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그리스도이시라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라
사도행전 18장 1-3절『그 후에 바울이 아덴(아테네)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아굴라라 하는 본도(본토:로마)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아테네는 철학의 도시라면, 고린도는 상업의 도시였다. 황제 클라우디우스는 로마의 유대인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유대인들에게 추방령을 내렸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이 때 로마를 떠나 고린도에 정착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바울과 마찬가지로 천막 제조업자들이었다. 바울은 이 부부의 집에 함께 살면서 주중에는 천막을 만들고 안식일에는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다. 이들 부부로 인해 바울은 고린도에서 오랜 기간을 머무르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바울의 동역자는 이들만이 아니었다. 실라와 디모데가 마케도니아 지역에서 고린도로 내려와 합류했다. 당시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생업은 스스로 해결해야만 했었다. 고린도에는 교회가 세워지지도 않았으며, 바울이 생업을 함께하는 아굴라, 브리스길라, 실라, 디모데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18장 4-5절『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쉬네이케토 토 로곤 호 바울)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로고(λόγῳ)는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쉬네이토 토 로곤 호 바울”(συνείχετο τῷ λόγῳ ὁ Παῦλος)은 바울이 말씀이신 그리스도에 붙잡혔다 라는 것이다. 헬라어 성경에는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없는데, 개역개정에는 포함시켰다. 쉬네이게토는 미완료 수동태이다. 쉬(함께)와 에코(소유하다)의 합성이다. 해석하면 함께 소유되었다 라는 것이다. 바울이 말씀이신 호 로고스와 하나가 되어 성부 하나님께 소유가 되는 것이다.
사역은 사도적인 사역과 은사적인 사역이 있는데, 빌립 집사와 같은 경우는 대체로 은사 사역이라면, 바울은 사도적인 사역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호 로고스를 통한 사역을 하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6장 2-4절에서 열두 사도가 제자를 불로 모아놓고 하나님 말씀을 제쳐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고 말하고 그들은 오직 기도와 말씀 사역에만 힘쓴다고 말을 하는데, 그 사역이 바로 사도적인 사역을 의미한다. 만일 호 로고스와 함께 하는 사역이 안된다면 그것은 사도적인 사역이 아닌 것이다.
오늘날 교회의 현실은 대부분 교역자들이 전혀 호 로고스의 사역이 아닌 것이다. 호 로고스의 사역을 하면, 호 로고스의 권세가 나타난다. 호 로고스로 사역을 하면, 귀신들이 쫒겨나고 큰 권능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러나 호 로고스에 의한 사역이 아닌 은사적인 사역은 한계가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보내신 제자 중에서 귀신을 쫒아내지 못한 자가 있었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그 해답은 기도(프로슈케)와 믿음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기도와 믿음은 호 로고스와 관계가 되는 것이다. 호 로고스를 만나는 프로슈케를 하면 주님이 강력한 권세(카리스마)를 주시는 것이다.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말에 대해서, 예수는 여호와의 이름이며, 여호와가 그리스도가 되었다는 말이다. 이는 창세 전에 이미 계획하신 것으로, 범죄한 천사로 인한 것이다.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난 모든 영들이 자기 백성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들이 왕이신 하나님을 깨닫지도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다. 마태복음 1장 21절『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님이 흘리신 대속의 피를 믿지 않는 자에게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죄가 자기에게 피로 돌아가게 된다. 사도행전 18장 6절『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마태복음 27장 23-25절『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택하셔서 온 세상의 본이 되게 하셨으나, 그들이 메시야를 거절하므로 그들에게 심판이 임한 것이다. 제사장,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내어주었다. 예수님을 죽게한 죄값으로, 신도들은 A.D.70년에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을 말한다. 표면적으로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피를 자손에게 돌린다는 말은 영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오늘날 신도의 입장에서 신도의 영적 상태를 통해서 심판의 모습을 보여주신다.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지 못하면 아무리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신도라 할지라도 심판을 받을 것이다.
당시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드리지 못한 자들은 율법주의에 빠져 있던 자들이다. 오늘날에도 예수를 믿는다고 말을 하지만,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자들이 많다. 이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드리지 못한 자들이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자기 생각대로 믿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신도를 죄에서 구원하는 것은 신도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으므로, 하나님이 하신 언약이 이루어짐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이 장차 이루어질 것으로 믿으면, 여전히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율법의 완성이다. 율법을 완성하셨으므로, 율법의 조문에 얽매이지 말고, 성령의 인도로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예수를 믿는다고 말을 하면서, 율법의 조문에 얽매이는 자들이 있는 것이다.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자들이므로, 성령을 모독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
십계명의 조문에 얽혀서 그 조문대로 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들, 예수님이 대속의 죽음을 이루신 것을 완전히 믿지 못하는 자들, 그들은 예수님이 죄로부터 자유함을 주셨는데, 여전히 예수의 피를 통해서 계속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성전의 의미를 모르는 자들, 교회 공동체의 건물을 성전이라고 생각해서 거룩하게 여기는 자들이다. 목사들 중에는 여전히 제사장 역할을 하고, 신도들도 목사를 제사장으로 여기는 것이다. 또한 새로운 절기를 만들고, 성경에도 없는 교리를 만들어서 지키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율법주의가 되는 것이다.
교회 공동체 지도자들이 무엇인가 신도들을 묶어려고 하는 모든 것들 이 율법주의가 된다. 예수님은 자유함을 주셨고, 성령의 인도를 통해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하셨는데, 교회 공동체 사람들은 말이나 글을 통해서 신도들을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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