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사도행전 20장 17절『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밀레도까지 불렀고, 바울의 전갈을 받은 성도들은 한걸음에 밀레도로 달려왔다. 밀레도까지 찾아온 성도들에게 바울은 자신이 얼마나 혼신의 힘을 다해 사역했는지를 설교했다. 바울은 자신이 가려고 하는 예루살렘에 환난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는 것이 상식적인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바울의 의지는 단호했다. 주께서 주신 사명을 마치기까지 자신의 생명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겠다는 이다. 환난이 있을지라도 예루살렘에 들어가겠다는 표현이다. 그리고 바울은 에베소교회 장로들에게도 자신에게 닥칠 동일한 환난이 찾아올 것이기에 자신을 본받아 흔들리지 말고 계속해서 교회를 돌보는 일에 전념해 주기를 권면했다.
20장 21절『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구원의 조건은 두가지다.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다. 이 두가지는 연장 선상에 있다. 회개하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가 된다. 사람이『예수믿기로 결심하면 구원받는다』라고 말하는 것에는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이 빠져있는 것이다. 회개가 복음의 시작이다.
사도행전 17장 30절에서 바울이 아테네에서『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라고 말했다. 사도행전 26장 20절은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는 과정에서 말한 것이다. 아그립바 왕에게 말한 내용이다.『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나는 회개했는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회개하지 않으면『나는 너를 모른다』라고 말할 것이다.
사도행전 16장 30-32절에서 바울이 빌립보 간수와 나누는 대화 내용이다.『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사도바울의 서신은 거듭난 자들이 모인 교회에 보내는 서신이었다. 그래서 회개하라는 말이 많지 않다. 이 말씀은 믿지않는 사람들이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빌립보 간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두려워떨었다고 했다. 회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하나님 믿으면 좋아요, 행복해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회개가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죄인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다면, 회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해야만 한다.
20장 22-23절『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들맆세이스)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결박은 22절의 성령에 매여있는 것을 의미하며, 환란이라고 번역된 들맆세이스는 성령이 예루살렘으로 가라고 떠미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으로 가고 싶지 않았으나 성령이 가라고 하시는 것이다.
20장 24-25절『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았다. 그 이유는 현재적 부활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항상 호 로고스인 주님과 함께 함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성령의 능력으로 그렇게 믿음이 강하게 된 것이다.
20장 26절『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하이마토스)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모든 사람들은 복음을 받아드리지 않은 자를 대상으로 말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하이마토스는 생명을 의미한다. 바울과 그 말을 듣는 대상과 비교하는 말이다.
20장 27-28절『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자기의 생각으로 사역을 하지 말고 성령을 따라 사역을 하라는 것이다. 자기의 생각은 율법주의 인본주의를 따르는 것이다.
20장 29-30절『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디에스트람메나)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사역자들 중에 양을 잡아먹는 이리와 같은 자가 있을 것을 예언하는 것이다. 그런 자들은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이 교회에 들어와 기독교인이라고 말을 하면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말을 하는 그런 잘못된 신앙을 가진 자들을 의미한다. 디에스트람메나는 어그러진 말로서 다른 복음 즉 복음도 받아드리고 율법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사역자가 복음을 말하면서 예수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만, 예수가 주인이 아니라, 사역자가 주인이 되어 신자들을 통제하고 다스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심령 속의 호 로고스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신자들이 심령 속에서 하나님 음성을 들었다거나 성령 체험을 말하면 아주 싫어했다. 유대교를 뿌리로 둔 자들은 이렇게 호 로고스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종교화된 지도자인 것이다. 바울이 이렇게 되는 것을 염려했다.
20장 31-32절『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토 로고 테스 카리토스)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토 로고 테스 카리토스는 은혜의 호 로고스이다. 호 로고스를 증거하라는 것이다. 바울은 심령 속의 호 로고스를 증거해 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다.
20장 33절『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바울은 선교를 위해 스스로 돈을 벌어서 자비량으로 했다. 그래서 돈에 대해서 자유로웠다. 돈을 보면 탐욕이 생긴다. 많은 교역자들이 돈을 탐내고 그리고 탐욕에 이끌려 교회를 망치는 것을 볼 수 있다.
20장 36-38절『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아마도 그들은 다시 바울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작별을 아쉬워 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종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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