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는 회개한 자다

 
 

고린도후서 5 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이것이 거듭남이다. 새 피조물이라는 말은 새 창조물이라는 뜻이다.『이전 것은 지나갔으니』이전 것은 옛것이다.『옛』이라는 말은 옛사람, 베드로후서에서 말하기를『옛 세상을 멸하시고』라고 한 그『옛』이라는 단어다. 요한계시록의 옛뱀이라는 단어로 나타난다.『지나갔으니』라는 표현은 마태복음 24장에서『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라는 표현과 같다. 베드로후서 3 10절에서『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라는 표현과 같다.『없어진다』는 뜻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가치는『예수 안에』있는 자에게는 새 창조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능력이 되는 것이다. 요한복음 1 12절에서『영접하는 자는 자녀가 되었으니』는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 예수 안에 있는 자가 영접한다. 교회 처음 나와서『영접한다』는 말로 고백한다고 영접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 있으면 영접하게 된다. 영접하는 자에게는『예수의 이름』이 힘이 된다. 그것이 거듭난 자다. 113절에서『이들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라고 했다. 요한복음 1장의 말씀은 거듭난 자에게 일어나는 것을 설명한다. 그런데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회개하라』는 말씀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고린도후서 5 14절에서『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여기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노아시대 사람들이 다 죽은 것과 같은 말씀이다. 5 15절에서『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살아있는 자들은『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그래서 세상을 위해서 살 수 없는 것이다.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뉘어진다. 예수를 위해 사는 자인가 아니면 세상을 위해 사는 자인가? 중간지대는 없는 것이다.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으면, 세상을 위해 사는 자가 된다.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구원은 인간이 믿기로 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구원은 하나님이 인간을 생명책에 기록해주셔야만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회개하여『예수 안』에 있어야만 한다.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알지못하는 것이다. 등불을 켰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여 어린양의 책에 기록된 자가 구원받는다.

회개는 마음을 돌리는 것이다. 다시는 나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예수를 위해 사는 자가 된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었는데, 어떻게 우리 자신을 위해 살 수 있겠는가? 나 자신을 위해 산다고 한다면, 그는 예수 안에 있지 않은 자가 된다. 나 자신을 위해 산다는 것은 세상을 사랑하는 자가 될 것이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요한1 2 16절에서 나오는『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입으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러나 예수 안에 있지 않으면 불법이라는 말씀이다. 유대인들이 예수께 찾아와서 말하기를『우리 아버지는 한 분 뿐이니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라고 했다. 예수님이 답하시기를『너희 아비는 마귀니라』라고 한 것이다. 예수님은 진리를 말씀하시는데, 유대인들은 믿지 않는다고 하셨다. 마귀에게 미혹 당한 자는 아무리 진리를 선포해도 믿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누구를 위해 살아가는가? 이 진리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면 미혹당한 것이다. 회개해야만 한다. 회개는 말로 잘못된 것을 고백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돌이키는 것이다. 돌이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 안으로 들어가는 삶이 되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

노아가 120년간 아무리 회개를 외쳐도 가족 7명 외에는 방주에 들어가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들어가기를 거절했다. 오늘날도 예수 안으로 들어가도록 아무리 외쳐도, 들어가지 않는다면 스스로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그 날에『주여 주여』아무리 외쳐도,『나는 너를 모른다』라고 하실 것이다. 오늘날 누구를 위해 살아가는가? 회개한 자만 예수를 위해 살아갈 것이다.

고린도후서 516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오늘날 교회도 육신을 따라 행동하는 자가 많을 것이다. 인기 있는 자가 교회에 오면 사람들이 그를 보기 위해 교회에 오기도 한다. 많은 교회도 이것을 적절히 이용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이렇게 행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방식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로마서 324절에서『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인간의 입장에서는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지만, 예수님은 피값을 지불하고 속량하신 것이다. 피로 죄를 사하시기 전에, 먼저 사탄으로부터 죄인들을 피값으로 사는 것이 먼저다.『예수믿으세요 예수님의 피로 당신의 모든 죄가 용서받습니다』라고 말한다면 한가지가 빠져있다. 회개가 빠져있는 것이다. 회개하는 자를 예수의 피로 사는 것이다. 그런데 사탄은 회개의 의미를 변질시켜 놓고 있다. 말로 만 죄를 고백하면 회개되는 줄로 생각하는 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회개는 말로 고백할 뿐 아니라, 죄에 대해서 돌이키는 것이 회개다. 돌이키는 것은 이전의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포기는『탐욕이라는 생각』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죄에 대해서 죽어야만 한다. 로마서 6 7절에서『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예수 안』에 있지 않으면 죄의 종이다. 사탄의 자식이라는 뜻이다. 예수 안에 있는 자가 바로 로마서 6 6절에 있는 자다.『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죄의 몸이 죽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죄의 몸은 탐심이 주를 이룬다. 탐심이 우상처럼 마음 속에 뿌리내려져 있기 때문이다. 죄의 종은 공중 권세를 따르는 자이며, 세상 풍속을 따르는 자다. 모든 것이 세상이 기준이 되어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심지어는 많은 교회도 이런 생각들로 가득하다.

그리스도 안에만 속량이 있다. 속량을 받아야만 죄사함도 있게 된다. 속량은 예수님의 피로 사셔서 예수의 것이 된다. 예수의 것이 되면 예수님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다.『자기』라는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이유다. 그래서 회개는 주인이 바뀌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에베소서 2 4절에서『육체와 생각이 원하는 대로 사는 자』다. 하늘의 빛이 비춰져서 우리의 삶을 돌이켜보지 않으면 모두가 소경이 된다. 내가 주인인 삶은 모두가 소경이 된다. 그래서 회개하여 거듭나야만 한다. 회개해야만 새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주님은 새 피조물이 된 자를 깨끗이 씻어주신다. 죄를 깨끗이 씻어야 주님의 소유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소유가 되어야 죄를 씻어주신다. 에베소서 1장과 골로새서 2장에 나오는 속량, 곧 이것이 바로 죄사함이다. 속량이 이루어지면 죄 사함을 얻게 된다. 속량없이 죄 사함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어야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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