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  (삼상 2장 18-36절)   18. 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에트 파님) 섬겼더라(샤라트) 세마포는 제사장이 입는 옷으로, 이전에는 엘리의 지도 하에 여호와를 섬겼지만, 이제는 제사장으로서 직접 여호와 앞에서 섬겼다는 것이다. 파님은 얼굴이라는 의미를 갖으나, 에트라는 전치사가 동반될 때는 ~ 안에 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즉 하나님의 임재(헬라어 파루시안)를 의미한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성도가 하나님의 임재를 믿으며 사는 자인 것이다. 임마누엘이 된 성도 역시 왕 같은 제사장이 된다. 베드로전서 2장 9절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 이유는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으므로 성도 역시 제사장이라는 말이다.   19. 그의 어머니가 매년 드리는 제사를 드리러 그의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메일)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더니 메일은 덮는다, 덮허 가리다 라는 의미로서 겉옷을 의미한다. 갈라디아서 3장 27절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세례는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을 의미하며, 죄에 대해서 죽은 자를 하나님이 영적으로 부활시켜 영의 몸(그리스도)의 옷을 입히신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옷은 부활생명인 영의 몸을 의미하는 것이다.  어머니가 사무엘에게 지어준 옷이 바로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의 옷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오늘날 성도 역시 모두그리스도의 옷을 입는다.   20-21. 엘리가   엘가나와 그의   아내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게 다른   후...

성결한 삶을 살기를 요구하는 교회들

  성결한 삶을 살기를 요구하는 교회들   구약성경 여호수아 3장 5절을 근거로『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성결하라는 말은 거룩하라는 말과 일맥 상통한다. 많은 목사들의 말에 의하면, 율법시대에서는 몸과 의복을 정결하게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외적 성결을 이루고, 거룩한 마음으로 영적 성결을 이루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도 성도에게는 두 가지 책무가 있는데, 첫째는   거룩하게 사는 것이며, 둘째는 주와 복음을 위해   충성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결단하자 라고도 말을 한다.   신약성경에서는 베드로전서 1장 16-17절에서 『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위의 말들을 바탕으로 많은 목사들은 구원에 대해서, 예수믿고 구원받지만, 성결한 삶, 거룩한 삶의 열매를 맺지 못하면 구원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말을 하는 자들도 있다. 위의 말을 종합해 보면,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외에 성결과거룩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만 되는 식이다. 복음과 율법주의를 혼합시키는 영적 간음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거듭나지 못한 자들은 구원에 이르지도 못한 자들이다.   구약의 율법 시대에, 성결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통해서, 인간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결에 도달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백성은 깨달아라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인 제사 제도를 통해서 메시야(그리스도)를 발견하라는 것이다. 메시야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여 주시는 분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스스로 성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게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가? 다른 종교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도대체...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삼상 2:11-17)   1.엘가나는 라마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그 아이는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샤라트) 샤라트는 (제사장으로서) 섬기다, 경배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대제사장 엘리 앞에서 제사장으로 사무엘이 여호와를 섬긴 것이다. 그리고 엘리의 아들들도 제사장으로 섬긴 것이다.   2.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벨리얄)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로 야다) 벨리얄은 “약한, 보잘 것 없는, 불경건한” 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고린도후서 6장 14-15절『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알지못한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로(부정) 야다(하나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하다라고 번역했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못하는 자는 모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지만,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못하면 하나님은 나는 너를 모른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가 되는 의미는 연합을 의미하며, 『십자가와 부활』과 연합이다. 신도가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였음을 믿지 못하면 궁극적으로 부활생명이 없으면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하나되지 못하는 자가 벨리얄이며, 어둠에 있는 자라는 말이다. 하늘의 부활생명이 현재 없는 자가 그렇다는 말이다. 장차 부활할 것이라고 믿는 자도 현재는 어둠에 있는 자가 된다. 지금 현재가 중요한 것이다.   엘리의 아들들(홈니와 비느하스)은 날마다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여호와를 알지못했다(하나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날마다 기도하고 예배하고 온갖 충성을 다바쳐서 교회를 섬기지만,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못하면 엘리의 두 아들과 같이 되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고린도전서 15장 20절『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15 장 13-10절에서는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는 것이 없었을 것이고, 그러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신도들의 신앙에 있어서 부활신앙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 신도들의 대부분은 부활신앙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부활에 대한 믿음이 그들 가운데 많은 차이가 있음을 보게 된다. 그들은 부활에 대해서 과거, 현재, 미래적인 부활을 믿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그들이 믿는 부활의 의미를 시제에 따라 생각해보면, 첫째로 부활은 2천년전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이며,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셨는데,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 했다. 첫 열매가 되셨다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과거에 있었던 한 사건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를 믿는 자마다 부활하고 영생할 것임을 표본으로 보여 주셨다는 것이다. 기독교인이면 누구나 믿는 부분이다. 두 번째로 과거에 일어났던 부활은 오늘 우리 가운데서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 이 현재적 부활은 믿는 자마다 영적으로 거듭나는 부활이다. 현재의 부활은 과거에 죄로 죽어있던 영이 살아나는 것이고,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창조되는 것이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거듭남을 마음의 변화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 사람들은 거듭남과 부활을 다른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거듭남과 부활은 같은 의미다. 거듭남은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이전의 것은 죽고, 새 피조물로 태어나는 것이다. 새 피조물은 영...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 사무엘상  2 장  1-10 절 )   1. 한나가 기도하여 ( 파랄 )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 ( 사마흐 ) 이다 파랄은 기도하다라는 말로 번역되었지만 ,  의미상으로는 판단하다 ,  중재하다라는 것이다 . 『내 뿔 ( 케렌 ) 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뿔로 번역된 케렌은 광채 ,  능력 ,  영광을 상징한다 .  즉 하나님이 나를 높이셨다는 말이다 .  하나님이 한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무엘이라는 아들을 주시므로 높이셨다는 말이다 . 『구원으로 말미암아 ( 비슈아테카 : 기본형은 예수아 ) 』로 번역되었는데 ,  당신의 구원 안에서라는 말이다 .  비슈아테카에서 전치사 비 ( בִּ )  는 성전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  비슈아테캐는 예수 안에서 라는 것이다 .  한나가 기도하며 기뻐하는 것은 주 안 ( 성전 ) 에 있으므로 기뻐한다는 말이다 .  사마흐는 기뻐하다 즐겁다 라는 말이다 .  성도 역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부활 생명이 있으므로 항상 기쁘고 즐거운 것이다 .  주위에 온통 원수들이 있을지라도 즐겁다는 표현을 한다 .  한나는 아들 ( 사무엘 ) 을 갖게되고 ,  그 아들과 더불어서 다윗을 세우게 되므로 그 다윗이 예수의 혈통이기 때문이다 .  비록 사울이라는 왕이 있었지만 ,  이 왕은 죽어야 할 가짜 왕인 것이다 .  이전 것은 죽고 ,  새로운 왕인 다윗이 왕으로 등극하기 때문이다 .  한나는 아들을 통해서 이러한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께 구원의 감사기도를 하는 것이다...

천국과 하나님 나라

  천국과 하나님 나라   성경에서는 천국이라는 용어와 하나님 나라가 등장한다.   천국은 마태복음   3 장   2 절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라고 하고, 5장   3 절에서『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고 말했다.   천국이 회개하는 자에게 주어진다는 말이다. 헬라어를 보면 『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 ( ἡ   βασιλε ί α τ ῶ ν ο ὐ ραν ῶ ν)』 이다.   헤 바실레이아는 왕국이고,   톤 우라논은 문법적으로 관사가 있는 복수 명사로서 성도들의 심령 속으로 들어오는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라고 번역된 것은 사도행전   19 장   8 절에서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라고 되어있다.   헬라어를 보면 『테스 바실레이아 투 데우 ( τ ῆ ς   βασιλε ί α ς   το ῦ   θεο ῦ ) 』 로 되어 있다.   성부 하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 왕국이라는 의미다.   보통 교회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투 데우는 관사(투 το ῦ ) 가 있는 것으로 성부를 의미한다.   관사가 없을 때는 성자를 나타낸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이렇게 두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아야만 하는 것이다. 천국이라고 번역된 톤 우라논은 성도의 심령에 새성전이 세워지고,   그 성전에 임하시는 호 로고스가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바로 성도의 심령 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서 호 로고스가 바로 하나님 나라이며,   곧 호 로고스가 성령의 능력으로 다스리는 나라인 것이다.   누가복음   17 장  ...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삼상 1:19-28)   19-20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자칼) 한나가 임신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샤알) 함이더라』 자칼은 표하다, 기억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 외에 남성이라는 의미도 있다. 항상 기억하는 남자는 엘가나이고, 그의 아내가 임신을 했다. 사무엘은 쉐마와 엘이 결합된 단어인데,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의미이다. 샤알은 간구하다, 구하다 라는 뜻을 갖고 있다.   21-22 『그 사람 엘가나와 그의 온 집이 여호와께 매년제와 서원제를 드리러 올라갈 때에 오직 한나는 올라가지 아니하고 그의 남편에게 이르되 아이를 젖 떼거든(가말) 내가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뵙게 하고 거기에 영원히 있게 하리이다 하니』 한나는 매년 드리는 서원제에 올라가지 않고, 젖을 뗀후 여호와 앞에 시무엘을 바치겠다고 한다. 젖은 어머니로부터 양육받는 생명의 젖줄이지만, 그 이후에는 하늘의 양식을 막는 자로 하겠다는 말이다. 젖을 뗀다는 것은 세상에 대해서 죽는 것과 하늘에 대해서 산 자를 상징한다. 유모는 히브리어로 드보라이다. 드보라는 다바르(말씀:율법)에서 유래된 것으로 말씀의 젖을 먹이는 자인 것이다. 율법이라는 말씀의 젖을 먹다가, 하늘의 말씀을 먹는 자가 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뀌는 장면이 나온다. 야곱의 유모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고린도전서 3장 1-2절에서 『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젖을 먹는 자는 율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