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이유

전도서 12장 7-8절『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인간은 반드시 곤고한 날이 오게된다. 그래서 전도서 12장 1절에서『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기억하라』는 것이다. 무엇을 기억하라는 것인가? 인간 속에 있는 영은 반드시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만 한다. 인간은 육과 영으로 이루어진 존재다. 그런데, 태어나면서부터 영이 죽어서 육의 그림자인 혼이 주인노릇하고 있는 것이다. 혼은 사람의 지식, 감정, 의지를 총칭한다. 혼(soul)은 히브리어로 네피쉬하야(헬라어:푸쉬케) 라고 한다. 학자들은『인간은 영과 혼과 육으로 이루어진 존재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혼은 육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창세기 2장 7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And the LORD God formed man of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soul.』(kjv) 생령으로 번역된 부분은 혼(soul)이다. 혼은 생명체, 즉 생명이 있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육체가 죽으면 혼은 사라지는 것이다. 혼은 존재가 아니라, 관념(생각)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영과 육으로 이루어진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셨다. 그 자기가 바로 혼이라는 것이다. 이 혼이라는 관념이 육의 주인노룻을 하기 때문에 영을 계속 죽게 만드는 것이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이다. 영(spirit)은 히브리어로『루아흐, 네사마』라는 말로 사용된다. 이 단어들은 호흡, 영, 바람이라는 의미도 가진다. 헬라어로는 푸뉴마라고 한다. 우리 말로 영혼이라는 말은 합성어로 표현되었지만, 영과 혼은 결합될 수 없다. 영과 혼은 상반된 모습을 나타낸다. 영이 죽어있으면, 혼이 주인노룻하고, 혼이 죽으면 영이 살아난다. 구약이나 신약 성경에서 영을 영혼으로, 혼도 영혼으로 번역된 부분이 있어서, 사람들은 영혼을 영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혼으로 생각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흙에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으셨다. 그 생기가 바로 영이라는 것이다. 전도서 12장 7절에서『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여기서『돌아간다』는 것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돌아간다는 말은 회복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이 영을 흙에 넣으시므로 사람(아다마)가 되었다. 육은 흙으로 만들었으므로, 흙으로 돌아가고, 영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영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창세기 1장 27절에서『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남자와 여자로 나뉘어지기 전의 사람(아다마)은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 그리스도의 표상이다. 그런데,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져서 불완전하게 된 존재는 하나님의 형상이 없는 것이다. 곧 영이 죽어버린 존재가 된다.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위해서는 남자와 여자가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 남자는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여자는 하나님을 떠난 지체들을 상징한다. 그래서 모든 인간들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만 하나님의 형상 즉 영이 살아난다. 영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영이 살아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다. 창세기 1장 26절에서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이 말은『영을 흙에 넣어서 사람을 만들자』라는 의미다. 그런데, 사람이 태어나면서 영이 죽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영을 살리기 위해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영을 왜 흙에 넣으시는가? 영은 하나님 나라에 있어야 하는데, 영이 흙에 들어가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다. 영을 흙에 넣는 이유는 가두기 위함이었다.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함으로 하나님이 영을 흙에 가두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영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무엇인가 입어야만 한다. 흙을 입으면 인간이 되고, 육이 죽어서 영이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려면 영의 몸을 입어야만 한다. 고린도후서 5장 1절에서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영원한 집이 바로 영의 몸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죽으면 영이 육으로부터 나와서 영의 몸을 입게 된다. 영의 몸을 입지 못하면 벌거벗은 자가 된다. 고린도후서 5장 3절에서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그리스도 안에 있지 못하면, 영이 영의 몸을 입지 못하고, 벌거벗은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둘째 사망에 처해진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신령한 몸으로 거듭나지만,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은 육의 몸으로 심판받을 것이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은 죽은 후에 육의 몸으로 부활하여 심판받을 것이다. 따라서 이 땅에 살 동안에 우리 옛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만 한다. 육체가 살아있을 때, 육체가 죽을 수 없으므로 옛사람(혼)이 죽는 것이다. 로마서 6장 6절에서『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영이 벌거벗으면 둘째 사망에 처해진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5장 2절에서 사도바울이 말하는 것이다.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서『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육의 몸과 영의 몸은 영이 덧입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자는 육의 몸을 입고, 거듭난 자는 영의 몸을 입는다. 육의 몸과 영의 몸을 옷으로도 비유되고 있다. 영의 몸을 그리스도의 옷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의의 옷이라고도 표현했다. 영은 옷을 입어야만 한다. 이 땅에 있을 동안에는 흙이라는 옷을 입고, 하나님 나라에서는 의의 옷을 입고 있다. 누가복음 24장 36-37절『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유령이라고 생각했다. 보이긴 하지만 몸은 없고 영혼만 떠돌아다니는, 그래서 벽을 마음대로 통과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예수님은 그들 마음에 요동치고 있는 의심과 두려움을 간파하셨다. 그래서 그들에게 24장 38절『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라고 물으시고, 그들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주시기 위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24장 39-40절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부활하지 않은 때와 같이 살과 뼈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셨다. 왜냐하면 제자들에게 부활을 믿게 하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의 몸은 육의 몸이 아니라 영의 몸이다. 그래서 변신도 가능하고, 벽을 뚫고 갈 수도 있게 된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영의 몸은 영원히 죽지 않지만, 사람들의 몸은 반드시 죽게된다. 그래서 영의 몸을 입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신다.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서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전도서 12장 7-8절『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인간은 반드시 곤고한 날이 오게된다. 그래서 전도서 12장 1절에서『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기억하라』는 것이다. 무엇을 기억하라는 것인가? 인간 속에 있는 영은 반드시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만 한다. 인간은 육과 영으로 이루어진 존재다. 그런데, 태어나면서부터 영이 죽어서 육의 그림자인 혼이 주인노릇하고 있는 것이다. 혼은 사람의 지식, 감정, 의지를 총칭한다. 혼(soul)은 히브리어로 네피쉬하야(헬라어:푸쉬케) 라고 한다. 학자들은『인간은 영과 혼과 육으로 이루어진 존재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혼은 육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창세기 2장 7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And the LORD God formed man of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soul.』(kjv) 생령으로 번역된 부분은 혼(soul)이다. 혼은 생명체, 즉 생명이 있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육체가 죽으면 혼은 사라지는 것이다. 혼은 존재가 아니라, 관념(생각)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영과 육으로 이루어진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셨다. 그 자기가 바로 혼이라는 것이다. 이 혼이라는 관념이 육의 주인노룻을 하기 때문에 영을 계속 죽게 만드는 것이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이다. 영(spirit)은 히브리어로『루아흐, 네사마』라는 말로 사용된다. 이 단어들은 호흡, 영, 바람이라는 의미도 가진다. 헬라어로는 푸뉴마라고 한다. 우리 말로 영혼이라는 말은 합성어로 표현되었지만, 영과 혼은 결합될 수 없다. 영과 혼은 상반된 모습을 나타낸다. 영이 죽어있으면, 혼이 주인노룻하고, 혼이 죽으면 영이 살아난다. 구약이나 신약 성경에서 영을 영혼으로, 혼도 영혼으로 번역된 부분이 있어서, 사람들은 영혼을 영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혼으로 생각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흙에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으셨다. 그 생기가 바로 영이라는 것이다. 전도서 12장 7절에서『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여기서『돌아간다』는 것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돌아간다는 말은 회복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이 영을 흙에 넣으시므로 사람(아다마)가 되었다. 육은 흙으로 만들었으므로, 흙으로 돌아가고, 영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영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창세기 1장 27절에서『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남자와 여자로 나뉘어지기 전의 사람(아다마)은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 그리스도의 표상이다. 그런데,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져서 불완전하게 된 존재는 하나님의 형상이 없는 것이다. 곧 영이 죽어버린 존재가 된다.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위해서는 남자와 여자가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 남자는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여자는 하나님을 떠난 지체들을 상징한다. 그래서 모든 인간들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만 하나님의 형상 즉 영이 살아난다. 영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영이 살아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다. 창세기 1장 26절에서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이 말은『영을 흙에 넣어서 사람을 만들자』라는 의미다. 그런데, 사람이 태어나면서 영이 죽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영을 살리기 위해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영을 왜 흙에 넣으시는가? 영은 하나님 나라에 있어야 하는데, 영이 흙에 들어가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다. 영을 흙에 넣는 이유는 가두기 위함이었다.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함으로 하나님이 영을 흙에 가두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영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무엇인가 입어야만 한다. 흙을 입으면 인간이 되고, 육이 죽어서 영이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려면 영의 몸을 입어야만 한다. 고린도후서 5장 1절에서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영원한 집이 바로 영의 몸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죽으면 영이 육으로부터 나와서 영의 몸을 입게 된다. 영의 몸을 입지 못하면 벌거벗은 자가 된다. 고린도후서 5장 3절에서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그리스도 안에 있지 못하면, 영이 영의 몸을 입지 못하고, 벌거벗은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둘째 사망에 처해진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신령한 몸으로 거듭나지만,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은 육의 몸으로 심판받을 것이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은 죽은 후에 육의 몸으로 부활하여 심판받을 것이다. 따라서 이 땅에 살 동안에 우리 옛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만 한다. 육체가 살아있을 때, 육체가 죽을 수 없으므로 옛사람(혼)이 죽는 것이다. 로마서 6장 6절에서『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영이 벌거벗으면 둘째 사망에 처해진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5장 2절에서 사도바울이 말하는 것이다.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서『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육의 몸과 영의 몸은 영이 덧입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자는 육의 몸을 입고, 거듭난 자는 영의 몸을 입는다. 육의 몸과 영의 몸을 옷으로도 비유되고 있다. 영의 몸을 그리스도의 옷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의의 옷이라고도 표현했다. 영은 옷을 입어야만 한다. 이 땅에 있을 동안에는 흙이라는 옷을 입고, 하나님 나라에서는 의의 옷을 입고 있다. 누가복음 24장 36-37절『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유령이라고 생각했다. 보이긴 하지만 몸은 없고 영혼만 떠돌아다니는, 그래서 벽을 마음대로 통과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예수님은 그들 마음에 요동치고 있는 의심과 두려움을 간파하셨다. 그래서 그들에게 24장 38절『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라고 물으시고, 그들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주시기 위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24장 39-40절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부활하지 않은 때와 같이 살과 뼈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셨다. 왜냐하면 제자들에게 부활을 믿게 하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의 몸은 육의 몸이 아니라 영의 몸이다. 그래서 변신도 가능하고, 벽을 뚫고 갈 수도 있게 된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영의 몸은 영원히 죽지 않지만, 사람들의 몸은 반드시 죽게된다. 그래서 영의 몸을 입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신다.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서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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