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20의 게시물 표시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마태복음 3장 11-12절)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세레요한이 물에서 세례를 주는 의미는 죄를 씻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받는 세례의 의미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다. 로마서 6장 3절에서『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하나님이 예수님과 함께 장사된 자를 성령의 능력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 주신다. 이때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태어나는 구원의 세례라고 말할 수 있다. 구원의 세례는 성도 안에서 역사하신다. 그러나 성령세례는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성도에게 계시를 주시고 역사하게 만드신다. 성령세례는 성도가 복음을 전하고 승리하는 삶을 위하여 힘을 주시는 보혜사, 능력의 세례인 것이다. 성령 세례는 성도로 하여금 성령 안에서 역사하신다. 세례요한이 말하기를『내 뒤에 오시는 이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리라』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고 삼일만에 부활하셨다. 부활을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으셨다. 로마서 10장 9절에서『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했으므로 부활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이 구원에 도움이 될 것인데, 일부의 사람들에게만 보여주신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는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따랐던 성도에게만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나 부활을 본 자들도 남에게 그 부활의 증거를 전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주님은 성령세례를 주셨다. 주님이 승천하시기 전에『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라』고 하셨다. 성령세례는 다...

까마귀와 비둘기를 내어보낸 이유

창세기 8장 1-6절『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문이 닫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백오십 일 후에 줄어들고 일곱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물이 점점 줄어들어 열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사십 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낸 창문을 열고』 『사십일을 지나서』라는 말은 하나님이 정하신 기한이 끝난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궁창위의 물을 아래로 쏟아버리고, 다시 그 물이 되돌아갔다는 의미다. 궁창 위의 물이 다시 돌아가고 나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던 그 때처럼 궁창 아래의 물은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게 된다. 그 사실을 확인하고자 까마귀와 비둘기를 내어보낸 것이다. 창세기 8장 7-10절에서『까마귀를 내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그가 또 비둘기를 내놓아 지면에서 물이 줄어들었는지를 알고자 하매 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비둘기가 발 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로 오는지라 그가 손을 내밀어 방주 안 자기에게로 받아들이고 또 칠 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놓으매』 『내 놓으매』를 히브리어로『샬라흐』라고 한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으로부터 세상에 내보내는 것도『샬라흐』다. 창세기 3장 23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즉 하나님 나라에서 세상으로 쫒겨났다는 의미를 가진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내보낸다는 것에 대해서도 같은 단어를 사용하셨다. 요한복음 6장 39절에서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여기서『보내신』 이라는 헬라어는『펜포』라는 단어로, 같은 의미를 갖는다. 궁창 아래의 물(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율법)에는 궁창 위의 ...

엘리야의 영

마태복음 3장 1-10절『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이 말의 뜻이 무엇인가? 엘리야의 영이 인간으로 태어난 자가 세례요한이다. 그래서 그 일을 세례요한이 하는 것이다. 누가복음 1장 17절에서『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영)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여기서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다. 자식은 이스라엘을 말한다. 이스라엘이 거스르는 자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는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세례요한)이 준비되는 것이다. 세례요한이 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친 것이다.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말했다.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라는 말이 여기서 적용되는 것이다. 세례요한이 부르짖는 요지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으므로 회개하여, 율법 속에서 죄인됨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발견하라는 것이다. 회개의 합당한 열매는 바로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이다. ...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마태복음 2장 19-23절『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니라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헤롯 대왕은 박사들에게 속을 것을 알고 아기 예수를 제거하기 위하여 베들레헴 근방에 있는 아이들을 죽이는 끔찍한 일을 벌인다. 그러나 예수님은 애굽으로 피난 가셨다가 헤롯이 죽자 천사의 말에 따라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와서 나사렛이라는 동네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셨다.『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나사렛(히브리어 나쯔리, 헬라어 나조라이오스) 이란 이름은 신약에 31번이나 거론되지만, 구약에는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구약과 신약 사이에는 약 400년의 공백기간이 존재하는데 이 정도면 동네이름이 바뀔 가능성이 높다. 이사야 11장 1절에서,『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Nasir: 나시르)이 나며 줄기(Netser: 네쩨르)가 그 뿌리에서 자라날 것이다』나사렛의 구약시대 명칭이 네쩨르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사야 53장 1-3절에서『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나사렛 사람이란 표...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마태복음 2장 1-6절)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예수님은 구약성경의 예언에 따라 이 땅에 내려 오셨다『그러나 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네가 유다의 수천 중에서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에서 치리자가 될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아오리라. 그의 나아감은 옛적부터 있었으며 영원부터 있었느니라.』(미가 5:2) 왜 하나님은 예수님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도록 예비하셨는가? 베들레헴은 두 단어의 합성어이다. 『벧』은 집, 『레헴』은 떡을 의미한다. 베들레헴은『떡의 집』이란 뜻이다. 예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영생을 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떡이기 때문이다.『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요한복음 6:51) 베들레헴의 첫성탄은 축제가 아니라 비극이었다. 헤롯이 세살 아래 모든 사내 아이를 다 죽였다. 모세가 태어날 때, 모세가 유대민족의 구원자임을 마귀가 알고, 바로왕을 시켜서 아기 때부터 사내 아이를 자 죽인 것 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셨을 때 마귀가 알았으며, 헤롯왕을 시켜서 그렇게 죽인 것이다. 세계의 역사상 이런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첫성탄은 통곡 만이 있을 뿐이었다. 마리아에게도 불안하고 고통의 날이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날이었다. 성탄의 주인공은 예수님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히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그리...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마태복음 1장 23-25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야 7:14)고 말씀하셨다. 임마누엘의 뜻은 히브리어 『임』(함께:with)과『마누』(우리와:us)와 『엘』(하나님:God)이 결합된 단어다.『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란 뜻이다. 하나님은 본래 본 사람이 없으되 하나님의 품속에 독생하신 하나님을 나타내셨다. 하나님의 품속에 한 영이 있는데, 하나님과 함께 있으니 그 영이 하나님이시고 독생하신 하나님이시다. 요한복음 1장18절에서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하나님의 품속에 하나님과 함께 있었으니까 그 분은 곧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이 임마누엘 하나님으로 세상에 오신 것이다. 인간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 독생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으므로 그 분을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에서 하나님의 형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그 존재 방법에 따라 하나님의 형상을 정의를 한다면 『영』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형상을 따라』라고 말씀하시는 그 형상은 영을 말하는 것이다.『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이어서『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는 말이 등장한다. 여기에서 사람이 바로 남자와 여자로 분리되기 전인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사람으로서 첫 사람 아담인 것이다. 골로새서 1장 15절에서『그는 보이지 ...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로마서 13장 1-3절)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11장까지는 복음의 내용, 즉 성도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는 교리적인 문제를 말씀하고, 12장부터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 것인가, 즉 그리스도인의 윤리적인 삶의 문제를 다루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문제를 다루면서 대원칙이 있는데,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영역 중 네 가지 기본적인 관계, 즉 하나님과의 관계, 우리 자신과의 관계, 서로와의 관계, 원수와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설명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해야 하는데, 어떻게 그들을 사랑할 수 있는가? 육의 마음으로는 불가능하다. 다만 육의 마음을 부인하고 영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13장에서 바울은 더하여 세 가지 관계 즉 국가와의 관계, 율법과의 관계, 주의 재림의 날과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국가와의 관계에 대해서 바울은 먼저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명령을 말한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요구에 대한 이유를 제시한다. 그것은 국가의 권위가 하나님으로부터 유래되었기 때문이다. 권세들은 권력을 잡은 통치자를 의미한다. 이들에게 복종하라고 말씀한다. 복종한다는 말은 반드시 그 아래에 거하라는 말이다. 이 말은 위에 있는 자를 위에 있는 자로 인정하라는 말이다.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이 세상에서도 질서를 따라야 하지만, 이 세상의 질서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질서도 깨달아야만 한다. 바울은 ...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마태복음 1장 21-22절)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예수』라는 이름은 이 땅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여호와이시다. 히브리인들은 성경에서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고유명사를 엘이라고 기록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이 있다는 것이다. 구약성경을 글로 표현할 때 그 부분을 공란으로 두었으며, 히브리 사람들이 말할 때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창세기 4장 26절에서(요드 바브 헤 바브) 라고 말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에 이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나님이 직접 이름을 모세에게 밝혔는데, (미소라 성경:에흐에 아세르 에흐에) (영어: I am who am) 라고 하셨다. 히브리인들이 이 이름을 『아도나이』라 불렀다. 그러나 여전히 기록된 구약성경에는 공란이었다. 이집트의 파라오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포스의 명으로 이스라엘의 열두지파에서 지파별로 6명씩 차출하여 알렉산드리아에서 72일간 헬라어로 번역한 성경을 70인역이라고 하는데, 공란으로 되어있던 하나님의 이름을 YHWH로 표기하고 큐리어스(Kurius)라고 불렀다. 라틴어로는 도미너스(Dominus)라고 한다. 그러다가 알렉산드리아에 살고 있던 디아스포라들이 YHWH에 adonai의 모음 a, ai를 붙여 YHaWHai로 전환해서 야훼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이후 번역 과정에서 YHWH 부분을 영어로 Jehovah로 표기했다.(미국표준) 오늘날 미국 New International Version에는 The LORD 로 번역 표기하고 있다. 영국에서 번역한 King James Version도 The LORD 로 되어있다. 한글성경(개역개정)에는 The LORD가『여호와, 주』라고 혼재 되어있다. 창세기 4장 26절, 시편 110편 1절 등 구약성경에는 여호와, 신약성경 사도행전 2장 34절 등에는『주』로 되어있다. ...

백마타고 오시는 주님

(요한계시록 19장 11-13절)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요한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본 환상을 기록한 서신이다. 사도 요한이 본 환상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이미 이루어진 과거에 대한 환상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십자가의 죽음, 그리고 모든 악을 이기신 부활 사건은 이미 지나간 과거이다. 두 번째는 사도 요한이 살아가던 AD. 90년대에, 스스로 신이 되어 버린 로마 황제를 숭배하고 타협하며 살아가는 이들과, 반대로 미혹과 협박을 거부하고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 손해 보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환상, 즉 현재 일에 대한 환상이다. 이 환상에는 경고와 격려가 혼재되어 있다. 세 번째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최종적 구원과 심판에 대한 환상이다. 이 미래에 대한 환상은, 오늘의 시점으로 보았을 때, 이미 이루어진 과거가 된 환상도 있다. 예를 들면 바벨론인 로마의 패망과 심판은 과거의 일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에 대한 환상이 있다.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잔존하는 모든 악을 소멸하시고,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실 일은 아직도 미래의 일이다. 19장은 주님의 재림에 대한 묘사이기 때문에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에 관한 환상이다. 19장에는 크게 두 종류의 환상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두 환상은 하나의 사건에 대한 두 가지 결과를 묘사하고 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재림 사건은 믿는 그리스도인에게는 마치 혼인잔치와 같은 일이지만,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최후의 심판이 된다. 한 부류는 장엄하고 흥겨운 노랫소리...

육의 몸과 영의 몸

(마태복음 1장 18-20절)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했다고 한다. 그 당시 약혼은 결혼과 같아서 법적인 구속력이 있었다. 즉, 그 약혼은 간음이 아니고는 결코 파혼할 수 없는 사실상의 기혼상태였다. 그런 이유로 요셉과 마리아를 본문에 남편 요셉, 아내 마리아라고 소개하였던 것이다. 그 약혼기간은 대략 1년 정도였다. 만약 그 기간 중에 남편이 죽으면 아내는 과부가 된다. 동거는 안 할지라도 결혼한 상태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기간 중 부정을 저지르면 간음으로 간주되어 죽음의 형벌을 받을 수도 있었다. 신명기에 여자가 부정을 저질렀을 경우 돌로 쳐죽여야 한다는 율법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성령으로 잉태되고, 태어나는 것은 창세기 1장에서 설명하는 인간창조와는 다른 창조를 말한다. 창세기 2장 7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생령으로 번역된 이 말은 혼이다.(kjv) 아담은 이렇게 태어났다. 그런데, 하와는 다르게 태어났다.『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창세기 2장 21-22절) 하와는 아담을 통해서 태어난 것이다. 원래 하나였던 아담(첫사람)에서 하와가 분리되므로 아담은 남자가 된 것이다. 예수님의 태어나심은 마치 아담처럼, 하나님이 흙에 생기를 불어넣으신 것과 같은 그런 이치가 된다. 예수님은 성령이 마리아의 육체 속에 들어가므로 잉태되어 마지막 아담이 되신 것이다. ...

푸른 나무와 마른 나무

(누가복음 23장 27-31절)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빌라도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으신 예수님은 그가 달리실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으로 끌려가시게 됐었다. 이미 결박당하신채 이리저리 끌려 다니셨다. 잠도 주무시지 못하고 심문을 받으시며 많은 매를 맞으셨다. 기운이 다하여 더 이상 십자가를 지고 처형장까지 가실 수 없게 되신 예수님을 본 로마 병사들은 가까이에 있던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 하나를 붙들어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게 했다. 구레네는 예수님 당시 이집트의 서쪽에 접해 있던 북아프리카의 로마제국 영토로서 오늘날의 리비아에 해당하는 지역의 이름이기도 하고 지중해 해안 가까이 있던 그 주된 도시의 이름이기도 했다. 많은 유대인들이 와서 정착해 살고 있었다. 시몬은 아마도 구레네에 살고 있던 유대인으로서 유월절을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에 와 있었던 것 같다. 예수님께서 결박을 당하신 채 로마 병사들에게 끌려 십자가의 길을 비틀거리며 걸어가고 계실 때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 사람들이 다 예수님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호기심 때문에 지켜보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아니면 예수님에 대해 적대감을 갖고 그를 조롱하며 그가 죽는 것을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고자 쫓아가고 있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예수님이 받으시는 고난과 그가 당하실 십자가의 죽음 때문에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큰 무리의 여인들도 있었다. 그 여인들이 가슴을 치며 슬피 운 ...

어떤 사마리아인과 강도 만난 자

누가복음 10장 33-35절『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이 이야기는 요한복음 10장 25절에서『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질문을 듣고 사마리아 사람의 예화를 들어서 말씀하신 것이다. 이 말씀은 교회에서 주위에 어려움을 처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는 말로 설명한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잘못 이해하면 영생을 선한 일을 행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어떤 사마리아인과 강도 만난 자의 비유를 통해서 율법사들에게 영생을 말씀하신 것은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이 부자청년과 영생에 대해서 대화를 나눈 것과 같은 말씀이다. 부자청년이 예수님께 다가와『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겠나이까』라고 여쭈어보았다. 예수님은 부자청년에게 『가진 것을 다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과 부자청년과의 대화를 통해서 사마리아 인에 대한 예화에서 영생부분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영생에 대해서 질문한 율법사에게 누가복음 10장 26-27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라고 대화한 내용이 나온다. 그래서 예수님이『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예수님이 율법사에게 영생에 대해서 하신 말씀은 율법을 지키라는 것이다. 율법사들은 율법을 잘 지킨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자들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율법을 잘 지키라고 하셨다. 그런데, 율법사가...

내가 다시는 기억지 아니하리라

히브리서 10장 16-18절『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죄의 문제에 대해서 명확히 하지 않으면 구원에 대해서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성경의 어떤 부분은 죄를 범하는 자가 죄의 종이라고 말을 하고 있으며, 그리고 어떤 부분은 다시는 죄를 묻지 않겠다고 말씀하신다. 요한복음 8장 31-34절에서『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죄는 대개 세상에서 지은 죄를 두고 말하므로, 죄를 지을 때마다 죄인이 되는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하나님에 대한 죄를 의미하며,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9장 39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이 말씀의 의미는 죄에 대해서 인간들이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실은 잘 알지 못하고 있음을 예수님이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떠난 존재들에게 대해서,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인 옛사람이 죽어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시는데, 사람들은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고, 거룩하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인양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거듭남을 예수님을 닮아가는 마음의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3장 5절에서 예수님이 니고데모라는 바리새인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 예수님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

떡 일곱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

마태복음 15장 32-38절『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 하거늘 예수께서 무리에게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자는 여자와 어린이 외에 사천 명이었더라』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에 대한 말씀이 있다. 다섯개의 떡은 헬라어로 알토스, 히브리어로는 네헴(떡: 진설병)이라 한다. 하나님이 계신 법궤 앞에 금으로 만든 상이 있는데, 그 위에 진설병이 놓인다. 진설병은 떡이다. 진설병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 출애굽기 25장 30절에는『상 위에 진설병을 두고 항상 내 앞에 있게 할지니라』진설병 12개를 놓는데, 이스라엘을 상징하기도 한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6장 48절에서『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라고 하셨다. 이 떡은 오병이어에서 나오는 떡과 같은 말이다. 떡 다섯개 즉 말씀 다섯개는 모세오경을 말한다. 즉 율법을 말하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던 보리떡 다섯개는 모세오경(율법)을 말하는 것이다. 물고기는 헬라어로 익스투스라 하며,『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구원』이라는 말씀을 포함한다. 물고기는 요나의 표적을 나타낸다. 요나의 표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 삼일만에 부활하심을 나타낸다. 물고기가 두 마리 있다는 말은 초림과 재림을 말한다. 떡 다섯을 먹고 남은 열두 바구니가 남았는데,『열두 바구니가 남았다』는 말은 이스라엘(12지파)이 말씀을 들었지만 진리를 모른다는 말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다시 재림 하실 때 이스라엘이 바구니에 남아 있는 떡을 먹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회복시켜줄 때 때 이스라엘이 깨닫게 되고 떡을 먹게 되는 것이다. 먼저 먹은 자들은 이방인들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 말씀은 종말에 대한 말씀과 관련이 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의도를 잘 이해하고 있어야 종말에 대해서 알...

들여보내고 여호와께서 그를 닫으시니라

창세기 7장 16절『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생명의 기운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다. 이 말은 그리스도 안에서 암수 둘로 갈라진 생명체가 하나가 되었다는 의미다. 하나님 나라를 떠나 이 세상에 온 영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모든 영이 있는 육체들이 둘씩 방주에 들어간 것이다. 창세기 1장 22절에서『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하늘과 물에 있는 생명체들과 같이 땅에 있는 인간들도 마찬가지로 대를 이어서 생명을 이어간다. 이 땅의 법칙을 통해서 하늘의 법칙도 깨달아라는 것이다. 땅의 형체(육의 몸)를 통해서 하늘의 형체(영의 몸)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늘과 바닷물(하나님 말씀)에 충만하라는 것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홍수 후에 방주에서 나온 모든 생명체에게 같은 의미로 말씀하고 있다. 창세기 8장 16-17절에서『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고 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을 암수에게 말씀해주셨다. 창세기 2장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된다. 남자와 여자는 에베소서 5장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의미한다. 즉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떠난 영들을 찾아와 그들과 함께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의미를 갖는다. 고린도전서 14장 33-34절에서『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남녀의 차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여자는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의미한다. 교회는 성도다. 즉 성도는 예수 그리스...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라

로마서 13장 1-3절『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각 사람은 every soul(kjv)로 표현되었다. 즉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말이다. 창세기 2장 7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생령은 살아있는 생명체 라는 의미다. 각 사람은 하나님께서 영을 불어넣으셔서 살아있는 생명체가 된 자를 의미한다. 각 사람은 하나님을 떠난 영이 이 세상의 흙속에 들어와서 생명체가 된 자들이다. 결국 각 사람은 하나님을 떠난 모든 사람들을 표현한 것이다. 『권세들에게 복종하라』권세(the power)는 하나님으로부터 허락되어진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욥을 치도록 허락하셨다. 즉 하나님이 사탄에게 욥을 칠 수 있는 권세를 주었다는 것이다. 욥기 1장 12절에서『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그리고 사도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그리스도인들을 붙잡아 핍박했다. 사도행전 26장 10절에서『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누가복음 4장 6절에서도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할 때 한 말이다.『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하나님이 사탄에게 일정기간 이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주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이 이 땅에 갇힌 것을 인식하지 못하면,...

열처녀의 비유

마태복음 25장 1-2절『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예수님이 본문의 말씀을 누구에게 말씀하셨는가를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마태복음 25장은 24장의 마지막 시대에 일어날 일을 말씀하시면서, 연결하여 말씀하신 내용이다. 성경의 원문은 장과 절이 없지만, 16세기 경에 들어와서 읽기 편하게 하기 위해 장과 절을 도입하였다. 그래서 원문의 입장에서는 24장과 25장은 연결되어 있는 내용임을 기억해야만 한다. 25장에는 열처녀의 비유 뿐만 아니라, 달란트의 비유와 양과 염소의 비유도 함께 등장한다. 따라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열처녀의 비유에서 그 대상은 달란트나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의 대상과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므나의 비유에서와 같이 열(10)이라는 숫자는『완성, 충만』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열처녀는 모든 처녀를 의미한다. 처녀는 고린도후서 11장 2절에서『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그래서 처녀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는 교회 신도들을 의미한다. 그런데,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랑으로 신부에게 주는 포도주를 마시는 자가 신부가 되는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의 혼인 전통에서도 등장한다. 예비 신랑이 예비 신부 집에 방문해서, 포도주를 잔에 따르고 예비신부에게 주는데, 그녀가 마시지 않으면, 혼인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이 예수님이 주는 포도주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에 해당한다. 즉 포도주를 마시는 자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과 연합하여 죽은 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열처녀는 모두가 예수님을 주로 생각하고 있지만, 포도주를 마신 처녀는 슬기로운 다섯 밖에 없다는 것이다. 슬기로운 자는 마태복음 7장 25절에서 지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누가복음 13장 23-27절)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누가복음 13장 이전에는 예수님의 수많은 기적이 소개된다.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에 감동을 받았다. 그런데도『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이렿게 묻는다.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죽어야 할 만큼 큰 죄인이다. 십자가의 죽음과 연합되지 않으면 죄가 그대로 있다는 뜻이다. 죄를 대속하는 십자가의 죽음을 믿지만, 십자가의 죽음을 그저 바라보는 믿음은 나의 죽음과 결부되지 못한다.『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라』고 하셨다. 마태복음에는『그 문이 좁고 협착해서 들어가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찾는 자도 적다』고 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회개하는 자만 이 문을 찾게된다. 회개하지 않은 자는 좁고 어렵기 때문에 이 문을 싫어한다. 문이 한번 닫히면 다시는 열리지 않는다. 사람들은『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라고 할 것이다. 이것은 종교행위를 하고 있는 것을 지적한다. 평생 예배한다고 반드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예수님과 같이 생활한 제자들도 되지 않았다. 구원이 쉽다고 가르치는 자들은 거짓 선지자들일 것이다. 구원이 쉬워보이는 길은 멸망 길일 가능성이 높다. 성경에는『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고 기록되어 있다. 주님이 원하셔도, 사람들 스스로 회개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에베소서 6장 18-19절『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사도바울은 에베소서 1-5장에서 창세로부터 감추어진 비밀을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그는 직접 셋째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께 말할 수 없는 것을 보고 들었다고 성경은 기록하였다. 구원은 하나님을 떠난 자들을 다시 하나님 나라로 복귀시켜 주시겠다고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떠난 자들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 자들은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어 대속으로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고,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회개하여 돌아오고자 할 때,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을 아는 것이 복되며, 믿는 자들에게는 복음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비록 육은 이 땅에 살아있지만, 그 영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우편에 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이 세상의 그 어떤 죄에 대해서도 심판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로마서 8장 1절에서『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사도바울은 하나님 나라를 보고 왔으므로 기쁨은 대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주와 떠나 있어도 소망이 늘 있었으므로 기쁜 것이다. 고린도후서 5장 8절에서『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마찬가지로 빌립보서 1장 22-24절에서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사도바울은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나라를 가기를 원하지만, 이 땅에서의 사...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

창세기 2장 21-24절『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원래 아담과 하와는 하나였다. 아담이 하와가 분리되기 전에는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사람이었다. 일반 사람들은 아담은 남자로 태어났는데, 여자인 하와가 아담으로부터 분리되었다고 생각하지만, 분리되기 전의 사람은 완전한 하나가 된 존재라는 것이다. 분리된 이후에 남자가 되고, 여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담(사람)과 하와가 분리된 아담(남자)는 다른 존재인 것이다. 이는 영적인 의미를 갖는다.『이러므로』는 원래는 하나였으므로, 한 몸을 다시 이루라는 것이다. 남자가 된 아담은 죄를 짊어지고 이 땅에 들어온 그리스도의 표상이다. 그리고 여자는 그리스도를 떠나 스스로 자기의 의를 이루어보려는 하나님을 떠난 영들이다. 이 말은 에베소서 5장 31-32절에서도 언급된다.『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여기에서 사람은 남자를 의미한다. 번역을 남자로 했어야 했다. 교회는 아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남편이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떠나서 이 세상에 육체를 입고 오신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성도가 바로 그리스도의 아내라는 표현이다.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다. 오실 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아담 안에서 이 세상에 모든 영들이 들어오고, 마지막 아담 안에서 택한 영들이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최초의 인간 아담은 죄의 몸을 주기 위한 그리스도이시요, 마지막 아담은 영의 몸을 주기 위한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창세기 7장 1-5절『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 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세기 6장의 표현과 7장은 차이가 있다. 6장에서는『아들과 아내와 며느리』라고 했으나 7장은『네 온 집』이라고 표현했다. 집이라는 의미는 좁은 의미에서는 가족의 단위를 두고 말하지만, 넓게는 국가(이스라엘)을 두고 말하기도 한다. 방주에 들어가는 것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방주는 대속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 5장 32절에서『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11장 10절에서 『셈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셈은 백 세 곧 홍수 후 이 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성경의 근거로 보면 노아가 600세 되던 때에 아르박산이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노아가 600세 되던 때에 홍수가 났다. 홍수가 거의 1년이 지속되었다. 그런데, 성경에는 홍수 후 2년에 셈이 아르박산을 낳았다고 말한다. 사실상 노아가 셈을 502세에 낳았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노아가 500세 때에는 셈을 낳지 않았는데, 낳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Noah was five hundred years old: and Noah begat Shem, Ham, and Japheth. (kjv) 오백이라는 말의 의미는 오(5)는 은혜를 상징하고, 십(10)은 은혜가 담겨져 있는 말씀이고, 또 다른 십(10)은 은혜가 성취되어 졌다는 의미다. 셈 함 야벳은 노아가 500세에 되던 해에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장차 하나님의 은혜로 태어날 자식들이라는 것이다. 즉 셈 함 야벳은 노아와 함께 방주에 탈 자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가라사대

욥기 38장 1-7절『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누가 그것의 도량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의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그것의 주추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잇돌을 누가 놓았느냐 그 때에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 38장 1-7절에서 하나님이 땅의 기초를 놓는 것에 대해서 욥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욥이 26장 7절에서『그는 북쪽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매다시며』라고 말한다. 욥이 26장에서 한 말에 대해서 하나님이 38장에서 욥이 잘못 말한 것으로 질책하는 내용이다. 그래서 욥이 42장 3절에서 잘못 말을 한 것에 대해서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이 욥에게 말씀하실 때는 욥과 친구들과 변론하는 마지막쯤 되었을 때다. 친구들이 욥에게 하는 말의 핵심은『욥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이 징계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하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욥은『자기가 잘못한 것이 없다』라고 끝까지 주장하는 내용이다. 세명의 친구 중에 마지막으로 엘리후라는 친구가 하나님에 대해서 말을 할 때, 하나님이 폭풍우 가운데 나타나셔서 욥에게 말씀하시는 장면이다.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하나님 말씀은『네가 창조에 대한 내용도 제대로 알지도 모르면서 말했다』는 것이다. 욥이 42장 3절에서『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라고 대답했다. 곧 욥이 스스로 잘못되었음을 고백하는 내용이다. 욥이『그는 북쪽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매다시며』라고 말했는데, 하나님이 책망하시는 것이다....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면서

마태복음 24장 37-39절『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예수님은 재림 때의 모습을 노아의 때와 같다고 말씀하셨다. 노아의 때를 살펴보면, 예수님의 재림의 때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노아 시대 세상죄가 관영하여 홍수로 멸망당하였으므로, 예수님 재림때도 이와 같이 죄악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을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태복음 24장에서『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라고 하시므로, 하나님의 심판과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들이 무엇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인가? 홍수 전에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반드시 알고 있었어야 하는 것이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들은 일상생활을 설명하시는 것이다. 이런 일상 생활 가운데,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떠난 자였으며, 반드시 돌아가야 할 자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어야 한 것이다.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이 죄가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반드시 기억하고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야 할 자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의를 이루어보려고 하다가 그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약속의 씨를 바라보아야만 했는데, 아무도 그렇게 그 약속의 씨(그리스도)를 바라보지 못한 것이다. 오직 노아와 가족 8명만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방주에 들어갔다는 말씀이다. 창세후에는 인간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약속의 씨를 바라보다가, 점차 결혼하고 많은 사람들이 생겨나자, 약속을 다 잊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성경(창세기 6:2)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한다는 말이 등장하는 것이다. 창세기 3장 18-19절에서『땅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없도다

이사야 29장 13절『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이 말씀은 마태복음 15장 8-9절에서도 같은 말씀을 하고 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하나님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사람의 교훈을 따른다고 책망하시는 것이다. 구약시대 히브리인들이 사용하던 말 중에『고르반』이라는 것이 있었다.『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다. 어떤 일이 있던지 유대인들이『고르반』이라고 말을 하기만 하면, 다 하나님께 드린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이것이 장로들의 유전으로 이어져 왔다.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유익과 편리를 위해서 악용되어 왔던 전통이었다. 장로들의 유전 가운데, 음식을 먹을 때는 손을 씻어야 하는데,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예수님의 제자를 보고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말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15장 2절에서『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그런데, 예수님이 그들에게『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라고 말씀하셨다. 유대인들이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서도,『고르반』이라고 말만 하면 지킨 것으로 스스로 간주했던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입술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현실적으로 인간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므로, 사람들이 자기의 생각대로 말하는 것이다. 로마서 8장 1-2절에서『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성경이 말씀하고 있어도, 사람들은 이를 믿지 ...

예수 열심히 믿고 지옥가는 사람들

예수 열심히 믿고 지옥가는 사람들 로마서 8장 1-4절『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율법을 따르는 자는 죄와 사망의 법으로, 영(성령)을 따르는 자들은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졌으므로 죄와 사망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성령을 따르는 자들이다. 그래서 성령을 따라 행하는 자가 구원받는다. 성령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육이 아니라 영으로 성령을 따르는 자들이다. 영이 죽은 자들은 성령을 따를 수 없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난 영이 성령을 따른다는 것이다. 구원은 육이 아니라 영에 대한 이야기다. 교회 사람들은 몇가지 오해를 하고 있다.『예수님을 믿어서 교회를 다니면 구원받는다』라는 단순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첫째, 예수님을 믿는 것에 대한 오해다. 단순히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받는 것에서부터 예수님이 믿는 자를 위해서 대속의 피를 흘려주셨다는 것을 믿는 것까지 다양할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함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는 것을 받아드리지 못하면, 아무리 열심을 내어도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이시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가 교회가 된다. 성도들이 모여서 함께 할 때, 하나님의 권능이 주어진다. 그래서 성도들이 모인 그곳에 교회가 이루어진다. 건물이 교회가 아니라 건물에 모여있는 성도가 교회가 되는 것이다. 성도가 아무도 없는데, 십자가를 세워놓았다고 그 건물이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셋째, 구원은 예수님을 ...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세기 6장 18-22절에서『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방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방주는 이후 성소와 성전으로 나타난다. 성소 안에는 휘장이 있어서 지성소를 구분하고 있다. 이 성소가 곧 방주와 같은 개념이다. 재료와 치수가 그 같은 의미를 말해준다. 방주의 재료는 백향목(잣나무, 고페르)으로 만들어졌다. 히브리어로 백향목은 고페르, 백향목의 진은 고피르트 라고 한다. 이 고피르트는 속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고피르트를 백향목 나무의 안팍으로 칠한다는 것은 방주가 대속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칠하다(카파르)는 의미는『덮다, 속죄하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방주는 속제죄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창세기 6장 15절에서는『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규빗은 길이를 측정하는 단위로 사용되었지만, 하나님 말씀의 잣대라는 의미도 있다. 삼백에서 삼은 아버지와 아들과 아들을 믿는 성도가 하나님 말씀 안에서 하나가 되어 성취되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열의 열(10)은 성취되는 것을 의미한다. 오십에서 오(5)는 은혜를 상징한다. 사(4)는 고통과 죽음을 상징하는데, 그것이 끝나면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진다. 그 은혜가 바로 율법이다. 그래서 율법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이 바로 은혜라는 것이다. 삼십(30)도 삼백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도가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