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9장 35-38절) 예수님이 하신 일은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하시고 치유하시는 일이었다. 가르치시고 치료하심으로 천국 복음을 그들에게 전파하셨다. 『무리들, 즉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없는 양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니라』고 하셨다. 주님의 눈에는 사람들이 한없이 불쌍하게 보이셨고, 목자없는 양같이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시면서 제자들에게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추수하는 일꾼을 보내주시도록 기도하게 하셨다. 예수님은 성도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불쌍히 여기는 목자의 마음이다. 잃어버린 양 한마리를 찾는 마음이다. 인간들은 천국을 모르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하나님은 사랑이시라』를 먼저 말하므로서 회개의 기회를 놓치게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설교하고, 선교하고, 말씀을 전파하지만, 오늘날 하나님 나라를 제대로 전파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거의 대부분『예수를 믿으면 천국간다』라고 전할 뿐,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은 거의 드물다. 하나님나라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나님 나라의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정하신 일과 연관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예정하신 일은 바로 에덴동산의 사건과 관계가 있는 일이다. 에덴동산의 사건은 하와가 뱀의 미혹을 받아 하나님이 금지하신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사건이다. 뱀은 사탄을 상징한다. 사탄은 영적인 존재다. 그래서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에 생각으로 침투한다. 에덴동산의 사건은 이 땅에서 일어난 일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서 일어난 사건임...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요한복음 3장 16-18절『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믿음에 대해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 곧 그 이름을 믿는 것이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한다. 예수의 히브리어는 여호수아다. 즉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민수기 10장 9절에서『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크게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의 대적에게서 구원하시리라』 여호와 하나님이 영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육에 속한 아담으로 오셔서 범죄한 영들을 데리고 오시고, 영에 속한 예수 그리스도로 오셔서 영들을 데리고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신다는 것을 포함한다. 창세기 28장 12절에서『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이 말씀을 요한복음 1장 51절에서 예수님이 표현하신다.『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로마서 5장 14절에서 사도바울은 설명한다.『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고린도전서 15장 45절에서는『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첫사람 아담 안에서 왔다 라는 말은 여호와 하나...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마태복음 9장 32-34절)그들이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오니 귀신이 쫓겨나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거늘 무리가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하되 바리새인들은 이르되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예수님은 맹인들의 그들의 눈을 만져주셨다. 이것은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일종의 의료행위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말 못 하는 사람을 향한 예수님의 치유 방법은 귀신을 쫒아내는 것이다. 말 못하게 하는 귀신들린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오니 그 귀신이 쫓겨났다. 그런데 모두가 이 기적에 놀라워하고 있을 때, 바리새인들은 말했다.『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 것이다.』예수께서 보여주신 귀신이 떠나가는 기적이 바로 귀신의 소행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내말에 거하지 않은 자가 마귀의 자식이라고 하셨다. 바리새인들이 귀신들린 자들인 것이다. 귀신들렸다는 말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않고, 사탄의 지배하에 있는 자를 말한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자체가 사탄의 권세 아래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12장 43절에서『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이스라엘은 애굽으로부터 건짐을 받았다. 애굽은 세상(죄)를 상징한다. 바로는 사탄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세상의 사탄으로부터 건져오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셨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물 없는 곳은 광야를 의미한다. 하나님 말씀이 없는 곳이다. 이방인들은 하나님 말씀이 없는 곳이다. 귀신들이 물(말씀)없는 곳(이...

두 맹인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고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셨으나 그들이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퍼뜨리니라 (마태복음 9장 27-31절) 불쌍한 두 맹인이 예수님을 따라오며 소리를 질렀다. 예수님이 병자를 고쳐주신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는 것이 메시아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도 그냥 집으로 들어가셨다. 그런데도 이들이 집안까지 들어왔다.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내가 능히 이 일을 할 줄을 믿느냐』고 말했다. 그들이 『주여 그러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너희 믿음대로 되라고 하시니 그 눈들이 밝아진 것이다. 여기서도 많은 사람들이『믿음대로 된다』고 하면서 사람의 믿음을 강조한다. 병고침을 받는 믿음이 구원을 얻는 믿음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와야만 한다. 이것은 회개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회개하지 않고 단순히 병을 고치겠다는 믿음으로 와서 병의 고침을 받고 갈 수 있지만 그것은 구원과 직결된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께 회개하는 자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믿음대로 되라고 하시자 정말 눈이 뜨여졌다. 그런데 예수님의 엄히 경고하셨다.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이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온 땅에 퍼뜨렸다. 먼저 왜 고침 받은 것을 알리지 말라고 하셨는가? 그 이유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의 성취다. 이사야의 42장 7절의 예언대로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나...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마태복음 9장 14-17절)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구약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대표적인 경건 중의 하나가 금식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대속죄일에 온 백성으로 금식하도록 명하셨다. 그 날에는 제사장도 세마포 옷을 입어야 했으며, 향을 피우고 피를 뿌리며 하나님께 나아갔다. 더불어 온 백성도 먹기를 그치고 함께 나아가야 했다. 또 어떤 일로 하나님의 진노가 느껴질 때면 그들은 온 종일 금식하며 울어야 했다. 자기 옷을 찢고 재를 뿌리며 먹기를 그치고 울어야 했다. 이것이 구약시대의 금식의 모습이다. 구약의 질서에 따라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는 것은 그들의 경건모습이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은『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라고 묻고 있다. 주님은 자신을 혼인집의 신랑으로, 제자들을 혼인집의 손님으로 말하고 있다. 그리고 신랑이신 예수님 자신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에 기쁨의 혼인잔치가 시작된 것으로 말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선언하시므로 금식의 문제에 대해 답하고 계시다. 지금도 구약적인 의미로 금식을 가르치고, 마치 그것이 의의 한 기준이나 되는 것처럼 요구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복음으로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맞지도 않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새로운 천을 잘라서 낡은 구멍난 옷에 붙여 짜집기 한 것과 같은 부조화스러운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다. 요한의 제자들의 틀에 매인 금식요구에 대하...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9장 9-13절)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세리와 죄인들은 모든 사람들로 부터 정죄받는 자들이다. 예수님이 세리인 마태를 부르시고, 그의 집에서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께 나아온 것이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라고 예수님을 비난하였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 불만이었다. 바리새인들은 메시야가 이스라엘에 오면 먼저 자기들에게 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예수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보고 불만이 되었다. 자기들은 죄인들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잘 지켜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로운 자라 인정받는다 라고 생각하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이『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예수님은 이와 같은 말씀을 누가복음 15장 1-7절에서 한마리 잃어버린 양을 찾는 비유로 말씀하셨다. 아흔아홉 마리의 양은 이스라엘이다. 이 양들을 두고, 예수님은 잃어버린 양 한마리(죄인들)를 찾으러 다니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잃어버린 어린양의 비유를 하신 배경은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불만이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은 의인들인데, 메시야가 오면 당연히 자기들에게 올 것이라고 확신했는데, 메시...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하시니라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8장 18-22절) 두 사람이 등장한다. 한 청년은 주님을 어디든지 따르겠으며, 주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간청한다. 그는 서기관이였다. 그러나 주님은 그에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며 정중하게 거절한다. 반면 제자라고 표현된 다른 사람은 집에 부친상을 당한 급한 상황이 발생했다. 그래서 이 당연하고도 급한 부친상을 치르고 와서 다시 따르겠다고 시간을 줄 것을 요청한다. 그런데 이번에는『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라는 말씀으로 부친상을 치를 것을 허락지 않고 계속 주님을 따를 것을 명하신다. 이 두 사람에겐 어떤 차이가 있었던 것일까? 먼저 주님은 그들의 동기 즉 중심을 보고 계신다. 첫 번째의 사람은 서기관이라고 신분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머리둘 곳』이라는 이유를 들어 거절하고 있다. 아마도 이 서기관은 그 동안의 주님께서 행하신 이적과 기타의 행적들을 보고 듣고 알았을 것이며, 그 마음에 계산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서기관이 생각하기를 이 사람을 따르면 이후에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자신의 정치 사회 종교적 위치를 고려하여 주님께 따르겠다고 요청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예수님께서『머리 둘 곳』이라는 이유를 들어 거절하고 계신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한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그 청년을 자신을 위해서 주님을 따르겠다고 한 것이지 주님을 위해서 따르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