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의 전통

장로의 전통     마가복음 7장 5-9절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갈릴리 지방에 계시는 예수님께 예루살렘에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예수님을 비난할 사항을 가지고 왔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유대인의 정결의식인 손씻기를 소홀히 한 까닭이다. 그들은이를 "장로들의 전통"이라 하였다.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라 종교적 지도자들의 가르침을 철저히 지키지 않았음을 비난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사항이 아니니 죄를 범했다고 하는 것이 타당하지는 않은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들이 지키는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나님께 불경한 것으로 정죄하고자 했다. " 장로들의 전통"은 바리새인들이 율법에 대한 복종에 열중하여 전통적인 관습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그것은 성경의 계명 주위에 속박이 되고 장벽이 되었다. 그 개념은 성경적 계명으로부터 신실한 유대인들이 넘어지는 것을 방어하는 장벽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출애굽기 20장8절에서 11절 까지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

유다의 배반

유다의 배반   마가복음  14 장  10-11 절『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그들이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까 하고 그 기회를 찾더라』 가롯유다가 제사장으로부터 은 삼십을 받고 예수님을 팔았다 .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지만 ,  예수님을 배반하고 팔았다 .  왜 예수님의 제자인 가롯유다가 예수님을 팔았는가 ? 가롯유다는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으로 선택되었지만 ,  다른 제자들과는 달리 ,  예수님을 향해 주 라는 칭호를 사용하지 않았고 ,  그 대신 예수님을 랍비 라고 부르며 선생 이상으로는 인정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  따라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 요한복음  12 장  5-6 절에서 볼 수 있듯이 ,  유다는 탐욕에 사로 잡혀서 예수님 뿐만 아니라 동료 제자들의 신뢰를 배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  유다는 단지 예수님에게 많은 추종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  그 단체를 위해 거둬지는 모금으로부터 이익을 취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기를 원했을 수도 있다 .  유다가 그 그룹을 위한 돈 가방을 맡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의 관심이 돈에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 또한 유다는 그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  메시아가 로마의 식민지배를 전복하고 이스라엘 국가를 다스릴 권력을 행사할 지위를 취할 것으로 믿었다 .  유다는 새로운 지배 정치 세력으로 부상할 그분과의 연관을 통하여 이익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따랐을 수도 있다 .  의심할 여지없이 그는 혁명 이후 자신이 지배 엘리트 중 한 사람이 될 것을 기대했다 .  유다가 배반할 무렵에 예수께서는 로마에 대한 반란을 시작하지 않고 오히려 죽을 것을 계획하셨다는 것...

칠십인을 보내심

칠십인을 보내심   누가복음  10 장  1-7 절『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 일꾼이 적다는 것은 임마누엘의 믿음이 된 자가 적다는 것이다 .  임마누엘의 믿음이 된 자가 바로 현재적 부활을 믿는 성도인 것이다 .  추수는 바로 부활의 열매를 거두는 것이다 .  더 많은 참된 성도가 이 땅에 나타나서 추수를 계속해야 한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 양이 이리 가운데 가면 그 결과는 죽음이다 .  제자들이 양의 모습으로 이리 가운데 들어가는 것은 죽으러 가는 것이다 .  이리는 예수를 배척한다기 보다 ,  교회 안에서 현재적 부활을 외치는 성도를 배척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  현재적 부활을 믿지 않는 신도들이 바로 이리들이다 .  회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이 심판하시지만 ,  회개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부활의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이다 .  그래서 이 같은 권능의 말씀을 가지고 이리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  마태복음  10 장  16 절에서는 제자들이 이리가운데 전도를 할 때 담대하게 전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지혜롭게 되라고 말씀하셨다 .  현재적 십자가의 복음과 현재적 부활은 권...

씨뿌리는 비유

씨뿌리는 비유   마가복음 4장 3-9절『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 이 비유는 천국의 비밀을 말하고 있다. 마태복음 13장 11절에서 『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여기서 너희는 제자들이다. 오직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만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예수를 믿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에 제자가 된다. 왜 예수님이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시는가? 『자기』가 바로 영을 죽이는 육의 옛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영을 살리기 위함이었다. 그 영은 하나님 나라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던 자들이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 있던 자들이 그리스도로부터 이탈되어, 이 세상에 갇힌 것이다. 성경은 에베소서 5장 31-32절에서『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교회는 성도의 영을 말한다.  영이 이 세상의 물질인 흙에 갇히므로서 죽어버리고, 인간이 된 생명체는 혼적인 존재가 된 것이다.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을 말한다. 천국의 비밀을 알기 위해서는 씨뿌리는 자가 누구이며, 씨가 누구인지, 밭(땅)이 무엇인지 알아야만 한다. 씨뿌리는 자는 하나님이시며, 씨는 하나님 말씀이다. 밭은 사람...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누가복음 13장 23-27절)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누가복음 13장 이전에는 예수님의 수많은 기적이 소개된다.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에 감동을 받았다. 그런데도『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이렿게 묻는다.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죽어야 할 만큼 큰 죄인이다. 십자가의 죽음과 연합되지 않으면 죄가 그대로 있다는 뜻이다. 죄를 대속하는 십자가의 죽음을 믿지만, 십자가의 죽음을 그저 바라보는 믿음은 나의 죽음과 결부되지 못한다.『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라』고 하셨다. 마태복음에는『그 문이 좁고 협착해서 들어가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찾는 자도 적다』고 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회개하는 자만 이 문을 찾게된다. 회개하지 않은 자는 좁고 어렵기 때문에 이 문을 싫어한다.  문이 한번 닫히면 다시는 열리지 않는다. 사람들은『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라고 할 것이다. 이것은 종교행위를 하고 있는 것을 지적한다. 평생 예배한다고 반드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구원이 쉽다고 가르치는 자들은 거짓 선지자들일 것이다. 구원이 쉬워보이는 길은 멸망 길일 가능성이 높다. 성경에는『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고 기록되어 있다. 주님이 원하셔도, 사람들 스스로 회개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나는...

탕자의 비유

탕자의 비유 누가복음 15장 25-32절『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예수님이 탕자의 비유를 하게 된 이유는 누가복음 15장 1절에서『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세리와 죄인들은 모든 사람들로 부터 정죄받는 자들이다. 그들이 예수께 나아온 것이다. 그리고 15장 2절에서『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예수님을 비난한 것이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비난하므로 예수님이 3-4절의 말씀을 하게된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찾으면 이웃과 친구를 불러 잔치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7절에서『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 보다 더하리라』여기에는 회개에 대해서 언급된다. 그 다음에 잃은 드라크마를 찾은 비유가 8-10절에서 나오는데 밖에서 잃은 것이 아니라 집 안에서 잃어버렸다는 말이다. 찾았더니『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마가복음 3장 13-19절『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나인 시몬이며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 열둘이라는 의미는 히브리어 글자에서 찾을 수 있다. 열(요오드: י)과 둘(베드: בּּ)이다. 요오드는 손이라는 의미이고, 베드는 하나님의 집(성전)을 의미한다.『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에포이에센 ἐποίησεν)』산은 영적인 의미로 하늘 성전을 의미한다. “자기가 원하시는 자”는 예수님이 일방적으로 택하는 자이다. 세우셨다는 에포이에센은 창세기 1장 1절에서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칠십인역 성경에 등장한다.  ְּרֵאשִׁ֖ית בָּרָ֣א אֱלֹהִ֑ים 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 ἐν ἀρχῇ ἐποίησεν ὁ θεὸς τὸν οὐρανὸν καὶ τὴν γῆν 히브리어 바라( בָּרָ֣א )는 창조하다라는 의미를 갖는데, 칠십인역 헬라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ἐποίησεν(에포이에센)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세우신 것은 하나님께서 성전에서 자신의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드신 것을 나타내주신다. 무엇인가가 바로 제자들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예정하셨는바, 때가 되어 세상에 육신으로 태어나셨다. 그 이유는 세상에서 감추어진 에덴동산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세상에서 감추어진 에덴동산은 다름아닌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로 인해 물질세계와 흙으로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