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의 심판과 족보에 나오는 하나님의 은혜
창세기 11장 10-32절『셈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셈은 백 세 곧 홍수 후 이 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족보는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법적 왕통으로서,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혈통적 왕통이, 창세기 5장에서는 죄로 인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이어가는 형상적 왕통으로, 위의 세가지 족보를
창세기 11장으로 연결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 족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어떻게 이루어
가시는가를 보여주신다. 11장 10절에서『셈의 족보(히브리어 톨레도트:헬라어 게네시스)는
이러하니라 셈은 백 세 곧 홍수 후 이 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셈의 자손 중에는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도 있지만,
구원받은 자에 대한 이야기를 족보를 통하여 표현하는 것이 톨레도트다. 창세기 2장 4절에서『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내력이 톨레도트다. 2장 5절부터
아담과 하와의 창조이야기가 등장하고 가인과 아벨, 이후의 자손들이 등장한다. 이 이야기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를 떠난 자들의 모습들이 이어지면서 하나님의 구속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설명하시는
것이다.
원래 그리스도 안에 있던 자들인데, 그리스도를 떠나 스스로 의를 이루어보겠다는 자들을
어떻게 다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하나님 나라로 복귀하게 될 것인가를 족보라는 그림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창세기 5장 1절에서
다시 톨레도트가 등장한다.『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죽었더라, 죽었더라』로 연결된다. 그리고 이것이
창세기 10장으로 이어진다. 10장 1절에서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그리고 11장 10절에서 셈의 후예로 이어진다. 톨레도트(게네시스)는
영어로 generation으로 마태복음 1장 1절로 연결된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역으로 올라가면 다윗과 아브라함과 하나님으로 연결된다. 이 복잡한 계보를 통해서 하나님의
선택된(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로
분명히 구분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계획 속에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로 부터 이탈되어 스스로 의를 이루어보겠다는 자들 간의 보이지 않는 함수관계가 있는 것이다. 이 함수관계 속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나고자 하는 자들 가운데 역사하셔서,
구원의 은혜를 베풀고 있으시다는 것이다. 10장 21절에서『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에벨은 셈의 아들이 아니다. 에벨은
노아의 4대 손이고, 셈의 3대 손이다. 왜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라고 했는가? 에벨(히브리어 헤벨)은『건너가
다른쪽에 이주하는 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 헤벨이 시간이 흐르면서 『히브리』로 변형되었다. 하나님의 선택과 요구로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서 다른 쪽에 있는 지역, 가나안으로
이주한 히브리 사람들의 조상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바벨탑 사건 이후 어지러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이미 정하고 계신 것이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비록 이 세상에 나그네로 살지만, 세상의 강을 건너 하나님 나라로 이주하는 자인 것이다. 그것이 에벨(헤벨), 히브리, 이스라엘, 영적인 교회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죽어야만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을 특별히 택하여 생명으로 이주시켜 주시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이 땅에서 미리 죽음을 경험하게 하신다. 그
죽음은 옛사람의 죽음이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의 죽음인 것이다.
10장은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로 구성되어 있지만, 11장에는 셈의 후예들에 대한 족보가 반복된다. 창세기 10장 25절에서『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이 족보 이후에 바벨탑 사건이 등장하는데,
즉 바벨탑 사건은 벨렉과 욕단의 후예들이 일으킨 사건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세상이 나뉘었음이요』이
말은 히브리어 원어(파래그)로 볼 때,『강한 압력으로 쪼개지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 단어의 명사가 바로
벨렉이다. 벨렉 때 세상(에렛츠:땅)이 나뉘어졌는데, 그
때 땅이 큰 압력에 의해 나뉘어졌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세상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땅도 지각변동을 일으켜 나뉘게 하셨다는 의미로 받아드려진다.
벨렉은 노아의 아들인 셈의 4대
손이다. 노아의 홍수가 끝난 뒤에 불과 100년 정도 뒤에
인간들이 바벨탑을 쌓았다는 것이다. 노아는 홍수 뒤에도 350년을
더 살았으며, 950세에 죽었다. 셈도 98세에 방주에서 나와서 100세에 첫 아들을 낳고 500년을 더 살다가 죽었다. 노아와 셈의 손자 손녀들이 바벨탑을
쌓고 있을 때는 홍수를 직접 경험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무지개 언약을 받았던 노아와 셈이 살아있을 때라는 것이다. 노아의
셈 앞에서 후손들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바벨탑을 쌓은 것이다.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들을
세상에 보내시어, 그들이 하는대로 놔두므로, 모두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행동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욕망이 잠재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그들 속에 들어가서 가인과 아벨과 같이 되고, 셋과 에노스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핍박하는 이스라엘로 이어지며,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그래서 이와 같은 모습이 11장에서
족보로 보여주신다. 11장에서는 에벨의 족보가 등장한다. 11장
16-26절에서 『에벨은 삼십사 세에 벨렉을 낳았고 벨렉을 낳은 후에 사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벨렉은 삼십 세에 르우를 낳았고 르우를
낳은 후에 이백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르우는 삼십이 세에 스룩을 낳았고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하나님은
바벨탑을 쌓고 온 지면으로 흩어버린 자들 중에서 다시 또 한 사람을 택하신다. 우리는 두 족보를 통해서
하나님은 심판하심과 다시 은혜를 베푸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출애굽 후 이스라엘의 긴 역사 속에서, 사사시대, 대제사장 시대, 왕족시대, 이스라엘 멸망 후 피지배 속에서의 상황을 살펴보면, 심판과 은혜가
계속 반복되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양을 하나도 떨어지지 않고, 다 건져내려고 하시는 것이다.
데라와 아브라함의 모습은 어둠 속에서 여명의 빛줄기와 같은 모습을 한다. 데라는 월신
우상숭배자였다. 아브라함도 죽어야 할 그런 존재이었지만 하나님이 찾아가셔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천문학자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의 아버지가 믿는 월신
숭배에서 그는 천문학을 통해서 많은 것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강하게 알고
싶어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어느날 아브라함에게 찾아가신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인간이 왜,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를 상고하는 자를 찾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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