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고린도후서 64-10절「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바울은 하나님의 일꾼에 대해서 표현했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와 그리고 남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일꾼으로서 평가를 언급했다. 자신에 대해서는 날마다 죽노라를 기억하며 행동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부활생명을 가진 자로서 떳떳하고 영광스러운 마음을 행동한 것을 표현한다.

일꾼으로 자천하여(쉬니스탄테스)에서 쉬니스탄테스(συνιστντες)에서 쉬니(함께)스탄테스(세우다)는 함께 세운다는 의미다. 하나님이 사역자를 세워서 함께 일하는 것이다.

한글개역 성경에는 휘포모네(ὑπομονῇ)를 많이 견디는 것으로 번역했지만, ~아래 머무는 것이다. 휘포모네는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보좌를 의미하며, 앞에 나아가 머무는 것을 나타낸다.

환란으로 번역된 들맆세신(θλψεσιν)도 어려움을 겪을 때 이를 해쳐나가기 위하여 하나님이 보좌 안으로 들어오도록 등을 떠미는(push) 것이다.

궁핍으로 번역된 아낭()카이스(νγκαις손을 뻗는 것)는 지성소로 들어가서 하나님을 향해서 손을 뻗는 것을 의미한다. 어려운 문제를 하나님께 아뢰며 해결책을 듣는 것이다.

고난으로 번역된 스테노코리아이스(στενοχωραις)는 스테노(좁은)코리아이스()의 합성어다. 즉 골방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골방은 지성소를 상징한다. 구약시대 지성소는 대제사장 만이 일년에 한번 지성소로 들어갔다.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두마리의 염소를 준비하는데, 속죄의 염소와 아사셀을 위한 염소인 것이다.

제비를 뽑아 속죄제물로 선택된 염소는 여호와께 속죄제로 드렸다. 이 염소는 전 이스라엘의 죄값으로 대신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속죄제물을 드렸다는 말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되어, 죄인이 하나님으로부터 심판받았다는 말이고, 그래서 죄에 대해서 죽었으므로, 죄로부터 자유함을 입은 자가 되는 것이다.

아사셀 염소를 택하게 한 이유는 백성들이 죄로부터 자유함을 입었다는 것을 나타내게 한 것이다. 희생 염소는 회개하는 죄인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의미하고, 그래서 죄인도 희생제물과 함께 죽은 것이다. 그런데, 죄인은 죽었지만, 죄는 처리되지 않았다. 아사셀 염소는 죄에 대한 죽음으로서, 죄인이 죄라는 명목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게 세례의식인 것이다. 죄의 명부에서 죄명을 삭제하는 의미를 갖는다.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흰눈같이 되리라 라는 말과 같이 죄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죄를 지고 가는 염소가 되는 것이다.

매 맞음(엔 플레가이스)으로 번역된 플레가이스(πληγας)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형상은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지는 것은 육의 몸에 성령의 빛을 받아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로부터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전의 육의 몸은 성령의 빛으로 타 죽는 것이다.

갇힘(엔 퓔라카이스)으로 번역된 퓔라카이스(φυλακας)는 하나님께 집중해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난동으로 번역된 엔 아카타스타시아이스는『아(부정:not)(~아래)타스타시아이스(세우다)καταστασαις』이며, 땅 아래 세워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하늘에 세워지는 부활생명을 의미한다.

수고로움(엔 코포이스)으로 번역된 코포이스ποις)는 잘라내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악한 것들을 잘라내는 것이다.

자지못함으로 번역된 아스륖나이아스(γρυπναις)는 영적으로 깨어있는 것을 의미한다.

먹지 못함으로 번역된 네스테이아스는 새로워지다 라는 의미다.

자비함으로 번역된 크로스토테티(χρησττητι)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유익하게 하는 것이다.

디아 돜세스(δι δξης)는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영광이다. 아티미아스(τιμας)는 사람들로부터 받는 치욕이다. 사역자는 두가지를 동시에 받는 것이다. 뒤스페미아스(δυσφημας)는 사람들의 악평이고, 유페미아스φημας)는 하나님의 호평이다. 플라노이(πλνοι)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속이는 자 같으나, 알레데이스(ληθες)는 하나님이 보기에는 참되다는 말이다.

무명한으로 번역된 아그노우메노이(γνοομενοι)는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유명한으로 번역된 에피기노스코메노이(πιγινωσκμενοι)는 하나님께는 알려진 자라는 의미다. 아그노우메노이는 사람들의 지식으로 아는 것을 의미하고, 에피기노스코메노이(πιγινωσκμενοι)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아는 것이다. 조멘μεν)은 영적으로 살아있는 자를 의미한다.

징계로 번역된 파이듀오메노이(παιδευμενοι)는 훈육을 의미한다. 죽음을 당하지 않고로 번역된 다나투메노이(θανατομενοι)는 죄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죽임을 당하는 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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