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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드린 십일조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드린 십일조 창세기 14장 17-20절에서『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로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얻은 것은 전쟁 중에서 얻는 것으로 오인할 수 있으나, 원문에는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주었다고 되어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드린 것과 오늘날 교회에서 말하는 십일조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대부분 교회 사람들은 율법에서 십일조를 정하고 있지만, 그 이전에도 십일조가 있었으므로, 십일조는 교회에 바치는 것이 정당하다고 말을 하기도 한다. 멜기세덱은 히브리서 5장 11절에서『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멜기세덱을 살렘왕이라고 했다. 히브리서 7장 2절에서『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그리고 이사야 9장 6절에서는『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다. 결국 살렘왕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즉 멜기세덱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7장 3절에서는『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하고 어둠에 거하면

요한1서 1장 5-10절『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교회 사람들은 이 말을『하나님을 믿으면서, 세상에서 악한 행동을 하게되면』 이라고 받아드릴지도 모른다. 빛이신 하나님과 사귄다는 것은 하나님의 빛을 받아서 그 빛을 반사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 말씀을 받아서, 그 말씀에 대해서 화답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감동받고 아멘하면서 그것으로 끝내면 안된다는 것이다. 출애굽기 20장 19절에서『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백성들이 하나님이 두렵게 여겨지므로 모세 (율법)뒤에 숨었다. 백성들은 율법을 지키면서 아멘 하지만, 하나님께 직접 화답을 하지 않는 것이다. 율법 뒤에 숨어서 자기의 의를 쌓는 것 뿐이다. 율법에 갇힌 자들은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자기가 알아서 믿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하늘의 생명을 찾고 나누어주라는 것이다. 전하지 않는 자는 어둠 가운데 있는 자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1장 5절에서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빛은 바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십자가와 연합되는 것이 바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창세기 6장 10-13절『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그 끝날이 이르렀던 이유는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온 세상이 부패했다고 하시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하나님의 생각과 인간들의 생각은 너무나 다르다. 이사야 55장 8-9절에서『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대부분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느정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 구원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원하시는 것은『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께 부르짖으라』는 것이다. 인간이 생각하기에 스스로 무엇인가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그런 생각조차 하나님께 대하여는 악하다 라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과대평가를 하려고 하는 것이다. 마치 큰 바다에 빠져있는데, 스스로 헤엄쳐서 목적지를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구원은 누군가가 와서 건져주는 것이다. 하나님보시기에 세상 사람들은 큰 바다에서 육지에 다다를 수 있다고 헤엄치는 모습이다. 마치 스스로 의를 이루어보겠다고 노력하는 그런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요한복음 8장 21절에서『다시 이르시되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그래서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다가 죽으면 음부에 간다는 것이다. 8...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이유

전도서 12장 7-8절『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인간은 반드시 곤고한 날이 오게된다. 그래서 전도서 12장 1절에서『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기억하라』는 것이다. 무엇을 기억하라는 것인가? 인간 속에 있는 영은 반드시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만 한다. 인간은 육과 영으로 이루어진 존재다. 그런데, 태어나면서부터 영이 죽어서 육의 그림자인 혼이 주인노릇하고 있는 것이다. 혼은 사람의 지식, 감정, 의지를 총칭한다. 혼(soul)은 히브리어로 네피쉬하야(헬라어:푸쉬케) 라고 한다. 학자들은『인간은 영과 혼과 육으로 이루어진 존재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혼은 육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창세기 2장 7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And the LORD God formed man of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soul.』(kjv) 생령으로 번역된 부분은 혼(soul)이다. 혼은 생명체, 즉 생명이 있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육체가 죽으면 혼은 사라지는 것이다. 혼은 존재가 아니라, 관념(생각)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영과 육으로 이루어진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셨다. 그 자기가 바로 혼이라는 것이다. 이 혼이라는 관념이 육의 주인노룻을 하기 때문에 영을 계속 죽게 만드는 것이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이다. 영(spirit)은 히브리어로『루아흐, 네사마』라는 말로 사용된다. 이 단어들은 호흡, 영, 바람이라는 의미도 가진다. 헬라어로는 푸뉴마라고 한다. 우리 말로 영혼이라는 말은 ...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로마서 8장 13-14절『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여기에서 영은 성령을 의미한다. 육신대로 살면 육체 속의 영이 죽고, 몸의 행실을 죽이면 영이 살아난다. 육과 영은 서로 대립하고 있는듯하다. 육과 영이 만나서 인간이 되었는데, 서로 원수지간처럼 느껴진다. 이 때 육은 옛사람, 육으로부터 나오는 탐욕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육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육체 속에 숨어있는 탐욕의 마음 때문에, 영이 죽는 것이다. 성령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영이 살아나는데,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옛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들이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로 육의 옛사람이 살아나지 않도록 날마다 죽노라를 기억하는 것이다. 회개는 자신이 옛사람인 것을 인정하고 돌이키는 것이다. 즉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새사람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옛사람이 죽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을 믿는 자가 회개하는 자다. 그런데, 오늘날 회개의 의미가 잘못되어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세상으로 방향을 맞추고 있다. 세상에서 지은 죄를 회개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회개는 하나님에 대해서 회개해야만 한다. 하나님을 떠난 자라는 것을 회개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자는 하나님 나라에서 벗어난 자를 의미한다. 원래 하나님 안에 있던 자인데, 하나님을 떠나려고 한 것이 하나님께 죄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땅에서 스스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자기라는 존재성을 부인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회개라는 것이다. 그런데,『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는 이 귀절을 회개로 연결시키려는 사람들이 많다. 요한복음 13장 10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베드로가 ...

하나님의 형상

창세기 1장 26-27절『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자가 바로 아담이다. 사람이 창조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남자와 여자로 나누어지기 전의 하나로 된 사람이다. 오늘날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과 다른 존재라는 것이다. 아담은 두 종류의 아담이 있음을 알게된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아담(아다마)과, 창세기 2장 21-22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즉, 여자가 아담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남자로서 아담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아담은 최초의 사람이다. 형상에 대해서 이해가 팔요하다. 골로새서 1장 15절에서『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 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난 분이 예수님이다. 요한복음 1장 18절에서도『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한복음 14장 9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아담은 그리스도의 표상이라고 했다. 즉 하나님의 형상으로 태어난 아담은 곧 그리스도라는 말씀이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원래 하나였는데, 그들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그리스도를 떠나고 싶어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물질세계를 만들어 그들이 스스로 의를 이루어보라고 그들을 흙속에 가두어 인간이 되게 한 것이다. 최초의 인간은...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요한복음 6장 62-64절『그러면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것 같으면 어찌 하려느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자가 누군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다. 6장 51절에서『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유대인들이『어떻게 사람의 살을 먹는가』라며 의아해했다. 예수님은 6장 54절에서『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라고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셨다. 유대인들이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더 나아가 6장 62절의 말씀을 하신 것이다. 예수님이『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볼 것 같으면 어찌하려느냐』 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예전에 있던 곳은 하나님 나라이며, 그곳에서 여호와 하나님으로 계신 분이다. 즉 선재하셨다는 말씀이다. 세례요한도 예수님이 구약시대에 예수님이 계셨다고 했다. 요한복음 1장 15절에서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먼저 계셨다 라고 했다. 히브리서 11장 24-26절에서 모세가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누가복음 24장 27절에서 길을 가다가 두 사람의 제자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자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그리고 갈리리 바닷가에서 24장 44절에서 같은 말씀을 하고 있다.『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창세기 6장 1-13절에서『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 앞에 범죄한 자들이 하나님께로 부터 쫒겨나서 물질세계에 오게 되었는데, 이것은 갇혀진 것이요 최종 심판은 유보되어 있지만 그것은 심판을 받은 것이요, 쫒겨나서 육체 안에 모든 것이 갇혀있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것은『하나님 없이도 나도 선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 없이 해보라고 하나님 나라에서 쫒겨난 것이 천지창조요, 세상에 쫒겨난 상태로 흙이라는 육체를 입고 인간으로 왔으니까 어두운 가운데 탄생한 것이요, 죄악 가운데 탄생한 것이요, 하나님이 없는 상태로 창조가 된 것이 천지창조의 요약이다. 하나님이 없는 상태로 범죄한 자들이 쫒겨나서 어두움 가운데서 죄악된 상태로 태어나서 하나님이 세상에 보내어진 인생들에게 하시는 말씀은『나 없이 의를 이루어 보라』는 것이다. 해 본 결과가 하나님께서 모든 생명있는 것들, 사람, 짐승, 새 등 모든 것들을 지면에서 쓸어버릴 수 밖에 없는 그런 심판을 받게되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즉 하나님없이 살아본 결과를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없이 살아본 결과 멸망에 이르게 된 결과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와 율법과 관계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는 하나님의 편에서 설명하실 때에는『먹으면 죽는 나무다』라고 설명하셨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죽는 의미는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먹는 날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사단과 연결되는 것이다. 사단의 생각은 하나님없이 하나님처럼 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게하는 것이다. 인간이 ...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사람

마태복음 7장 24-29절『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이 말씀은 교회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잘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 의미를 정확히 모르면 곤란하다.『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여기서『행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잘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에 벗어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치시는 것이 아니다. 씨뿌리는 비유 속에서 하늘의 비밀을 깨닫는 것처럼, 예수님은 하늘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고 있는 것이다. 하늘의 비밀을 깨닫는 자는 지혜로운 자들이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 7장 21-22절의 말씀과 연계되어 있다. 그래서 그 의미를 깨달을 때, 마찬가지로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셨다.『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예수님은『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한 것이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해주신다.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다. 이 행함에 대해서 몇가지의 유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율법을 지켜서 의를 이루어보는 것...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2)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 밖으로부터 세상으로 들어온 것 같이 모든 인간이 다 그렇게 죄가 들어왔으므로 아담이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므로 범한 죄가 후손에게 전하게 된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은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는 말의 모든 초점을 에덴동산에 맞추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는 말을 사도바울이 로마서에서 우리에게 설명을 해 주는데, 12절에 『이러므로』라고 이야기한 것을 주목해야 한다.『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고 말한다. 로마서 5장 6절에서 11절까지 살펴보면『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않고 선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정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리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라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 하느니라』 사도바울이 로마서 5장 12절에서『이러므로』라고 말했는데, 앞에 있는 내용을 받는다. 앞에 있는 내용은 로마서 5장 6-11절의 내용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앞에 우리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대속죄물로 주셔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다 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신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되었을 때에 조차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확정하셨다 라고 말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1)

로마서 5장 12-14절에서『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라는 말과 창세기 2장 7절의『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그 흙으로 만든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라는 그 말과 아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특별히 누가『당신은 죄를 지었소이다, 죄인이요』이런 말을 하지 않아도 기독교인이면 다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생각한다. 다윗이 시편 51편 5절에서『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고 말하고 있다. 교회다니는 사람들은 대개 자기가 죄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다 자기가 죄인이라고 생각하지만 무슨 죄를 졌기에 죄인인가 라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땅에서 일어나는 일, 세상에서 행한 자기 행위 만을 가지고 죄를 논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께 돌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도 알지못하는 사이에 다 죄인이 되었다. 나 스스로 죄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교회의 가르침에 의해서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죄인이라고 생각한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은『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기 때문에 아담의 모든 후손들이 다 죄인이 되었다』라고 가르친다.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그 후손들이 다 죄인이 되었다 라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인 것이다. 로마서 5장 12절에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이렇게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고 말을 한다...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히브리서 6장 4-6절『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많은 교회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는데, 다시 죄를 지으면 구원에서 떨어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죄를 짓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날마다 율법을 바라보며 죄를 짓는지 않짓는지 살펴보면서, 또한 죄를 지으면 즉시 회개하여 예수의 보혈로 깨끗함을 받아야만 한다고 가르친다.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인가 아니면 구원은 변경될 수 있는 것인가? 요한복음 10장 28절에서『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그들은 누구인가? 양들이다. 예수님은 목자이시고, 그의 양들은 영원히 멸망당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요한복음 10장 25-26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지 않는 자들은 예수님의 양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영생이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 양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말씀하시는데, 구원에서 떨어질 수 있다고 말을 하는 자는 누구의 생각인가? 아마도 자기 생각일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자들은 아마도 예수님의 양이 아닐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양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들이다. 좁은 문은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들이다. 그리스도와 연합되지도 않았으면서 예수믿어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의 육의 눈으로 구원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6장 44절에서『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이사야 55장 6-11절『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하나님의 생각과 인간들의 생각은 다르다. 인간이 하나님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인간은 하나님 말씀 앞에서 자기의 생각을 버리면 하나님 생각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인간을 구원하셨으니, 인간도 이 세상에 살면서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을 버려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순종을 원하신다. 그래서 인간들은 하나님 말씀대로 열심히 노력하여 사는 것을 순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하나님께 대한 순종은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행동하게 된다. 성경 속에 어떤 말씀이 있으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묻고 따르는 것이다. 여기에서 자기의 노력과 헌신이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므로서 성령의 능력에 의지하여 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게된다. 출애굽한 백성들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약속한 가나안을 주시겟다고 하신 말씀을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열두 정탐꾼 중에서 열명의 ...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아모스 8장 11-14절『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사마리아의 죄된 우상을 두고 맹세하여 이르기를 단아 네 신들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라 하거나 브엘세바가 위하는 것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라 하는 사람은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의 차이는 미혹하는 자인가 아니면 진리를 선포하는 자인가의 차이다. 그런데, 미혹과 진리를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마태복음 24장 4-5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오늘날 대부분 교회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넘쳐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참 진리의 말씀이 기갈되고 있다 라고 말한다면 믿을 수가 있겠는가?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가난한 자라고 말씀하신다. 라오디게아 교회 사람들은 스스로 부자라고 생각하는데, 예수님은 그 교회가 벌거벗고 궁핍한 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셨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며,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살아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했다.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했으면, 참 진리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고, 스스로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선악을 판단하는 자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율법을 잘 지켜서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자들이며, 사탄의 미혹을 따라간 자들이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 속에서 감추어진 생명나무를 발견했어야 하는데, 그러...

무녀가 올린 것은 사무엘의 영인가?

사무엘상 28장 11-14절『여인이 이르되 내가 누구를 네게로 불러 올리랴 하니 사울이 이르되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 하는지라 여인이 사무엘을 보고 큰 소리로 외치며 사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나를 속이셨나이까 당신이 사울이시니이다 왕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무엇을 보았느냐 하니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영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나이다 하는지라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그의 모양이 어떠하냐 하니 그가 이르되 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그가 겉옷을 입었나이다 하더라 사울이 그가 사무엘인 줄 알고 그의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니라』 사울이 사무엘의 사후에 문제를 해결받기 위해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서 대화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여인은 사무엘의 영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으로 표현한다. 정말 사무엘의 영이 올라온 것인가 아니면 사탄의 미혹인가? 만일 사탄의 미혹을 따른다면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하는 것이다. 성경은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하신다. 구약은 오실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신약은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것을 언급한다면 사탄의 미혹인 것이다. 출애굽기 22장 18절에서『너는 무당을 살려두지 말라』, 레위기 19장 31절에서『너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레위기 20장 6절에서『접신한 자와 박수무당을 음란하게 따르는 자에게는 내가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레위기 20장 27절에서『남자나 여자가 접신하거나 박수무당이 되거든 반드시 죽일지니 곧 돌로 그를 치라 그들의 피가 자기들에게로 돌아가리라』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대부분 교회 사람들이『무당이 사울에게 사무엘의 영이 땅에서 올라왔다고 말한 내용을 어떻게 그대로 믿고 있는가』라는 것이다. 이렇게 믿는 사람들은『하나님이 사무엘의 영을 사울에게 불쌍해서 한번 보내주셨는가 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요한복음 5장 17절『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창세기 2장 1-3절에서『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안식은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한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으면 안식에 있는 것이다. 즉 내 안에서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을 누린다. 히브리서 4장 10절에서『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사람들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 바로 안식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 즉 첫째 날에서부터 여섯째 날에는 안식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왜 안식하지 못했는가?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나겠다고 하는 사탄과 영들로 인해서 안식이 깨어진 것이다. 그들을 가두기 위해 물질세계를 만들어 그들을 그곳으로 내보는 일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6일동안 창조의 일을 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하신 세상 창조가 바로 하나님 자신이 하시는 일인 것이다.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이 말씀은 하나님이 비록 직접 자기의 일로서 세상을 창조하셨지만, 세상 일에는 관여하지 않으신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세상 창조의 일을 마쳤으므로 세상에 들어간 영들에게 너희들이 알아서 선을 이루어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서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하나님 나라로 돌아오라는 메시지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오면 안식을 주겠다고 표현이시다.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는 것과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간...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의 의미

창세기 5장 21-24절『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은 영이 물질 속에 갇힌 자들이다. 그러나 갇혀있던 영이 깨어나는 자들도 있으며, 죽어있는 자들도 있다. 영이 깨어난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며, 영이 죽은 자들은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하는 자들이다.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하는 자들은 자기가 주인인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들이다. 그러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나님은 하나님나라에 계시고, 인간들은 물질 속에 존재한다. 물질세계에 있는 존재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다.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물질세계에 있는 인간이 하나님 나라로 가던지, 아니면 하나님이 물질세계로 오시던지 둘 중의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곤란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극히 주관적이면서 추상적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안계신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율법을 지키면서 의를 이루어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의를 스스로 이루어보려고 하다가 불가능함을 깨닫고,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이다.『율법을 지키다가 하나님이 내 안에 안계시는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율법을 주신 목적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떠난 죄인임을 깨달았어야 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 스스로 의인이 된 것처럼 생각했다. 로마서 3장 19-20절에서『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죄를 깨닫는 자에게...

순종이 제사 보다 낫고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

요한복음 3장 36절『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순종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순종에 대해서 복종이라는 말로 생각한다. 그러나 순종은 히브리어로『샤마(듣는다), 아나(행한다)』라고 하는데,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다. 이사야 65장 24절에서『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응답하고 들을 것이며, 라는 단어가 바로『샤마, 아나』다. 하나님도 인간의 부르짖음에 즉각 반응하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에는 선지자가 있었으며,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들도 있었다. 그런데, 참 선지자가 말하는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신명기 18장 18절에서『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신약시대에 참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도 참선지자가 된다. 교회에서의 직책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밖에 있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신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지,아니면 사람의 생각을 섞어서 말씀을 전하는지 구분할 수 있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오늘날은 거짓 복음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신명기 18장 22절에서『만일 선지자가 있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제 마음대로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여기서『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라는 내용이 중요하다. 반드시 그 말이 성취되는 것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교회에서 하나님 말씀을 전했는데, 그 말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는 성취함이 없으면 가짜라는 것이다. 하늘로부터 오는 권능과 능력으로 무엇인가 나타나는 그런 것이 아니라, 말씀이 이루어진...

희생과 제물을 드린적이 있느냐

아모스 5장 21-25절『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희생과 소제물을 내게 드렸느냐』하나님이 이 말씀을 하시고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멸망당할 것을 말씀하셨다. 모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 마찬가지로 구약시대에서도 하나님께 제자를 드렸다. 가장 먼저 제사를 드린 자들이 가인과 아벨이다. 그런데 제사중에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이 있고, 받지 않는 제자가 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두고 제사를 받지 않았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바로에게 이스라엘은 나의 장자라고 하셨는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제사를 받지 않았다고 말씀하신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주의 뜻대로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지적한다. 오늘날도 교회에서 주의 뜻을 다양하게 생각한다. 마치 마태복음 7장 22절의 말씀이 주의 뜻인양 생각하는 것이다.『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그런데, 예수님은 이어서 7장 23절에서 이들을 불법적인 사람이라고 선언한다.『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신도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셨는지 거의 모른다. 다만 『받았음을 믿습니다』라고 말하고 예배를 드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께서 받은 것...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사사기 1 장 1-2 절에서『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 주었노라 하시니라 』   가나안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상징한다 .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는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지만 , 여전히 육체를 가지고 있으므로 악과 싸워 이겨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사사기를 통해서 성도가 어떻게 전쟁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신다 . 성경은 언약의 말씀이다 . 출애굽기 19 장 5-6 절에서『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언약은 창세기에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고 ,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영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 왜 하나님이 최초에 이렇게 아담에게 언약을 하셨는가 ? 그 이유는 하나님 나라에서 이미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사탄을 따라간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 하나님 나라에서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라는 것이 없었다 . 그러나 사탄을 따라가는 행동이 하나님께는 죄가 되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 즉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자의 모습이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라는 것이다 . 그래서『그 열매를 먹으면 하나님이 너희들은 죽는다』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는 사탄을 의미하고 그 열매는 죄를 엄히 다스리는 율법이 되는 것이다 .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들을 이 땅에서 인간이 되게 하시고 , 하나님 나라의 모형인 에덴동산을 만들어 , 아담 ( 그리스도의 표상 ) 을 그곳에 이끌어두시고 아담을 통하여 하와 ( 범죄한 영들 ) 에게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것이다 . 스스로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