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마태복음 10장 5-10절)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셨다.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다. 예수님께서 주신 이 권능이 무엇인가? 예수의 이름을 의지하는 것이 권능이다. 예수의 이름을 아무나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택하신 자가 부를 수 있다. 부르심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하심을 입은 자는 적다라고 성경은 말한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보내시면서 『이방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 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했다. 하나님의 언약의 일차적인 대상은 이스라엘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전체가 지금 잃어버린 양의 상태였다. 예수님께서 병든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하는 것을 본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예수님께로 돌이키지를 않았다. 제자들은 가면서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전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천국복음을 전하는데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쫒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했다. 제자들이 이러한 권능을 행한 것은 자기들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권능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권능을 행한 것은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거 한 것이다. 제자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이 당시의 유대인들이 다른 사람의 집에 가면 그 집을 위하여 축복을 했다. 평안은 헬라어로 『에이레네라』는 말이다. 히브리어로는 『샬롬』이라고 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서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면 샬롬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온갖 재앙이 다 일어난다. 이러한 과정에서 샬롬 곧 평안은 이들에게 복음의 소식이다. 그런데 이 평안을 제자들이 가는 곳마다 전하라고 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거저 받은 것을 거저 주라는 가장 중요한 내용이 바로 평안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 관계가 깨어졌기에 하나님과 평안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나님과 자기 백성사이에 평안을 주시는 화목제물이 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이 평안을 미리 전하는 것이다. 이 평안을 맞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집에 평안이 임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집에 평안이 임하는 것은 하나님과 죄인사이에 화목이 일어나는 것이다. 화목은 하나님과 죄인사이에, 그리고 나아가 사람들 사이에 이런 화목이 일어난다. 곧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는 영적인 의미로 죽어있는 영을 살리는 일이다. 요한복음 13장 34-35절『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인간들을 향한 하나님의 공의 사랑이시다. 하나님의 공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고,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모든 회개하는 자들에게 은혜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사랑은 십자가의 죽음이다. 이 보다 더 위대한 사랑은 없을 것이다. 십자가의 사랑이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들어오기 위해서는 예수의 이름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는 믿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는 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기 위해서는 하나님 말씀 앞에서 자기를 부인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령의 능력으로 아버지와 아들과 믿음을 가진 자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떠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육의 몸이 죽고, 영의 몸으로 거듭나서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옛사람이 죽은 자는 하나님께로 돌아감을 알게된다. 육신이 현재 이 세상에 살고 있으므로 때로는 환란 가운데 있게도 되지만, 육적 몸(옛사람)은 날마다 죽었음을 기억하고 살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내속에 계시므로 영은 살아있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영이 살아있으므로 또한 하나님은 다른 영을 살리라고 하시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는 자가 성령께서 인치시는 것이다. 잃어버린 양들을 찾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시다. 잃어버린 양들을 찾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다.『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형제를 사랑하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간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양들을 찾아서 오라는 것이다 내 이웃의 죽어있는 영들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면, 하나님이 그 속에 있는 증거라는 것이다. 형제는 하나님 나라에서 함께 있던 영들을 말한다. 육적인 형제도 사랑해야 하지만, 하나님은 형제인 영을 살리러 하시는 것이다.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마태복음 10장 14-15절) 그런데 이 평안을 들고 오는 자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로 듣지 않으면 그 집이나 성에서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고 했다.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거나 옷자락을 털어 버리는 행위는 심판을 보여주는 행위다. 예수님의 거저 받은 평안을 받지 않으면 그것이 심판인데 이 심판이 얼마나 두려운지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고 한다. 이러한 평안의 소식을 거절한 1차 도시가 예루살렘이였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의 향하여 탄식하신 이유는 평화의 소식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거절하였으며, 또한 이방인을 배척하는 하나님의 선민사상을 가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거절한 예루살렘이 소돔과 고모라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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