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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요한계시록 제1장 1-7절)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요한계시록은 주후 95-96년경 도미티아누스 황제시기에 쓰였다고 전해진다. 그는 부활한 네로라 불릴 정도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모든 사람들을 제자 삼으라고 명령하시며 제자들을 보내셨다. 다른 제자들은 각지로 흩어져 복음을 전하다 순교했다. 하지만 요한은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모시며 시간을 보내다가 마리아가 별세한 이후에는, 외딴 섬 밧모에 홀로 갇힌다. 전하려 해도 전할 수 없고, 죽으려 해도 죽을 수 없었다. 소아시아 앞바다에서 63km정도 떨어진, 길이 16km 폭 8km의 작은 섬 밧모에서 패배감과 무력감으로 좌절하던 요한에게 내일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요한을 비롯한 초대교회와 현대의 우리는 계시록을 접근하는 방식이 달랐음을 깨달아야 한다.  1장 1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시작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답으로 주셨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의 중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받았고, 전부 증언한다.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사도행전 28장 16-31절)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준 바 되었으니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전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 하더라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없음)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로마를 향한 항해를 처음 시작할 때 바울...

인본주의 물든 기독교인들

인본주의 물든 기독교인들 기독교적 관점에서 인본주의란 인간 존재의 목적인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지 않고 , 단지 인간 이익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사상을 의미한다 . 즉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기독교를 의미하는 것이다 .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가 ? 기독교의 구원에 대한 진리의 말씀에 대해서 말하자면 , 인간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던 탐욕으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아서 에덴동산 ( 하나님 나라 ) 로부터 세상으로 던져진 존재라는 것이다 . 영이 흙속에 갇혀있는 죄인이라는 것이다 .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져 영은 죽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 하나님은 영을 살리고 싶어하신다 . 요한복음 6 장 63 절에서『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라고 말씀하신다 . 하나님은 흙에 갇힌 영이 다시 살아나서 하나님 나라로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 그런데 , 하나님은 인간들 속에 있는 영들에게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 ( 육적 몸 : 옛사람 ) 이 죽어서 돌아오라는 것이다 . 인간은 자기의 육을 죽일 수는 없다 . 그래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예정하시고 ,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모든 인간을 대속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 왜냐하면 영들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던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었다 . 그것이 십자가의 죽음이다 .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그도 죽었다고 믿는 자는 하나님이 죄의 몸이 죽었다고 인정하시겠다는 것이다 . 그게 세례다 . 로마서 6 장 4 절에서 『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는 죄의 몸이 죽었다는 것이다 . 로마서 6 장 6-7 절에서 『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

종교의 영

종교의 영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시켜 구원에 멀어지도록 하는 영이다 . 결국 종교의 영은 사탄이 이렇게 하는 것이다 . 종교의 영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 만연되고 있다 . 특히 종교의 영은 율법과 복음 사이에서 교회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너희들은 죄인들이라는 것이다 . 그리고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리스도를 발견하기는 커녕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했다 . 유대인들은 종교의 영에 미혹된 자들이다 .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을 의미한다 . 탐욕이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 죄의 결과다 . 즉 하와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는데 , 오늘날 대부분 교회 사람들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으므로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모든 사람들이 죄인이 되었다 라고 생각한다 . 이러한 생각은 어떤 계명을 지키면 죄가 아니고 ,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죄가 된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 그러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기 전에 뱀 ( 사탄 ) 이 그 열매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유혹했으며 , 창세기 3 장 6 절에서『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하와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기 이전에 , 이미 그 열매를 먹고 싶다는 탐욕이 하와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 세상에서의 죄가 있기 이전에 , 이미 세상 밖에 죄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 로마서 5 장 12 절에서『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에 있었던...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사도행전 28장 1-15절) 우리가 구조된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머물게 하더니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 달 후에 우리가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나니 그 배의 머리 장식은 디오스구로라 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낸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머무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 그 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사도행전에서 바울이 처음 등장한 것은 8장이다.  8장에는 바울이라는 헬라식 이름 대신 사울이라는 히브리식 이름으로 등장했다. 사울의 등장은 스데반 집사의 죽음으로 촉발된 커다란 박해 사건과 맞물려 있었다. 사울은 스데반 집사의 죽음을 지극히 당연하게 여겼고,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가 시작된 후...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그들의 뜻을 막고

(사도행전 27장 27-44절)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열나흘째 되는 날 밤에 우리가 아드리아 바다에서 이리 저리 쫓겨가다가 자정쯤 되어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줄을 짐작하고 물을 재어 보니 스무 길이 되고 조금 가다가 다시 재니 열다섯 길이라 암초에 걸릴까 하여 고물로 닻 넷을 내리고 날이 새기를 고대하니라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내리는 체하고 거룻배를 바다에 내려 놓거늘 바울이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이에 군인들이 거룻줄을 끊어 떼어 버리니라 날이 새어 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음식 먹기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하고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그들도 다 안심하고 받아 먹으니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칠십육 명이더라 배부르게 먹고 밀을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하였더니 날이 새매 어느 땅인지 알지 못하나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눈에 띄거늘 배를 거기에 들여다 댈 수 있는가 의논한 후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동시에 키를 풀어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에 맞추어 해안을 향하여 들어가다가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을 만나 배를 걸매 이물은 부딪쳐 움직일 수 없이 붙고 고물은 큰 물결에 깨어져 가니 군인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그들을 죽이는 것이 좋다 하였으나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그들의 뜻을 막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조되니라  열 나흘째 되는 밤이다. 순하게 불던 남풍을 맞으며 출발했을 때만해도 좋았는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었다. 나아가지도 돌아가지도 못한 ...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사도행전 27장 23-26절)『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   바울이 유라굴라라고 하는 광풍이 부는 배에서 한 말이다. 바울은 여러 날 동안 풍랑이 계속치고, 먹지도 못하고, 구원의 여망이 없어진 사람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면서,『배의 손상 외에는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바울은 쇠사슬에 묶여, 로마로 호송되고 있었다. 바울이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것을 믿는다는 것이다.『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빛 가운데 나타나신 주님을 만났다. 주님을 안다는 것은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남에 있다. 그래서 주님을 신뢰하는 자가 주님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다.  출애굽기 19장 18-19절에서『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하나님이 모세에게 백성들이 산으로 올라오지 말라고 경고하셨다. 백성들이 올라오면,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셨다. 이런 와중에 백성들은 시내산 아래에서 황금송아지를 만들었다. 백성들은 애굽에서 열가지 재앙과 홍해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을 경험했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백성들의 눈에 하나님은 맹렬한 불같이 느껴졌으며, 두려워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을 위한 신을 만들려고 했다. 왜 그렇게 행동했는가? 하나님이 그들의 주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기적을 경험하고, 성령의 능력을 체험해도 누가 주인인가의 문제다. 자기가 주...

방언에 대해서

  방언에 대해서   교회사람들 대부분은 방언에 대해서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결과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특별한 언어라고 생각한다 .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다 .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셨다 .   그리고 제자들이 히브리어 외에 다른 나라의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   그 당시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여던 바대인 ,   메대인 ,   엘람인 ,   메소보다미아인 ,   가바도기아인 등 여러 나라에서 온 디아스포라들이 신기한 광경을 목격했던 것이다 .   사도행전 2 장 11 절에서는 『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이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이 방언을 말할 때 , 반응이 두가지인 것이다 . 첫째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갈릴리 지역의 출신들인데 ,   어떻게 이런 외국의 말들을 하는가 라는 것이다 .   방언은 외국어라는 의미를 갖는다 .   둘째는 제자들이 하나님의 큰 일을 말했다는 것이다 . 많은 사람들 ( 외국에 사는 디아스포라 ) 이 제자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큰 일을 들어보니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 그래서 이 사람들이 술취했는가 라고 말하기도 했다 . 그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횡설수설한다는 것이다 . 다른 사람이 이해하기 힘든 말인 것이다 .   이 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고 , 부활하셨다는 이야기 이며 , 영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이다 . 이러한 말들은 당시에는 정말 술취한 자로 취급받는 것이다 . 사도행전 2 장 17 절에서 베드로가 사람들에게 요엘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서 설명해주었다 . 『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사도행전 27장 1-22절)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항해할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대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 받기를 허락하더니 또 거기서 우리가 떠나가다가 맞바람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고 항해하여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 시에 이르러 거기서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려 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니 배가 더디 가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바람막이로 항해하여 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새아 시에서 가깝더라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 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더니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사도행전 26장 19-32절)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 하더라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회개하고 돌이켜져서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 이것만이 살길이다. 바울은 아그립바 왕에게 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도바울이 들은 음성이『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그 다음에 죄사함이 나온다. 죄사함은 예수의 피만이 적용된다. 예수의 피로만 우리의 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