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갈라디아서 2장 11-19절)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게바는 베드로다. 책망받을 일이 무엇이었는가? 유대인들이 이방인에 대하여 가지는 생각이 있었고, 이방인들도 유대인들에 대해서 가지는 생각이 있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신명기(7장 1-4절) 에서 말씀한 내용을 근거로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이고, 죄인들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방인들을 항상 죄인들로 생각했다.
베드로가 환상을 보았는데, 하늘에서 보자기가 내려오는데, 부정한 동믈들이 있었다. 하늘에서 이것을 먹으라고 하니, 베드로는 부정한 음식이므로 먹지 않겠다고 하자, 하나님이『내가 깨끗하다고 한 것을 네가 왜 부정하다고 하느냐』라고 하시면서, 고넬료를 만나게 하셨다. 그리고 고넬료를 통해서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해져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넬료는 이방인으로서 복음을 알지 못했다. 하나님이 고넬료에게 나타나셔서 베드로로부터 복음을 들으라고 말씀하셨다.
사도행전 10장 28절에서 베드로는『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라고 말하면서 자기가 여기에 왔다고 설명한다.
성령께서 역사하시어 고넬료와 그 집안이 구원을 받게 되었다. 이런 일이 있고 난 후에 베드로가 유대인들과 함께 대화하는 가운데, 유대인들에게 책을 잡히게 되었는데, 사도행전 11장 3절에서『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베드로가 고넬료 집에 가소 함께 식사했다는 것을 책잡는 것이다. 베드로가 고넬료 집에 간 목적은 하나님께서 이방인인 고넬료에게 은총을 주셨으므로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갔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안디옥 교회도 할례의 문제가 대두되어서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로 와서 베드로와 이 문제를 놓고 상의를 했다. 그래서 많은 변론이 있었다. 베드로가 이방인의 구원에 대해서 완전하게 알게되었다. 그런데, 베드로가 안디옥에 있을 때, 있었던 일에 대해서 바울이 책망을 하는 것이다.『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안디옥은 이방교회다. 베드로가 이방교회인 안디옥 교회에 온 것은 이방인들과 교제하고 한 형제들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왔을 것이다. 베드로가 이방인 성도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데, 예루살렘에 있던 야고보로부터 사람(유대인들)이 왔다. 이 유대인들은 할례를 받았던 할례자들이었다. 그런데, 베드로가 무의식적으로 안디옥 교회 이방인들과 떨어져서 자리를 옮긴 것이다.
베드로 주위에 함께 앉아 있던 유대인들도 베드로와 같이 안디옥 이방인들로부터 떨어져서 앉게 된 것이다. 사도바울의 동역자인 바나바 역시 베드로 곁으로 간 것이다. 바울이 보기에 잠깐 이었지만 베드로가 복음에서 율법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인식한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책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사도바울의 책망에 대해서 베드로는 한마디도 대꾸하지 못했다.
사도바울이 베드로에게 책망한 것을 바탕으로 갈라디아 교회에 말하고 있는 것이다.『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모든 인간이 죄인임을 나타낸다. 죄인은 율법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로마서 3장 9-10절에서『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것이다. 의롭게 되는 것은 죄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떤 일을 열심히하고, 거룩해지려고 노력해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죄로부터 벗어나기 때문에 의롭게 인정해주시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죄를 지은 사람이 재판을 받지 않고 죄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죽은 경우에 해당한다. 죄를 지은 사람이 갑자기 죽으버리면 검사가 공소하지 않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죽은 자에 대해서는 죄를 묻지 않는 것이다. 로마서 6장 6-7절에서『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율법을 지키므로서 의를 이루어보겠다는 것은 자기의 의를 나타내려고 하는 행위다. 그래서 하나님은 율법 아래 있는 자를 결코 용서하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예수와 함께 죽은 자의 죄를 묻지 않으신다. 로마서 8장 1-2절에서『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오늘날도 이단과 잘못된 믿음을 가진 자가 생기는 이유는 로마서 8장 1절을 잘못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단은 완전히 죄가 없어졌으므로 의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죄가 그대로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으므로, 하나님이 공소하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잘못된 믿음이 생가는 이유는 하나님이 예수와 함께 죽은 자를 공소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계속 자기가 날마다 죄를 짓는 죄인이라고 우기는 것이다. 이런 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예수와 함께 죽지 않은 자로 바라보신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이 법(율법)으로 공소하시고 심판하시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날마다 죄를 범하므로 회개하여, 예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전 생애에 걸쳐서 지은 모든 죄악을 율법에 따라 한 조항, 한 조항 철저히 따져서 심판하실 것이다. 자기의 의를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예수와 함께 죽어서 공소권 없는 자가 될 것인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율법을 폐지했는데, 다시 율법적으로 신앙생활한다면 범법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율법에 대해서 죽었다. 예수님이 율법에 대해서 죽었으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의롭게 봐주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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