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20의 게시물 표시

영적 간음죄

(마태복음 19장 1-12절)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를 떠나 요단 강 건너 유대 지경에 이르시니 큰 무리가 따르거늘 예수께서 거기서 그들의 병을 고치시더라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여짜오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제자들이 이르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간음은 육적 간음과 영적인 간음이 있다. 육적 간음에 대해서 예수님은『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육적인 간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영적인 간음을 동시에 말씀하고 있다. 그리스도와 성도는 부부로 비유한다. 그래서 열처녀의 비유도 이와 같은 것이다. 그리스도와 성도는 성령으로 하나가 되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은 하지만 여전히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믿는 자들이 바로 영적 간음을 하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을 하지만,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 자들이다. 예수님은 열처녀의 ...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태복음 18장 15-20절)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성경(누가복음 17:20-21)은 말한다.『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사람들이 이해하려고 할 때 일반적으로 땅의 개념으로 이해할 때가 많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너희 안이라는 말은 두가지의 뜻을 내포한다. 첫째, 사람의 마음 속(in)에 있다는 뜻이다. 이 말씀은 회개하고 거듭난 자 속에 거하시는 성령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성소나 성전에 계신다고 했다. 죄인들은 만날 수 없었다. 그래서 속죄 제물과 제사장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속죄 제물인 동시에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나아 갔으므로, 예수와 연합된 자에게는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서『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여기서 말씀하시는 성령을 구원의 성령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성령이 믿는 자에게 내재하실 때, 그 사람을 하나님의 백...

길 잃은 한마리의 어린양을 찾으시는 목자

(마태복음 18장 12-14절)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목자가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다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선다는 이야기다. 산은 예루살렘 성이 있는 시온산, 즉 이스라엘을 의미하고, 아혼아홉 마리의 양은 이스라엘 백성들이다. 그런데 잃어버린 양 한마리는 바로 이방인, 즉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목자이신 예수님이 이방인을 행해서 나가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는 예수님의 제자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이방인들에게 나가는 것이다. 마가복음 4장 12절에서 예수님이『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야를 바라보지 못하는 것을 탄식하시는 것이다. 구약시대 히브리인들은 애굽의 노예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부르짖을 때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보았다. 광야에서 40년간 맛나를 먹이시고 생명을 유지시켜 주셨다. 그러나 광야에서 드러난 것은 그들의 불순종과 허물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진노하셨다. 주님은 그들에게 모세를 통하여 십계명과 율법을 주셨다. 인간이 지켜야 할 기준을 알게 하셨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을 통하여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을 세웠다. 그들은 예배가운데 순종으로 주님이 함께 하셨다. 그들이 이길 수 없는 적을 주님으로 인해서 이겼다. 그들에게는 예배가 있고 하나님 말씀을 받드는 제사장이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타락했던 것이다. 예배가 쉰 적이 없고 말씀이 없는 적이 없었지만 그들은 타락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셨다. 선지자들은『...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마태복음 18장 1-7절)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세상의 관심은 크고 높아지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높은 자리, 큰 자리, 또 영향력 있는 자리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천국에서는 누가 큰 사람입니까』라고 예수님께 물었다. 당시의 사회에서, 사람들 사이에 널리 통용되던 생각이 있었다. 천국은 아주 큰 부자, 높은 자, 영향력 있는 자를 위한 곳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그와 같은, 세상에 물든 생각을 고쳐 주시면서 천국에서 큰 자는 누구인지 나아가, 천국에 갈 수 있는 자는 누구인지 이렇게 두 가지의 답을 주셨다. 천국에서 큰 자와 천국에 갈 수 있는 자는 바로 어린 아이와 같은 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가치와 세상의 가치가 얼마나 상충되는지를 보여주는 가르침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가치는 세상의 가치와 다르다. 세상에서는 큰 자가 중요하다. 세상에서는 높은 자가 중요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천국에서는 작은 자가 큰 자다. 그곳은 겸손한 자에게 허락하시는 곳이다. 어린 아이와 같이 약하여, 의지할 누군가가 필요한 존재가 자신임을 깨닫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하나님 나라에서는 큰 자이다. 다시 말해서 스스로 율법을 통해서 의를 이룰 수 있는 자들은 작은 자들이라는 것이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마태복음 17장 1-13절)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예수님은 세명의 제자들에게 산에 올라가서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하는 장면을 보여주셨다. 예수님이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에 갔을 때, 제자들에게『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물었을 때, 『엘리야라고 하기도 하고, 모세가 다시 왔다고 하기도 하고,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베드로에게『너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는데, 그때 베드로는『주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예수님은 메시야로서 이스라엘 땅에 태어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수많은...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태복음 16장 21-28절)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예수님이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런데, 베드로가『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말씀했다. 예수님은 죽었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여러 번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주의깊게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베드로처럼 예수님이 죽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이라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신 자(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주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는데,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반기를 든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은 그리스도와 연합된다는 의미다. 그리스도와 연합된다는 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을 따라가는 것이다. 예...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태복음 16장 13-20절)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반대 방향인 북쪽의 이곳으로 오셨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남쪽에는 사해가 있고 유대 지방이 있으며, 북쪽에 갈릴리 호수를 중심으로 갈릴리 지방이 있는데, 갈릴리에서 남쪽 유대로 가지 않으시고 북쪽으로 가신 뜻을 알아야 한다. 성경에는 가이사랴라는 곳이 있고 빌립보도 있다. 가이사랴 라는 곳은 중부 해변가에 위치한 도시로서, 로마의 유대 총독 관저가 있던 도시였다. 역사적으로도 많은 건물들이 세워졌다 사라졌다 한 도시다. 빌립보서와 관련된 빌립보는 마게도니아(그리스 북부)에 위치한 유럽의 첫 도시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넘어가서 첫 번으로 만나는 주요 도시인데, 바울이 가서 교회를 세운 곳이다. 그런데 빌립보 가이사랴는 곳은 그곳들과 전혀 상관이 없는 지역이다. 이곳은 이스라엘의 가장 북쪽인 헐몬산 기슭에 위치한 곳이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의 왕이었던 헤롯 대왕에게 아들이 여럿이었는데, 그 중 하나인 헤롯 빌립이다. 그가 그곳에 도시를 만들고 로마 황제의 칭호인 가이사를 따서 가이사랴라고 하고, 자기 이름도 집어넣어서 가이사랴 빌립보 라고 이름을 지었다. 빌립이라는...

열매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이

(마태복음 21장 17-22절) 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제자들이 예수님께『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라고 질문했는데, 예수님은 믿음과 관련하여, 그리고 기도에 대해서 다소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을 하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저주하신 이유가 무화과나무의 열매가 없는 것을 생각하여,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열심을 내야한다고 말을 하기도 한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에 태어나신 이유는 때가 찼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1장 15절에서『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그리고 갈라디아서 4장 4-5절에서『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때가 찼다는 것은 열매를 수확하는 때를 의미한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에게 열매를 기대하시는 것이다. 열매는 무엇인가? 회개하여 자기를 거룩하게 되도록 하는 것을 열매로 생각하는데, 성경의 의미를 너무나 모르는 것이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기 전에 성전에 들어가셔서 정화하셨다. 아버지의 집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사꾼들을 내쫒으셨다. 그래서 사람들이 성전을 정화하지 못한 것이 열매맺지 못한 ...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마태복음 16장 1-4절)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 요나는 여로보암 2세 때에 살았던 이스라엘의 선지자였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외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피하여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다. 갑자기 바다에 풍랑이 일어나고 배는 더 이상 전진할 수 없었다. 사경을 헤매면서 뱃사람들은 하나의 지혜를 짜냈다. 이렇게 된 원인을 찾자는 것이다. 제비를 뽑았는데, 요나가 걸렸다. 그때에서야 요나는 자신의 죄를 고백했지만, 그는 바다에 빠뜨려졌다. 그래서 거치른 풍랑은 즉시로 멈췄다. 깊은 물에 빠진 요나, 하나님은 큰 물고기를 예비해 두셨다. 그리고 물고기가 요나를 삼켰다. 요나는 물고기의 뱃속에서 밤낮 사흘을 지냈다. 그 뱃속에서 요나는 크게 회개했다. 그래서 물고기는 요나를 육지에 토하여 냈으며,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니느웨로 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을 고하며 회개를 외쳤다. 그런데, 요나의 말을 들은 니느웨사람들은 크게 회개했다. 옷을 찢고 재를 뒤집어쓰고 길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야말로 대각성의 회개가 일어난 것이다. 예수님은 바로 그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요나의 표적은『회개하라』는 것이다. 회개하는 자에게 장차 무덤에서 일어나실 주님의 부활처럼, 거듭나게 해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을 들은 당시의 사람들은 아무도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도를 깨닫지 못했다.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회개는 커녕,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교회...

죄에 대한 잘못된 인식

Q/A 1: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죄? 하나님이 보시기에 죄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나고자 한 것이 죄다. 결국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떠난 자이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죄인들이라는 것이다. Q/A 2: 원죄 원죄는 영적 원죄와 육적 원죄가 있다. 영적 원죄는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던 것이다. 육적 원죄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던 탐욕(옛사람:죄성)이다. 이 탐욕은 씨를 통해서 대대로 자손에게 물려주고 있는 것이다. Q/A 3: 세상죄와 죄값을 치르는 것 이 땅에서도 죄를 지으면 감옥에 간다. 감옥에서 형기를 마치고 나오면 죄인이 아니라 자연인으로 돌아오게 된다. 마찬가지로 원죄도 사람이 죽으면 부활하여 영의 몸을 입고 천사로 환원되어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런데, 감옥에서 죄를 지으면, 그 죄값을 다시 치르지 않는한 형기를 마쳐도 자연인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세상죄를 짓게 되면 죄값을 치르지 않는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 죄값이 바로 음부에 들어가는 것이다. Q/A 4: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대속의 의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대속의 의미는 바로 세상죄에 대한 부분이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예수님에 대해서 세상죄를 지고가는 어린양이로다 라고 말했던 것이다. 세상의 주인은 사탄이다. 하나님이 일정기간 허용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세상죄에 대해서 사탄에게 피값을 지불하는 그런 의미가 된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받을 수 있지만, 이를 믿지 않으면 성령을 훼방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세상에서 지은 모든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세상죄를 사함을 받는다. 이러한 성령의 증거를 믿지 않는 것이 훼방죄이다. 요한복음 16장에서『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라고 했다. 성령이 오셔서『예수님이 사람의 모든 죄와 ...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마태복음 15장 21-28절)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이 여인은 자신의 딸에 관한 문제로 예수님께 나온 여인이었는데, 그는 혈통적으로 이방인이었고, 지리적으로는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인의 땅에 살고 있었으며, 또 그동안의 삶을 그렇게 이방인으로서, 우상숭배자로서 그렇게 하나님도 죄도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왔던 여인이었다. 특별히 이 두로와 시돈 하면 가나안 중에서도 아주 영적으로 문제가 심각한 곳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이례적으로 예수님께서 지나가시게 되었다. 예수님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만 하는데, 그 역할을 제자들에게 맡기실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전도의 훈련을 하시는 것이다. 이 여인은 예수님께 대단히 간절한 모습으로 나아갔다. 여인은 예수님을 주 다윗의 자손이라고 메시야적 칭호로 불렀다. 이 여인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면서, 소리를 지르면서 자신의 처지를 탄원하고 있다. 자신의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다는 것이다. 그 여자는 몇번 소리지르다가 그냥 포기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가시는 길을 같이 가면서 계속 무리 속에서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그러한 여인의 소리에 예수님께서 계속 침묵하셨다...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께 아뢰니

(마태복음 14장 1-12절)그 때에 분봉 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역사하는도다 하더라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차지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무리가 그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을 두려워하더니 마침 헤롯의 생일이 되어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고 약속하거늘 그가 제 어머니의 시킴을 듣고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여기서 내게 주소서 하니 왕이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 때문에 주라 명하고 사람을 보내어 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서 그 소녀에게 주니 그가 자기 어머니에게로 가져가니라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께 아뢰니라 분봉왕이란 한 나라의 왕이 다스리는 영토 일부를 나누어 다스리도록 통치권을 위임받은 왕을 말한다. 성경에 나오는 분봉왕으로는 갈릴리의 분봉왕 헤롯, 이두래와 드라고닛의 분봉왕 헤롯 빌립 2세, 아빌레네의 분봉왕 루사니아가 있다. 헤롯 안디바(안티파스)는 세례 요한을 처형한 왕, 헤롯 대왕의 둘째 아들로 헤롯이 죽자 갈릴리와 베뢰아의 분봉 왕이 되어 B.C. 4-A.D. 39년까지 다스렸다. 성경에는 분봉왕 헤롯, 헤롯 왕으로 나온다. 그는 첫 번째 아내와 이혼하고 자신의 이복형제인 빌립(헤롯 2세)의 아내이자 자신의 조카인 헤로디아와 다시 결혼하였다. 이것 때문에 세례 요한의 책망을 받게 되자, 그는 세례 요한을 옥에 가두었다. 헤롯은 세례 요한을 두려워하여 죽이지 못하다가 생일잔치 자리에서 헤로디아의 딸의 요청을 듣고 세례 요한의 목을 베고 말았다.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여우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는 협박과 속임수에 능한 ...

천국에 대한 비유

(마태복음 13장 44-51절)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예수님은 천국에 대하여 네가지 비유를 말씀하셨다. 첫째는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이고, 두 번째는 값진 진주의 비유이며, 셋째는 바다에 쳐진 그물 비유, 넷째는 좋은 집주인의 비유이다. 13장 앞부분에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비유는 땅에 심은 씨앗, 겨자씨, 누룩에 비유하셨다. 천국은 이스라엘에서 시작되었으나, 이방인이 먼저 구원받을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여기서도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천국이 보화와 같다고 했으므로 예수님이 보화이다. 그런데 보화가 밭에 감추어져 있다. 밭은 세상(또는 이스라엘)을 말한다. 밭은 헬라어로『아그로스』다. 경작된 땅과 경작되지 않은 땅이 있다. 경작된 땅은 밭이라고 해서, 이스라엘, 경작되지 않은 땅은 세상을 의미한다.『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여기에서 사람은 하나님을 의미한다. 마가복음 12장 1절에서『예수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여기에서 포도원은 이스라엘을 의미한다. 그래서 한 사람은 하나님이시다. 누가복음 14장 16...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마태복음 13장 36-43절)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 심판이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동안에 스스로 하나님 말씀을 버리고 마귀를 선택했다. 마귀의 질문에 반응하고 답하므로 마귀의 말을 쫒아갔다. 하나님의 사랑 만을 생각한다면 구원에서 멀어진다. 그들은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다. 구약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받은 예표가 솔로몬이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여디디아』라고 이름을 주셨다. 그 말의 뜻은『사랑받는 자』라는 말이다. 아버지로부터 왕위를 물려받고, 하나님으로 부터 지혜를 물려받았다. 그는 아담처럼 모든 것을 다 받은 자였다. 그러나 하나님을 잊어버렸고, 우상을 섬기기 시작했다. 탕자는 솔로몬처럼 사랑의 아버지 집과 아버지를 버리고 떠났다. 마치 아담처럼 그렇게 된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것이다. 이게 바로 노아가 전한 것이다. 노아가 전한 것이 바로『의의 도』라고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다. 세상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사랑의 도』가 아니라『의의 도』다. 의가 없으면 아무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은 다 소경이 되어버렸다. 하나님이 모세를 불러 말하기를『백성들에게 말하라, 올라오는 자는 다 죽으리라』그러나 이스라엘 백...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마태복음 13장 31-32절)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천국은 겨자씨 한 알과 같다고 했다. 이 겨자씨 한 알을 자기 밭에 심었다. 겨자씨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자기 밭은 바로 이스라엘을 나타낸다. 예수님이 사마리아에 들렀을 때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시는 장면이 있다. 요한복음 4장 22절에서『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자기 밭에 심은 자는 바로 하나님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자기 밭(이스라엘)에 예수 그리스도(겨자 씨)를 심었다. 그래서 겨자씨가 자라서 큰 나무가 되고, 공중의 새들이 깃들게 되었다. 이 공중의 나는 새들이 바로 베드로가 환상 중에 보았던 그 새들이다. 바로 이방인들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에서 태어났지만 하나님 나라에는 이방인들이 먼저 들어간다는 것이다. 겨자씨 비유는 처음에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가 미약해 보이지만, 메시야의 죽음과 부활 이후 성령의 오심으로 인하여 복음이 이방인에게 확산될 것을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볼 때도 하나님 나라는 아주 초라하게 시작되었다. 그들은 이런 미약한 시작에 실망도 했고 절망도 했다. 그러한 그들에게 이 겨자씨 비유는 엄청난 위로를 주는 동시에 도전도 주었을 것이다. 씨 중에 가장 작은 겨자씨가 자라서 새들이 깃들일 정도로 큰 겨자나무가 되는 것처럼,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는 영적으로 성장하여 엄청나게 커질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제자들이 겨자씨 비유를 들었을 때 하나님 나라의 시작이 아주 작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들도 당시의 유대인들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물리치시고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강하게 만드시는 것이 하나님 나라라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시작이 ...

구원에 대하여

Q/A 1: 구원의 의미는 무엇인가? 구원은 영을 살리는 일이다. 영적 구원은 간절히 알기를 원하고 구하는 자에게 이루어진다. 이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고,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축복으로 여겨진다면, 영에 대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을 것이다. 구원은 이 세상에서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구하는 것이 된다. 영적으로 가난한 자는 하나님을 떠난 자라는 것을 깨닫고, 애통해하며 영적 흑암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자들이다. 마치 애굽에 갇혀서 노예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께 부르짖는 그런 상황이 구원의 의미로 다가온다. 구원의 과정은 출애굽과 같은 여정으로 설명될 수 있다. 어린양의 피로 인하여 출애굽하고, 홍해바다를 건너 애굽(세상)과 단절되고, 광야에서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이다. 가나안은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Q/A 2: 어린양의 피를 칠하는 것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택하여 자기 백성을 바로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어 백성을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켜 달라고 요구했지만, 바로는 거절했다. 하나님은 열가지 재앙을 애굽에 내리시고, 마지막 열번째 장자의 죽음의 재앙을 내리셨다. 어린양의 피를 대문에 칠한 집은 죽음의 사자가 지나가도록 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로부터 해방시키신다. 바로는 사탄을 의미하고, 어린양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상징한다. 대속은 피값을 주고, 노예를 산다는 의미다. 교회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죽음이라는 것을 믿는다. 그러나 이 믿음이 구원의 여정의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Q/A 3: 홍해바다를 건너는 물세례 홍해바다를 건넜다는 것은 애굽과 단절을 의미한다. 애굽은 세상(죄)을 상징한다. 홍해를 건넌 물세례는 세상과 세상죄에 대해서 죽었다는 의미다. 사탄으로부터 벗어나서, 영적으로 자유한 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1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마태복음 12장 34-45절)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바리새인들은 예수의 권능이 사악한 것이라고 깎아내리기 위해, 예수의 권능은 사탄에게서 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 예수께서는 사탄도 집안 싸움은 하지 않는다는 논리를 펴 자신의 권능이 사탄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사탄과 싸우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결국 예수께서 하나님께 속한 메시야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표적을 구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 몇 사람에게 자신이 보여 줄 수 있는 표적은 요나의 표적, 곧 죽었다가 ...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마태복음 12장 22-28절)그 때에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 무리가 다 놀라 이르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바리새인들은 듣고 이르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되리라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귀신들려 벙어리 된 자를 고쳐주셨는데, 유대인들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러서 귀신을 내쫒은 것이라고 말할 때, 예수님은『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죄는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사하심을 얻을 수 없다』라고 하셨다. 많은 교회사람들이 성령훼방 죄에 대해서 참 무심한 것 같으면서도 그 말을 꺼내면 거북해 한다. 뭔가 분명하고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혹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성령 훼방죄를 짓지는 않는 것인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교회사람들은 예수님이 귀신들려 벙어리 된 자를 고쳤다는 성경 말씀을 접할 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성령께서 함께 하시므로 이런 권능을 보일 수 있다 라고 생각한다. 창세기 1-3절의 내용을 통해서 인간들이 본래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었는데,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므로 말미암아 다 사단의 자식들이 되었고, 다 귀신에 들려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이다. 영의 세계에 대해서 알 수 없다. 따라서 영의 세계에 대해서는 소경인 것이다. 하나님과 대화가 안되면 그게 벙어리인 것이다. 예수님께 데려온 그 사람...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마태복음 12장 9-13절) 거기에서 떠나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성경에서 안식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히브리서 4장 8-10절에서『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였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있도다 그런즉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에게 안식을 주었다면 그건 가나안 땅이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하는 그림자이다. 참 안식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있다는 말이다. 참 안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는 것이 바로 참 안식이다. 하나님이 참 안식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안식에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런 자는 이미 안식에 들어간 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안식을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그 보증으로 성령을 주시는 것이다. 믿는 자가 육신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영이 나오는데, 하나님의 집을 입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안식이다. 에베소서 2장 6절에서『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의 옛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새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새생명 가운데 일으키심을 받는다. 그 새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움을 받는 것이다.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죽은 자는 하나님 나라에 앉히움을 받는 것이다. 골로새서 3장 3절에서도 마찬가지로『이...

안식일의 주인

(마태복음 12장 1-8절)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안식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은 쉬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창세기 1장 1절에『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에서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하나님 나라는 안식 그 자체다. 성경(요한계시록)에서는 마지막 때,『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가는 자가 안식에 들어간다』고 말한다. 하나님 스스로가 안식이요, 예수 그리스도가 안식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안식을『쉰다』라고 생각하면 그 다음에는 또 일해야 하는 날이 오지만, 하나님 나라 안식에 들어가면 일하고 쉬는 개념이 아닌 것이다. 천지창조를 하기 전에는 안식이었는데, 천지창조를 하게 되므로 안식이 깨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천지창조를 다 끝내고 하나님이 이 땅에서 손을 떼시고 안식을 하신 것이다. 창세기 2장 1-3절에서『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복을 주시고 안식하시니라』라는 말은 하나님 나라 즉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안식과 같은 것이다. 천지창조에서 말하는 안식은 이 세상에서 창조의 일이 끝나는 멈춤이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일곱째 날에 복을 주셨다』라는 말은 세상에 복을 주신 것이 아니라, 날에 복을 주신다는 것이다. 날은 물질세계의 시간과 공간 속에 있는 날이다. 하나님이 물질세계 속에서 이 날에 복을 주신 것은...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마태복음 11장 1-6절)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명하기를 마치시고 이에 그들의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 가시니라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며 자신은 주님의 신발도 들 수 없다고 했다. 예수님이 손에 키를 들고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신다고 말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 대한 엄청난 기대를 갖고 있었다. 하늘의 능력으로 이 세상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메시아로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않으셨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하신 일을 듣고 그는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는 소식을 듣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례요한이 체포되자 예루살렘을 떠나셨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 제자들을 보내서 확인하려고 했다. 세례 요한은 제자들을 통해서 예수님에게 우리들이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합니까? 다른 사람이 메시야냐고 질문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사야의 말을 인용하여 말씀하셨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메시야로서 악한 자들을 정죄하고 심판하시길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메시야로서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예수님은 능력이 있는 분이셨다. 헤롯을 물리치고 요한을 감옥에서 꺼내어줄 수 있는 분이셨다. 얼마든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제압하여 심판하실 수 있고, 로마도 무너뜨릴 수 있는 분이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영에 대해서

Q/A 1: 영(spirit)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인간은 육과 영으로 구성되어 있다. 육과 영이 결합되므로서 살아있는 생명체가 된 것이다. 따라서 영은 인간으로부터 분리할 수 없는 결합체의 한 부분이 된다. 창세기 2장 7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And the LORD God formed man of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soul.(kjv) 그런데, niv성경에는 soul(혼) 대신에 being이라는 표현을 했다. 생령은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의미다. 육과 영의 결합이 살아있는 생명체(혼)라는 의미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생명현상(혼)은 사라진다. 혼은 생명현상에 불과하다. 생명현상은 감정, 기억 등으로 표현된다. 성경에서 영, 또는 영혼으로 번역된 것은 영(spirit)로 통일해야만 할 것이다. Q/A 2: 영이 정말 있는가? 누가복음 8장 55절에서『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시니』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의 집에 가셔서 그의 딸을 살려주는 내용이 등장한다. 딸이 살아나므로 영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Q/A 3: 사람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전도서 12장 8절『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육은 흙으로부터 왔으므로 땅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영은 하나님에게로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예수님과 사두개인들과 대화에서 사람들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라는 사두개인의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이 대답하신 내용이다. 누가복음 20장 35-36절에서『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

(마태복음 10장 38-42절)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았으니 우리도 고난에 동참하자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세상에 대해서 예수와 함께 죽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세상과 분리를 의미한다. 세상을 사랑하는 옛사람이 죽어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요한1서 2장 15절에서『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세상에 대해서 죽어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로마서 6장 6절의 의미와 같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그리고 에베소서 4장 22절에서『너희는 유혹의 욕심에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버리고』, 로마서 8장 7절에서는『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서 육체의 일에 대해서 상세하게 소개되고 있다. 세상을 버리는 자만이 하나님의 말씀(검)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결코 하나님 말씀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세상을 사랑하면서도 하나님 말씀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자가 있다면『자신은 예수님을 알고 있는데, 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마태복음 10장 32-33절) 이 말씀은 마태복음 25장 1-13절에서 나오는 열처녀의 비유와 동일하다. 슬기로운 다섯처녀는 혼인잔치에 들어갔는데, 미련한 다섯처녀는 들어가지 못했다. 미련한 다섯처녀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했다. 그런데『예수님은 모른다』고 했다. 다섯처녀가 단지 예수님을 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이유는『자기를 기다리는 자들을 데려가기 위해서 오시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데려갈 사람을 알고 있다. 미련한 다섯처녀는 데려갈 사람이 아닌 것이다. 미련한 다섯처녀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과는 초점이 맞지 않다.『깨어있으라』라는 말은 율법의 덮개가 벗겨져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라는 말이다. 이 성경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지만 실질적으로는 이스라엘에게 말씀하고 있다. 여전히 율법 아래에 있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미련한 다섯 처녀는 율법 아래에 있어서『예수 그리스도를 모른다』 라는 말이다. 요한계시록 3장 5절에서 사데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흰 옷을 입지 않은 자는 시인하지 않겠다』라는 말씀이다. 흰 옷을 입지 않은 자는 예수님을 부인한 자와 같다. 교회를 나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권능도 행하고 선지자 노릇도 하는데,『의의 옷을 입지 못한 자』라는 말이다. 마태복음 10장 32-33절에서『부인하리라』는 말과 동일하다. 갈라디아서 4장 4절에『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사도바울이 말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마태복음 10장 24-31절)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구원의 시작은 회개인데, 회개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된다. 여기에서 영혼이라고 했지만 영과 혼은 서로 다른 존재다. 영어로 영은 spirit이고 혼은 soul이다. 10장 28절에서 말하는 영혼은 soul을 의미하지만 우리 말 성경에서 영혼으로 번역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그리스 헬라문화는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라고 하는데, 그 정신은 혼을 말한다. 이들은 건전한 육체가 먼저다. 육체가 건강해야만 그 안에 정신도 건강해진다고 생각했다. 기독교와 배치된다.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거나 믿는다고 하더라도 가볍게 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만 구원에 다가갈 수 있다. 죄를 벗어나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두려워 해야만 한다. 출애굽기 1장 17절에서 바로왕이 히브리 산파들에게『사내 아이를 낳으면 죽여라』라고 했지만,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서 바로왕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순종이다. 요한계시록 13장 14절에서 사단이 자기의 이미지 우상을 만들어 내는데...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마태복음 10장 5-10절)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셨다.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다. 예수님께서 주신 이 권능이 무엇인가? 예수의 이름을 의지하는 것이 권능이다. 예수의 이름을 아무나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택하신 자가 부를 수 있다. 부르심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하심을 입은 자는 적다라고 성경은 말한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보내시면서 『이방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 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했다. 하나님의 언약의 일차적인 대상은 이스라엘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전체가 지금 잃어버린 양의 상태였다. 예수님께서 병든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하는 것을 본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예수님께로 돌이키지를 않았다. 제자들은 가면서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전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천국복음을 전하는데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쫒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했다. 제자들이 이러한 권능을 행한 것은 자기들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권능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권능을 행한 것은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거 한 것이다. 제자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이 당시의 유대인들이 다른 사람의 집에 가면 그 집을 위하여 축복을 했다. 평안은 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