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고린도후서 6장 11-13절『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스플랑크노이스)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내가 자녀(테크노이스)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아우텐 안티미스티안)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플라틴데테)』
우리의 입이 열렸다는 말은 하나님이 우리의 입을 통해서 주시는 말씀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넓혀진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너희의 마음을 넓히게 해 주시는 것이다.
스플랑크노이스(σπλάγχνοις)는 창자라는 의미다. 너희 창자 안에서 좁아졌다는 말에서 창자는 배에서 생수가 나온다는 그 배를 의미하며, 호 로고스가 성도의 심령에 거하시는 곳을 의미하는 것이다. 창자라는 말은 배속의 태아를 의미하는 말로 태아는 생명수를 받는 것처럼 심령 속의 그리스도로부터 생명수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테크노이스(τέκνοις)는 하나님의 자녀(상속자)를 의미한다. 아우텐 안티미스티안(αὐτὴν ἀντιμισθίαν)은 동일한 보답이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사역자가 되었는데, 그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라는 의미다. 플라틴데테(πλατύνθητε)는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을 넓히라는 것이다.
성도간에는 마음을 넓히고 서로 마음을 공유하며, 심령 속의 호 로고로고부터 오는 말씀을 나누며 살아라는 것이다. 그러나 율법주의자들은 서로 공동체가 될 수 없으므로, 배척하라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6장 14-16절『너희는 믿지 않는 자(아피스토이스)와 멍에(헤테로쥐군테스)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아피스토이스(ἀπίστοις)는 교회를 다니지만 믿음이 없는 자를 의미한다. 복음도 받아드리고 율법도 지켜 행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 자가 사역을 한다고 하면 함께 하지 말하는 것이다. 헤테로(다른)쥐군테스(ἑτεροζυγοῦντες멍에를 메다)는 예수와 다른 방향의 사역에 함께 하지 말라는 것이다. 벨리알은 사탄이다. 믿음이 있는 자의 심령에는 하나님의 성전이 있으며, 그렇지 않은 자는 우상이 있는 것이다.
율법주의자들은 교묘히 교회 내에 파고들어 복음을 훼손시켰다. 오늘날에도 율법주의자들은 여전히 교회 안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의 문자 그대로 행동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가진 자들이 있다. 예수님도 율법에 순종하셨으므로 신도들도 율법에 순종해야 함을 가르친다. 제사법은 폐하여졌으나, 도덕법은 여전히 살아있으므로 지켜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을 지키는 것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는데, 글자 그대로 행한다는 의미와 마음의 법으로서 마음에 새긴다는 것이다. 만일 어느 동네에 호수가 있고, 그 호수에 물고기가 있다고 가정할 때, 하루에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수를 제한하여 잡을 것을 규정했다면, 그대로 지키는 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보지 않으면, 규정을 어기더라도 더 많은 물고기를 잡으려고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이 마음을 법이나 규정이 통제할 수 있는가 라는 것이다. 글자의 규정은 마음을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글자의 규정대로 지키고 세상을 살아간다면 그 세상은 낙원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규정에 정해진 대로 지키며 살아가도록 마음을 갖는 자는 극히 드문 이유는 마음 속에는 탐욕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종교인들이 간혹 법에 정해진 대로 행하는 것은 법에 정해진 대로 행하지 않으면, 신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할까봐 두려워서 행동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만일 호수가에 사는 사람들이 가족이고 형제들만 산다고 가정했을 때, 하루에 잡을 수 있는 양을 정했을 때, 대체로 이 규정을 어기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공동체 의식이 있게 되고, 다른 형제를 바라보기 때문에 법 때문이 아니라, 항구적으로 물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형제들 중에는 이상한 인간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대체로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형제의 사랑이 있게 되면 법이 있건 없건 호수의 물고기는 공동의 자산이 되므로 무리한 물고기 포획은 스스로 자제할 것이다.
마음의 법은 바로 이와 같이 사랑을 전제로 한 것이다. 율법을 글자 그대로 바라보면 사랑이라는 단어는 사라진다. 그러나 율법 속에 하나님의 뜻을 생각한다면, 마음에 사랑이 떠오르게 된다.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를 생각한다면 율법을 지켜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게 성령의 법이다.
성령의 법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였음을 믿는 자에게 적용되는 법이다. 글자대로 행한다기 보다, 글자 속에 들어있는 의미를 생각하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탐욕으로 오염된 마음이 아니라, 새롭게 태어난 피조물로서 거룩하고 성결한 마음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탐욕으로 오염되어 있으면,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면, 공동체의 이익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 신도들에게 교회 공동체가 건전하게 나가기 위해서 이런 마음으로 교회 공동체를 이끌도록 주문하는 것이다. 글자에 집착하는 율법주의를 배척하라는 말은 바로 교회 공동체를 살리고, 유지하기 위함인 것이다.
율법주의로 교회 공동체를 이끌고 가는 많은 교회는 탐욕이 바탕이 되고, 얼마나 자기의 이익을 가져갈 수 있을까 마음 속에 생각하는 것이다. 밖으로 표현은 하지 않을지언정 마음 속에는 언제나 탐욕으로 물들어 있는 것이다.
교회 지도자들은 신도들을 교리로 억압하지만, 신도들은 교리를 충실히 지켜 행하는 것이 신앙의 도리이고 의무로 생각하기에 교리에 대해 도전하는 자는 극히 드물다. 그래서 교회 지도자들이 말하는 말에 순한 양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순한 양처럼 행동하는 신자들은 교회 공동체 안에 율법주의가 만연한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런 신도들은 스스로는 좋은 신앙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도가 문제 의식을 가지면 당장 율법주의를 발견할 수 있으며, 이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문제의식을 가지는 것 자체가 두려운 것이다. 마치 문제 의식을 가지면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을 것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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