씀한다 . 당시 과부들은 고아들과 함께 경제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서 보호 대상자였다 . 약자의 재산을 착취하는 행위가 종교지도자들 사이에서 흔히 있었던 것임을 반증해 주고 있다 . 서기관들은 그들에게 위임된 율법적 판결권을 남용하였거나 ,...

새것과 옛것의 비유

새것과 옛것의 비유   마태복음 13장 52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예수님은 천국에 대하여 네가지 비유를 말씀하셨다. 첫째는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이고, 두 번째는 값진 진주의 비유이며, 셋째는 바다에 쳐진 그물 비유, 넷째는 좋은 집주인의 비유이며, 네번째 새것과 옛것의 비유이다.  새것은 새언약의 말씀이고, 옛것은 옛언약인 율법을 말한다. 율법과 새언약을 정확히 풀어서 해석할 수 있어야만 천국의 제자된 사기관인 것이다. 예수님이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물으셨을 때, 제자들은 『그러하오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제자들 너희는『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이라고 비유하시면서, 천국을 잘 배워, 말씀을 능숙하게 옛것과 새것을 꺼내어 풍성하게 가르칠 수 있다고 하셨다. 성경 말씀을 읽고 남에게 전도하기 위해 잘 알고 있어야 하고, 상황에 따라 잘 적용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는 새것과 옛것의 구분을 잘 못하고 있다. 이 말을 에베소서 5장 18절에서 말한다.『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여기서 술은 포도주를 말한다. 포도주는 하나님 말씀이다. 술에 취하면, 이말 했다가 저 말했다가 횡설수설하게 된다. 옛것과 새것의 구분도 할 줄 모른다면 이는 성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오직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이 세상에서도 술취하지 말라고 성경은 말한다.  옛것은 율법으로서, 죄인을 구속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대속으로 죽으셨다. 그래서 이제는 옛것 대신에 새것을 내 와야만 한다. 새것은 새언약으로 하늘의 부활생명이다. 새언약은 피와 살로 설명한다.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이 피를 마시는 것이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것이 바로 살을 먹는 것이다. 살을 먹지 않는 자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지 않는 자들이...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부자와 나사로 비유 누가복음 16장 19-31절『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므로 바리새인들이 이를 지적하고 나섰다. 그래서 예수님이 누가복음 16장의 말씀을 하시게 된 것이다. 부자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부자를 말할 때, 세상의 부자라는 말이 아니라,『하나님에 대해서 스스로 자기의 의를 지키려고 하는 자』를 지칭한다. 하나님께 대하여 구할 것이 없는 사람을 말한다. 요한계시록 3장 17절에서 예수님이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

불의한 청지기 비유

불의한 청지기 비유 누가복음 16장 1-9절『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불의한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임의로 탕감해 주므로서 주인의 재산을 탕진했다. 그런데 주인이 이 불의한 청지기를 보고 ”잘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물들에 대한 특성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주인은 하나님을 의미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빚을 탕감해주기를 원하신다. 마태복음 18장 23-35절에서 1만 달란트 빚진 자의 내용이 나온다. 어떤 관원이 왕에게 1만 달란트의 빚을 졌는데, 왕이 빚을 갚으라고 독촉을 하는데, 갚을 능력이 없다고 하니까, 왕이 불쌍히 여겨서 빚을 탕감해 주었다. 이 관원이 왕으로 부터 물러나서 집으로 가다가 자기에게 100데나리온(아주 적은 돈) 빚을 진 사람을 발견하고는 빚을 갚으라고 요구했으며, 그 사람이 갚을 능력이 없다고 하니까 그를 끌고 가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