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가복음 4장
12절『이는 저희가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시고』12절 앞에는 네가지 밭의
비유가 있다. 이 중 좋은 밭만 구원받는다. 좋은 밭은 인내로
결실한다. 회개한 자는 변하지 않는 인내를 가진다. 씨가
길가에 뿌려진 밭은 새들(마귀)이 쪼아 먹는 밭이다.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받아드리지 못하는 이유는 심리적인 이유가 아니라 사단의 지배 하에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흙은 얇은 돌밭인데, 겉으로는 믿음이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세상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세번째는 가시떨기 밭이다. 이 생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으로 말씀이 자라지 못하는 밭이다.
예수님은『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제자들에게는 허락되었지만 외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이 마가복음 4장
12절과 같이 하신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이 부활을 외인들에게는
보여주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을 따랐던 소수의 자에게만 부활을 보여주신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부활을 믿으며 부활을 전하며,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믿고 생명이 넘치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모습이다. 그러나 주님이 소수에게만 보여준 것을 생각해
보면 부활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려는 것인지,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위한 것인지 구분이 안간다. 교회는 예수의 십자가 죽으심과 연합되는 것 뿐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부활의 증거와 원리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하지만『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끝을 맺는다.
바울은 부활 생명으로 인해서『나는 날마다 살리라』가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말했다.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위한 부활이 되어서는 안된다. 사람들에게 좋게 보이려고 성령의 표적을 구하는 교회가 되면 안된다. 산상수훈의
마지막 부분에『좋은 열매 맺지 않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그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라고 했다. 세례요한이
말했는 것을 예수님이 그대로 인용하여 말씀하셨다.
사람이 스스로 구원받았는지 여부에 대해서, 생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열매로 알 뿐이다. 그날에 많은 사람들이
와서『주여 주여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능력을 행하고 귀신을 쫒아내었나이다』라고 말 할 거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열매로 착각하고 있다. 이 일들은 사람을 통하여 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명과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단지 표적일 뿐이다. 예수님은『그 날에 내가 말하기를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를 떠나라』라고 하신 것이다. 회개하지 않고 열매도 없으면서 예수님 이름으로 행한 것 모두가 불법이라고 하셨다.
기도 중 예언을 받았다거나 방언을 했다거나 하는 일들이 구원을 확증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의 기회일 뿐 구원은 아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즉 묶은 밭을 기경하지 않으면, 보기는 보아도 주님이
알지 못하게 하신다. 부활하셨어도 부활을 보여주지 않으신다. 주님은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보여주지 않으신다. 그들에게는 부활의 능력이 없다. 부활의 능력은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하는 자에게만 나타나는 것이다. 내가
주님이 보시기에 진노의 자녀라는 것을 깨닫고 돌이켜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하는 자에게만 부활의 능력이 나타난다.
고린도전서 13장(사랑의 장)에『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씀을 하고 있다. 사랑은 외적인
행동이 아니라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한 자만 하나님의 사랑을 행할 수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왜 죽으셨는지
남에게 설명하고 찬송할지라도,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앵무새처럼 하는 것이다. 뿌리가 죽은 나무처럼 열매가 없는 삶이다. 도끼에 찍혀 불에 던져진다.
아브람도 하나님을 믿었지만, 25년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 아브람은 99세가 될 때까지
의라 칭함을 받지 못했다. 예배 중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자기가 쪼개놓은 제물을 태우는 광경을 보게된다. 그래도 하나님은 아브람을 의롭다 하지
않았다. 여전히 아브람 자기가 주인인 것이다. 그 증거로
이스마엘을 낳는다. 그러나 백세가 되어 죽은 자(같이) 되었을 때, 자녀를 주리라는 믿음을 의심하지 않았으므로 의라 칭함을
받았다. 마찬가지로 교회에 수십 년을 다녀도,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그 믿음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 없는 육으로부터 나온 믿음일 뿐이다.
주님은 말씀하신다.『너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라고 했다. 한 가지가 무엇이 되던지, 주님이
주인이 되어야 알 수 있다.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하여, 전부가
주님의 것이 될 때 100%가 된다. 평생 살면서 99%의 좋은 신앙 생활을 할지라도, 나머지 부족한 1% 때문에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주님이 주인이
되지 않으면 자기 믿음, 자기의 의, 자기 신앙일 뿐이다. 내가 믿는다고 하는 그 믿음이 진짜인 것은 아니다.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하는 자는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을 선물로 받는 것이다. 믿음은 하늘로부터 와야만 한다. 그래서 열매를 맺게 해 주신다. 사람은 단지 밭을 기경하는 것 외에는
할 것이 없다. 묶은 밭을 기경하는 것이 회개하는 것이다. 묶은
밭은 단단해져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갈아버려야만 한다. 갈아버리는
것은 묶은 밭을 없애는 것이다. 묶은 밭과 같은『자기라는 마음』을 부인해야만 한다. 밭의 비유에서 나쁜 세가지 밭을 갈아 엎어야만 살 수 있다.
『자기라는 마음』은 마귀의 유혹을 받던 그 때의 그 생각이다. 그 생각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생각이다. 그 생각을 갈아 엎어야만
살 수 있다. 마귀에게 사로 잡히느냐, 아니면 자기를 부인하고
회개하여 주님의 능력을 의지해 마귀를 멸하느냐 하는 갈림 길에 서 있게 된다. 많은 교회에서 자기부인
없이 회개하지 않고, 단지『예수믿는다 고 하므로 천국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게 마귀에게 먹힌 자다. 중세 때 면죄부를 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오늘날 회개없는 영접기도는 구원받을 수 없다. 그냥 예수 믿기로
한 것은 열매없는 자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바라보는
사람과는 전혀 서로 다른 존재일 뿐이다. 그럼에도 지식적으로, 죽은
예수가 나의 죄를 대속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단(마귀)은 사람들을 열매맺지 못하게 속인다. 성경의 말씀을 왜곡시키고, 회개의 본질을 흐리게 하고, 구원을 쉽게 받아드리게 만든다. 마귀가 할 수 없는 것은『거듭나게 하는 것』이다. 거듭나게 하는
것은 하늘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다. 단지 내가 하는 것은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는 것 외에는 없다. 죽는 것은 죄에 대하여, 율법에 대하여, 세상에 대하여 죽는 것이다. 죽음의 십자가로 들어갈 때 마귀의 머리가
부숴진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사도행전 3장 19절에서『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에서 『회개하고 돌이켜』라는 말은『회개하여 거듭난다』는 말이다. 영어 성경에서『Repent ye therefore, and be converted』 이렇게 되면 죄 사함을 받는다고 말했다. 오늘날은 이런 회개와 거듭남 없이 죄사함 만을
받으려고 한다. 자기부인의 회개함도 없으므로 거듭남도 없는 것이므로,
죄 사함을 받은 적도 없는 것이다. 거듭난다는 것은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새새람이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세례는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회개한
적도 없으면서 매일 죄를 반성한다고 예수님의 피가 적용될 수 있는가? 아브람이 75세부터 99세까지의 믿음처럼 육체로 비롯된 믿음으로는 의에 이를
수 없는 것이다. 열매 맺지 못하는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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