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히브리서
4장 1-2절『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약속은 광야에서의 약속이다. 그
앞에 3장에서는 광야 40년 동안 주님이 『누구에게 진노하였느냐』라고
물어본다. 광야에서 매일 예배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직접
보면서 아침마다 맛나를 먹었다고 구원에 들어선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성경 매일읽기를 한다고 그게
구원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구원의 기회일 뿐이다.
세상을 사랑하고 성공과 명예를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출애굽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서 구원받았다고
말한다. 계시록에서 버가모 교회와 두아디라 교회에 말했다.『너희가
사는 곳은 사탄의 모임』이라고 했다. 주님이 불쌍히 여기셔서 그런 교회도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신 것이다. 세상을 십자가에 못박고 나오므로서 회개할 기회를 찾아야만 한다. 약속을
받았지만 약속에 이르지 못하면 열정탐꾼의 이야기이고, 그 말을 듣고 통곡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모세 안에서 복음 전함을 받았다. 복음이라는 것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약속의 말씀이다. 이것이『약속이
남아있을지라도』다. 그래서『가나안은 그리스도의 충만함』이라고 했다. 가나안은
세상을 나와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의 예표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을 화합지 못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내가
맹세한다. 저 열정탐꾼의 말을 화합한 사람들은 절대 들어가지 못한다』라고 했다. 믿음을 화합한다는 말은 고린도전서 12장 24절에서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여기서 몸을 고르게 한다는 말은『부족한 지체와 존귀한 지체가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사망이
생명에게 삼킨바 된다』는 뜻이다. 이 믿음이 구원받는 믿음이다.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를 믿은 유대인들이 예수께 나왔는데, 예수님이 그들을 보자말자『너희가 내 말
안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말했다. 자유라는 말은
주인이 누구인가의 개념이다. 예수를 믿지만 죄의 종이라는 말이다. 오히려
예수님은 그들이『나를 죽이려고 한다』고 말했다. 주인이 누구인가에 따라서 믿음의 의미도 달라지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아비가 마귀라고 했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라고 말했다. 누구 말이 맞는가?
그들은 예수를 만나기 전에『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고 믿고 살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마귀라는 것이다. 아버지가 하나님이라면
예수의 말씀을 받았어야만 한다. 그래서 인간은 거듭나야만 한다.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한다. 세상 사랑하는 마음이 죽어야만 한다. 세상
사랑하는 마음이 죽는 자에게 하나님이 믿음의 선물을 주신다. 그래서 아버지가 바뀌는 것이다. 죄를 사랑하는 자는 사탄이 넘어뜨리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회개하라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은 자는 다 광야에 있는 자들이다.
애굽에서는 『세상으로 부터 나오라』는 말씀이다. 오늘날은 많은 교회가 세상과 결부되어 있다. 교회와 세상이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두아디라 교회처럼 세상의 부를 사랑하는 교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세상을 이길 수 없다. 아버지의 사랑이 없는데도
스스로는『나의 아버지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예수님이『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본 것을 행하고
나는 나의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행한다』고 하셨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요 거짓말쟁이다.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기도하면 귀신들은 떠나갈지라도, 회개하지 않는 자는 사탄이 떠나가지 않는다. 인간들이 죄를 짓는
것은 다 사탄의 종이기 때문이다. 요한1서 3장 4절에서『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3장 8절에서『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12절에서는『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는데, 그가 살인에 대해서 스스로 알았겠는가? 사탄의
종이 되므로 그렇게 한 것이다. 가인의 아비는 마귀다. 아벨에게
거짓말을 하고 그 다음에 죽였다. 그래서『가인처럼 하지 말라』고 하셨다.
요한1서 3장 9절에서는『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세상에서 살고 있는 자들은 평생교회를 다녀도 죄의 문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날마다 죄를 고백해야만 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세상에서 나오지 못한 자들이다. 세상에서 나오지 못한 자들은 매일
죄를 고백한다고 구원을 받겠는가? 세상으로부터 빠져 나오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 죄를 고백하기전에 세상으로 부터 나왔는가를 먼저 통찰해야만 한다. 세상으로부터
나오지 않으면 마귀의 종인데, 하나님께 죄 용서를 받으려 한다면 말이 되는가? 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세상도 좋고, 죄도 용서받으려고 한다.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단 한번으로 족하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자 만이 예수의 십자가가 적용되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을 화합해야만 한다. 믿음을 화합치 않는 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믿음을
화합치 않는 자들은 옛사람들이며, 가나안 앞에서 열정탐꾼과 같은 자들이다.『들어가면 죽는다』 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육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이다. 약속이 남아있을지라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은 약속을 저버리는 것이다. 옛사람은 육신이 좋은 것이고 세상에서 잘되면
좋은 것이다. 그러나 새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세우고 행하는 것이 마냥 좋은 것이다.
아버지가 하나님인지 마귀인지를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는가? 분별할 수 없다. 다만 못박히신 예수와 연합되는
것이 만이 사는 길이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는 말을 되새기면서 사는 길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자신이 못박히신 예수와 연합되려고 노력해도 그렇게 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육적인 생각은 아무리 노력해도 다 버리는 자들이요, 가나안 땅 앞에서
통곡하는 자들인 것이다. 그래서『자기부인』만이 살길인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는 자는 육적인 것을 부인하는 자들이다.
소경이 눈을 뜨기 전에는 절대 진리에 설
수 없는 것이다. 사도바울처럼 율법에 흠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주님이 빛을 비춰주시기 전에는 소경이었던
것이다. 예수믿는 사람들을 죽이고 싶은 것이다. 예수와 연합되기
전에는 다 예수를 죽이는 자들이다. 어린양을 죽여야 자기가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죽은 어린양이 자기라는 사실을 깨닫는 자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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