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마태복음 10장 24-31절)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구원의 시작은 회개인데, 회개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된다. 여기에서 영혼이라고 했지만 영과 혼은 서로 다른 존재다. 영어로 영은 spirit이고 혼은 soul이다. 10장 28절에서 말하는 영혼은 soul을 의미하지만 우리 말 성경에서 영혼으로 번역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그리스 헬라문화는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라고 하는데, 그 정신은 혼을 말한다. 이들은 건전한 육체가 먼저다. 육체가 건강해야만 그 안에 정신도 건강해진다고 생각했다. 기독교와 배치된다.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거나 믿는다고 하더라도 가볍게 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만 구원에 다가갈 수 있다. 죄를 벗어나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두려워 해야만 한다. 출애굽기 1장 17절에서 바로왕이 히브리 산파들에게『사내 아이를 낳으면 죽여라』라고 했지만,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서 바로왕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순종이다. 요한계시록 13장 14절에서 사단이 자기의 이미지 우상을 만들어 내는데, 이미지가 우상이다. 오늘날 컴퓨터에서 주로 아이콘으로 등장한다. 아이콘이 신약성경을 기록한 헬라어인데, 영어로는 이미지다. 사단은 우상을 자기 이미지에 맞는 것으로 세운다. 인간은 자기 이미지를 남겨두려고 한다. 우상을 만들려고 한다. 그래서 주님은『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하셨다. 형상이 이미지(아이콘)다. 주님이 다시 오시기 전에 사단이 자기 형상을 만들어서 거기에 다 경배하고 절하라고 할 것이다.『절하라』고 하는 것은 영적인 문제다. 그 다음에는 자기 이름이나 자기 이름이 있는 숫자나 그 표 세가지 중 하나를 오른손과 이마에 집어 넣으라고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매매를 못하게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런데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만 그것을 이긴다고 했다. 구원의 시작은 몸은 죽여도 혼을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죽인 후에 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그 분 만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다니엘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자 사람들이 음모를 꾸몄다. 바벨론 신의 형상을 만들어서 절하라고 했다. 그들은 다니엘이 기도를 포기하지 않을 것을 알았다. 다니엘을 죽이는 방법은 이 방법 외에는 없음을 그들은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다니엘의 믿음은 적들에게 먼저 인정받게 된다. 구원은 핍박이 없다고 쉬운 것도 아니고, 핍박이 있다고 어려운 것도 아니다. 구원은 동일한 순종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오늘날 구원은 너무 쉽게 보인다.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식으로 성경의 몇 귀절만 택하여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도바울 서신에서는 구원이 복잡해짐을 알게된다. 히브리서 이후는 더욱 구원이 어려워지기 시작한다.『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한다. 계시록에 가면 정말 구원이 어렵다. 짐승에게 절하면 하나님이 불못에 영원히 빠뜨린다고 했다. 오른손과 이마에 짐승의 표를 받으면 불과 유황으로 타는 연못에 빠뜨린다고 표현했다. 받지 않으면 짐승이 죽인다고 했다. 구원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같은 순종으로 시작한다. 구원은 환경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가 되어야만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만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는 것이다. 주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주님의 주권을 인정한다. 마태복음 10장 29절에서『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참새 가격은 인간들이 정하는 것이지만 그 참새의 생명은 주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말씀이다. 10장 30절에서『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오직 하나님 만을 두려워하고 다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다.『다른 것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린다』고 잠언에서 말했다. 그런데 오늘날은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셨는데,『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다』라는 것을 부각시킨다. 많은 교회에서 인간을 우상으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지어졌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인간은 피조물에 불과하다.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해야만 한다. 참새 이야기를 한 후에 마태복음10장 32-33절에서『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라고 했다. 하나님의 권능을 인정하는 자만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할 것이다. 구원은 우리가 예수님을 시인한다고 구원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시인해야만 구원받는다. 그래서 오직 예수 안에 들어있는 자가 구원받게 된다. 누가복음 13장 이전에는 예수님의 수많은 기적이 소개된다.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에 감동을 받았다. 그런데도『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이렿게 묻는다.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죽어야 할 만큼 큰 죄인이다. 십자가의 죽음과 연합되지 않으면 죄가 그대로 있다는 뜻이다. 죄를 대속하는 십자가의 죽음을 믿지만, 십자가의 죽음을 그저 바라보는 믿음은 나의 죽음과 결부되지 못한다.『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라』고 하셨다. 마태복음에는『그 문이 좁고 협착해서 들어가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찾는 자도 적다』고 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회개하는 자만 이 문을 찾게된다. 회개하지 않은 자는 좁고 어렵기 때문에 이 문을 싫어한다. 문이 한번 닫히면 다시는 열리지 않는다. 사람들은『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라고 할 것이다. 이것은 종교행위를 하고 있는 것을 지적한다. 평생 예배한다고 반드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예수님과 같이 생활한 제자들도 되지 않았다. 구원이 쉽다고 가르치는 자들은 거짓 선지자들일 것이다. 구원이 쉬워보이는 길은 멸망 길일 가능성이 높다. 성경에는『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고 기록되어 있다. 주님이 원하셔도, 사람들 스스로 회개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이 문장 중『어디에서』라는 말은 거듭난 자에게 해당하는 단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예수님이 모르는 사람이 된다. 거듭난다는 것은 부모로부터 받은 생명이 아니라는 뜻이다. 노력과 교육의 문제가 아니다. 형질이 바뀌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이삭을 얻은 것처럼 없던 생명이 생겨야만 되는 것이다. 그 해 이름이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뀐다. 그 이름의 뜻은 열국의 아비라는 말이다.『거듭나면 수많은 사람들을 살려내는 자가 된다』는 뜻이다. 남을 살리지 못하는 생명은 자기도 구원받는 생명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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