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드린 십일조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드린 십일조 창세기 14장 17-20절에서『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로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얻은 것은 전쟁 중에서 얻는 것으로 오인할 수 있으나, 원문에는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주었다고 되어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드린 것과 오늘날 교회에서 말하는 십일조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대부분 교회 사람들은 율법에서 십일조를 정하고 있지만, 그 이전에도 십일조가 있었으므로, 십일조는 교회에 바치는 것이 정당하다고 말을 하기도 한다. 멜기세덱은 히브리서 5장 11절에서『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멜기세덱을 살렘왕이라고 했다. 히브리서 7장 2절에서『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그리고 이사야 9장 6절에서는『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다. 결국 살렘왕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즉 멜기세덱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7장 3절에서는『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하고 어둠에 거하면

요한1서 1장 5-10절『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교회 사람들은 이 말을『하나님을 믿으면서, 세상에서 악한 행동을 하게되면』 이라고 받아드릴지도 모른다. 빛이신 하나님과 사귄다는 것은 하나님의 빛을 받아서 그 빛을 반사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 말씀을 받아서, 그 말씀에 대해서 화답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감동받고 아멘하면서 그것으로 끝내면 안된다는 것이다. 출애굽기 20장 19절에서『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백성들이 하나님이 두렵게 여겨지므로 모세 (율법)뒤에 숨었다. 백성들은 율법을 지키면서 아멘 하지만, 하나님께 직접 화답을 하지 않는 것이다. 율법 뒤에 숨어서 자기의 의를 쌓는 것 뿐이다. 율법에 갇힌 자들은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자기가 알아서 믿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하늘의 생명을 찾고 나누어주라는 것이다. 전하지 않는 자는 어둠 가운데 있는 자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1장 5절에서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빛은 바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십자가와 연합되는 것이 바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창세기 6장 10-13절『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그 끝날이 이르렀던 이유는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온 세상이 부패했다고 하시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하나님의 생각과 인간들의 생각은 너무나 다르다. 이사야 55장 8-9절에서『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대부분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느정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 구원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원하시는 것은『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께 부르짖으라』는 것이다. 인간이 생각하기에 스스로 무엇인가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그런 생각조차 하나님께 대하여는 악하다 라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과대평가를 하려고 하는 것이다. 마치 큰 바다에 빠져있는데, 스스로 헤엄쳐서 목적지를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구원은 누군가가 와서 건져주는 것이다. 하나님보시기에 세상 사람들은 큰 바다에서 육지에 다다를 수 있다고 헤엄치는 모습이다. 마치 스스로 의를 이루어보겠다고 노력하는 그런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요한복음 8장 21절에서『다시 이르시되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그래서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다가 죽으면 음부에 간다는 것이다. 8...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이유

전도서 12장 7-8절『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인간은 반드시 곤고한 날이 오게된다. 그래서 전도서 12장 1절에서『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기억하라』는 것이다. 무엇을 기억하라는 것인가? 인간 속에 있는 영은 반드시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만 한다. 인간은 육과 영으로 이루어진 존재다. 그런데, 태어나면서부터 영이 죽어서 육의 그림자인 혼이 주인노릇하고 있는 것이다. 혼은 사람의 지식, 감정, 의지를 총칭한다. 혼(soul)은 히브리어로 네피쉬하야(헬라어:푸쉬케) 라고 한다. 학자들은『인간은 영과 혼과 육으로 이루어진 존재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혼은 육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창세기 2장 7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And the LORD God formed man of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soul.』(kjv) 생령으로 번역된 부분은 혼(soul)이다. 혼은 생명체, 즉 생명이 있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육체가 죽으면 혼은 사라지는 것이다. 혼은 존재가 아니라, 관념(생각)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영과 육으로 이루어진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셨다. 그 자기가 바로 혼이라는 것이다. 이 혼이라는 관념이 육의 주인노룻을 하기 때문에 영을 계속 죽게 만드는 것이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이다. 영(spirit)은 히브리어로『루아흐, 네사마』라는 말로 사용된다. 이 단어들은 호흡, 영, 바람이라는 의미도 가진다. 헬라어로는 푸뉴마라고 한다. 우리 말로 영혼이라는 말은 ...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로마서 8장 13-14절『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여기에서 영은 성령을 의미한다. 육신대로 살면 육체 속의 영이 죽고, 몸의 행실을 죽이면 영이 살아난다. 육과 영은 서로 대립하고 있는듯하다. 육과 영이 만나서 인간이 되었는데, 서로 원수지간처럼 느껴진다. 이 때 육은 옛사람, 육으로부터 나오는 탐욕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육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육체 속에 숨어있는 탐욕의 마음 때문에, 영이 죽는 것이다. 성령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영이 살아나는데,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옛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들이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로 육의 옛사람이 살아나지 않도록 날마다 죽노라를 기억하는 것이다. 회개는 자신이 옛사람인 것을 인정하고 돌이키는 것이다. 즉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새사람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옛사람이 죽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을 믿는 자가 회개하는 자다. 그런데, 오늘날 회개의 의미가 잘못되어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세상으로 방향을 맞추고 있다. 세상에서 지은 죄를 회개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회개는 하나님에 대해서 회개해야만 한다. 하나님을 떠난 자라는 것을 회개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자는 하나님 나라에서 벗어난 자를 의미한다. 원래 하나님 안에 있던 자인데, 하나님을 떠나려고 한 것이 하나님께 죄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땅에서 스스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자기라는 존재성을 부인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회개라는 것이다. 그런데,『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는 이 귀절을 회개로 연결시키려는 사람들이 많다. 요한복음 13장 10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베드로가 ...

하나님의 형상

창세기 1장 26-27절『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자가 바로 아담이다. 사람이 창조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남자와 여자로 나누어지기 전의 하나로 된 사람이다. 오늘날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과 다른 존재라는 것이다. 아담은 두 종류의 아담이 있음을 알게된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아담(아다마)과, 창세기 2장 21-22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즉, 여자가 아담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남자로서 아담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아담은 최초의 사람이다. 형상에 대해서 이해가 팔요하다. 골로새서 1장 15절에서『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 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난 분이 예수님이다. 요한복음 1장 18절에서도『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한복음 14장 9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아담은 그리스도의 표상이라고 했다. 즉 하나님의 형상으로 태어난 아담은 곧 그리스도라는 말씀이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원래 하나였는데, 그들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그리스도를 떠나고 싶어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물질세계를 만들어 그들이 스스로 의를 이루어보라고 그들을 흙속에 가두어 인간이 되게 한 것이다. 최초의 인간은...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요한복음 6장 62-64절『그러면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것 같으면 어찌 하려느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자가 누군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다. 6장 51절에서『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유대인들이『어떻게 사람의 살을 먹는가』라며 의아해했다. 예수님은 6장 54절에서『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라고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셨다. 유대인들이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더 나아가 6장 62절의 말씀을 하신 것이다. 예수님이『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볼 것 같으면 어찌하려느냐』 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예전에 있던 곳은 하나님 나라이며, 그곳에서 여호와 하나님으로 계신 분이다. 즉 선재하셨다는 말씀이다. 세례요한도 예수님이 구약시대에 예수님이 계셨다고 했다. 요한복음 1장 15절에서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먼저 계셨다 라고 했다. 히브리서 11장 24-26절에서 모세가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누가복음 24장 27절에서 길을 가다가 두 사람의 제자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자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그리고 갈리리 바닷가에서 24장 44절에서 같은 말씀을 하고 있다.『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