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태복음 5장 21-24절『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예수님은 심판받는 자에 대해서 설명하신다. 살인을 하면 심판을 받게되는데, 육적인 살인과 마찬가지로 영을 살리는 일에 방해를 하면 살인하는 자가 된다는 것이다. 영을 살리는 일을 방해하는 자가 심판을 받는 자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에는 육적인 살인과 영적인 살인을 말하고 있다. 옛사람에게 말하는 살인은 육적인 살인이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살인은 영적인 살인을 말한다. 형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자들을 말한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할 형제들간의 반목에 의해서, 분노하고 서로 비판하게 되면, 결국 비판하는 자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을 공격하는 것이 되며, 영적 살인을 하게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거듭난 자들은 영적인 존재들이다. 영적인 존재가 영적인 존재를 비판하게 되면, 하나님께 불손한 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형제와 화목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형제를 사랑하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영적인 형제를 강조하신다. 영적 형제는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가 되는 존재들이다. 마태복음 12장 46-50절『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밖에 섰더니 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하니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난했다. 예수님이 귀신이 들려 저런 짓을 한다고 소문을 냈다. 이 소문이 온 지방에 퍼져나가서 예수님의 어머니와 그 형제들까지 듣게 되었다. 예수님의 가족들 역시 예수님을 귀신들린 사람으로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 자식을, 우리 형님을 저렇게 내버려두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예수님을 붙들러 온 것이다. 그때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을 때다. 요한복음 7장 5절에서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소문만 듣고는 예수님이 귀신들린줄 알고 예수님을 찾아왔던 것이다. 누가복음 8장 21절에서도『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들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사람들이다. 회개하여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예수를 부인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형제를 용서해야만 한다. 용서는 아주 힘든 일이다. 특별히 우리의 인생에 실패와 고통과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육신의 생명에는 있을 수 없고, 보복만 생각한다. 이것이 사단이 노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는 심판자의 자리에 올라가기 때문이다. 결국『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그 자리에 올라간다』는 말이다. 그게 사단이 하와에게 말한 말이고,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욕망을 가지도록 유혹한 생각이다.『너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되는거야』라고 뱀(사단)이 유혹한 것이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사단이 그 사람을 하나님처럼 되게 만드는 것이다. 무서운 사단의 전략이 들어있다. 그래서 보복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단이 넘어 뜨릴려고 한다. 주님이 우리를 보내시는 것은 결국 용서하도록 보내시는 것이다. 마태복음 6장 주기도문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했다. 우리 말 번역할 때,『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를 헬라어로 살펴보면『우리의 빚진 것을 탕감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빚을 탕감하여 주옵시고』라고 되어있다.『빚』을 우리 말로 번역할 때『죄』로 해석하여 번역되었다. 예수님이 죄에 대한 예화를 다른 곳에서 한가지 더 했는데, 그 하나는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하는 내용이다. 결국 일만 탈란트 빚을 탕감해 주었지만 그 사람은 몇 데나리온을 탕감해 주지 않으므로 왕이 그 사람의 일만 달란트 빚 탕감을 무효화시키는 내용이다. 우리가 하나님으로 부터 죄를 사함받기 위해서는 주님이 우리가 용서해야 할 사람을 주신다. 왕이 일만 달란트 다 갚기 전에 감옥에 가두라고 했다. 그래서 용서의 비유는 두개다. 빚 갚는 것과 빚 용서하는 것이다. 빚을 탕감해 주지 않으면 감옥에 있게 된다는 말이다. 우리의 길을 막거나 잘못되게 하고 상처를 준 그런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가 감옥에 간다는 말이다. 마음이 감옥에 갇혀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답답하고 힘든 일의 배경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주제가 있다. 용서해야 할 것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다. 용서하지 못하면 우리의 영적 존재가 감옥에 갇히는 것이다. 요한복음 13장 34-35절『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인간들을 향한 하나님의 공의 사랑이시다. 하나님의 공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고,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모든 회개하는 자들에게 은혜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사랑은 십자가의 죽음이다. 이 보다 더 위대한 사랑은 없을 것이다. 십자가의 사랑이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들어오기 위해서는 예수의 이름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는 믿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는 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기 위해서는 하나님 말씀 앞에서 자기를 부인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령의 능력으로 아버지와 아들과 믿음을 가진 자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떠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육의 몸이 죽고, 영의 몸으로 거듭나서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옛사람이 죽은 자는 하나님께로 돌아감을 알게된다. 육신이 현재 이 세상에 살고 있으므로 때로는 환란 가운데 있게도 되지만, 육적 몸(옛사람)은 날마다 죽었음을 기억하고 살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내속에 계시므로 영은 살아있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영이 살아있으므로 또한 하나님은 다른 영을 살리라고 하시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는 자가 성령께서 인치시는 것이다. 잃어버린 양들을 찾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시다. 잃어버린 양들을 찾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다.『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형제를 사랑하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간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양들을 찾아서 오라는 것이다 내 이웃의 죽어있는 영들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면, 하나님이 그 속에 있는 증거라는 것이다. 형제는 하나님 나라에서 함께 있던 영들을 말한다. 육적인 형제도 사랑해야 하지만, 하나님은 형제인 영을 살리러 하시는 것이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하이델베르그 문답 42-44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