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마태복음 24장 15-24절『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 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세상에서도 신랑이 보는데서 신부가 환란에 처해지면, 구하려고 한다. 하나님 나라에서 신랑되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처해지는
환란에 신부들을 그대로 두시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날 교회 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들은 예수님의
신부라고 생각하고 있다. 예수님의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에베소서 5장 31-32절에서『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교회는 예수님의 신부를 말한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성도를
말한다. 즉 성령으로 영의 몸을 입고 살아난 성도들의 영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자기 신부에게 떡과 포도주를 주셨다. 떡은
예수의 살이요, 포도주는 예수의 피다.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므로서 예수님과 하나가 됨을 의미한다.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무엇을 깨달아야만 하는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만 한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죄인들을
위하여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래서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제사를 다 폐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단번에 이루어진 것이다. 자신이 하나님을 떠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여 예수와 더불어 죽은 자는 모든 죄악에서 벗어난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다 사하심을 믿는다. 그런데, 이러한 예수님이
이루신 것을 믿지 못한다면,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두명을 제외하고
아무도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대부분 교회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약속의 말씀을 믿는다고
말을 하면서도 행동으로는 열매맺지 못하는 것이다. 여전히 죄를 회개해야만 하고, 율법에 얽매여, 교회 생활하는 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멸망의 가증한 것은 스스로 예수를 믿어서 거룩한 자가 되었다고 믿지만, 여전히
율법을 통해서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 자를 말한다. 그 마음의 배경에는 사탄이 있는 것이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3-4절에서『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데살로니가 교회 사람들은 곧 예수님께서 다시 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이렇게 급하게 편지를 하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말한 멸망의 아들이 바로 마태복음에서 말하는 멸망의 가증한 것이다. 멸망의 가증한 일이 일어나는 때에는
배교하는 일이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환란이 일어나면 배교하는 일이 일어난다. 그러나 환란 전에 참된
그리스도의 신부들은 휴거되어, 공중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자가 될 것이다. 이 땅에 남아 환란에 들어간 자들은 휴거가 이미 지나갔음을 깨닫고, 어떻게
하든 정결하여 구원을 받으려고 할 것이다. 이때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두 증인이 나타나서 진리의 말씀을
전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즉, 환란에 내어주어 죽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아라는 것이다. 그러나 두 종류의 사람들이 나타난다. 환란에서 목숨으로 믿음을 지키는
자와 스스로 정결하려고 하는 자들이다. 다니엘서 12장 10절에서『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대부분 사람들은 마지막 때에 스스로 정결하게 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게 된다. 요한계시록에서 사람이 셀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흰옷을 입고 나오는데, 천사가
요한에게 묻는다. 이들이 누구인줄 아느냐? 천사가 말하기를
환란에서 나오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환란 때는 자기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말을 하지만, 죽은 자요, 가난한 자요 궁핍한 자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환란에 들어가게 되며, 환란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다.
사도바울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하는 것이다. 이방인이 충만한 수가 차기까지 완악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천하만민의 구원을 위해서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율법을 주셨고, 율법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은 스스로 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멸망당했다. 하나님은 천하만민에게 이스라엘을 따라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이스라엘이 했던 것처럼 율법적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여전히 있다는 것이다.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거룩한 곳은 대부분 사람들은 교회를 말하지만, 성도들의 심령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된 무리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거룩하게 되었다고 믿는 자들이 여전히 율법을 통해서 죄를 발견하고, 죄를
씻기 위해서 예수의 피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사탄이 사람들의 뒤에서 예수의 피를 요구하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거룩하게 되었다고 믿지만,
날마다 죄를 용서받기 위해 예수의 피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율법적인 행사나 절기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 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유대에 있는 자들은 율법을
신봉하고 있는 모든 자들을 말한다. 산은 시온산을 말한다. 시편 2장 6절에서『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내가』 라고 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나의 왕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산은 예수를 의미한다. 그래서 율법을 신봉하는 자들은 율법을 포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의를 이루어라는 것이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음을 말한다. 비록 환란이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만이 구원의 길임을
깨닫고, 모든 율법에서 벗어나라는 말씀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 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지붕은 하나님의 집(성전)을 말한다. 지붕 위에 있는 자들은 성전이 필요없음을 깨달은 자들이다. 성도가 성전이다. 그래서 성도는 율법을 가지지 말라는 것이다. 집이라는 말에서 나온 단어가 열왕기하 12장 11절에서 말하는 성전과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그 달아본 은을 일하는 자 곧 여호와의 성전을 맡은 자의 손에 넘기면 그들은 또 여호와의
성전을 수리하는 목수와 건축하는 자들에게 주고』 말라기 3장 10절에서도
집이 성전이다.『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씨뿌리는 자들이다. 환란 때에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뒤로 돌이키지 말라는 것이다. 겉옷은 율법을 말한다. 뒤를 돌아보다가 돌이켜서 멸망당한 예가 롯의 처의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출애굽한 백성들이 광야에서 애굽으로 돌아가기를 원해서, 하나님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그들은 광야에서 다 죽었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고린도전서 4장 15절에서『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환란 때, 복음의 의미를 깨닫는 자가 있을 것이다.
그 자가 아이를 밴 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때는 힘들게 된다는 것이다. 『화가 있으리로다』극심한 고통이 뒤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젖
먹이는 자는 복음으로 성장하게 만드는 자들이다. 히브리서 5장 12-13절에서『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대상은 율법주의자들이다. 겨울이나 안식일이나 모두 율법에
사로 잡혀서 겨울처럼 굳어져 버린 자들, 안식을 지켜야만 한다는 율법적 사고에서 벗어나도록 기도하라는
것이다. 오늘날 율법적으로, 또는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에는 십일조, 안식일 성수(주일 성수:주일도 안식일과 같은 개념으로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 각종 절기를 지키는 일 등 많은 것들이 있다.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자들은 예수님의 재림 전에 환란에 들어갈 것이다. 율법을 지키려는 자들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하나라도 지키지 못하면 심판받는다. 그래서 율법을 포기하고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으로 들어와야만 구원받는다. 은혜의 복음은 예수님과 함께 율법에 대해서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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