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20의 게시물 표시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요한복음 7장 37-39절)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명절 끝날에 대해서 생각해보아야 한다. 출애굽기 23장 14절에서 하나님은 출애굽한 백성들에게 매년 세 번 절기를 지키도록 명령하셨다. 출애굽한지 49일째 되던 밤에 모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시내산으로 올라갔다. 그 다음 날, 모세는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들은 내용을 백성들에게 설명했다. 그 내용이 23장의 내용이다. 백성들이 지켜야 할 절기로서 무교절에 대해서 14절에서『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이는 이미 애굽에서 나올 때 지켰던 것을 다시 들었다.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출애굽하는 그 날밤에 어린양이 죽었던 것처럼, 유월절에 죽으셨다. 그리고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바다를 건너기까지 고난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이는 신약시대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기억하는 것이다. 출애굽기 23장 16절에서『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맥추절은 바로 레위기에서 오순절로 불린다. 모세가 백성들에게 설명하는 날이 바로 맥추절(오순절)이었다. 이 오순절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성령이 임하신 날이다. 수장절은 곡식을 저장하는 절기였다. 수장절은 레위기에서 초막절로 불리운다. 그러니까 오순절에 추수를 시작하고 그리고 7월 1일(연말)에 나팔을 불면 더 이상 추수하지 않고, 저장하는 것이다. 세상의 달력은 두가지다. 로마제국에서 완성된 태...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요한복음 7장 25-36절)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이 말하되 이는 그들이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그들이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가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무리 중의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 예수에 대하여 무리가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아랫사람들을 보내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시니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그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무지는 인류 역사와 함께 동행하고 있다. 인류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달았던 시기는 단 한 번도 없거나, 알아도 극소수의 사람만 알고 있었다. 이런 현상은 하나님께서 자신 스스로를 감추셨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매 순간마다 자신을 모든 인류에게 나타내셨다. 신명기 7장 9 절에서『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

(요한복음 6장 60절)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이렇게 말하기 전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55-57절에서『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하셨는데, 제자들이 어렵다고 한 것이다. 왜냐하면 구약성경 전체에서 짐승의 피를 마시면 안 되도록 되어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따르는데,『내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수군거리는데, 예수님이 63절에서 다시 말씀하셨다.『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이르시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사람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받아드리기 어려웠다.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는데, 예수님은 구약성경을 잘 알고 있는 니고데모에게『다시 태어나야만 한다』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을 했을까? 오늘날도『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을 했더라도 예수를 따르는 자가 있고, 어렵기 때문에 따르지 않는 자가 있다. 그냥 어려운 말은 제쳐두고 자신이 믿기 쉬운 말을 선택해서 구원에 이르고 싶은 것이다. 예수님은 65절에서 다시 말씀하신다.『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사람들은 요한복음의 이 말씀보다 마태복음의『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는 말씀에 익숙하다. 요한복음과 마태복음 두 가지가 왜 서로 차이가 있는가? 마태복음은 교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요한복음 5장 44절)『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사람들에게 영광을 구한다면, 사람들로부터 칭찬 듣기를 원한다면, 사람들에게 자랑한다면, 하나님으로 부터 영광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으로 부터 영광을 구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긴 설교(14-16장)를 들었다. 설교를 듣고 감동을 받아서 예수님께 말했다. 요한복음 16장 30절에서『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예수님이 31-32절에서 대답하시기를『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믿느냐?』 라는 말은『너희가 나를 믿는다고?』라는 것으로, 믿지 않는다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헬라어 본문에서『이제는』이라고 번역된 단어가 『지금』이라는 뜻이다.『지금 믿는다고?』이다.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취하려고 하고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영광을 취하려고 하지 않는데, 어떻게 나를 믿느냐』라는 말이다. 오늘날 지적으로 성경을 알고 깨달았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영광을 취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지만 유대인의 사회에서 출회를 당할까봐 감히 말을 못한다는 것이다. 믿음은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과 연합되는 것만이 참 믿음이다. 이렇게 되지 못하면 지적인 동의일 뿐이다. 연합되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며,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부인하고 예수 안에 있어야만 하나가 된다. 나를 부인하지 않는 자는 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자이기 때문이다. 예수 안에 있지 않으면 옛뱀에 물린 자...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요한복음 5장 19-24절)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창세기 2장 3절에서『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라고 했다. 안식은 하나님의 나라 그 자체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하나님 안에 있으면 안식이 된다. 하나님이 내 안에 성령으로 거하시면 내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하나님과 하나가 되며, 그것이 안식이다. 하나님이 창세기 1장 1절의 천지창조를 하기 전에 바로 안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생긴 것이다. 그게 바로 세상을 창조해야 할 일인 것이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게 되어도 하나님 나라에서는 안식이 유지되고 있다. 즉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히브리서 4장 10절에서『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여기에서 자기의 일은 헬라어로『사적인, 개인적인』이라는 의미를 담는 말로 사용되었다. 자기의 일은 천지창조를 의미한다. 즉 창세기 2장 3절에서 천지를 다 창조하시고 나서 안식하셨으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4장 43-48절)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친히 증언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예수님 일행이 다시 갈릴리로 돌아오는 여정 중에 생긴 일로 요한복음이 전하는 일곱개의 표적 중에서 두 번째 표적으로 예수님께서 왕의 신하의 아들의 병을 고쳐주신 이야기다. 갈릴리에 이르자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들이 예수님을 영접한 이유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첫 번째 이적의 소식은 갈릴리 지역에 사람들의 입에 입을 타고 전해졌을 것이다. 목격하지 않고는 믿지 못할 이 소식에 사람들은 의심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유월절 행사를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갔는데, 예루살렘 성전에서 한 청년이 서슬이 퍼렇게 성전 앞에 늘비하게 있었던 장사꾼들을 나무라며 상을 엎어버리는 것을 목격했다. 유월절 행사를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제물을 구입할 때마다 폭리를 취하는 이들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한 청년의 이 용기 있는 행동에 속으로 갈채를 보냈다. 바로 그 청년이 가나 혼인잔치의 이적을 행한 예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은 예수님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 했을 것이고, 이후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머물면서 말씀을 전하는 집회에 참석했다. 그 청년 예수가 갈릴리에 도착했다는 소식에 갈릴리 사람들은 나와서 예수님을 환대했다. 환대를 ...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요한복음3장 14-15절)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하신 마지막 부분의 말씀이다. 처음 부분은 물과 성령으로 위로부터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다. 구원의 핵심은 위로부터 거듭남이다. 예수의 피로 죄를 씻는 것은 세례의 결과다. 세례는 죄를 짓는 옛사람을 처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전에 이 땅에서 천국으로 살게하신다. 그래서『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회개하면 이 땅에 천국이 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에 살기 때문이다. 거듭나는 자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3장 14-15절의 말씀을 니고데모가 받지 못한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당신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입니다』라고 했다. 사람들이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는 것 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신앙인도 구원받지 못하는 사례가 열처녀의 비유에서 나타난다. 모두가 다 신앙인이었지만 미련한 다섯 처녀는 구원받지 못했다. 미련한 다섯처녀의 기름이 떨어질 때 주님이 오신다는 것이다. 율법에 가로 막혀있으면, 장대에 높이 들린 인자를 믿는 믿음이 없는 것이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으로 부터 들은『인자가 뱀처럼 들린 것을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민수기 21장 8-9절에서『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라고 하신 말씀을 재조명하신 것이다. 예수를 믿지만 예수를 믿는 자가 다 뱀에게 물린 자라는 것이다. 이것을 니고데모가 믿지 못하는 것이다. 즉 자기가 뱀에게 물린 자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우리도 예수를 믿지만 뱀에게 물려서 뱀의 독이 퍼져있는 자라는 것을 깨닫지...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장 43-51절)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세례요한이 두 제자와 함께 서 있다. 두 제자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와 이 글을 적고 있는 사도 요한이었다. 요한복음이 쓰일 당시에 안드레와 사도 요한도 세례요한의 증언이 없었다면, 예수를 랍비 중 하나로 여겼을지 모른다. 세례요한은 다시 한 번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 양 이신 것을 증언했다. 안드레와 요한은 예수님이 어디 계신지 물어보았다. 이것은 위치적인 의미도, 누구와 함께 있는지도, 근원이 어디부터인지 소속의 부분도 해당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설명하지 않으시고 와서 보게 하셨다. 그렇게 자기의 삶을 떠나 예수의 삶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랍비에게 가르침을 받기 위해 왔지만, 결국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은 예수의 부르심을 따른다. 안드레는 자신의 형제를 찾아 메시야를 전했다. 빌립 또한 나다나엘을 데려온다. 안드레는 예수를 메시야라고,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

(요한복음 1장 4-13절)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사람의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 대한 이 세상 사람들의 반응은 분명하게 나뉘어졌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죽음의 절망가운데 있던 사람들에게 희망의 빛을 주신 생명의 주인되심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알지 못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빛되신 구원자 예수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미리 한 사람을 선택하여 보내심으로 장차 오실 빛, 구원자에 대하여 선포하도록 하였다. 이 일을 맡은 요한은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신 목적 즉, 자신은 빛이 아니요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성실히 맡겨진 일들을 감당해 나갔다. 『빛이 아니고 빛에 대해 증언하러 온 자』자신을 소개하는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가겠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이 빛이 되어 주목받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게 해준다. 창조주이시고, 태초에 말씀으로 계시다 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사도행전 1장 1-5절)『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사도행전은 전편이라 할 수 있는 누가복음의 기록을 언급하며 시작하고 있다. 누가복음에 기록된 내용에 관한 것과 누가복음 끝부분에 기록된 부활에서 승천까지 40일간의 예수님의 행적을 사도행전의 서두에 언급하며 사도행전이 누가복음과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아울러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주제가 하나님 나라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데, 이는 사도행전 전개의 중심 역시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임을 암시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본 증인들은 부활을 전하다가 죽임을 당하였다. 부활의 증인들은 하나님 나라의 일을 전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감추어 두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40일간 하나님 나라의 일을 설명했는데, 성경에는 써놓지 않았다. 십자가의 일은 모든 이가 볼 수 있고, 알 수 있도록 했지만 부활은 회개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따른 400여명 외에는 보여주지 않았다. 바울이『모든 사람은 다 구원받기를 원하시느니라』라고 했다. 그러나 부활은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으셨다. 승천은 더 적은 수의 사람 만이 보았다. 로마서 10장 9절『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예수님이 주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예수를 다시 살리신 것을 믿으면 구원받는데, 부활을 아무에...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누가복음 13장 31-35절)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어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와서 자리를 피하라고 말했다.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 헤롯은 헤롯 대왕의 아들인 안티파스를 가리킨다. 누가복음 3장 1절에 따르면 이 헤롯 안티파스는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있었고, 그의 동생 헤롯 빌립은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있었다. 예수님의 활동 무대가 이 헤롯 안피파스의 지역과 겹친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에게 일종의 망명을 권고한 것이다. 예수님을 꽤나 생각해주는 말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위협이나 마찬가지다. 그들은 헤롯의 명령을 전달했거나 아니면 헤롯을 핑계로 예수님에게 겁을 주는 것이다. 당시에 헤롯이 예수님을 불편하게 생각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예수님과 헤롯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누가복음 9장 7-9절에 나온다. 당시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례 요한, 또는 엘리야, 또는 선지자 중의 하나가 다시 살아난 분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소문을 들은 헤롯은 마음이 꺼림칙했다. 누가복음 9장 9절에서『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이 사람이 누군가 하며 그를 보고자 하더라.』헤롯이 세례 요한을 죽인 사건은 마태복음 14장 1-12절과 마복음 6장 14-29절에 자세하게 나온다. ...

겨자씨와 누룩 비유

(누가복음 13장 18-22절)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또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가 겨자씨이며, 누룩이라는 것이다. 여자는 그리스도의 신부를 말한다. 에베소서 5장 31-32절에서『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아내는 교회를 말한다. 교회의 성도들이 세상에 나가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퍼지게 만드는 것이다. 가루 서 말은 세상을 비유하신다. 이 말씀은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하여지고, 확산됨을 의미한다. 마태복음 13장 31-32절에서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천국은 겨자씨 한 알과 같다고 했다. 이 겨자씨 한 알을 자기 밭에 심었다. 겨자씨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자기 밭은 바로 이스라엘을 나타낸다. 겨자씨 비유는 처음에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가 미약해 보이지만, 메시야의 죽음과 부활 이후 성령의 오심으로 인하여 복음이 이방인에게 확산될 것을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볼 때도 하나님 나라는 아주 초라하게 시작되었다. 그들은 이런 미약한 시작에 실망도 했고 절망도 했다. 그러한 그들에게 이 겨자씨 비유는 엄청난 위로를 주는 동시에 도전도 주었을 것이다. 씨 중에 가장 작은 겨자씨가 자라서 새들이 깃들일 정도로 큰 겨자나무가 되는 것처럼,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는 영적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누가복음 13장 1-5절)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신 당시 이런 유형의 사건이 두 가지가 있었다. 먼저는 빌라도라는 사람이 갈릴리 사람을 죽여 그의 피를 제물에 섞은 사건이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빌라도의 악과 빌라도에게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에 대해서 물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은 갈릴리 사람에 대해서『그 죽은 갈릴리 사람이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로 생각하느냐?』라고 되물었다. 그리고『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이같이 망하리라』라고 말했다. 이 사건을 가지고 질문한 사람들에게 오히려 말한 것이다. 그리고 또 예루살렘 실로암의 망대가 무너져 18명이 죽은 사건을 더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의 모든 사람보다 죽은 그 사람의 죄가 더 있는 줄로 생각하느냐? 라고 물었다. 사고로 인하여 먼저 죽었는데, 살아있는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고 없이 더 오래 산 사람이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을 더 쌓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비록 죽었지만 일찍 죽는 사람의 죄가 덜 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살아있다는 것이 은혜의 기회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예수님은 회개를 지적하기 위해서『회개하지 않으면 이와 같이 망하리라』라고 하셨다. 이게 예수님이 보시기에 회개하지 않는 것이 죄의 기준이 된다. 오늘날도 욥처럼 엄청난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들은 이 고통 받는 사람들로 인하여 주님의 뜻을 알아야만 한다. 욥기 42장 5-6절에서『내가...

네가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누가복음 12장 54-59절)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남풍이 부는 것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네가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그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 가고 재판장이 너를 옥졸에게 넘겨 주어 옥졸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네게 이르노니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고발하는 자는 사탄이다. 사탄이 항상 참소한다. 무엇을 가지고 참소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법을 통해서 참소한다. 하나님의 법은 율법을 의미한다. 즉 율법(모세의 법)을 근거로 고소한다. 고소하는 것은 반드시 법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 『화해하기를 힘쓰라』는 말은『고소가 안되게 하라』는 말이다. 『법에서 해방되다』는 말이다. 사도행전 19장 12절에서『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니라』에서『떠나더라』는 말은『해방되었다』는 뜻이다. 히브리서 2장 15절에서도『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 평생 매여 종 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라』여기에서도『놓아준다』는 말은『화해한다』는 말이다. 고소할 수 없는 상태가 되게 하라는 말이다. 즉 율법을 가지고 고소를 당하게 되는데, 고소를 당하지 않으려면 율법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급히 화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갈라디아서 4장 4-5절에서『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즉 율법 아래에 나시고 율법에 의해서 죽으심을 당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을 율법으로 부터 해방시켜 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누가복음 2장 41-52절) 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올라갔다가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예수님이 열두살 되었을 때의 일이다.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갔는데, 부모가 어린 예수를 잃어버린 사건이다. 부모가 예수를 찾으러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무려 삼일만에 다시 찾았다.『왜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마리아의 책망은 왜 우리에게 성전에 있겠다고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서 3일간 근심하며 찾느라 애를 썼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대답은 놀라움에 대한 반문이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어린 예수의 대답은 아버지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아들이 당연히 아버지의 집인 성전에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토록 저를 위해 근심하시며 그토록 찾을 것이 아니라 그냥 바로 성전으로 오셨더라면 저를 금방 찾으셨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마리아에게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누가복음 4장 31-37절) 갈릴리의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그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음이러라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다 놀라 서로 말하여 이르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 이에 예수의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 퍼지니라 귀신들린 자는 하나님을 떠난 모든 자를 의미한다. 예수님이 귀신을 쫒아냈다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자를 사탄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것이다.『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사탄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왔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심판을 시작하기 위해서 왔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사탄은 예수님을 죽이면 모든 것이 자기들 의도대로 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사탄을 심판하는 신호탄이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모르고 있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가르쳤다는 것은 곧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안식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히브리서 4장 8-10절에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에게 안식을 주었다면 그건 가나안 땅이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하는 그림자이다. 참 안식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있다는 말이다. 참 안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는 것이 바로 참 안식이다. 하나님이 참 안식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안식에 있...

할례할 팔 일이 되매

(누가복음 2장 21-40절) 할례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잉태하기 전에 천사가 일컬은 바러라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예수님은 탄생직후부터 고난 중에 계셨다. 마태복음 2장 13절에서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예수님은 이집트에 피신하여 있게 된다. 그리고 헤롯이 죽자 예루살렘에 돌아온 요셉은 아기 예수를 모세의 법대로 결례를 행하기 위해 성전을 방문하였다. 예수님께서는 탄생 후 팔일 째 되는 날에 율법을 좇아 할례를 받으셨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부과된 의무였다. 예수님은 율법이 아닌 은혜를 가지고 이 세상에 오셨지만 율법에 복종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에 매여 있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율법에 흠이 없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율법에 따라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율법의 완성이 되셨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율법의 마침이 된다. 예수님은 할례를 받고나서 정식으로 예수라는 이름이 주어졌다. 결례란 남자를 낳은 산모는 33일 동안 부정하고, 여자를 낳은 산모는 66일 동안 부정하다. 이것은 인간에게 에덴에서의 죄과를 잊어버리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했다. 레위기 12장 1-5에서 언급되고 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을 떠난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마리아가 베들레헴에서 7일간과 33일 간 합하여 40일을 지난 뒤에 결례를 행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율법에 의해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지고 하나는 번제로, 또 한 마리는 속죄제로 드렸다. 본래 산후결례시의 번제...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누가복음 2장 8-20절)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미가서 5장의 예언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나 그는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여진다. 그리스도란 말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란 뜻으로 기름부음은 구약에서는 대제사장, 선지자, 왕에게 주어지는 의식이다. 그리스도에게는 이 세 가지 직분이 모두 적용이 된다. 그러므로 그는 대제사장, 선지자, 왕이시다. 그러나 그의 본래의 신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감히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그가  마구간에서 비밀스럽게 아주 초라하게 태어나셨다. 그의 요람은 짐승들의 먹이통인 구유였다. 이것은 인류를 대표하는 제2아담으로 그가 행할 역할 때문이었다. 그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 사탄과 죄에 묶여있던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 놓기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가 철저하게 낮아 지심으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하...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누가복음 1장 27-38절)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예수라 부르라』 히브리어로 그 이름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라는 뜻이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는 예수라는 이름의 뜻을 설명한다.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예수님에 대해서는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 그러나 요한에 대해서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 세례요한과 비교할 때 예수님은 스스로 큰 자임을 설명하는 것이다.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마리아의 태중에 있는 그리스도에게 주어질 다윗의 왕권에 대한 말씀은 구약성경에서 나타난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기다리고 기다린 그 메시야이다. 그러나 ...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누가복음 2장 1-7절)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예수님은 육신의 동생들도 있었다. 예수님 만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셨다. 그런데 구유에 뉘었다. 왜냐하면 여관에 있을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거절했기 때문이다. 첫번째의 성탄은 이렇게 심각한 상황이었다. 오늘날 성탄절은 축제 분위기다. 성탄의 주인이 누구인가 알 수 없을 정도다. 성탄절은 예수님이 주인공이다.  동방박사는 예수님 만을 경배했다. 성탄절은 예수님 만을 경배하는 날이 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관에 누울 곳이 없어서 구유에서 태어났던 분이시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었지만 기적을 일으키는 예수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거절당하는 예수였다.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는 미련하게 보이는 예수가 된다. 마리아와 요셉은 베들레헴에 호적 등록하러 왔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그 날 마리아는 오직 예수님의 출생 만을 생각했을 것이다. 첫번째의 성탄은 아무도 영접하지 않은 예수였다. 또한 하나님은 마리아에게 출생할 때,『어느 집으로 가라』라는 등의 상황을 계시하시지 않으셨다.  베들레헴의 첫성탄은 축제가 아니라 비극이었다. 헤롯이 세살 아래 모든 사내 아이를 다 죽였다. 모세가 태어날 때, 모세가 유대민족의 구원자임을 마귀가 알고, 바로왕을 시켜서 아기 때부터 사내 아이를 자 죽인 것 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셨을 때 마귀가 알았으며, 헤롯왕을 시켜서 그렇게 죽인 것이다. 세계의 역사상 이런 비극은...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태복음 23장 29-39절)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저주하셨다.그리고 장차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을 뿐만 아니라, 제자들도 핍박할 것을 예언하셨다. 핍박의 결국은 심판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지자들을 통해서 여러 차례 회개하여 돌이킬 것을 말씀하셨으나, 백성들은 돌이키지 않았다. 뱀을 계시록에서 사단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뱀이 왜 사단인가? 뱀은 뱀이지 사단인가? 사단이라는 것은 대적자의 생각을 받아서 대적자의 생각과 대적자의 말과 뜻을 옮기는 자가 똑같이 사단이 되는 것이다. 사단이 뱀에게 자기의 말과 생각을 다 주었다. 그러니까 뱀이 하와에게 가서 사단이 준 생각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마가복음 1장 16-20절)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예수님은 제자를 부르실 때 갈릴리 해변에서 시몬(베드로)과 그 형제 안드레를 부르셨다. 또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도 갈릴리 해변으로 가셨다. 바다와 베드로에 대해서 이해가 있어야 한다. 바다는 하나님이 궁창의 아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해서 궁창 아래의 물을 바다라고 하셨다. 궁창 아래 있는 물은 땅에 속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고 율법을 뜻한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해 주신다고 말씀하셨다. 사람을 세상(바다)에서 낚는 것이다. 율법에 매여있는 인간들을 그물에서 건져 자유를 주시겠다고 하시는 것이다. 베드로가 낚시를 던져 보니 물고기가 올라왔다는 말은 세상(율법)에 가서 낚시를 던져 사람을 건져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의미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바다에 있던 물고기가 물밖인 세상으로 올라온 것이다. 그래서 하늘의 생명을 얻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것이다. 물밖의 세상에 올라온 물고기는 육으로는 죽임을 당하지만 영으로는생명을 얻게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서『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베드로는 어부였다. 그래서 바다에서 물고기를 건지듯이 흑암 속에 빠져 있는 죽은 영들을 구원하라는 것이다. 흑암 속에서 죽어 있는 영을 구하기 위해서는 생명의 빛을 보내주어야만 한다. 흑암에 있는 자들은 바로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다. 그래서 ...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마가복음 1장 1-8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마가복음은 가장 먼저 쓰여진 복음서다. 마가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중의 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바나바의 조카였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나타나는 마리아가 마가의 어머니였다. 사도행전 13장 5절에서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즉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 여행을 떠날 때, 수행원으로 가게 된 것이다. 요한이라는 사람은 바로 마가를 두고 하는 말이다. 마가의 또 다른 이름이 요한이었다. 사도행전 13장 13절에서『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마가가 버가에서 중도하차를 하게된 것이다. 버가는 험지인 산악지방을 앞두고 있는 지역이다. 중도하차 한 이유에 대해서 정확히 표현되지 않으나, 이를 계기로 바울이 마가를 선교 활동에 좋지 않은 선입감을 갖게된다. 아마도 힘든 선교 여행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사도행전 15장 36-41절에서『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바울은 선교 여행을 하다가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마가가 등장하는 것이다. 디모데후서 4장 9-11절에서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바울은 선교지에서 마가 때문에 바나바와 갈라섰던 기억이 있는데, 왜 마가를 데려오라는 것인가? 바울이 말하기를『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라고 말했다. 베드로전서 5장 12절에서『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언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바벨론이라는 표현은 로마를 지칭한다. 베드로가 마가를 아들이라고 말한다. 마가는 바나바의 육적 조카였지만, 영적으로는 베드로의 아들이라 지칭하는 것이다. 마가가 베드로를 통해서 신앙적으로 성숙된 자가 되었음이 틀림없는 것이다. 아마도 바울이 이러한 정보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과거에 버가에서 중도하차한 마가가 아니라 생각한 것을 알 수 있다. 마가는 베드로의 영향력을 많이 받았다.『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마가의 이 문장은 베드로가 사용하는 문장과 비슷하다. 마가가 복음서를 쓰게된 경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A.D. 64년에 로마의 대화재 사건이 있었다. 네로가 방화범이라는 소문이 퍼지게 되자, 로마 정치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희생양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원형 경기장에 그리스도인들을 가두어서 맹수들의 밥이 되게 했다. 이런 고통과 절망 속에서 작은 소책자가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진 것이다. 그게 마가복음이다. 마가복음은 A.D. 65-70년에 기록된 것이다. 고난과 절망 속에서 전해진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 되었다. 마가는 세례요한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다루고 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소개하기 위해 6개월 먼저 이 세상에 엘리야의 영으로 태어난 자였다. 세례요한은 여인이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소개되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보다 6개월 먼저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의 삶은 자기의 소명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소명은 주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다. 주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회개하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난 자라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내 뒤에 오시는 분이 심판하신다는 것을 먼저 알리는 것이다. 그래서 물 세례를 베풀었다.『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세례요한이 준 물세례는 죄 사함을 나타낸다.『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그런데, 요한의 뒤에 이 세상에 태어나는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고 말했다.『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물세례와 성령세례가 어떻게 다른가? 물은 죄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성령세례는 옛사람(악)의 죽음을 나타낸다. 예수님은 죄의 문제 이전에 악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이 세상에 오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바로 하나님께 대하여 악이라는 것이다. 세례요한이 언급한 죄의 문제, 곧 이 세상에서 지은 죄를 자복하게 하고 죄를 씻어므로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난 존재라는 것을 인식시켜주었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을 떠나게 한 원인을 제거해주기 오신 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옛사람이 죽으면, 모든 세상죄가 다 사하심을 받는다. 로마서 6장 1절에서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세례요한은 죄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예수님은 죄를 짓게 하는 악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요한의 물 세례는 죄를 씻는 것이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불 세례는 악이 죽는 것이다. 그래서 로마서 6장 4-6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예수님이 주시는 세례에서 물은 죽음을 의미한다. 노아시대 살았더라면 물에 죽었을 자들이라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3장 20-21절에서『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마가복음 1장 1-8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마가복음은 가장 먼저 쓰여진 복음서다. 마가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중의 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바나바의 조카였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나타나는 마리아가 마가의 어머니였다. 사도행전 13장 5절에서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즉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 여행을 떠날 때, 수행원으로 가게 된 것이다. 요한이라는 사람은 바로 마가를 두고 하는 말이다. 마가의 또 다른 이름이 요한이었다. 사도행전 13장 13절에서『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마가가 버가에서 중도하차를 하게된 것이다. 버가는 험지인 산악지방을 앞두고 있는 지역이다. 중도하차 한 이유에 대해서 정확히 표현되지 않으나, 이를 계기로 바울이 마가를 선교 활동에 좋지 않은 선입감을 갖게된다. 아마도 힘든 선교 여행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사도행전 15장 36-41절에서『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