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해야만 변화받는다


 

시편 245-6절『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다. 그래서 죄인은 하나님에게 다가갈 수 없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는 죄로부터 벗어나는 자다. 하나님의 얼굴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만난다고 가정 하더라도 그 순간 죽는 것이다.

요한이 밧모섬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을 때 죽은 자처럼 되었다고 한다. 회개하지 않은 자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없다.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는 자는 회개하는 자들이다. 죄인들 속에는 하나님의 의가 없다. 죄인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의를 얻어야만 한다.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 되어야만 한다. 이게 바로 여호와의 얼굴을 구하는 자다.

여호사밧은 전쟁 직전에 여호와를 찾았다. 그는 적들이 엔게디까지 와 있는 것을 알았다. 엔게디는 걸어서 예루살렘까지 두시간의 거리였지만 그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그게 시편의 다윗의 하나님이다. 시편에서 다윗은 주님의 얼굴을 구했다. 시편 146 5절에서『야곱의 하나님으로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주님의 능력을 구한 것이 아니라 얼굴을 항상 구했다. 주님의 능력을 구하는 것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찾는 것이 능력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는 내적 변화를 받은 자 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시편 150편의 말씀은 다윗이 변화받은 이야기를 써 놓은 것이다.

성취가 아니라 변화받는 것이 되어야만 한다. 인생의 목표는 성취가 아니라 변화다. 회개하지 않은 자는 인생의 목표를 성취에 둔다. 그러나 예수 안에 있는 자는 변화받은 자다. 회개해야만 변화받는다. 주님이 고통과 실패를 주시는 이유는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하시는 은혜다. 사람은 성공할 때는 변화받지 않는다. 그러나 실패를 통해서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음을 깨닫고 변화받는다. 성공하면 이 땅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진다.

주님은 욥에게도 고통을 주셔서 욥을 회개하게 하셨다. 다윗이 압살롭의 반역으로 도망가는데, 감람산을 넘어가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회개하는 모습이다. 회개는 주님이『나를 믿으라』가 아니라『내게 돌아오라』는 것이다. 회개가 없는 것은 등불의 기름이 떨어지는 것이다. 회개없는 믿음은 미련한 처녀의 등불과 같은 것이다. 왕의 혼인잔치에 누구나 초대되어 왔지만 예복을 준비하지 않은 자는 쫒겨난다. 바로 회개하지 않은 자이기 때문이다. 예복을 입으려면 입고 있던 것을 벗고 혼인예식에 합당한 옷으로 갈아 입어야만 한다. 예복이 바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다윗은 야곱의 하나님을 구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다. 이삭은 아버지의 유산으로 살았다. 그러나 야곱은 험악한 인생을 살았다. 그런데 왜 다윗은 야곱의 하나님을 구한 것인가? 야곱이 험한 인생 속에서 하나님의 얼굴(브니엘)을 구했기 때문이다. 다윗이 죽기 전의 마지막 말인데, 사무엘하 23 1절에서『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하며 높이 올리운 자 야곱의 하나님에게 기름부은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가 말하였도다』이렇게 말하는 자가 승리하는 자다. 『높이 올리운 자』에서『높이 올리운다』는 의미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여 높이 올리운다는 의미다. 이 의미와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에서『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와 같이 자기를 비운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을 위하여 자기 것을 포기하는 자가 높이 올리우는 자다.

다윗은 실제 사무엘로 부터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시편에서 야곱의 하나님으로 부터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말했다. 다윗은 위험 속에서도 예배했다. 그 예배 속에서 변화받는다. 그 속에서 생명을 얻는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평탄한 길이 아니라 바로 죽음의 길이다. 죽음의 길에서도 예배가 있어야 한다. 그 곳에서 주님만 의지하고 변화받기 때문이다. 다윗은 아브라함의 하나님도 아니고 이삭의 하나님도 아닌 야곱의 하나님을 노래했다. 야곱은 어려운 길 가운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변화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얼굴은 십자가의 그리스도이시다. 얍복강에서 환도뼈를 맞는다. 평생 다리를 절었다. 그는 주님이 주신 축복이 평생 아픔이었다. 그러나 그는 단 하나를 얻었다. 새 이름 이스라엘이다. 다윗은 야곱의 새 이름을 나라 이름으로 정했다.

인생의 목표는 성취가 아니라 변화다. 그 시작은 회개다. 그럴 때 우리는 새 이름을 얻을 수 있다. 변화받은 새 이름은 회개할 때 얻어지는 것이다. 사울이 바울로 새 이름을 얻었다. 시몬도 베드로로 새 이름을 얻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새 이름을 얻었다. 야곱처럼 험악한 인생을 살지라도 환도뼈가 부숴져서 평생 절룩거리며 살지라도 다시는 사사로운 자기의 지혜를 사용하지 않고 회개하여 오직 하나님의 얼굴(십자가의 그리스도)을 구할 때 새 이름이 부여된다.

시편은 다윗이 골라앗을 죽여 승리한 그런 내용을 적어 놓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당한 것을 기록한 내용들이다. 그래서 다윗은 야곱의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어려움과 시련 속에서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 속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것이 축복일 것이다. 복음의 시작은 회개다. 이게 야곱이었고, 야곱의 하나님을 부르짖는 다윗이다. 우리도 부숴져서 스스로 의지할 수 있는 것이 없어질 때, 오직 십자가의 그리스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 때 하나님은 예수 속으로 들어온 자를 거듭나게 하신다.

베드로는 삼년을 예수님과 함께 했지만 십자가의 예수를 외면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왜 몰랐는가? 마치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 처럼 자신은 하나님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의 하나님, 죽어야 하는 예수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십자가의 예수 속에 있지 않으면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다. 아는 것은 하나가 되는 일이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예수께서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하나가 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도 죽은 예수와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

죽은 예수와 하나가 되지 않는다면, 베드로처럼 다 예수를 버리는 자가 될 것이다. 죽은 예수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부인의 회개없이는 불가능하다. 우리도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하나가 될 때, 2000년전의 사건이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우리의 내면에 쳐진 휘장이 찟어지는 것이다. 성전의 휘장이 찟어진 것처럼 우리의 마음을 둘러싸고 있는 휘장이 찟어져서 옛사람()은 사라지고 새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얻는 것이다. 비로소 이때 우리도 신약시대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비록 현대를 살고 있지만 여전히 구약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신약시대에 들어가야만 예수님의 새언약이 적용된다. 우리가 구약시대의 율법에 사로 잡혀있다면, 예수님의 새언약을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게 된다. 새언약이 신약이라는 뜻이다. 새언약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순간 부터다. 예수 안으로 들어가는 자만 신약 속으로 들어가는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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