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복음을 쫒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갈라디아서 1장 1-6절)『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쫒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1장 1-3절『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디)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디아) 사도 된 바울은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말미암아』라고 표현된 디, 디아는 『~를 통하여』 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말미암아는 원인과 예상되는 결과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를 통하여』라는 말은 대상과 하나가 되는 의미를 갖는다. 우리말 성경에서 바울이 사도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 때문에 그 결과로 된 것이라고 번역된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바울을 사도로 세웠다는 말이 된다. 사도가 되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를 설명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를 통하여(안에서) 사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가 바울을 사도로 세운 목적은 같으나, 사도가 되는 방법이 제시된다. 사도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자가 사도가 되는 것이다. 바울은 다메섹에 가는 중에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쓰러져 삼일간 앞에 보이지 않았다. 육적으로 죽은 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삼일 후 아나니아를 통하여 눈을 떴다. 눈을 떴다는 것은 영으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말미암는 것은 어떤 동기(은혜)를 받는 정도이지만, 통한다는 것은 그 분의 모든 것을 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 교회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죽은 자(네크론) 가운데서(에크) 살리신(에게이란토스) 하나님』하나님이 왜 예수님을 부활시켰는가라고 묻는다면, 대부분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시므로 다시 부활시켰다고 말하며, 타 종교와의 차별을 강조한다. 네크론은 영적으로 죽은 자를 의미한다.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에크는 ~으로부터 나와서(영어의 ~out of), 에게이란토스는 일어난다는 의미다. 구약시대 에스겔서를 보면 마른 뼈들이 살아는 것으로 표현되는데,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 다시 영적으로 살아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바울이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신 것처럼 자신도 영적으로 살아났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부활의 개념은 오늘날 신학은 죽은 육체가 살아나는 것으로 믿는다. 그래서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가 죽었지만, 하나님이 살려서 신령한 몸으로 바꾸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죽은 자를 여러 번 살리는 내용이 있는데, 나사로를 살리고,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는 장면이다. 이들과 예수님의 부활을 같다고 여기는 자들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시 살아났지만, 다시 죽는 몸이다. 예수님의 부활체는 다시 죽지 않는다. 무슨 차이가 있는가? 앞의 세사람은 다시 살아났지만, 육체가 부모로부터 받은 몸 그대로인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체는 부모로부터 받은 몸은 죽어버리고(사라지고), 영이 영의 몸을 입고 나타나는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변신도 가능하고, 벽을 뚫고 나타나기도 하는 모습을 본다. 소생은 육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부활은 영과 영의 몸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서『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프뉴마티콘)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프뉴마티콘)도 있느니라』신령한 몸은 원어에는 영의 몸으로 되어 있다.
1장 4절『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포네루) 세대에서(에크 투 아이오노스) 우리를 건지시려고(엑셀레타이)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세대는 대략 사람이 일(사역)을 할 수 있는 30-40년의 기간을 의미한다. 기독교는 사역이 중요하다. 행위로 규정된 여러 성경귀절은 사역을 의미한다. 사역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악한 것)이라는 것이다. 엑셀레타이는 건지다 라는 동사의 문법상 중간태로서 주님이 우리를 건져내어서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주님이 건져내는 목적은 주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서 하나님 나라의 사역자로 만들기 위함이다.
1장5절 『영광(돜사)이 그에게 세세토록(투스 아이오나스 톤 아이오논) 있을지어다 아멘』 영광이라는 돜사는 사도로 된 자들이 복음을 전하므로 세상과 싸워서 이기는 승리의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는 의미를 갖는다. 투스 아이오나스 톤 아이오논이라는 말은 영원토록 이라는 말이 아니라, 그 세대 세대마다 라는 의미다. 그래서 각 세대 세대마다 이런 영광이 나타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이것은 영적 대부흥이다.
1장 6절『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칼레산토스)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헤테론) 복음을 쫒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칼레산토스는 목회자 뿐만 아니라, 모든 교회 신도를 의미한다. 부르심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일이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부르심을 받았지만, 택함을 얻지 못하는 자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귀한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다른 복음을 쫒는 자가 있다는 것이다. 헬라어에서 다르다 라는 단어가 알로스와 헤테론이 있다. 알로스는 약간 다른 즉 완전히 같지 않지만 비슷한 것이고, 헤테론은 완전히 다른 것을 의미한다.
다른 복음의 대표적인 것이 율법주의 인본주의 영지주의를 들 수 있다. 교회 사람들은 이신칭의를 믿지만, 신학적 교리가 이신칭의를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라는 말에서 일단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영접기도라는 것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말과 관련해서, 한번 구원은 영원하다라고 말하는 자들은 일단 구원받았으니, 적당히 신앙생활을 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는 자들이 있는 반면에, 구원은 취소될 수 있다는 말과 관련해서 그 다음에는 죄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성화되도록 노력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인간들을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복음은 인본주의 사상 앞에서는 부분적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십자가의 복음이 인간의 노력 또는 방관으로 섞여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외에 다른 무엇인가를 더하거나 빼면 완전히 다른 복음이 되는 것이다.
이신칭의에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의미는 신도가 그리스도의 믿음 안으로 들어간다는 의미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육의 몸이 십자가에서 그 분과 함께 죽고, 새생명으로 다시 태어나, 그리스도가 성도의 심령 가운데 호로고스로 될 때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