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가, 아니면 지키지 않아도 되는가?
십계명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가, 아니면 지키지 않아도 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정확하게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런가?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잘 이해하지 못한데서 기인하는 것이다.
먼저 한 예를 들어보고자 한다. 어느 부부에게 자녀가 10명이 있는데, 그 부모가 자녀들이 건전하게 잘 자랄 수 있도록 엄격한 규칙을 두었다고 가정한다. 거짓말 하지 말고, 남을 때리지 말고, 부모를 속이지 말고, 돈을 훔치지 말고 등등의 규칙을 두고 어겼을 때, 자녀에게 징계를 하는 것이다. 부모가 만든 이 규칙은 정말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 규칙은 자녀를 위한 것이지만, 자녀의 입장에서는 부모가 원망스러울 것이다. 어린 자녀들은 철저히 지키려고 하다가 어기면 매를 맞기도 한다. 그러나 자녀들 중에 성년이 되면 부모는 그 성년이 된 자녀에게 이 규칙의 적용을 예외로 해주는 것이다. 부모가 성년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런 규칙을 적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부모는 성년이 된 자녀들이 스스로 알아서 행동하도록 자유를 주는 것이다. 율법과 복음은 마치 이와 같은 개념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은 거듭나지 못한 자를 상징하고, 성년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를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님은 거듭난 자에게는 로마서 8장 1절에서 처럼 더 이상 죄를 묻지 않는 것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로마서 6장 3-6절에서 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자를 의미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율법과 복음을 이해해야만 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상황은 어떠한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속으로 들어간 자는 십계명을 그래도 지켜야 하는지, 아니면 지키지 않아도 되는지 혼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태복음 23장에서 율법 속에 신과 의와 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율법은 무려 613가지나 되는 규정들이다. 그 중에서 도덕법이라는 십계명을 비롯하여, 의식법, 민법 등 수많은 종류의 규정들을 백성들이 지켜야만 했다. 십계명은 율법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오순절에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서 백성들에게 반드시 지키라고 주신 말씀이다. 그러나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모든 죄악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죄에서 벗어나, 구원에 이르게하는 기쁜 소식이라는 의미다. 율법과 복음은 둘 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계명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명령이었다. 어느 것 하나라도 지키지 못하면 하나님께 대하여 죽어야 할 존재가 되므로, 동물을 죽여서 그 피를 제단에 뿌려 죄를 용서받을 정도로 엄격한 규정이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지키도록 하신 것은 율법을 통해서 죄를 깨닫게 해주시기 위함이었다. 궁극적으로는 죄는 하나님을 떠난 것을 의미하며,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던 하와처럼, 모든 인간은 자기의 의, 즉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이 마음 속에 우상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발견하게 하신 것이다.
백성들이 죄를 짓고, 하나님께 죄 용서의 제사를 드리고, 또 죄를 짓고 제사를 드리는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인간은 도저히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그물에 갇힌 물고기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장차 오실 영원한 속죄제사를 드리게 될 메시야를 바라보라는 것이었다. 갈라디아서 3장 23-24절에서『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히브리서 7장 11-12절에서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복음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죄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이고,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율법을 지켜야하는가 아니면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가? 라는 질문을 받을 수 있다. 우리는 출애굽기 20장의 십계명의 조항 하나 하나를 분석하면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의 뜻을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따라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거나 지키지 않아도 된다라는 식의 이분법이 얼마나 낮은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성도는 율법을 지켜야한다는 강박 관념과 죄의 그물인 법의 속성에서 벗어나, 율법 속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참 의미를 깨닫고 성령이 인도하시는 능력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율법 속에서 나타난 참 의미는 궁극적으로 너희들은 모두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의 죄성을 가지고 있는 자라는 것을 알려주시며, 장차 오실 메시야를 바라보지 않으면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려주신다. 그래서 율법의 규정 하나 하나에 얽매이지 말고, 율법 안에 감추어진 참 의미를 발견하고, 성령의 인도로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복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연합되어 세상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되라는 것이다.
율법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상징하고, 복음은 생명나무를 상징한다. 생명 나무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 속에 감추어져 있다. 즉 율법 속에 복음(메시아:그리스도)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구약이 자신을 증거하고 있다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다. 구약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으로 율법은 바로 언약의 말씀이기도 하다. 예수님이 육신으로 오셔서 스스로『구약에서도 있었다』라는 말씀을 하고 있다. 아브라함과 함께 있었다고 하셨다. 아브라함은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전 약 2000년 전의 인물이다. 요한복음 8장 55-59절에서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에 있었다 라고 했다. 그리고 함께도 지냈다고 했다. 창세기 14장 18절에서『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히브리서 7장에서 이 멜기세덱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아브라함이 바로 예수님을 만났다는 말이다.
요한도 예수님이 구약시대에 예수님이 계셨다고 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서『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말씀이 육신이 되신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세례요한도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요한복음 1장 15절에서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먼저 계셨다 라고 했다.
히브리서 11장 24-26절에서 모세가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누가복음 24장 27절에서 길을 가다가 두 사람의 제자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자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그리고 갈리리 바닷가에서 24장 44절에서 같은 말씀을 하고 있다.『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나라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이다. 결국 구약시대의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5장 39절에서『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여기에서 성경은 바로 구약성경을 말한다. 구약성경이 말하고 있는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라는 말씀이다. 이사야서 34장 16절에서『너희는 여호와의 책에서 찾아 읽어 보라 이것들 가운데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고 제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령하셨고 그의 영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여호와의 책은 구약성경을 말한다. 모든 성경을 다 읽어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율법 속에는 거듭남의 비밀이 있다. 레위기의 주제는 거룩함(구별됨)이다. 거룩함은 깨끗한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지는 삶을 말한다. 하나님께 드려진다는 것은 멸해지는 것이다. 예수님이『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씀과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거룩함은 세상에서의 삶과 다른 존재로서의 삶을 말한다. 레위기 11장 44-45절에서『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여기서『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라는 말을 교회 사람들은 진실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식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 말은 부모로부터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으로 부터 태어난 존재라는 것이다. 이전의 것은 죽었음을 나타낸다. 거듭남의 비밀인 것이다. 거듭남은 마음의 상태가 아니라 존재의 변화를 말씀해주신다.『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땅의 길 짐승은 인간이 아무리 깨끗하게 해 주어도 몸을 더럽게 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으로 부터 태어났지만, 여전히 부모로부터 태어난 속성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자들을 향해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3장 3-10절에서, 니고데모라는 율법 선생이라는 사람과 대화를 나눈다. 그는 예수님이 기적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했을 때, 그는 도무지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돌아가버렸다. 물은 부모로 부터 받은 몸은 죽었음을 상징한다. 성령은 하나님으로부터 새생명을 받는 것이다. 곧 죽은 자가 새생명으로 태어난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3장 10절에서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 이러한 이치를 알지 못하느냐 라고 말씀했다. 즉 백성들이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희생제사를 지낼 때 죽은 동물이 자신임을 깨닫고, 죄에 대해서 죽은 자라는 것을 알고 인간 스스로는 도무지 죄에 대해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고백하는 자가 되라는 것이었는데, 아무도 그러한 진리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즉 하나님은 희셍제사를 통해서 메시아를 발견하라는 것인데, 그들은 께닫지 못했다.
하나님은 창세기 3장 15절에서 분명히 여자의 후손, 씨의 약속인 메시아를 약속하셨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약속을 깨닫는 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제사를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들은 성전 문에서 헛되이 제사를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십계명 속에서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에 유의해야만 한다. 그 속에 진리의 말씀이 있는 것이다. 그 속에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는 것이다. 새언약에 참여한 자는 의무 사항인 조문에 얽매이지 말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이키라는 것이다. 이러한 대 전제를 바탕으로 하여 십계명을 바라보아야만 하는 것이다.
십계명을 지키려고 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외에 또 다른 것을 지켜야 하는가 라는 의문을 갖게되고, 십계명을 지킨다고 하면서 안식일의 규정도 마음대로 변궤해서 안식일이 주일로 바뀌었다고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하는 어리섞은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니,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는 것 같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제사법은 이제 필요가 없지만, 도덕법은 지켜나가는 것이 신앙생활에 도움을 준다느니 하는 식으로 신도들을 헷갈리게 하는 술취한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러한 이분법이 아니라 율법 속에서 복음의 진리를 발견하는 자가 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진리 속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십계명의 조문 하나 하나를 살펴보아야만 한다.
첫째,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땅에서 이끌어내시고 왜 이 말씀을 하셨는가? 출애굽기 20장 2절에서『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하나님 여호와는 백성들이 종되었던 애굽 땅에서 인도하였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하나님 여호와는 사탄의 종되었던 성도들을 사탄의 세상인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낸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다른 신을 믿는 것이다.
이 세상은 사탄의 나라다.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일정한 기간 지배를 허락하셨다. 누가복음 4장 5-6절에서『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예수님도 십자가 사역에 앞서서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8장 36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요한1서 2장 15-16절에서도『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신도가 하나님 여호와를 믿는다고 말을 하면서, 세상을 사랑하면, 다른 신 즉 세상의 임금인 사탄을 따르는 자가 되는 것이다. 마치 출애굽한 후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백성들은 금 송아지를 만들어놓고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그 우상에서 절했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이 말씀 속에는 백성들이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둘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하나님은 이 명령을 첫째 계명으로 두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그리스도로 인해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자들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므로 이런 규정이 사실상 의미가 없는 것이다. 십계명의 이런 규정이 있으므로 내가 다른 신을 섬기는 지 안섬기는지 살펴보아야지 라고 생각하면서, 이렇게 살아간다면 절말 우스꽝스런운 일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세상에 대해서 죽지 않은 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아닌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은 자가 이 계명을 바라볼 때는 다소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둘째,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이 말은 인간 자신을 위한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외형적인 형상을 통해서 그것을 통해서 마음 속에 신적인 형상을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상이다. 성도는 오직 하나님의 형상 만을 위해서 살아간다. 하나님의 형상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골로새서 1장 15절에서『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 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난 분이 예수님이다. 요한복음 1장 18절에서도『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한복음 14장 9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이 계명에 얽매여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어떤 형상적인 모습을 다 배제시켜야 한다는 논리의 비약을 시킬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 곧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지 않은 자는 하나님의 형상이 없는 자라고 말을 할 수 있다. 아무리 예수를 믿는다고 말을 하더라도 그 분과 십자가의 연합이 없다면 그 속에는 사탄의 형상이 내재하는 것이다. 사탄의 형상은 바로 자기가 주인인 사람이다. 예수가 주인이 되지 못하면 모두 자기가 주인인 셈이다. 중요한 것은 계명 자체가 아니라, 계명 속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형상 곧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믿음이 중요한 것이다. 이 일을 위해서는 날마다 죽노라를 말한 사도 바울의 말을 새겨야만 한다.
셋째,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에 대해서, 교회 사람들은 계명의 외적인 의미를 생각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러 부르면 안된다는 식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거나 조심하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러 부르지 않았다. 성경의 말씀을 양피지에 적을 때는 공란으로 해 두었다. 그러다가 70인경 성경을 만들 때, YHWH라는 표기를 했는데, 그 이름을 아도나이(Adonai)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다가 그 당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살고 있던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이 아도나이의 영문 표기에서 모음인 a, ai를 YHWH와 결합시켜 YHaWHai로 만들어 야훼라고 부르기 시작했으며, 영문으로 번역할 때, Jehovah 라고 표기했고, 오늘날 영어 성경에는 LORD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말씀을 통해서 백성들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올바른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세상에서도 사람들이 아버지의 뜻과는 무관하게 죄악 속에서 살아간다면, 다른 사람들이 아버지의 이름에 먹칠했다거나 비난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그의 백성이라고 자처하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과 다르게 살아간다면 다른 민족들이 그 백성을 보고 하나님을 비웃는 일이 생긴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면서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세상 사람들보다 더 못한 죄악을 행하게 된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을 하면서, 타 종교행사에 가서 절을 한다든가 하는 식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마음은 하나님께 있다는 식으로 변명을 해도, 다른 사람이 볼 때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이다. 오늘날 종교 다원주의가 범람하는 시기에 기독교인이라고 자칭하는 자들이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는 식으로 말한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면, 내적으로 외적으로 그 향기를 나타내어야만 하는 것이다. 내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거듭난 자가 되어야 함은 물로, 외적으로도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어냐만 한다. 말씀을 전하는 자가 하나님 나라가 아닌 세상적인 이야기에 몰두한다면 그리스도의 향기가 아닌 악취가 될 것이다. 고린도후서 2장 14-17절에서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넷째,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성경에서 안식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히브리서 4장 8-10절에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에게 안식을 주었다면 그건 가나안 땅이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하는 그림자이다. 참 안식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있다는 말이다. 참 안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는 것이 바로 참 안식이다. 하나님이 참 안식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안식에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런 자는 이미 안식에 들어간 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안식을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그 보증으로 성령을 주시는 것이다. 믿는 자가 육신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영이 나오는데, 하나님의 집을 입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안식이다.
에베소서 2장 6절에서『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의 옛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새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새생명 가운데 일으키심을 받는다. 그 새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움을 받는 것이다.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죽은 자는 하나님 나라에 앉히움을 받는 것이다. 골로새서 3장 3절에서도 마찬가지로『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라』라고 했다. 죽은 것은 옛사람이다. 그리고『새사람의 생명이 하나님 안에 감취었다』라고 하고 있다. 히브리서 4장 10절에서『이런 자들을 이미 안식에 들어간 자들』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옛사람이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새생명 가운데 태어난 자는 이미 안식에 들어간 자이다.
안식에 들어간 자는『자기의 일을 하지 말라』고 하신다.『자기의 일』이라는 말은 바로『세상을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라든가『안식을 대체하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아직 안식에 들어간 자가 아니라』고 고백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거룩히 지켜야 안식에 들어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는데도 아직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는 경우와 별로 다르지 않는 것이다. 아직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 못하므로 하나님 나라의 안식에 들어있지 못한 자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만이 이미 안식에 들어간 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주일을 일주일의 하루로 생각하고 성도들이 모여서 성경 공부하고 예배드린다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주일을 거룩히 지켜야 하는 날로 생각한다면, 이런 안식의 의미를 깊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거룩히 지켜야 하는 자는 현재 하나님 나라에 안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거룩히 지킬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안식에 이미 들어간 것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될 것이다. 안식을 거룩히 지키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발견하여야 하는 율법 안에 있는 자라고 할 수 있다.
구약에서 안식일은 오늘날 토요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안식일이 토요일이므로, 이 날에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말을 하는 사람들은 안식의 의미도 모르면서 그 날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4장 10~11절의 말씀으로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사도바울이 한탄하는 말이다. 오늘날 이런 날과 달과 해와 절기를 지키는 교회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스스로 구원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성령은 없고, 자신의 생각대로 믿는 사람들의 생태를 엿볼 수 있다.
다섯째,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이 땅에 살면서 사람들은 부모의 보호와 사랑을 받고 자라며, 또한 성장하여, 부모를 소중한 존재로 생각하며 살아간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다 이같이 살아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는 인위적으로 바꿀 수 없는 그 어떤 혈연적 관계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세상에서 부모와 자식간에도 이러한데, 하물며,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인간도 영이 존재한다. 인간은 육과 영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영이 하나님께 대하여 죽어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이 살아나기를 원하시고,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것이다. 요한복음 6장 63절『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이 말을 통해서 영이 죽어있음을 알게 해 준다. 사람들은 영과 혼과 육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한다. 전도서 12장 7절에서『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흙은 사람의 육체가 흙으로 지어졌으므로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창세기 2장 7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우리말 생령은 영어로『살아있는 생명체(niv), 살아있는 혼(kjv)』으로 번역되었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히브리어로『네피쉬하이』라고 한다. 그런데, 헬라어로는 푸쉬케로 번역된다. 사람이 죽으면, 육은 흙으로 돌아가고, 영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하나님이 코에 불어넣으신 것이 영이다. 생기는 히브리어로 네샤마(호흡)라는 단어다.
누가복음 8장 에서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는데, 예수님이 죽은 소녀를 살리는 내용이 나온다. 8장 55절에서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시니』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는 것과 그 영이 돌아오는 것은 같은 것이다. 헬라어로 푸뉴마(영)가 돌아왔다. 영이 돌아와서 살아있는 생명체가 되었다. 영이 흙에 들어가면 살아있는 생명체가 된다. 우리말 성경에서 영혼, 영, 혼이라고 혼란스럽게 번역되어 있다. 우리말 번역이 한자를 주로 사용하다 보니 이렇게 번역이 된 것같이 보인다. 그래서 정확하게 헬라어로 정의하자면 영과 흙이 만나면『살아있는 생명체(혼)』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영과 혼과 육을 이분법, 삼분법으로 이야기 할 의미도 없는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체가 죽으면 영과 육이 분리되어 각자의 길로 가는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체(혼)는 영과 흙의 결합체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영은 육으로부터 빠져 나가고, 혼이라는 생명의 현상은 사라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자들이 나그네라는 것을 알려주신다. 레위기 25장 23절에서『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히브리서 11장 14-16절에서도 나그네임을 설명하고 있다.『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본향, 즉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주체는 영이다. 흙으로 된 인간이 아니라 생명체인 인간 속에 있는 영이 영의 몸을 입고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이다. 흙으로 된 육체를 벗고, 영의 몸을 입어야만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피조물인 천사들은 모두 영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탕자의 비유처럼, 하나님을 떠나온 자들이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요한복음 6장 63절『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영이 흙에 갇혀있으므로 영이 죽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살아나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야만 하는데, 돌아가기 위해서는 벌거벗으면 안된다. 이 세상에서 육신을 가리기 위해 옷을 입는 것은 그림자다. 하나님 나라의 옷을 입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영이 흙에 갇혔다는 것은 영이 훍이라는 옷을 입는 것이다. 하나님이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에덴동산을 나가게 하고 가죽옷을 입힌 것을 알 수 있다. 가죽옷은 동물의 가죽이 아니라, 흙을 소재로 하는 가죽(skin)옷을 입힌 것이다. 인간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감옥과 같은 것이다. 유다서 1장 6절과 베드로후서 2장 4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 외에도, 우리는 율법을 통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 갈라디아서 3장 22절에서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함이라』죄 아래 갇혀있다고 믿는 자만 약속을 받을 수 있다.
죄 아래 갇혀있는 것은 마치 이 세상에서 죄로 인해서 감옥에 갇혀있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갇혀있는 자는 무조건 감옥의 규칙을 지켜야 한다. 감옥의 규칙이 이 세상에서의 율법과 같은 의미다. 그 고된 규칙을 통해서 죄를 깨닫고, 바깥 세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이 땅에서 유일하게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은 죽어서 나가는 방법 외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면이 있다면 살아있을 때, 자유인이 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 방법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되는 길이다. 로마서 6장 7절에서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난다고 말하고 있다.
죽은 영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을 가둔 육의 몸이 죽어야만 한다. 영이 죽은 상태를 옥에 갇힌 자, 눈먼 자 등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갇힌 자를 풀어주고, 눈먼 자의 눈을 뜨게하고,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시고, 흑암에 있는 자를 빛으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는 이런 은혜를 받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기 위해서는 예수와 함께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라고 말씀하셨으면, 이 말씀에 대해서 집중해야 하는데, 무관심하고, 육체에만 관심을 가진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것이다. 영이 육체 속에 있으므로 죽은 상태이다. 예수님이 영을 살리러 오셨다는 말씀이다. 영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육신의 장막이 무너져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 속으로 들어가는 자는 육신의 장막을 벗는 것이다. 하나님은 육체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영에 관심을 가진다. 그래서 하늘로부터 오는 양식이 영원한 생명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왜 영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가? 육으로 비롯된 혼이 주인노릇하고 있기 때문이다. 혼은 살아있는 생명체로 태어날 때부터 감정이 주어지고, 자라면서 지식과 가치관이 형성된다. 이것을 모두 자기 또는 자아라고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여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즉 육으로 비롯된 혼은 영을 죽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영을 살리기 위해서는 혼인 자아를 하나님 말씀 앞에서 부인해야만 하는 것이다.
여섯째, 살인하지 말라
피흘림에 대한 말씀이다. 피는 하나님에게로부터 온 것이라는 것이다. 피는 아무 곳에서나 흘려져서는 안된다. 레위기에서도 피흘림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인간의 최초의 살인 범죄는 가인이 아벨을 죽인 사건이었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으로 부터 왔으며, 아무도 생명을 함부러 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생명 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숨겨져 있다. 모든 생명은 한정된 생명이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신다. 피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생명을 찾아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씨의 약속이다. 씨는 생명의 근원이다. 약속의 씨가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 된다. 약속의 씨는 그리스도(메시야)이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찾으라는 것이다.
살인에는 자기의 의를 나타내려는 탐욕이 숨어있다. 하나님께서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두고 가인의 제사는 열납하지 않고 아벨의 제사는 열납했다. 가인이 가지고 온 것은 땅의 소산이었다. 땅은 토지이다. 아담이라는 말은 히브리어 아다마(토지)에서 유래되었다고 본다. 땅의 소산은 아다마의 소산이다. 즉 사람의 근본된 토지를 갈아서 생산해 낸 열매를 말한다. 하나님 없이도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는 그런 의도를 가지고 열심히 행해서 나타난 열매를 말한다.
율법에 의하면 땅의 소산인 곡물도 제물로 열납하셨다. 땅의 소산이기 때문에 열납받지 않은 것이 아니라, 여기서 말하는 땅의 소산은 하나님없이 스스로 만든 것이라는 것이기 때문에 받지 않으신 것이다. 아벨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첫 새끼를 드렸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 하나님이 여인의 후손을 약속했는데, 여인의 후손은 약속의 씨인 그리스도이시다. 가인이나 아벨은 둘 다 약속의 씨에 대한 말을 듣고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가인은 그 약속을 믿지 않았다. 약속의 씨에 대한 제사가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생산한 것을 하나님께 드렸고, 아벨은 약속의 씨에 대한 믿음의 제사를 드렸다.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았다. 이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때의 하나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노아의 홍수 때에도 세상이 멸망을 당했다. 이것도 역시 하나님을 떠난 자에 대한 심판의 모형을 보여주신 것이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심판을 하시는지를 보여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하나님 없이도 하나님처럼 의로워질 수 있다는 그런 마음으로 생산한 것들에 대한 것은『하나님이 열납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심판의 예표를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날 이 시대에도 가인과 같은 의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안되는 것이다. 가인과 같은 의도와 생각과 노력으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가인은 아벨과 같이 약속의 씨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안에 거하기를 싫어했던 것이다. 그 결과는 분노와 화였으며 아벨을 쳐죽이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살인이라는 그 내면에는 자기의 의를 나타내는데 방해가 되면, 무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이 숨어있다. 창세기 4장 7절에서『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죄는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다. 즉 하나님을 떠난 자가 원하는 것은 다름 아닌 육신의 소욕인 것이다. 육체가 원하는 마음의 모든 것이 바로 육신의 소욕이며, 이것들이 바로 죄라고 한다. 하나님없이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욕망이 육신으로 나타난 것이다.
요한1서 2장 15-16절에서 같은 말을 하고 있다.『죄를 다스릴지니라』라는 말은『육신의 소욕을 절제하라』는 말이다. 사도바울이 로마서 7장 7절에서 말하고 있다.『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육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이 가인에게『죄가 원하는 것을 하지말고 다스릴지니라』하셨으므로 깨달아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사도바울이 말하는 것은 『육신으로는 선을 행할 수 없고 악을 행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육신이 원하는 대로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려주신다. 하나님은 육신으로 비롯된 마음을 죽이라고 하신다. 육신으로 비롯된 마음은 곧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 없이도 스스로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유혹의 탐심이며, 이것을 사도바울은 옛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옛사람은 죽어야만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로마서 6장 6절에서는『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라고 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율법을 잘 지켜서 의를 이루어보라는 말이지만, 사실상 율법을 통해서 죄를 발견하고 육신적 자아를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의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다. 육신적 자아를 버리게 되면 약속의 씨(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된다. 창세기에서 말씀하는 바 에덴동산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찾으라는 말이다.
가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육신의 요구대로 아벨을 쳐죽이고 말았다. 이 땅에서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는 자와 못박히지 않는 자로 나뉘어진다. 죽느냐, 죽지 않느냐의 차이다.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고 돌아오라고 말씀하신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을 자라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죽지 않는 자는 마음 속에 육을 따르는 탐욕이 살아있으며, 그 탐욕은 자기 분노로 이어지게 된다.
가인은 육체의 소욕대로 땅을 갈아보지만 그 속에는 영생이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가인과 가인의 후예들은 자기의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게되었으며, 그 결과는 창세기 6장 5-6절에서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라고 했다. 전도서 8장 11절에도『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일곱째, 간음하지 말라
간음은 실제 일어난 현장에서 일어난 것 외에도 예수님은 음욕을 품은 자마다 간음한 자로 여기신다. 간음하지 말라고 했으니 간음하지 말아야지 결심을 해도 마음에서 일어난 간음에 대해서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 속의 간음의 원인은 탐욕이라는 옛사람이 죽지 않기 때문이다.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 속에는 간음하고자 하는 마음의 탐욕을 발견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육적인 간음을 통해서 영적인 간음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간음은 육적 간음과 영적인 간음이 있다. 육적 간음에 대해서 예수님은『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육적인 간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영적인 간음을 동시에 말씀하고 있다. 그리스도와 성도는 부부로 비유한다. 그래서 열처녀의 비유도 이와 같은 것이다. 그리스도와 성도는 성령으로 하나가 되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은 하지만 여전히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믿는 자들이 바로 영적 간음을 하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을 하지만,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 자들이다.
예수님은 열처녀의 비유를 통해서 율법과 성령의 법을 비유하셨다. 미련한 다섯처녀는 등불을 켰으나 다른 기름통을 준비하지 못한 자라고 하고, 슬기로운 처녀는 등불을 켜고, 다른 기름통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등불은 킨 것은 교회에 초대되어 온 것을 말한다. 그러나 다른 기름통은 성령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다른 기름통을 준비하지 못한 미련한 다섯처녀는 여전히 율법 가운데 있는 것이다. 니고데모처럼 거듭남의 의미도 모르면서,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율법에 얽매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음을 말해준다. 율법에 묶여있는 사람과 거듭난 사람이다. 다시 신령한 몸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모두가 율법에 묶여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옛사람은 죽어야만 한다. 부모로부터 받은 육은 예수와 함께 못박혀라는 것이다. 로마서 6장 8-9절에서『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육적 마음이 죽은 것이 아니라 부모로부터 받은 몸이 죽으셨다. 그와 함께 죽은 자는 마음이 죽은 것이 아니라 몸이 죽은 것을 믿어야만 한다. 미래 육이 죽을 때 그렇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현재에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서『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면서, 여전히 부모로부터 받은 육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이 영적 간음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은 영적 간음죄를 짓는 것이다.
여덟번째, 도둑질하지 말라
도둑질하는 것은 실제 행동으로 옮긴 것도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마음에 품고 사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바로 마음 속의 탐욕인 것이다. 이 탐욕이 행동으로 옮긴 것이 도둑질로 나타난다. 하나님은 이 계명을 통해서 인간의 내면에 있는 탐욕의 죄성을 발견하도록 하셨다.
사탄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의 것을 훔치려 했던 자들이다. 사탄을 따라간 자들은 다 도적질하는 자들이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행위는 하나님 나라를 도적질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사탄은 하나님 말씀을 도적질하고 있다. 하나님 말씀을 인간의 시험에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마귀가 예수님을 광야에서 시험한 것도 모두 성경 말씀을 도적질하여 시험한 것을 알 수 있다. 사탄은 광명한 천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성경말씀을 왜곡하여 진리인 것처럼 말하는 자들도 모두 성경 말씀을 도적질 하는 자들이다.
사탄이 원하는 것은 자기 자식들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미혹하는 것이다. 모든 진실을 감추어야만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것 외에는 모든 진실을 깨달을 수 없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은『내가 길이요 진리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에게로 갈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사탄은 모든 인간 속에 있는 영들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는 자에게 안식을 주신다. 그게 하나님의 일이시다. 요한복음 5장 17절에서『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하나님의 일은 무엇인가? 요한복음 6장 28-29절에서『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했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지 못하게 만든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를 믿지 못하도록 하고, 스스로 의를 이룰 수 있다고 거짓마음을 심는다. 성경에 의하면 아들의 말을 믿기만 하면, 의를 이룰 수 있는데, 사탄은 절대 이룰 수 없다고 말을 한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음에도 인간은 육신의 눈으로 사탄의 말을 따라가는 것이다. 사탄은 세상의 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보려는 마음을 가지게 한다. 율법을 바라보면서 죄를 짓는지 않짓는지 살펴보게 만든다. 그리고 죄를 짓지 않으려고 결단도 하고 노력도 하게 한다. 그래서 죄를 지으면, 날마다 죄를 반복적으로 회개해야만 예수의 피로 죄 사함을 얻게된다는 것이다. 육신의 눈으로 보면 그렇듯하다.
『아들을 믿는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는 것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날마다 죽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사탄의 미혹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우리의 옛사람이 죽을 때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며, 하나님이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성경은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책이다. 구약은 오실 그리스도를 예정하시고, 신약은 오신 그리스도를 증언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다시 하나님 나라로 복귀시켜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며, 언약이시다. 사탄은 모든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로 복귀하지 못하도록 속인다. 그리스도가 아니더라도 구원의 길이 있다고 속인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기로 말만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회개의 말을 하지 않으면, 속이는 자가 된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야 한다는 말을 하지 않으면 속이는 자가 된다. 회개는 하나님을 떠난 자라는 것을 깨닫고 돌이키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탄의 미혹을 따라 세상에 들어간 하나님 나라의 영들이 그 육체가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에, 육의 몸(옛사람)을 벗고 영의 몸으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육의 몸이 바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옛사람(탐욕)이기 때문이다.
아홉번째,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거짓말하는 속성은 마음 속에 탐욕 때문이다. 탐욕이라는 마음의 결정을 달성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사탄은 미혹하고 속이며, 거짓말하는 자다. 사탄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다. 사탄은 인간들에게 악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래서 죄를 짓게 만든다. 그 이유는 사탄의 종이 되게 하기 위해서다. 예수님이 사탄에 붙잡힌 바리새인들에게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요한1서 2장 18절에서『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요한1서 2장 22절에서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요한1서 4장 3절에서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한2서 1장 7절에서『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교는 100여년 전 청교도들의 기독교와는 너무나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거짓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말씀이 거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편리하게 생각하겠끔 와전시키고, 거짓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식으로, 영접기도하면 구원받는다는 식으로 거짓복음을 퍼뜨리는 것이다. 자기들이 만드는 기독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된 원인은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식으로 배우고 경험하고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된 것처럼 생각하지만 거듭나지 않으면, 거짓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기독교에 속아서는 안된다. 성경의 말씀을 확인하고 그 말씀이 믿는다고 하는 사람에게 거해야만 하는 것이다.
세상 나라에 적응된 기독교로서는 거듭날 수 없다. 세례가 죄를 씻는 것으로 말하는 기독교로는 거듭날 수 없다. 로마서 6장 4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으며, 베드로전서 3장 21절에서『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라고 말하고 있다.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빌면 예수의 피로 다 용서받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로마서 6장 7절에서는『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라고 말한다. 성경이 왜곡된 것이 아니라 성경을 왜곡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거듭나지 못한 자들이 왜곡하여 말하고 있다. 그래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십자가가 마치 목걸이의 장식품처럼 생각되고 있는 이 시대에, 골고다 언덕에서 죽으신 예수와 함께 십자가 죽지 않는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은 알고 있어도 말씀이 거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오직 육적인 옛사람을 벗고 하늘로부터 신령한 몸을 입은 새사람 만이 참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거짓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열번째,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골로새서 3장 5절에서『탐심을 우상이라』고 말한다. 탐심이 있는 자는 우상숭배하는 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누가복음 4장에서 사탄은 대담하게도 예수님을 시험할 때, 하나님의 자리를 탐내도록 유도하는 것을 본다. 근본적으로 사탄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던 탐심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탐심은 법 이전에 양심의 문제다. 탐심은 양심을 더럽히며, 죄악에 빠지게 하는 원인이 된다. 그래서 탐심을 죽이라고 말씀하신다.
탐심은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세상에 대해서 죽으라고 말한다. 요한1서 2장 15-16절에서『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한1서 5장 4절에서는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거듭나는 자 외에는 아무도 세상을 이길 자가 없다는 말씀이다. 거듭나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태어난 자를 말한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2장 15절에서『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누가복음12장 16-21절에서『사람들이 재물을 쌓아두지만, 하나님이 생명을 거두어 가 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비유적으로 말씀하셨다. 계속하여 재물 때문에 고민하지 말라고 당부하신다. 그런데 재물이 부족하면, 생활할 수 없는 세상이다. 하나님은 재물을 탐내지 말라고 하시고, 인간은 재물을 쌓아두어야 흡족하다고 생각한다. 사탄이 주는 탐심은 인간을 파멸로 이끌기 때문이다. 사탄을 따르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십계명을 정리해 보면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 죄인으로서 죄로부터 빠져 나갈 수 없는 존재들이며, 그래서 명령의 규정들로 만들어진 율법이 필요했지만,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이제 죄의 노예가 아니므로 의무적인 규정이 아니라, 자율적인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다가가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자율적인 것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자율은 바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십계명의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에 대하여 사람들은 사랑해야 할 규정이 있으니 사랑해야 한다고 의식적으로 사랑하려고 한다. 여기서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죽은 영을 살리는 것이다. 영을 살리기 위해 자기 몸을 사랑하는 것처럼 하라는 것이다.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이것을 하지 않으면 십계명을 어기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에게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고,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동물을 죽여 제물로 바쳐야 했다. 죽은 동물이 곧 죄인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죄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더 이상 제물이 필요하지 않다.
이 규정의 의미를 기억하면서 우리는 영을 살게 하기 위해 필요한 본질적인 것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성도들은 세세한 규례를 넘어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이웃의 영을 살리는 일에 자율적으로 참여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율법에 대하여 죽으시고 성령의 권능이 그 자리를 대신하셨기 때문에 이 세세한 규례를 지켜야 할 법적 의무감이 사라진 것이다. 의무감으로 규례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규례의 틀로부터 벗어나, 영적으로 자유케 하는 성령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다.
성도들이 율법의 하나인 십일조를 의무적으로 내야 한다는 사실도 강박감이 있는 의무가 아니라 성령의 마음으로 생각해야만 한다. 그래서 더 이상 의무의 십일조가 아니라 사랑의 헌금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또한 신자들은 매일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구해야 하며, 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의무감이나 강박감으로 죄를 여기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도들을 죄에서 해방시켜 주셨으니, 그 죄의 본질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죄의 본질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하는 옛사람의 탐욕이다. 그래서 죄 때문에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죽는 것이다.
신자가 죄에 대하여 날마다 죄를 범할 수밖에 없음을 믿고 날마다 죄를 자복하며 용서를 구하면, 죄에 대하여 죽은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해서 살아있는 것이 된다. 그들은 하나님의 새 언약의 말씀을 믿지 않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이여, 세상의 교회에서 죄 걱정 그만하고 죄에서 벗어나라고 하면 그 순간부터 이단 취급을 받게 된다. 누구의 말이 옳은가? 그들은 정말로 시험을 받게 될 것이다. 사람은 죄를 짓기 마련인데, 날마다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구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매일 주문을 외우듯이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해 주실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하나님의 나라에 가셨으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죄에 대하여 예수와 함께 죽고 죄에서 해방된 자유인이 된 것을 믿겠는가?
그것이 율법이든지 복음이든지 둘 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뜻이 있다. 인간은 죄인이며, 죄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존재들인데,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대속의 죽음을 하셨으므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율법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기 위해 규례를 정하고, 복음은 죄에서 해방되어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죄의 그물과 같은 율법에서 벗어나 성령의 능력으로 전진하라고 하신다. 그는 왜 율법을 고집하는가? 새 언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새 언약은 조문으로 된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새 생명으로 인도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인 것이다. 항상, 율법이든 복음이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강박관념의 율법이 아니라, 죄로부터 자유인으로 당당하게 성령의 인도를 받고 나아가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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