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 요리 문답 38-39

 제 38문 : 왜 예수님은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셨는가?


답 :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지만 우리 위에 선고되어야 했던 엄격한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총독에게 재판을 받으신 것이다.(추가: 이 말은 예수님께서 죄가 없으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공적인 심판이 필요했던 것이며 또한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무서운 죄에 대한 심판을 대신 받으신 것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세상에 대해서 죽으신 것이요, 율법에 대해서 죽으셨으며, 죄에 대해서도 죽은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에 대해서 살아있는 자, 율법에 대해서 범죄한 자, 죄에 대해서 죽어야 할 자를 살리기 위함인 것이다.


갈라디아서 6장 14-15절『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세상이 나에 대해서 못박히고, 내가 세상에 대해서 못박혔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그러하셨기 때문이다. 로마는 세상 왕을 상징한다. 본디오 빌라도는 세상을 지배하는 사탄과 같은 존재라는 말이다. 예수님이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바로 예수님이 속량의 제물이 되신 것이다. 속량은 종을 값을 치르고 사는 개념이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탄(본디오 빌라도)으로부터 사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가 죄로부터 자유함을 입는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예수님이 영적으로 세상을 심판하신 것이다. 사탄이 예수님의 발 아래 놓이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율법에 대해서 죽으셨다. 갈라디아서2장 19절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이는 예수님이 율법에 대해서 죽으셨기 때문에 이와 같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역시 율법에 따라 죽은 것이다.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를 유대지도자들의 요구에 따라 신성모독죄로 율법에 따라 처형했던 것이다.


로마서 6장 6-7절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예수님도 죄의 몸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죄의 몸에 대해서 죽으시므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가 죄의 몸에 대해서도 죽은 것이다.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는 줄 알면서도 유대 지도자들의 거센 항의에 굴복하여 죄의 굴레를 씌워서 처형했던 것이다.

 

제 39문 : 예수님께서 다른 방법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는 것이 그렇게도 중요한가?


답 : 그렇다.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의 저주의 죽음이기 때문에 그의 죽음은 내가 받아야 할 저주를 대신 짊어지셨다는 확신을 준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신명기 21장 22-23절『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신명기 21장은 시체에 관한 규정을 말하고 있다. 시체가 살해된 것이건 죄를 지어 나무에 매달린 시체이건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피가 흘려지는 일은 땅을 더럽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피에 대한 책임은 공동체가 져야 했다. 그래야 이스라엘 내의 경건과 거룩이 유지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 시체가 있는 장소와 가장 가까운 마을은 그 죽음에 대한 속죄의 규정을 실행한다. 속죄의식을 위해 선택되는 아직 부리지 아니하고 멍에를 메지 아니한 암송아지는 죽음을 덮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암송아지의 죽음은 이스라엘 공동체 내에 피 흘린 죄가 있지 않도록 하는 역할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그림자이기도 하다.


마을 전체가 큰 의식을 행하였고, 죽은 사람을 장사하면서 함께 드리는 기도 속에는 마을 공동체 전원이 전쟁터와 같은 이 땅에서의 삶을 거룩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다짐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신실함을 공유하게 된다. 죄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 인생에, 이 땅에, 그들의 심령에 머물지 않도록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사람들, 그것이 참 공동체였다. 신앙 공동체는 언제나 외부의 영향으로 소멸되고 와해될 위기에 있기 때문에 신명기는 공동체로 하여금 어떤 타협도 용납하지 말고 절대적인 순결과 순종을 매우 강하게 강조한다.


나무위에 달린 시체에 관한 규정에서 이 형벌은 마을 전체에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형벌이었다. 그러나 그 시체를 밤새도록 두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그 피가 땅을 더럽히기 때문이다. 복이 머물러야 할 하나님의 선물인 땅, 신앙 공동체가 머물러야 할 복된 삶의 터전에 저주가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죄에 대한 죽음이고, 세상에 대한 죽음이다. 하나님은 죄악의 세상을 심판하듯이 자기의 아들 예수를 저주스럽게 죽도록 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 달린 자신의 아들에게 분노를 퍼부은 것이다. 예수님의 흘리신 피가 죄악에 빠져있는 세상에 대해서는 저주가 된 것이다.


유대인들 입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을 따라 저주 아래 있는 자가 되었고, 그 저주 아래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예수님은 율법 아래 있는 분이 아닌데, 저주 아래 있게 된 것이다. 바리새인들, 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율법주의를 근거로 판단하고 죄를 정죄한 것이다. 상대방이 율법 아래 있던 아니던 상관없이 인권을 유린했다. 예수님은 율법 아래 있지도 않고, 죄도 없는데, 유대인들이 예수를 율법을 근거로 죄를 뒤집어 씌우고 처형한 것이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도 자신의 아들을 율법 아래 두고 십자가에서 죽게 했다. 같은 목적으로 십자가에서 죽게 했지만,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할 것을 아들을 대신하게 했고, 유대인들은 예수의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다. 하나님은 죄없는 아들을 심판하므로 은혜를 베푸시나, 유대인들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으로 하나님을 대적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여전히 분노하시지만, 회개하여 돌아오는 자에게 사랑을 베푸신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이것은 하나님과 성령이 증언한다. 마태복음 3장 16-17절에서『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하나님은 예수를 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유대인들은 예수를 신성모독죄로 처형한 것이다.


그런데. 히브리서는 예수님이 이렇게 율법 아래 죽은 것은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히브리서 9장 28절『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죄 아래 있는 자들이고, 당시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은 하나님 아들을 죽이므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을 자행했는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 희생제사, 곧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죄를 용서하시겠다는 것이다. 이게 대속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그들은 깨닫지도 못하고, 회개하지도 않았다. 대속의 죽음은 비단 당시의 유대인들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율법에 따라 저주 아래 있게 되었는데, 어떻게 대속(속량)의 의미를 갖는가? 율법 아래 있는 자의 죄를 하나님의 아들에게 전가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아들이 죄인이 되므로, 하나님이 죽은 아들을 통해서 회개하는 사람들의 죄를 감추시는 것이다.


이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를 예정하신 일로 시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를 세상에 가두었지만, 다시 돌아오게 하는 은혜를 세우신 것이다. 그들의 죄를 대신하여 죽는 역할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셨으며, 이는 창세기 3장 15절에서부터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예언된 사실이다.


히브리서 9장 22-25절『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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