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020의 게시물 표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

(마태복음 27장 55-66절)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주라 명령하거늘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 그 이튿날은 준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이르되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 하니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에게 경비병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지키라 하거늘 그들이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 예수님이 죽으신 후에 그의 무덤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났다. 요셉이란 사람이 등장하여 주님의 시체를 장사지내는 모습이 나오는가 하면,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의 무리들이 빌라도를 찾아가 예수의 무덤을 지키는 일의 허락을 받아 무덤을 막은 돌에 인봉하고 파수꾼으로 무덤을 굳게 지키게 하는 모습이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함께 우리가 반드시 생각되는 인물로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란 사람을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예수의 제자라고 했다. 그는 공회원이라고 했다. 공회원이란 이스라엘의 최고 재판 기관이요 종교적 의결 기관인 산혜드린공회의 의원을 말한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후 빌라도의 재판석에 서셨다. 이 기관은 이스라엘의 가장 존귀한 사람들, 대제사장, 서기관들, 백성...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마태복음 27장 45-54절)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그 중의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거늘 그 남은 사람들이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두 강도가 등장했다. 두 강도는 인류를 대표한 죄인들의 모습이다. 로마서 5장 12절에서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죄인임을 말씀하고 있다. 두 강도의 경우는 바로 죄 값은 사망임을 말씀해 주시는 것이다. 이 두 강도가 인류의 죄를 말해준다면 우리 인간에게는 절대로 의인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 두 강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류가 두 길로 갈라진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두 강도에 대하여 누가 좌 우편에 서 있었는지에 대하여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편의상 구원받은 강도에 대하여 오른편에 있었던 것으로 말하고 있으며 멸망 받은 강도를 왼편에 있었다고 말한다. 왼편에 있는 강도는 율법의 정죄를 받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자들을 보여 주신 것이다. 율법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을 정죄하지 못하지만,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는 자들은 율법에 의해 심판을 받을 것이다. 우편 강도는 처음에는 예수를 욕하고 비...

십자가에서 모욕당하는 예수님

(마태복음 27장 27-44절)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시더라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거기 앉아 지키더라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빌라도의 사형 언도가 확정되자 예수는 많은 무리들의 희롱을 받게 되었다. 빌라도의 관정 안으로 예수를 데리고 들어간 총독의 군병들은 마치 이성을 잃고 광적으로 날뛰는 사육제의 주인공들 같았다. 관정 안으로 끌려 들어가신 예수님은 후안무치한 무리들에 의해 말할 수 없는 희롱을 당하셨다. 먼저 그들이 주님께 행한 일은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힌 일이다. 홍포는 왕들이 입는 옷이다. 그들은 ...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마태복음 26장 69-75절)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여종이 나아와 이르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믿음은 내 속에서 생긴 믿음과 하나님이 주신 믿음은 서로 다르다. 인간이 쌓은 믿음은 모래 위에 집을 쌓은 것과 같은 믿음이다. 삼년간 제자들이 엄청난 기적과 경험을 했음에도 십자가 앞에서 다 도망가는 믿음인 것이다. 베드로는 배를 나와 물위를 걷는 목숨을 거는 믿음을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환경이 바뀌어 목숨을 걸 수 있는 믿음 속에 기적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런데 주님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그런 믿음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거듭난다는 것에 대해서,『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거듭나지 않은 자는 베드로처럼 자기 자신을 믿는 것에 불과하다.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면 인간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육적 존재인 옛사람이기 때문이다. 거듭나는 믿음은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는 예수와 연합되는 믿음이다. 못박혀 죽는 예수와 연합되는 믿음은 내적인 옛사람도 함께 죽는 것을 의미한다. 그 옛사람은 바로 사탄의 유혹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반드시 죽어야만 한다. 그 죽는 것은 창세기 3장 15절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내가 너로 ...

그가 신성 모독 하는 말을 하였으니

(마태복음 26장 57-68절) 예수를 잡은 자들이 그를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거기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여 있더라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말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더라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 증거를 찾으매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더니 후에 두 사람이 와서 이르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 대제사장이 일어서서 예수께 묻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예수께서 침묵하시거늘 대제사장이 이르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그가 신성 모독 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들었도다 너희 생각은 어떠하냐 대답하여 이르되 그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하고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이르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더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처형된 죄목은 신성모독이었다. 즉 성전 모독죄였다. 레위기 24장 16절에서『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니라 거류민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죽일지니라』 유대인들이 예수님의『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라고 하는 말을 듣고 신성모독죄로 고발한 것이다. 신성모독죄는 하나님이 아닌 자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과 그리스도 밖에서 하나님처럼 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예수를 버리는 믿음

(마태복음 26장 47-56절)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칼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한지라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그들이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의 하나가 손을 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칼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베드로는『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하나님이 계시해 주셔서 알았다. 그래도 육신으로 부터 나오는 혼은 변하지 않는다. 많은 교회 사람들도『베드로가 검으로 귀를 베는 그런 식으로』믿고 따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성경은 이것을『육신』이라고 표현했다.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영은 죽는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기적을 보고 배우고 해도, 십자가의 죽음을 따를 믿음은 없는 것이다. 이것이 갈라디아서 3장 23절에서『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믿음이 오기 전의 상태는 베드로가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풍랑 위를 걷는 기적을 체험하고, 변화산의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고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듣고 예수를 믿는 그런 상태다.『믿음이 오기 전』이란 ...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태복음 26장 36-46절)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예수님도 마음(혼:soul)이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기도하러 갈 때 고민하고 슬퍼했다고 26장 37절에서 말한다. 그리고 38절에서『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영어성경을 보면 Then saith he unto them, My soul is exceeding sorrowful, even unto death: tarry ye here, and watch with me. (kjv)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그 분이 예수님이시다. 그런데 위대하신 이 분도 죽음 앞...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마태복음 26장 30-35절)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나아가니라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신앙이 바로 베드로가 말한『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와 유사하다. 베드로는『주는 그리스도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하지만, 예수님은『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믿는 믿음이 육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인가, 아니면 영으로부터 비롯된 것인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에서『육신을 따르는 자는 반드시 죽는다』고 말하고 있다.『성령을 따르는 자만이 구원이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하나될 것을 기도하셨다. 예수님을 버리고 흩어질 자들인데, 그들을 위하여『하나되게 하실 것』을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가 산상수훈의 말씀을 배웠고, 삼년 동안 기적을 보았지만 육신의 힘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18장 25-27절에서『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니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이라 이르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베드로는『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하나님이 계시해 주셔서 알았다. 그래도 육신으로 부터 나오는 혼은 변하지 않는다. 많은 교회 사람들도『베드로가 검으로 귀를 베는 그런 식으로』믿고 따르...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마태복음 26장 14-25절)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이르시되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시니 제자들이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였더라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가롯유다가 제사장으로부터 은 삼십을 받고 예수님을 팔았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지만, 예수님을 배반하고 팔았다. 왜 예수님의 제자인 가롯유다가 예수님을 팔았는가? 가롯유다는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으로 선택되었지만, 다른 제자들과는 달리, 예수님을 향해 주 라는 칭호를 사용하지 않았고, 그 대신 예수님을 랍비 라고 부르며 선생 이상으로는 인정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12장 5-6절에서 볼 수 있듯이, 유다는 탐욕에 사로 잡혀서 예수님 뿐만 아니라 동료 제자들의 신뢰를 배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유다는 단지 예수님에게 많은 추종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단체를 위해 거둬지는 모금으로부터 이익을 취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기를...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마태복음 24장 36-44절)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인자의 때가 언제인지 모르지만 노아의 때와 같다는 의미이다.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다는 말이다. 왜 멸망당했는가?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었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반드시 멸망당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수가 엄청나다. 그러나 구원받을 자가 많지 않다고 말한다. 왜 그런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떠난 자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것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율법에 대해서 죽으셨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율법에 대해서 죽었다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죄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도 죽었다는 것을 믿는다. 죽지 않은 자는 여전히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다. 말로만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의 의식과 절차,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율법적인 생활, 죄를 회개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생각들, 수많은 것들이 좁은 문을 닫게 하는지 생각해보아야만 한다. 예수님은 노아의 때와 같이 사람들이 왜 멸망당하는지를 모른다고 말씀하셨다. ...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마태복음 24장 29-35절)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다 알게오신다. 도적같이 오시는 예수님과 온 족속이 다 알게오시는 예수님은 어떻게 차이가 있는가? 도적같이 오시는 예수님은 휴거를 당하는 자를 말하고, 모든 족속이 보는 상황에서 오시는 것은 7년 대환란 후에 오시는 지상재림인 것이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때 나타날 현상을 말하고 있다. 예수님이 하늘에서 징조가 나타날 것인데, 이와 관련하여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말씀하셨다. 무화과 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대해서 생각하고 말한다. 이스라엘이 로마에 의해 멸망했지만 거의 2000년이 지나서 이스라엘이 독립했다는 것을 부각시킨다. 그러나 여기서는 율법을 고수하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예수님이 무화과 나무에 대해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 있다. 누가복음 13장 6-9절에서『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태복음 23장 29-39절)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저주하셨다.그리고 장차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을 뿐만 아니라, 제자들도 핍박할 것을 예언하셨다. 핍박의 결국은 심판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지자들을 통해서 여러 차례 회개하여 돌이킬 것을 말씀하셨으나, 백성들은 돌이키지 않았다. 뱀을 계시록에서 사단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뱀이 왜 사단인가? 뱀은 뱀이지 사단인가? 사단이라는 것은 대적자의 생각을 받아서 대적자의 생각과 대적자의 말과 뜻을 옮기는 자가 똑같이 사단이 되는 것이다. 사단이 뱀에게 자기의 말과 생각을 다 주었다. 그러니까 뱀이 하와에게 가서 사단이 준 생각과 준...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마태복음 23장 23-28절)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말라기3장 6-12절에서 십일조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말라기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한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과 오늘날 십일조를 바치지 않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신명기 18장 15-22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 형제 중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우겠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소리를 듣고 그렇게 말씀하시고,『그의 말을 들으라 듣지 않으면 벌을 내리겠다』고 하셨다.『내가 고하라고 명하지 않은 말을 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그 선지자가 하나님의 지시대로 말씀하는지를 어떻게 아느냐』라고 물으니,『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여호와의 말씀이 아니라 방자히 한 말이니 두려워 말찌니라』라고 하셨다. 선지자가 자기 스스로 방자히 말한다면 죽임을 당한다는 것이다. 구약성경에 예레미야와 하냐나(거짓 선지자)의 말이 소개된다. 하냐나는 거짓 말을 하다가 죽었다. 오늘날에도 자기 소견대로 성경을 해석하여 말한다면 방자히 ...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마태복음 23장 15절)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하나님께서 종을 삼으실 때는 하나님이 택하는 방법을 하신다. 택한 종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도록 하시는데, 그 말씀을 받은 종은 있는 그대로 전하면 된다. 누가 진짜 하나님의 종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하지 않으면 주의 종이 아니라는 말이다. 가짜 종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가 스스로 방자히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라고 하시는 것이다. 열심히 전도하기 위해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 나가서 선교를 해도, 이단들이 하나님 말씀을 왜곡해서 전하면 이렇게 되는 것이다. 이단이 누구인가? 하나님 말씀을 왜곡하는 자가 이단인 것이다.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의 차이는 미혹하는 자인가 아니면 진리를 선포하는 자인가의 차이다. 그런데, 미혹과 진리를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마태복음 24장 4-5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오늘날 대부분 교회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넘쳐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참 진리의 말씀이 기갈되고 있다 라고 말한다면 믿을 수가 있겠는가?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가난한 자라고 말씀하신다. 라오디게아 교회 사람들은 스스로 부자라고 생각하는데, 예수님은 그 교회가 벌거벗고 궁핍한 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의 기갈 상황을『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로 표현했다. 온 세상에 하나님 말씀이 있다고 하지만, 진리의 말씀을 찾으려고 해도 구할 수 없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4장 24절에서『거짓...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마태복음 23장 1-14절)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없음) 예수님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해서 말씀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의 의에 빠져 있는 자들이며, 외식하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깨닫지도 못하고, 악이 가득한 자이며, 자기도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는 자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만드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셨다. 로마서 3장 9-18절에서 표현한다.『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마태복음 22장 41-46절)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한 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이 말씀의 영어성경을 살펴보면, 『The LORD said unto my Lord, Sit thou at my right hand, until I make thine enemies thy footstool.』 (kjv) 앞의 The LORD는 보좌의 하나님이시다. 뒤의 my Lord는 보좌의 우편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신다. The LORD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는 신중을 기해야만 한다. 하나님은 한분이시지만, 삼위로 역사하신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언하고 있다. 이 세상에 오시기 전과 이 세상에 육신으로 오신 분과 재림하실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이 육신으로 오셔서 스스로『구약에서도 있었다』라는 말씀을 하고 있다. 아브라함과 함께 있었다고 하셨다. 요한복음 8장 55-59절에서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예수님이 요한복음 5장 39절에서『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

부활한 이후의 상태

(마태복음 22장 23-33절)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 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장가 들었다가 죽어 상속자가 없으므로 그 아내를 그 동생에게 물려 주고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그런즉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마태복음 22장 29-30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부활 때는 영이 신령한 영의 몸을 입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천사와 같다고 표현했다. 거듭난 자의 현재적 모습이다. 거듭난 자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했음을 믿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것이다.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께 대하여는 죽은 자가 된다. 야고보서 2장 26절에서『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영이 죽으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진 것이므로 죽은 자가 된다. 거듭난 자가 되지 않으면, 다 이렇게 된다는 것이다. 거듭난 자의 믿음은 행함으로 증거된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새생명이 없으면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수 없다. 새생명은 부활생명으로 주님이 함께 하신다. 그렇지 않으면 진노의 대상이 될 뿐이다. ...

포도원의 비유

(마태복음 21장 33-46절)다른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열매 거둘 때가 가까우매 그 열매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그들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이르되 그들이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하고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그들이 말하되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그들이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한 집주인은 하나님이시다. 포도원은 이스라엘을 의미한다. 울타리(담)가 있는데, 에베소서 2장 14절에서『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이스라엘과 이방 사이에 담을 헐었는데, 율법을 헐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산울타리로 두르고』는 이스라엘에게만 율법을 주신 것을 나타낸다.『즙 짜는 틀을 만들고』포도주는 하나님 말...

광야교회, 가나안교회, 하나님의 교회

고린도전서 1장 2절에서『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먼저 성경이 말하는 교회가 무엇인가를 잘 알아야한다. 세상적인 교회는 건물과 그 건물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교인들을 모두 총칭해서 교회라고 한다. 그래서 건물을 유형교회, 신도들을 무형교회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건물이 교회라고 부르는 것과 신도가 모두 구원받는 성도라고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는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를 말하며, 성도들이 모이는 곳에 하나님의 권능이 있는 것이다. 오늘날 코로나시대에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교회 건물이 아니라 각자 집에서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이다. 인터넷 예배를 권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건물을 교회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장 2절의 기준으로 교회라고 부를 수 있는 성도에 대해서 살펴보면, 먼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다. 거룩하여진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졌다는 것이다. 교회를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고 부른다. 교회 건물에 앉아있다고 모두가 거룩해진 성도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예수 그리스도를 부르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이라는 고백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부르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것이다. 종은 주인과 모든 것을 함께 한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만이 예수님의 종이 될 수 있다. 그냥 예수님의 이름을 부른다고 예수님의 종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와 하나가 되는 자가 교회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마태복음 21장 10-13절)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성전에 예수님이 올라가 보시니 장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예수님이 그들을 쫒아내시고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 라고 하셨다. 유대인들이 질문한다.『네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표적을 보여주겠느냐』라고 질문을 하니 예수님이『성전을 헐라,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라고 하셨다. 성경은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하신 말씀이라고 하셨다. 제자들도 의미를 몰랐다. 이 의미는 이제 이 성전은 필요없어졌으니 참 성전을 주겠노라 라는 뜻이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야 그 의미를 깨달은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이 성전이다. 참 성전이 왔으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둔 그림자인 성전은 당연히 없어져야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성전을 바라보면서 걷고 있다가 아름다운 성전에 대해서 말하니, 예수님이 하신 말은『저 성전은 돌 하나라도 남지않고 무너지리라』라고 하셨던 것이다. 마태복음에서 너무 충격을 받은 제자들이 되물어 본 것이다.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그리고 세상의 종말에는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라고 물었다.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예루살렘이 군대에 둘러싸인 것을 보거든 예루살렘의 멸망이 가까워 진 것을 깨달아라 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라고 책망의 말씀을 하셨다. 무엇을 알지 못하느냐 라고 말씀하신 것인가? 바로 『이 건물의 성전과 임마누엘의 성전인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알지 못하느냐』라는 말씀이다. 건물인 성전은 ...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마태복음 21장 1-9절)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구원하소서』를 뜻하는 히브리에서 유래한 말이며, 기쁨과 승리를 표현하는 말이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은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여호와여, 호산나』(시편 118:25)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받으소서』(시편 118:26)라고 부르짖으며 찬양하였다. 이 구절은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 등의 축일에 찬양했는데, 호산나를 외치면서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흔들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백성들은 위의 시편 구절(118:25-26)을 되풀이하면서 나뭇가지를 길에 깔고 예수님을 환영하였다. 이 땅에서 예수의 이름은 하나님 나라에서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 아무나 하나님 아버지 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다. 회개하여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만 예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로마서 10장 13절『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여기서『부르다』는 말이 헬라어『에피...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마태복음 20장 29-34절)그들이 여리고에서 떠나 갈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따르더라 맹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들을 불러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 맹인 두 사람은 세상적으로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지만, 영적으로 말하자면 흑암에 갇혀있는 자를 말한다. 사탄의 굴레에 묶여 있는 자를 말한다. 마태복음 4장 16절『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예수님이 사역을 처음 시작했을 때 이사야 예언을 인용하셨다. 복음의 시작은 사람들이 더러움을 씻는 것이 아니라, 어둠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는 어두움보다 죄사함을 강조한다. 죄인이 죄사함을 받는다고 어둠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어둠에 있으면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죽어있는 것이다. 아담은 범죄한 후 두려워하여 어둠에 숨었다. 내가 주인인 사람은 어둠 속에 숨어있는 자들이다. 자기 생각, 자기 행동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저 나는 더러움에 있으므로 더러움을 씻으려고만 한다. 더러움을 씻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어둠에 있음을 깨닫는 것이 먼저다. 구원의 시작은 내가 어둠 가운데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어둠 가운데 있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서는 죽은 자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주시고, 빛이 비추어져서 어둠 속에 있는 것을 깨닫기를 바랄 뿐이다. 사울왕은 주님의 기름부음이 떠나 가 버렸다. 그 증거로 사무엘이 다시는 만나주지 않았다. 주님이 사울왕을 어둠 속으로 버린 것이다. 그래도 상당기간 사울은 왕으로 ...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마태복음 20장 17-28절)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박히고 삼일만에 살아아니라 라고 말씀하셨는데도, 제자들은『누가 크냐』라고 다투고 있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마실 잔의 의미를 모르고 있었다. 인자가 오신 목적은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었다. 대속물에서 속은 속량의 의미다. 속량은 값을 지불하고 노예를 사는 개념이다. 사탄의 지배하에 있는 사람들을 예수의 피값으로 사는 것이다. 로마서 3장 25-26절에서『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마태복음 20장 1-16절)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이방인에 대한 구원은 마태복음에서 어느 왕의 혼인잔치 비유라든가, 로마의 백부장 부하를 치유한 사례,『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된다』 라는 표현들을 통해서 이방인의 구원이 먼저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로마서 11장 25-27절에서『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마태복음 19장 13-15절)그 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그들에게 안수하시고 거기를 떠나시니라 하나님은 어린아이와 같이 자신을 낮추시는 자를 통해서 예배받기를 원하신다. 삶의 현장에서 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 예배는 사람들이 주일이라고 정한 날만 하는 것이 아니라『주는 영이시니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항상 삶의 현장에서 단을 쌓는 예배가 있어야 한다. 야곱은 도망가다가 어느 장소에서 꿈을 꾸는데, 하늘에서 사다리가 내려와서 하나님의 사자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게된다. 야곱의 영이 전심으로 하나님나라를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눈을 뜨자마자 돌베개를 세워서 여기가 하나님의 집이라고 했다. 삶의 현장이 돌기둥을 세우는 성소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이 하나님을 떠난 존재였음을 깨닫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게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예배는 승리다. 도망자의 삶을 사는 야곱인데도 그 곳이 하나님의 집 벧엘이 되는 것이다. 일터와 가정에서 전심으로 예배하므로 그 곳이 하나님의 집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성도의 삶이다. 하나님은 광야에서『내 백성으로 예배하게 하라』라고 하셨다. 놀랍게 바로왕이 말한다.『그냥 애굽에서 예배하라』라고 했다. 주님이『안된다』고 하셨다.『삼일 길을 가서 예배해야 한다』고 하셨다. 삼일 길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한다. 세상에 대해서 단절되어 죽은 가장 귀한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예배를 드린다고 표현하고 있으나 예배는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예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어떤 시간이든 세상과 단절된 시간 속에서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다. 애굽으로 부터 삼일 길을 떠나라고 주님이 명하셨다. 주님은 예배를 위해 기적을 주시고, 히브리 백성을 괴롭히던 애굽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