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25의 게시물 표시

아볼로는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아볼로는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사도행전 18장 24-26절『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그가 일찍이 주의 도(호돈)를 배워 열심으로(제온 토 프뉴마티)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아크리보스) 말하며(엘라레이) 가르치나(에디다스켄)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에피스타메노스)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제온 토 프뉴마티 (ζέων τῷ πνεύματι) 는 성령 안에서 열심히 라는 말이다. 아크리보스 (ἀκριβῶς) 는 열정적으로 라는 의미다. 아볼로는 성령에 대해서 열심이었으며, 예수에 대해서 자세히 가르쳤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볼로는 성령에 대해서 인식하고, 성령에 대해서도 듣고 있었지만, 요한의 세례만 알고 전했다는 것이다. 에피스타메노스는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체험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이 요한의 물세례만 받고 성령세례를 받지 않으므로 성령세례를 체험적으로 알지 못한 것이며 그래서 성령세례를 전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 부부는 아굴라에게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말해주었다. 도 라고 번역한 호돈( ὁδὸν )은 길, 진로, 형태, 수단 등으로 사용된다. 주의 도와 하나님의 도가 등장한다. 아볼로는 주의 도를 배워 열심히 신도들에게 가르쳤으나, 요한의 세례만 알고, 하나님의 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 것으로 표현하는데, 주의 도(호돈 투 큐리오스  ὁδὸν τοῦ κυρίου )는 하나님의 도( ὁδὸν τοῦ θεοῦ )와 어떻게 차이가 있는가? 큐리어스는 히브리어 아도나이의 헬라식 이름이다. 즉 아도나이는 이후 야훼(여호와)로 불려졌으며, 야훼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고유명사)라는 유일신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일반명사로서 신이라는 표현이다. 주의 도라는 것은 구약성경에서 언급되는 여호와로서 메시야를 보내실텐데, ...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사도행전 18장 18절『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케이라메노스)』 유대인들은 서원기도를 할 때 머리카락을 자르는 전통이 있었다. 케이라메노스는 아오리스트 시제를 사용했다. 순간적으로 바울이 그런 행동을 한 것이다. 성령이 그렇게 인도를 한 것으로 보여진다. 서원이 이루어질 것을 이 행위를 통해서 확신하라는 것이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생의 한 걸음을 비추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앞으로의 인생길이 어떻게 펼쳐질지 다 알 수 없었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한 걸음을 내딛었다. 물론 그것은 이전까지 자신들에게 익숙한 삶의 방식이 아니었지만 그들 부부는 바울과 같이 고린도에 머물렀고, 수리아로 떠났고 에베소에 이른다. 사도행전 18장 19-21절『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바울이 각 지역에서 작별하고 떠나는 모든 과정이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에베소에서 작별할 때 남긴 말을 기록하고 있다.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했던 바울의 두번째 전도여행은 작별과 떠남의 여정으로 기록된다. 그는 1년 6개월 간 머물렀던 고린도에서 작별하였고, 에베소에서는 더 오래 있기를 청하는 사람들과 작별하고 떠났다.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라고 번역된“팔린 아나캄프소 프로스 휘마스 투 데우”( πάλιν ἀνακάμψω πρὸς ὑμᾶς τοῦ θεοῦ ) 투( τοῦ )라는 관사는 문법적으로 소유격을 나타낸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너희에게 돌아오리라”라는 것이다. 바울은 에베소 지역을 중심으로 복음 전도의 전략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울의 ...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라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라 사도행전 18장 1-3절『그 후에 바울이 아덴(아테네)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아굴라라 하는 본도(본토:로마)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아테네는 철학의 도시라면, 고린도는 상업의 도시였다. 황제 클라우디우스는 로마의 유대인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유대인들에게 추방령을 내렸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이 때 로마를 떠나 고린도에 정착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바울과 마찬가지로 천막 제조업자들이었다. 바울은 이 부부의 집에 함께 살면서 주중에는 천막을 만들고 안식일에는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다. 이들 부부로 인해 바울은 고린도에서 오랜 기간을 머무르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바울의 동역자는 이들만이 아니었다. 실라와 디모데가 마케도니아 지역에서 고린도로 내려와 합류했다. 당시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생업은 스스로 해결해야만 했었다. 고린도에는 교회가 세워지지도 않았으며, 바울이 생업을 함께하는 아굴라, 브리스길라, 실라, 디모데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18장 4-5절『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쉬네이케토 토 로곤 호 바울)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로고( λόγῳ) 는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쉬네이토 토 로곤 호 바울” (συνείχετο τῷ λόγῳ   ὁ Παῦλος) 은 바울이 말씀이신 그리스도에 붙잡혔다 라는 것이다. 헬라어 성경에는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없는데, 개역개정에는 포함시켰다. 쉬네이게토는 미완료 수동태이다. 쉬(함께)와 에코(소유하다)의 합성이다. 해석하면 함께 소유되었다 라는 것이다. 바울이 말씀이신 호 로고스와 하나가 되어 성부 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사도행전 16장 8-10절『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보에데손)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바울은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게 되자 지체하지 않고 즉시 마게도냐 빌립보로 떠나 그곳에 이르게 된다. 바울은 아시아로 가기를 원했는데, 환상으로 아시아에 가는 마음을 접는 것이다. 그래서『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라고 말을 한다. 보에데손은 구원하다, 원조하다 라는 의미다. “도우소서”라는 말은 구원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고린도후서 6장 2절『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마태복음 15장 25절『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보에데이)』가나안 여자가 자기 딸이 귀신들려 있는데, 도와 달라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귀신을 쫒아내어 구원해 달라는 의미다.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은 빌립보인데, 자색 옷감 장사를 하던 루디아의 집에서 복음의 전파는 시작된다. 사도행전 16장 13-15절『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루디아는 하나님을 섬기는 여인이었지만, 성령세례를 받지 못했다. 그런데, 주께서 그녀의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와 그녀의 가족 모두가 성령세례...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사도행전 16장 1절『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사도 바울이 실라와 함께 2차 전도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더베를 거쳐 루스드라에 도착했을 때, 훗날 믿음의 아들이 되는 디모데를 만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2차 전도여행에 앞서 미리 디모데를 준비해 놓으시고 바울을 기다리고 계셨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혼자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동역자와 조력자들을 반드시 붙여 주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디모데의 부친은 헬라 사람이고 모친은 유대 사람이었다. 즉 디모데는 유대적인 배경과 헬라적인 배경을 동시에 가진 신실한 믿음의 형제였다. 디모데는 모친의 혈통으로는 유대인이 되고 부친의 혈통으로는 헬라인이 되기에 유대인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접촉점이 있고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접촉점이 있는 것이었다. 사도행전 16장 2-3절에는『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라본) 할례를 행하니(페리에테멘)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그런데 디모데가 유대인 자격으로 바울과 함께 전도를 하면서 유대인을 만나게 되면, 할례를 받지 않은 것으로 인해 적지 않은 마찰이나 갈등이 생길 수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디모데가 할례를 받게 한 것이다. 할례를 받게 하는 것은 바울의 생각이라기 보다 성령의 인도하심이라고 볼 수 있다. 라본 (λαβὼν) 과 페리에테멘 (περιέτεμεν) 은 아오리스트 시제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조건으로서 할례를 받게 하는 것은 분명하게 복음에 반대되는 것이었지만, 믿는 유대인들이 할례 받는 것을 금지한 것이 아니었다. 만약 디모데의 부모가 다 이방인이어서 디모데도 완전한 이방인이었다면 성령께서 디모데에게 할례를 받게 하...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사도행전 15장 28-29절『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에파난케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에독켄)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에파난케스( ἐπάναγκες )는 필요한 것들, 필요하여, 필연적으로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에독켄( ἔδοξεν  기본형은 도케오)은 (좋게)여기다, 상상하다, 생각하다 라는 의미로서, 마태복음 18장 12절에『 너희 생각(도케오)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토(여격 정관사) 프뉴마티(성령)으로서 영어로 표현하면 to the Spirit이다.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이 부분의 헬라어 성경은  ἔδοξεν γὰρ τῷ πνεύματι τῷ   ἁγίῳ καὶ   ἡμῖν 인데,  헬라어 성경에서 가르( γὰρ ), 이 부분의 번역이 빠져있다. 가르( γὰρ )는 ~을 위하여, ~때문에 라는 영어의 for에 해당되는 단어이다. 이 문장에서 보면, 주어가 성령과 우리라고 표현되어 있으나, 잘못된 표현이다. 다시 번역하면,『성령에 따른 생각으로 인하여 우리가 필요한 것들이라 생각하는 것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노니』 성령에 따른 생각은 아무 짐도 지우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가끔 짐을 지우는 모습을 연출할 때도 있었다. 그것은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에게 이질적인 모습을 나타내지 않도록 그들의 생활방식에 자연스럽게 행동한 것이다.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율법적인 행동을 한다거나 이방인들에게 제물을 먹는 모습이라든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