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020의 게시물 표시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9장 35-38절) 예수님이 하신 일은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하시고 치유하시는 일이었다. 가르치시고 치료하심으로 천국 복음을 그들에게 전파하셨다. 『무리들, 즉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없는 양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니라』고 하셨다. 주님의 눈에는 사람들이 한없이 불쌍하게 보이셨고, 목자없는 양같이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시면서 제자들에게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추수하는 일꾼을 보내주시도록 기도하게 하셨다. 예수님은 성도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불쌍히 여기는 목자의 마음이다. 잃어버린 양 한마리를 찾는 마음이다. 인간들은 천국을 모르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하나님은 사랑이시라』를 먼저 말하므로서 회개의 기회를 놓치게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설교하고, 선교하고, 말씀을 전파하지만, 오늘날 하나님 나라를 제대로 전파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거의 대부분『예수를 믿으면 천국간다』라고 전할 뿐,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은 거의 드물다. 하나님나라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나님 나라의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정하신 일과 연관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예정하신 일은 바로 에덴동산의 사건과 관계가 있는 일이다. 에덴동산의 사건은 하와가 뱀의 미혹을 받아 하나님이 금지하신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사건이다. 뱀은 사탄을 상징한다. 사탄은 영적인 존재다. 그래서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에 생각으로 침투한다. 에덴동산의 사건은 이 땅에서 일어난 일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서 일어난 사건임...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요한복음 3장 16-18절『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믿음에 대해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 곧 그 이름을 믿는 것이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한다. 예수의 히브리어는 여호수아다. 즉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민수기 10장 9절에서『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크게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의 대적에게서 구원하시리라』 여호와 하나님이 영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육에 속한 아담으로 오셔서 범죄한 영들을 데리고 오시고, 영에 속한 예수 그리스도로 오셔서 영들을 데리고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신다는 것을 포함한다. 창세기 28장 12절에서『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이 말씀을 요한복음 1장 51절에서 예수님이 표현하신다.『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로마서 5장 14절에서 사도바울은 설명한다.『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고린도전서 15장 45절에서는『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첫사람 아담 안에서 왔다 라는 말은 여호와 하나...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마태복음 9장 32-34절)그들이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오니 귀신이 쫓겨나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거늘 무리가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하되 바리새인들은 이르되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예수님은 맹인들의 그들의 눈을 만져주셨다. 이것은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일종의 의료행위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말 못 하는 사람을 향한 예수님의 치유 방법은 귀신을 쫒아내는 것이다. 말 못하게 하는 귀신들린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오니 그 귀신이 쫓겨났다. 그런데 모두가 이 기적에 놀라워하고 있을 때, 바리새인들은 말했다.『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 것이다.』예수께서 보여주신 귀신이 떠나가는 기적이 바로 귀신의 소행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내말에 거하지 않은 자가 마귀의 자식이라고 하셨다. 바리새인들이 귀신들린 자들인 것이다. 귀신들렸다는 말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않고, 사탄의 지배하에 있는 자를 말한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자체가 사탄의 권세 아래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12장 43절에서『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이스라엘은 애굽으로부터 건짐을 받았다. 애굽은 세상(죄)를 상징한다. 바로는 사탄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세상의 사탄으로부터 건져오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셨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물 없는 곳은 광야를 의미한다. 하나님 말씀이 없는 곳이다. 이방인들은 하나님 말씀이 없는 곳이다. 귀신들이 물(말씀)없는 곳(이...

두 맹인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고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셨으나 그들이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퍼뜨리니라 (마태복음 9장 27-31절) 불쌍한 두 맹인이 예수님을 따라오며 소리를 질렀다. 예수님이 병자를 고쳐주신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는 것이 메시아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도 그냥 집으로 들어가셨다. 그런데도 이들이 집안까지 들어왔다.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내가 능히 이 일을 할 줄을 믿느냐』고 말했다. 그들이 『주여 그러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너희 믿음대로 되라고 하시니 그 눈들이 밝아진 것이다. 여기서도 많은 사람들이『믿음대로 된다』고 하면서 사람의 믿음을 강조한다. 병고침을 받는 믿음이 구원을 얻는 믿음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와야만 한다. 이것은 회개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회개하지 않고 단순히 병을 고치겠다는 믿음으로 와서 병의 고침을 받고 갈 수 있지만 그것은 구원과 직결된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께 회개하는 자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믿음대로 되라고 하시자 정말 눈이 뜨여졌다. 그런데 예수님의 엄히 경고하셨다.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이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온 땅에 퍼뜨렸다. 먼저 왜 고침 받은 것을 알리지 말라고 하셨는가? 그 이유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의 성취다. 이사야의 42장 7절의 예언대로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나...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마태복음 9장 14-17절)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구약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대표적인 경건 중의 하나가 금식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대속죄일에 온 백성으로 금식하도록 명하셨다. 그 날에는 제사장도 세마포 옷을 입어야 했으며, 향을 피우고 피를 뿌리며 하나님께 나아갔다. 더불어 온 백성도 먹기를 그치고 함께 나아가야 했다. 또 어떤 일로 하나님의 진노가 느껴질 때면 그들은 온 종일 금식하며 울어야 했다. 자기 옷을 찢고 재를 뿌리며 먹기를 그치고 울어야 했다. 이것이 구약시대의 금식의 모습이다. 구약의 질서에 따라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는 것은 그들의 경건모습이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은『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라고 묻고 있다. 주님은 자신을 혼인집의 신랑으로, 제자들을 혼인집의 손님으로 말하고 있다. 그리고 신랑이신 예수님 자신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에 기쁨의 혼인잔치가 시작된 것으로 말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선언하시므로 금식의 문제에 대해 답하고 계시다. 지금도 구약적인 의미로 금식을 가르치고, 마치 그것이 의의 한 기준이나 되는 것처럼 요구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복음으로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맞지도 않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새로운 천을 잘라서 낡은 구멍난 옷에 붙여 짜집기 한 것과 같은 부조화스러운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다. 요한의 제자들의 틀에 매인 금식요구에 대하...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9장 9-13절)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세리와 죄인들은 모든 사람들로 부터 정죄받는 자들이다. 예수님이 세리인 마태를 부르시고, 그의 집에서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께 나아온 것이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라고 예수님을 비난하였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 불만이었다. 바리새인들은 메시야가 이스라엘에 오면 먼저 자기들에게 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예수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보고 불만이 되었다. 자기들은 죄인들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잘 지켜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로운 자라 인정받는다 라고 생각하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이『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예수님은 이와 같은 말씀을 누가복음 15장 1-7절에서 한마리 잃어버린 양을 찾는 비유로 말씀하셨다. 아흔아홉 마리의 양은 이스라엘이다. 이 양들을 두고, 예수님은 잃어버린 양 한마리(죄인들)를 찾으러 다니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잃어버린 어린양의 비유를 하신 배경은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불만이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은 의인들인데, 메시야가 오면 당연히 자기들에게 올 것이라고 확신했는데, 메시...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하시니라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8장 18-22절) 두 사람이 등장한다. 한 청년은 주님을 어디든지 따르겠으며, 주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간청한다. 그는 서기관이였다. 그러나 주님은 그에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며 정중하게 거절한다. 반면 제자라고 표현된 다른 사람은 집에 부친상을 당한 급한 상황이 발생했다. 그래서 이 당연하고도 급한 부친상을 치르고 와서 다시 따르겠다고 시간을 줄 것을 요청한다. 그런데 이번에는『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라는 말씀으로 부친상을 치를 것을 허락지 않고 계속 주님을 따를 것을 명하신다. 이 두 사람에겐 어떤 차이가 있었던 것일까? 먼저 주님은 그들의 동기 즉 중심을 보고 계신다. 첫 번째의 사람은 서기관이라고 신분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머리둘 곳』이라는 이유를 들어 거절하고 있다. 아마도 이 서기관은 그 동안의 주님께서 행하신 이적과 기타의 행적들을 보고 듣고 알았을 것이며, 그 마음에 계산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서기관이 생각하기를 이 사람을 따르면 이후에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자신의 정치 사회 종교적 위치를 고려하여 주님께 따르겠다고 요청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예수님께서『머리 둘 곳』이라는 이유를 들어 거절하고 계신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한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그 청년을 자신을 위해서 주님을 따르겠다고 한 것이지 주님을 위해서 따르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이 ...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마태복음 8장 14-17절)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사람은 육체를 가지고 있으므로 병이 든다. 성경은 육체의 질병을 통해서, 『너희들은 모두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라』는 것을 말해주신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귀신들린 자들이며, 병든 자들이다. 이렇게 병든 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영적인 병을 치유할 수 없으며, 하나님과 화목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다는 것이다. 병이 들었다는 것은 하늘의 생명이 없다는 것이다. 하늘의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야만 한다. 이사야서 53장 5절에서『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허물은 세상죄를 말하고, 죄악은 원죄를 말한다. 에베소서 2장14절에서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And you hath he quickened, who were dead in trespasses and sins: kjv) 원죄는 하나님 나라에서 영들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떠나려고 했던 것이 바로 영적 원죄다. 그래서 육체를 가졌다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육체를 가진 자들은 육체로 인해 병이 들듯이,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므로 영이 죽어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8장 14-17절에서의 병든 자는 육체적 질병을 통해서, 육체를 가지고 있는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을 떠난...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벌거벗은지라

창세기 9장 18-23절에서『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라 노아의 이 세 아들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지니라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벌거벗은지라』에 대해서 대부분 교회 사람들은 당대에 의인이라고 여겨졌던 노아도 인간인지라 실수할 수 있다고 말을 한다. 비록 홍수 이전에는 의인으로 여겨졌지만, 홍수이후 노아가 정신적으로 헤이해졌으므로 이런 일이 생겼고, 그래서 오늘날 우리도 성경 말씀대로 잘 행해야만 한다고 말을 한다. 노아가 방주에서 땅으로 나온 후 세아들을 통하여 자손이 번성하고 그리고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다. 창세기 9장 20절에서『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히브리 원본에는『이쉬 노아가 땅(아다마)을 파서 포도원(케렘)을 심었다』라고 되어있다. 성경은 포도원을 말할 때는 이스라엘을 두고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사야서 5장 7절에서『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시편 80편 8절에서『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예수님도 비유로 포도원을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21장 33절에서 『다른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포도원(이스라엘)에는 포도나무가 있다. 포도나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이스라엘에 예수...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8장 1-4절) 예수께서 산상수훈을 마치시고 내려오셔서 첫 번째 이적을 베푸시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 나병(문둥병)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죄를 지은 결과를 상징하는 가장 금기시 되는 질병이었다. 나병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저주의 모습을 나타낸다. 모세가 구스 여인을 아내로 맞이했을 때 미리암이 조롱했다가 하나님께서 벌을 내려 나병병에 걸렸다. 레위기 13장 1-14절에서 문둥병 환자는 회당 공동체와 및 가정공동체를 박탈당하여 소외당했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 속에서 예수님이 문둥병 환자에게 병을 치유해주신 것은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질병이라도 치료 해줄 수 있는 능력 있는 메시야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율법에 따르면 나병자와 접촉한 자는 그 자신 또한 부정한 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나병환자에게 손을 댈 수 없었다. 당시 제사장들조차도 환자에게 손을 대지 못하였고 오직 병명의 판단이나 정결케 하는 판결의 예식만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부정한자에게 관심을 가져주셨고 손을 갖다 대셨다. 아무런 전염이 되지 않음을 나타내 보이심으로, 나병으로 상징되는 죄악의 치명적 형벌인 사망을 오직 예수님만이 고치실 수(건지실 수) 있는 참 메시야이심을 밝히고 있다. 복음서 초기에 예수님은『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셨다. 예수께서 이와 같은 함구령을 내린 것은 예수님이 메시야로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였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 오해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죽기 전까지는 율법을 따르셨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마태복음 7장 24-29절) 『그러므로』는 앞의 이야기를 통해서 말씀하신다. 앞의 말씀은『사람들이 자신은 주의 말씀대로 선지자 노릇도 하고 귀신도 쫒아내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마태복음 7장 24-29절에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라는 것이다.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것이다.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믿는 것은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한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예수와 하나가 되는 자는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는 자가 아니다. 오직 십자가의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자기의 의를 내세우는 자들이었다. 율법을 지켜서 스스로 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것을 바리새인들은 마치『주여 주여 내가 선지자 노룻도 하고, 귀신도 쫒아내고 하는 무엇인가를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 사람들은 이 비유를 통해서 오직『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구원을 얻었다고 믿으면서, 날마다 회개해야만 된다는 식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의지를 포기해야만 구원받는데, 자신이 무엇인가를 해야만 구원받는 식이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씀...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장 21-23절)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면 이 세상 뿐만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받지 못한다. 오는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를 말한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여야 들어간다고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 말씀하셨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에 대해서 보통 교회사람들은 몇가지 중 선택해야 할 것이 있을 때,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인간이 생각할 때『올바르다』라고 생각되는 것을 선택하려 한다.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뜻은 한가지가 아니고 수십 가지가 되기도 하고, 이것이 되기도 하고, 저것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자기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면 천국에 갈 수 있는가? 이것이 천국에 들어가는 필수 조건이 될 수 있는가? 라고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필수조건은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것인데,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정확히 모르면 곤란하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보면『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께로 갈 수 있다 라는 말씀이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서 사랑을 실천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예수님 당시에 십자가에서 같이 죽어가던 죄인이라든가, 문둥병자, 간음하다가 붙잡혀 온 여인들이 사랑을 실천했기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은 아니다. 그냥 예수님을 만나, 회개하고 구원받게 된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태복음 7장 7-12절) 성경 본문은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라도 마음에 붙들고 사는 말씀이며, 크신 은혜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 7장과 누가복음 11장에 나오는데, 맥락에는 차이가 있다. 마태복음은 산상수훈의 끝부분에 이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은 거듭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앞선 말씀은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가르침이고, 뒤이어지는 말씀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과 좋은 열매를 맺으라는 말씀이다. 마태복음 7장에서는 하나님께서 거듭난 자에게 전도를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주시겠다는 것이다.『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말씀하셨다. 먼저 하나님 나라의 의를 세우라는 것이다. 그러면 구하는 것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무엇을 구하라는 것인가? 하나님 나라의 의를 구하기 위해서 성령 충만을 구하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16장 4-11절에서『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이른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이 말 한 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네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니라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느냐 묻는 자가 없고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그러하니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마태복음 7장 1-5절) 예수님이 산상설교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자들에게『비판하지 말라』고 하셨다. 사람들은 자기의 잣대로 쉽게 남을 비판한다. 그러나 자신이 잘못했을 때는 그 비판으로 다시 비판을 받게된다. 사람들은 남을 비판할 처지에 있지 않다. 왜냐하면 원천적으로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이기 때문이다. 죄인이 죄인에게 비판을 한다는 것이 형평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방인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태도에 대해서 지적하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던 이방인이던 모두가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인양 이방인을 개 취급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 6절에서『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라고 하시면서 오히려 이스라엘을 개로 비유한 것이다. 개라고 표현할 때, 개의 습성을 나타낸다. 잠언 26장 11절에서『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이 말은 율법에서 자유함을 주었는데, 다시 율법에 얽매겨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1절에서『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했는데, 다시 종의 멍에를 메는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무지개 언약

창세기 9장 14-17절『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무지개 언약은 물로 다시는 심판하지 않고, 말씀과 성령의 불로 심판하시겠다는 의미를 갖는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하셨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이 때 물은 바로 노아의 홍수와 같은 물이다. 노아시대에 살았더라면 이렇게 죽었을 자라는 것을 믿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믿지 않는 자들은 둘째 사망에 들어가게 된다. 바로 말씀과 성령으로 심판받게 하신다는 것이다. 무지개는 둘째 사망이 있음을 기억하라는 증표인 것이다. 둘째 사망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이 땅에 살고 있는 자들은 세상(물)에 대해서 죽은 자라는 것을 믿어야만 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라는 것이다. 창세기 6장 3절에서『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여기에서 영은 성령을 의미한다. 『영원히』라는 말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물과 성령으로 심판하시고 구원하시기 전까지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 이후에는 승천하신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세상을 말씀과 성령으로 불태워버리시고, 새하늘과 새땅으로 바꾸실 것이다. 성령으로 불태우는 것이 바로 둘째 사망에 이르는 것이다. 둘째 사망에 들어가는 자들은 영이 죽은 육신의 자들이다. 빛은 색깔이 없지만, 빛이 물체에 반사되면서 색을 나타낸다. 빛이 비춰졌지만 반사되지 않으면 어둠인 것이다. 요한복음 1장 5절에서 『빛이 어둠에 ...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태복음 6장 31-34절『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염려와 두려움에 대해서 성경은 말한다. 두려워하는 것은 심판받을 죄라는 것이다. 다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세상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세상을 두려워하는 자는 불못에 들어간다고 요한계시록에서 말한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주님은 천국과 지옥을 만드실 만큼 의로운신 분이시다. 왜 천국과 지옥을 구분하시는가? 의롭기 때문이다. 지옥에 보내는 첫번째의 그룹은 세상을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다. 세상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주님은 위로하지 않으신다. 잠언에『사람을 두려워하는 자는 올무에 걸리거니와』라고 했다. 속박에 걸린다는 말이다. 사람을 왜 두려워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있을 때 우편강도가 좌편강도에게『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느냐』라고 한 말을 상기해야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회개를 하지 않은 사람이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자는 지옥으로 간다. 그래서 예수님이 탄 배가 풍랑을 만나게 된다. 그 때 제자들이 두려워 떨었다. 예수님이 그 배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도 두려워서 떨었던 것이다. 우리가 탄 배가 풍랑을 만나도 주님은 주무실 수 있다. 주님이 찾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의 사람이다. 제자들은 풍랑에 배가 가라앉지 않도록 노력하지만, 이것은 자기가 주인이라는 것을 보여...

눈은 몸의 등불이니

마태복음 6장 22-24절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사람에게는 빛이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빛이 있으면, 온 몸이 밝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빛이 없으면 어두울 것이다. 그 빛이 눈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이 눈은 영적인 눈이라고 할 수 있다. 영적인 눈이 감겨져 있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을 것이나, 영적인 눈이 열려있으면,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된다. 영적인 눈이 열려져 있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영적인 눈이 감겨져 있는 자는 그리스도 밖에서 세상을 사랑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영적인 눈이 감겨져 있으나, 어떤 사람은 영적인 눈이 열려져 있다. 이것은 마치 빛과 어둠의 관계와도 같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빛과 어두움을 나누셨는데, 인간이 물질세계에 살면서 아주 알기 쉽게 해주셨던 것이다.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셨던 것이다. 이러한 것을 아무런 의미없이 생각하고, 그냥 빛이 있으니 낮이고, 빛이 없으니 밤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주시는 의미를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들이 그 동안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살았으며, 인간은 하나님이 빛을 만들어 주신 것을 알지 못하고, 이 세상에 살면서도 하나님을 떠난 것을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빛과 어두움의 관계를 보면 빛이 오기 때문에 어두움이 물러간다. 어두움이 물러가기 때문에 빛이 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어두움이 오는 것은 빛이 물러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빛을 보내주는 해가 가니까 어두워지고 그 해가 오니까 밝아지는 것을 인간은 알 수 있다. 그것이 빛의 진리이다. 빛과...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태복음 5장 43-45절『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깨닫고, 회개하여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일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너무도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성도가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자에게 전하는 것은 주님의 명령일 뿐만 아니라 사명인 것이다. 단순히 말씀을 전하는 것 외에 예수님은 여러가지의 예화로 죽어있던 이웃의 영을 깨우는 것을 설명하셨다. 마태복음 5장 13-16절에서『너희는 빛과 소금이라』, 고린도후서 2장 15절에서『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누가복음 10장 29-37절에서『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등을 들 수 있다. 이 모든 말씀이 이웃의 죽어있는 영을 깨우는 일이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의도는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영으로 있다가 하나님을 떠난 존재들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 땅에서 악을 행하였건, 선을 행하였건 모두 구원하여 하나님 나라로 복귀시키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요한복음 6장 39절에서『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이 세상에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로 나뉘어질 것이며,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가 안에 있는 자를 박해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 그러나 박해하는 자들은 자신들이 어떤 존재들이며,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알지못하는 존재들이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어서 영을 깨워야 하는 사명을 갖게 된다.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온전한 자가 되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마태복음 5장 38-42절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이 세상적인 표현으로『동해보상법』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는『동해보복법』이라고도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동해보상법』은 보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피의자가 피해를 입은 자에게『같은 수준의 보상을 하라』는 의미가 된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고 말했는데, 이는 피의자에게 하신 말씀인데, 피해자에게 말하는 것으로 잘못 받아드려졌다. 남에게 이를 상하게 했으며, 이를 상하게 한만큼, 보상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적으로 행사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39절 이하에서 피해를 당했을 때, 어떻게 행동을 해야하는가에 대해서 말씀하셨다.『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피의자의 입장에서, 피해를 남에게 입혔을 때는 그만큼 보상하고, 남으로부터 피해를 당했을 때는 용서해 주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영적인 의미로서 이스라엘과 이방인에 대한 표현이 된다. 가인은 이스라엘, 가인을 죽이는 자는 이방인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셨지만, 결국 이방인이 먼저 구원을 얻게 된다는 표현이다. 가인은 칠배이었지만, 라멕은 칠십칠배라는 것이다. 가인...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태복음 5장 21-24절『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예수님은 심판받는 자에 대해서 설명하신다. 살인을 하면 심판을 받게되는데, 육적인 살인과 마찬가지로 영을 살리는 일에 방해를 하면 살인하는 자가 된다는 것이다. 영을 살리는 일을 방해하는 자가 심판을 받는 자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에는 육적인 살인과 영적인 살인을 말하고 있다. 옛사람에게 말하는 살인은 육적인 살인이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살인은 영적인 살인을 말한다. 형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자들을 말한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할 형제들간의 반목에 의해서, 분노하고 서로 비판하게 되면, 결국 비판하는 자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을 공격하는 것이 되며, 영적 살인을 하게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거듭난 자들은 영적인 존재들이다. 영적인 존재가 영적인 존재를 비판하게 되면, 하나님께 불손한 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형제와 화목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형제를 사랑하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영적인 형제를 강조하신다. 영적 형제는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가 되는 존재들이다. 마태복음 12장 46-50절『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밖에 섰더니 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하니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

내가 반드시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창세기 9장 1-6절『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내가 반드시 너희의 피 곧 너희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하나님이 말씀하신 복이 바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는 것이다. 방주 안에 있다가 땅으로 나오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있다가 이 땅으로 오는 모습을 연상한다. 방주에서 나오는 것은 세상의 첫 창조와 같은 모습이다.『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것은 아담 안에서 모든 생명체가 태어나고 다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창세기 1장 28절에서는『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여기에는 땅을 정복하라는 말씀이 있지만, 창세기 9장에서는 없다. 그러나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땅을 정복하라는 말 대신에 『너희 손에 붙였음이니라』라는 말이 있다. 창세기 3장 6절에서『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남편에게 『주매』가 창세기 9장 ...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태복음 5장 17-20절)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나님이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다. 율법은 이 땅에 갇힌 죄인들에게 주신 것이다. 그래서 율법을 통해서 스스로 의를 이루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하나님께 회개하여 돌이키라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 23-25절에서『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믿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오기 전까지는 율법이라는 그물에 갇혀있다. 즉 죄인이 감옥에 갇혀있는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회개하는 자의 갇혀있는 그물을 풀어줄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면 율법으로부터 자유함을 얻는다. 갈라디아서 5장 18절에서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들이다. 그래서 성도라고 일컷는다. 성도가 만일 율법을 따르고 지키고자 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그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5장 4절에서『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율법은 이 땅의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령의 법은 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태복음 4장 15-17절『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교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회개하라』는 말을『어떤 잘못을 저질러서 뉘우치고 고백하고 용서를 빌라』라는 말로 이해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않은 일을 했거나, 다른 사람에게 좋지않은 일을 했을 때, 또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남들이 보기에 손가락질 받을 만한 일을 하게되면 교회에 와서 그 행위에 대해서 회개를 하고,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회개하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하신 『회개하라』의 의미를『어떤 잘못을 저질러서 뉘우치고 고백하고 용서를 빌라』라는 말로 이해를 한다면 성경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부자청년이 예수님께 찾아와『선한 선생님이여』라고 하면서『자신은 율법을 잘 지켰다』고 말했다. 그래서『죄가 없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율법을 잘 지켰으므로『죄가 없다』고 생각했다. 예수님이『죄인을 부르러 왔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라고 말을 했을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와 상관없는 일로 생각했던 것이다. 요한복음 8장 31-32절에서 예수님께서『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누구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왜 우리가 자유케 된다고 하십니까』라고 되물었다. 예수님이『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율법을 가지고 잘 지켰으므로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예수님은『다 죄인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가 있다고 생각하면, 율법에 따라서 제사를 드릴 때『죄가 다 없어지는 것』...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마태복음 3장 13-17절)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3장 13-17절의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이 하나님나라를 떠난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스스로 아들이 되어 율법에 따라 대속의 죽음을 하시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여호와)은 한분이시지만 삼위로 역사하신다. 보좌의 여호와 하나님(LORD),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Lord), 성령이시다.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셨다. 보좌의 하나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시고, 아들도 되신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구약의 여호와이심을 요한복음 등에서 나타내신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 보좌의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 예수님도 세례를 받으셨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것은 율법에 대해서 죽임을 당하는 것을 예표한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것은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과 일맥 상통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공생애 중에 처음으로 이적을 한 곳이 바로 가나에 있는 혼인잔치이다. 잔치에는 포도주가 반드시 준비되어 있다. 그런데, 중간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이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가 예수님께『포도주가 떨어졌으니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을 해보라』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여자여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아직 내 때가 이르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예수님이 일을 하셨다. 집에 들어갈 때는 유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