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공모하니

사도행전 23장 16-19절『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내에 들어가 바울에게 알린지라 바울이 한 백부장을 청하여 이르되 이 청년을 천부장에게로 인도하라 그에게 무슨 할 말이 있다 하니 천부장에게로 데리고 가서 이르되 죄수 바울이 나를 불러 이 청년이 당신께 할 말이 있다 하여 데리고 가기를 청하더이다 하매 천부장이 그의 손을 잡고 물러가서 조용히 묻되 내게 할 말이 무엇이냐』  바울에게 친척이 있음을 언급한 유일한 내용이다. 바울은 생질로부터 자신을 해치려는 자들의 암살 계획을 알게 되었다. 바울은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의 계획이 구체적인 것을 듣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그래서 백부장에게 천부장을 만나게 해달라고 청했고, 천부장에게 자신을 살해하기로 결심한 유대인들의 계획을 생질을 통해 알렸다. 여기에서 동사의 대부분은 아오리스트 시제를 사용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순간적으로 인도하심을 알 수 있다.  23장 20-21절『대답하되 유대인들이 공모하기를 그들이 바울에 대하여 더 자세한 것을 묻기 위함이라 하고 내일 그를 데리고 공회로 내려오기를 당신께 청하자 하였으니 당신은 그들의 청함을 따르지 마옵소서 그들 중에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자 사십여 명이 그를 죽이려고 숨어서 지금 다 준비하고 당신의 허락만 기다리나이다 하니』천부장은 바울의 생질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하루 전 날 있었던 분쟁을 목격한 천부장은 유대인들이 능히 그러고도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23장 22-25절『이에 천부장이 청년을 보내며 경계하되 이 일을 내게 알렸다고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고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 또 이 아래와 같이 편지하니 일렀으되』  천부장은 밤 제 삼시에 백부장 둘을 불렀다. 밤 삼...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사도행전 23장 1절『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아가데:기본형은 아가도스))에 양심(쉬네이데세이)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아가데는 선하다라는 의미다. 선이라는 개념은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쉬네이데세이는 쉬(함께)와 에이도(알다)의 합성어이다. 양심은 하나님과 함께 아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았다(임마누엘)는 것이다. 섬기다 라는 말은 헬라어 성경에는 없는 표현이다.  23장 2-3절『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명하니 바울이 이르되(에이페넨) 회칠한 담(토이케 케코니아메네)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바울이 말하는 것이 신성모독처럼 들리므로 대제사장(사두개인)이 바울을 쳐라 라고 말한 것이다. 사두개파는 상전의 제사를 담당하고, 바리새파는 율법을 담당하고 있었다. 토이케 케코니아메네는 더러운 곳을 감추기 위해 회칠을 한 담이라는 말이다. 겉은 하나님 사람처럼 보이지만 속은 썩은 자라고 하는 것이다. 에이페넨은 말하다 라는 의미로 아오리스트 시제로, 순간 호 로고스가 바울의 입을 통해 말하는 것이다.  23장 4-5절『곁에 선 사람들이 말하되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 바울이 이르되(에이판) 형제들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 줄 알지 못하였노라 기록하였으되 너의 백성의 관리를 비방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더라』여기서 에이판은 미완료시제로서 바울이 자신의 생각대로 말을 하는 것이다. 그가 대제사장이라는 것을 몰랐는데, 미안하다고 하는 말이다.  23장 6절『바울이 그 중 일부는 사두개인이요 다른 일부는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이르되(에크라젠)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바울이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이 섞여 있는...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사도행전 22장 16절『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에피칼레사메노스)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에피칼레사메노스는 세례와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과 연결된다. 다시 번역하면『세례를 받고 주의 이름(오노마 아우토:호 로고스)을 불러 죄를 씻으라』는 것이다. 죄를 씻는 의미는 죄가 제거되는 것이다. 죄는 세상죄를 짓는 것도 좁은 의미에서 죄이지만, 본질적인 의미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을 의미한다. 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은 반드시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는 것이다. 주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입으로 단순히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을 통하여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던 마음의 회개의 탄식이 나오는 것이다. 바울은 그 동안의 삶에서 자신의 주인된 삶을 돌아보게 된 것이다.  세례는 형식적으로는 물 세례로서 죄를 씻는다. 동시에 마음에서 할례를 받는 것이다. 그래서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을 믿는 것이다. 이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세례이다. 여기에서 성령은 구원의 성령으로 사람의 속사람을 변화시킨다. 그리고 사역자로서 나아갈 때 권능을 주기 위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 성령세례를 받게 되면 권능이 주어져서 각종 표적과 기사가 뒤따르게 되는 것이다. 이 때의 성령은 돕는 성령(보혜사)으로서 위에서 역사하신다.  22장 17-20절『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내가 말하기를 주님 내가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그들도 아나이다』 바울은 다시 주님의 임재 가운데서 대화를 하는데, 이번에는 예루살렘을 떠나 이방인에게 가라는 것이다. 심지어는 그들이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지 않을 것을 말씀하셨다. 주님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사도행전 22장 1-3절『부형들아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그들이 그가 히브리 말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한지라 이어 이르되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사도바울은 예루살렘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변론했다. 바울은 디아스포라였지만 히브리어를 말했다. 그의 첫 변론에서 바울은 분노한 예루살렘의 군중들 앞에 서 있다. 이는 마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외쳤던 군중들을 연상케 한다. 바울의 앞에 있는 군중들은 모두 바울을 혐오하며 미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궁중 앞에 변론하기 시작했다. 바울은 군중 앞에서 그동안 유대인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자신은 모세의 율법을 어길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을 강조하며 이야기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내용으로 자신을 변론하고 있다.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 앞에 『나는 죄가 없으니 풀어달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세의 율법에 관해 누구보다 열심이던 자신은 그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그들을 감옥에 가두며 죽이기까지 하였던 자신의 지난 과오를 이야기한다. 가말리엘 문하라는 것은 가말리엘 이라는 학자의 제자였다는 말이다.  22장 4-5절『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군중은 모세의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입장에서 바울을 죽이려 했다. 그들 앞에 바울은 자신도 이전에 군중 속에 한 사람이라 소개하며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22장 6-8절『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

사도행전 21장 15-16절『이 여러 날 후에 여장을 꾸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새 가이사랴의 몇 제자가 함께 가며 한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가니 이는 우리가 그의 집에 머물려 함이라』 바울은 성령께서 순간 순간 하시는 말씀을 따라 행동하는 것을 보여준다.  21장 17-18절『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사도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들과 마주앉았다. 한쪽에는 이방인을 위한 사도 바울과 그 일행이 자리를 잡았고, 맞은편에는 유대인을 위한 사도 야고보와 예루살렘교회 장로들이 자리를 잡았다. 양측의 만남은 감동의 시간이었다.  21장 19-20절『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하니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  사도 바울과 그 일행은 이방 가운데에서 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했고, 사도 야고보와 장로들은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그들을 영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러나 그들을 둘러싸고 기저에 미묘한 긴장이 도사리고 있음을 저자 누가는 피하지 않고 묘사하고 있다.  21장 21-24절『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그들이 들었도다 그러면 어찌할꼬 그들이 필연 그대가 온 것을 들으리니 우리가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예루살렘 교회 교인들 사이에 사도 바울에 관한 괴소문이 돌고 있었다. 바울이 이방 곳...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사도행전 21장 1절『우리가 그들을 작별하고 배를 타고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항해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의 짐을 풀려 함이러라』  바울은 예루살렘에 결박과 죽음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기어코 올라가고 있었다.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한 것이라면 결박과 죽음마저도 받아들이겠다는 바울의 마음이었다. 바울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결박과 죽음으로 위협하는 자였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자신이 핍박했던 그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과 죽음의 길을 스스로, 자발적으로 걷고 있는 것이다. 21장 4절『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디아 토 프뉴마토스)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엘레곤)』 디아 토 프뉴마토스는『성령을 통해서』라는 말이다. 엘레곤은 미완료 과거시제이다. 성령을 통해서 라는 말은 아오리스트 시제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각으로 성령이 하시는 말인 것처럼 여겨져서 한 말이 된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권했는데, 바울은 권함을 받지 않았다. 그들의 권함을 바울이 받지 않자 14절에서『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바울이 사도행전 20장 23절에서『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여기에서 성령은 토 프뉴마(Holy Spirit)이다. 바울이 말하기를『나는 성령의 매임으로 예루살렘으로 가지만, 도시를 옮길 때마다 성령께서 말씀해 주신다』는 것이다.『예루살렘에 가면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고 말해준다는 것이다. 21장 5-6절『이 여러 날을 지낸 후 우리가 떠나갈새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덴테스 타 고나타) 기도하고(프로슈카메노이) 서로 작별한 ...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사도행전 20장 17절『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밀레도까지 불렀고, 바울의 전갈을 받은 성도들은 한걸음에 밀레도로 달려왔다. 밀레도까지 찾아온 성도들에게 바울은 자신이 얼마나 혼신의 힘을 다해 사역했는지를 설교했다. 바울은 자신이 가려고 하는 예루살렘에 환난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는 것이 상식적인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바울의 의지는 단호했다. 주께서 주신 사명을 마치기까지 자신의 생명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겠다는 이다. 환난이 있을지라도 예루살렘에 들어가겠다는 표현이다. 그리고 바울은 에베소교회 장로들에게도 자신에게 닥칠 동일한 환난이 찾아올 것이기에 자신을 본받아 흔들리지 말고 계속해서 교회를 돌보는 일에 전념해 주기를 권면했다.  20장 21절『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구원의 조건은 두가지다.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다. 이 두가지는 연장 선상에 있다. 회개하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가 된다. 사람이『예수믿기로 결심하면 구원받는다』라고 말하는 것에는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이 빠져있는 것이다. 회개가 복음의 시작이다.  사도행전 17장 30절에서 바울이 아테네에서『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라고 말했다. 사도행전 26장 20절은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는 과정에서 말한 것이다. 아그립바 왕에게 말한 내용이다.『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