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몸

  부활의 몸이란 ?   첫째 ,  부활이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가 다시 살아나는 것인가 ,  아니면 영적으로 부활이 일어나는 것인가 ?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이라고 말씀을 한다 .  부활이라는 말에 대해서 ,  육신의 입장에서 보면 ,  육이 부활한다고 믿게 되지만 ,  영의 입장에서 보면 원래 하늘의 생명인데 ,  흙에 잠시 갇혀 있다가 다시 하늘의 생명이 부활한다는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의 생명이므로 ,  육이 죽고 ,  하늘의 생명으로 부활한 것이다 .  그런데도 ,  육이 부활했다고 주장한다면 ,  육의 눈으로 보기 때문이다 . 누가복음  20 장  35-36 절에서 "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  그리고 ,  마태복음  22 장  30 절 "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 라고 말을 한다 .  천사는 영이다 .  그래서 부활은 죽었던 영이 생명의 영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   요한복음  20 장  24-25 절에서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도마는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았다 .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에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가...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누가복음 24장 31-32절『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오후에 대해 누가복음 24장에서는 엠마오로 돌아가던 두 제자들의 기사를 말하고 있다. 이들은 사도들이 아니고 제자들인데 부부였다. 그들의 이름은 글로바(누가복음 24:18)와 마리아(요한복음 19:25)였다. 이들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에 고향 엠마오로 돌아가고 있었다. 예루살렘에서 엠마오까지는 약 10km정도되는데, 부부는 부활의 아침에 막달라 마리아와 두 사도가 주님의 무덤을 다녀온 이야기,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주님의 시신을 도난당했다고 생각하고 슬픈 분위기였다. 이때 부활하신 주님께서 동행하셨지만 그들은 알아보지 못했다. 주님의 모습이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어 계셨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 무슨 일이 있었느냐 ” 고 물으실 때, 두 제자는 몇일 동안 있었던 일을 자신들이 알고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상세히 전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부활에 대해서 믿지 못함을 여기시고, 구약성경에 예언된 메시야에 대해 전하셨다. 그들이 큰 은혜를 받고 엠마오에 도착했을 때, 자기들의 집에 부활하신 주님을 초청하여 식사를 준비했다. 당시 유대 사회 풍조는 나그네를 위해 집주인이 식사 기도하며 축복을 하는데, 이들은 주님께 식사기도를 부탁했고, 주님께서 빵을 집어 축복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았으나 곧 바로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 그리고 그들 부부는『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καιομ έ νη  카이오메네:기본형은 카이오) 하고』주님이 축복하...

부활생명이 심령 속으로 들어온 성도가 하나님 나라이다

  부활생명이 심령 속으로 들어온 성도가 하나님 나라이다   부활에 대해서 오늘날 교회에서 부활생명을 현실에서 누리지만 아직 완전한 부활의 때는 오지 않았으며, 예수님의 재림 때 부활이 완성된다고 말을 한다.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인가? 부활을 죽은 육체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와 함께 죽은 것을 믿는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였음을 믿는다. 부활은 죽은 육체가 아니라, 죽었던 영이 살아나서 영의 몸을 입는 것이다. 만일 부활이 죽은 육체가 살아나는 것이라면, 죽었다 살아난 나사로, 죽었다 살아난 회당장 야이로의 딸, 죽었다 살아난 나인성 과부의 아들은 부활이 아닌가? 성경은 죽었다 살아난 이 세명에 대해서 부활이라고 말을 하지 않는다. 부활의 첫열매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에서『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그리고  아직 완전한 부활의 때는 오지 않았지만, 부활생명을 현실에서 누린다고 말을 하는데, 잠깐 경험해 본다는 취지로 말을 하는 것이다. 정말 비성경적인 말을 한다. 로마서 6장 5절에서는『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연합한 자는 부활생명이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 나라도 이미 왔지만 “여기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라는 말을 통해서 교회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도 예수님의 재림 때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을 한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장소적인 개념으로 말을 하는데, 누가복음 17장 20-21절에서『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

죄의 몸과 죄의 종

  죄의 몸과 죄의 종     로마서 6장 6절『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사람들은 죄에 대해서 계명을 어기는 것을 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계명을 어기지 않도록 열심히 자신을 돌이켜보고 살아간다. 이런 삶이 율법주의적인 삶이라고 한다. 인간은 절대 계명을 완벽하게 지키지 못한다. 예수를 믿는다고 말을 하면서도 계명을 지키려고 하는 이런 일은 계속되고 있다. 자신의 경험과 세상적인 이치로 볼 때는 그들의 논리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죄에 대해서 그들이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신도들은 먼저 죄의 몸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죄의 몸』은 헬라어로『토 소마 테스 하마르티아스』(τ ὸ   σ ῶ μα τ ῆ ς   ἁ μαρτ ί α ς ) 라고 하는데, 죄덩어리의 몸이 아니라, 죄를 담는 그릇이다. 첫사람 아담이 그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첫사람은 그리스도이시다. 첫사람으로부터 이어져 모든 사람에게 죄의 몸이 전해지는 것이다. 죄의 몸은 죄를 담는 그릇과 같은 것이다. 그러면 죄는 무엇인가? 죄에 대해서 잘 이해해야만 한다. 죄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이 죄이다. 일반적으로 탐욕이라고 하면, 실체가 없는 마음의 상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러나 죄는 실체가 있는 것이다. 바로 우상이다. 골로새서 3장 5절에서『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네크로)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네크로는 진압하다 라는 의미를 갖으나, 죽다(네크로스)라는 의미가 있다. 로마서 6장 4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네크로스)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

자기를 부인하는 삶에 대해 거부하는 자들

자기를 부인하는 삶에 대해 거부하는 자들 마태복음 16장 24-25절『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헤아우톤 ἑαυτὸν)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프쉬켄 ψυχὴν)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자기라는 말이 바로 목숨인 프쉬켄(혼)이다.『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프쉬켄)을 잃으면 (그것을 αὐτήν) 찾으리라(유레세이)』그것이라는 아우텐이 번역되지 않았지만, 의미상으로는 혼을 의미한다. 유레세이는 찾다 라는 의미 외에 발견하다, 갖다, 얻다 라는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앞의 잃어버린 혼(프쉬켄)과 얻는 혼(프쉬켄)은 서로 다른 것임을 알게 된다.  성경에서 이 혼을 옛사람 또는 새사람으로 표현하는데, 잃어버려야 하는 혼을 옛사람, 얻게되는 혼을 새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옛사람을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못박아라는 것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바로 이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다. 그러면 하늘로부터 새사람을 얻게된다는 말씀이다.  로마서 6장 4-6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따라서 옛사람은 십자가에서 죽어야 할 육적 생명(죄의 몸)이고, 새사람은 영적인 부활 생명인 것이다.  부활생명을 가진 자가 바로 하나님 나라가 임한 자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성령의 능력으로 다시 태어난 자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새성전이 심령 속에 세워진 자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십자가의 ...

일어나라

일어나라 사도행전 9장 33-35절『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 지 여덟 해라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한대 곧 일어나니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중풍병으로 번역된 파라렐뤼메노스(παραλελυμένος)는 옆으로 늘어지다, 약한, 중풍병 등의 의미가 있다. 예수님이 중풍병을 고치는 장면이 마가복음 2장 3-12절에서 소개되는데, 예수님이 그 환자에게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누가복음5장 21절에서는『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생각하여 이르되 이 신성 모독 하는 자가 누구냐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중풍병과 죄는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중풍병자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어서, 다른 사람이 도와주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는 그런 상태였다. 중풍환자의 영적인 의미도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도와주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자를 의미한다.  애니아라는 사람은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지 여덟 해라고 했다. 단순히 팔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고통을 당하는 모습만 생각한다면 영적인 의미를 놓칠 수 있다. 팔은 새창조를 의미한다. 영적으로 죽어있던 자가 영적으로 살아난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이아타이 ἰᾶταί)』이아타이(기본형:이아사스타이)는 치유하다, 온전케하다 라는 의미로서, 누가복음 4장 18절에서『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여기에서 넷슬 알란드 성경에는 “상한 마음을 치유하고(ιασα...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인가?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인가?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에 세 번 나온다. 사도행전 11장 25-26절에서『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렸는데, 그 이유는 이방인들이 보기에 그들의 말, 행동, 활동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신도들에게 가르쳤으므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이방인들에게도 전하게 되었는데, 포교하는 과정에서 믿지 않는 자들이 예수 추종자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믿지 않는 이방인들이 경계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 것이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추종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적 정체성을 가져오게 한 것이다.  그리고 사도행전 26장 28절에서『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사도바울이 아그립바 왕에게 예수에 관한 복음을 전하니, 그가 그렇게 말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그립바 왕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경계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냉소적으로 대한 것이다.  베드로전서 4장 16절에서는『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신도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전하면, 강하게 반대에 부딪히고, 심지어는 그들이 신도들에게 창피를 주거나 협박까지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의미는 이렇게 이방인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첫째, 원죄의 문제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이라는 것을 이방인들에게 말을 하면 그들은 강하게 부정한다. 따라서 예수가 인류를 대신하여 대속의 죄로 죽었다는 것에 혐호한다. 예수가 신성모독하여 십자가에서 죽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