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3장 7-10절
וַתִּפָּקַ֨חְנָה֙ עֵינֵ֣י שְׁנֵיהֶ֔ם וַיֵּ֣דְע֔וּ כִּ֥י עֵֽירֻמִּ֖ם הֵ֑ם וַֽיִּתְפְּרוּ֙ עֲלֵ֣ה תְאֵנָ֔ה וַיַּעֲשׂ֥וּ לָהֶ֖ם חֲגֹרֹֽת׃
וַֽיִּשְׁמְע֞וּ אֶת־קֹ֨ול יְהוָ֧ה אֱלֹהִ֛ים מִתְהַלֵּ֥ךְ בַּגָּ֖ן לְר֣וּחַ הַיֹּ֑ום וַיִּתְחַבֵּ֨א הָֽאָדָ֜ם וְאִשְׁתֹּ֗ו מִפְּנֵי֙ יְהוָ֣ה אֱלֹהִ֔ים בְּתֹ֖וךְ עֵ֥ץ הַגָּֽן׃
וַיִּקְרָ֛א יְהוָ֥ה אֱלֹהִ֖ים אֶל־הָֽאָדָ֑ם וַיֹּ֥אמֶר לֹ֖ו אַיֶּֽכָּה׃
וַיֹּ֕אמֶר אֶת־קֹלְךָ֥ שָׁמַ֖עְתִּי בַּגָּ֑ן וָאִירָ֛א כִּֽי־עֵירֹ֥ם אָנֹ֖כִי וָאֵחָבֵֽא׃
왓티파카흐나(이에~밝다) 에네(눈이) 쉐네헴(그들의) 와예데우(알고) 키(줄을) 엘룸밈(몸이 벗은) 헴(자기들의) 와이트패루(엮어) 아레(잎을) 테에나(무화과나무) 와야아수(하였더라) 라헴(그들을 위하여) 하고로트(치마를) 와이시메우(그들이
듣고) 엩(격조사) 콜(음성을) 야훼 엘로힘 미트할레크(거니시는) 바간(정원에) 레루아흐(서늘할 때) 하욤(날이) 와이트하베(숨은지라) 하아담
웨이쉬토(그 아내가) 미페네(낯을 피하여) 야훼 엘로힘 웨토크(사이에) 에츠(나무) 학간(정원) 바이크라(부르시며) 야훼 엘로힘 에트(목적격 전치사)
하아담 와요메르(이르시되) 로(그에게) 아예카(네가 어디
있으냐) 와요메르(가로되)
에트 코레카(하나님의 소리를) 솨마티(내가 듣고) 바간(정원에서) 와이라(두려워하여) 키(~였으므로) 에롬(벗었) 아노키(내가) 와에하베(숨었나이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개역개정)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 나무 잎을 띠로 엮었더라 그들이 그 날 성령이 오실 때 정원 안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정원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정원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수정안)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이에』라는 말은 육체를 입으므로 영이 하나님을 떠난 것을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영의
눈이 감겨져 버린 것이다. 그래서 육의 눈(자기의 의)이 밝아진 것이다.『자기들이 벗은 줄 알고』아담이 육체적 알몸이라는
것 때문이 아니라, 영적으로 하나님을 벗어난 것 때문에 두려운(부끄러운) 상태가 된 것이다. 일종의 죄의식 상태가 된 것이다. 선악을 알게하는 지식으로 나무를 바라보니 자기 속의 죄가 떠오르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통해서 죄를 발견하라는 것이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치마라는 말이 없다. 무화과나무 잎을
엮었다는 말은 벌거벗은 수치를 면하게 하는 것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죄의 수치를 면하게 하려는 모습이다. 인간은 혼이라는 옷을 입고 있는데, 이 옷은 영을 죽이는 역할을
한다. 그 이유는 탐욕이라는 죄로 오염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옷을 벗고 의의 옷으로 갈아입어야 하는 것이다. 육의 몸이 죽고 하늘로부터 새로운 옷(의의 옷)으로 갈아입어야만 하는 것이다. 의의 옷을 입지 않으면 벌거벗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무화과 나무의
띠는 자기가 엮은 자기의 의를 의미한다. 이사야 64장 6절에서『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그러나 의의 옷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이사야 61장 10절에서『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의의 옷은 인간이 스스로 입는 옷이 아니라 하나님이 입혀주시는 옷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신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율법은 바리새인들이 가진
율법주의로서 하나님의 계명이 아닌 사람의 계명이 되며, 장로들의 유전,
교회의 전통을 만들어서 자기의 의를 세우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창세기 3장 9-10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떠났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자기의 의를 통해서 두려움을 극복하려고 한 것이다. 인간의 후손들은 하나님을 떠난 사실을 망각한채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죄악 속으로 빠져들었다. 하나님을 벗어난 것 때문에 두려운(부끄러운) 상태가 되므로, 인간은 우상을 만들기도 하고, 스스로 신적인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강하게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영이 흙속에 들어가
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세상에 태어난 인간은 죄가 무엇인지 몰랐다. 죄는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을 떠난 것을 모르기 때문에 죄를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첫사람은 육의 몸으로 모든 영들을 세상에 데려와 죄인들이 되었으며, 마지막 아담은 영의
몸으로 택한 자의 영들을 데려가 의인들이 되게 하셨다. 첫사람 아담(죄인)과 마지막 사람 아담(의인) 사이에는
죽음이라는 것이 있다. 인간의 죽음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육체적 죽음이다. 그러나 마지막 사람 아담의 죽음은 육체적 죽음과 동시에 죄의 죽음이다. 그래서
마지막 아담의 죽음에 연합되는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도 죄의 죽음이 발생한다. 죄인들이 의인이
되기 위해서는 죄의 죽음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들을 첫사람 아담이 데려와서
(죄가 죽고), 마지막 아담이 모든 영들을 데려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은 죄가 죽어야만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대속의 죽음을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는 그들도 죄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는 예수님과 함께 죽은 자가 되는 것이다. 죽지
않으면 죄가 그대로 있다. 로마서 6장 7절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치마라는 말은 보호용 허리 띠를 말한다. 허리띠를
무화과 나무 잎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에베소서 6장 14절에서『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에서 허리띠는 진리의 말씀이다. 무화과 나무는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을 말한다. 율법을 통해서 진리를
발견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진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결국 자기의 의를 의존하는 결과가 되는 것을 말한다. 에덴의 동산(이
땅)에서 범죄한 인간들이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두려움을 깨닫고, 회개하여
하나님께 나가야 했는데, 그들은 (자기의 의) 속에 숨어버린 것이다. 자기의 의는 합리화시키며, 결국 하나님 말씀을 떠나게 하는 것이다.
무화과나무의 잎에 대해서
살펴보면, 예수님이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신 일이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율법을 주셨으며, 그 가운데서 열매가
맺혔어야 하는데, 열매가 없었으므로 저주하신 것이다. 그
열매는 율법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이스라엘은 율법에 갇혀있었던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 23절에서『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열심히 지키려고 하다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회개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므로 율법이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지 못한 것이다. 3장 24절에서『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믿음은 그리스도로 인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인간이『하나님을 믿는다』라고 생각하고 말한다고 해서 믿음이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만이 하나님이 믿음을 주신다.
무화과 나무의 잎 하나
하나는 율법의 한 조항 한 조항들이다. 무화과 잎을 엮듯이 율법을 통해서 벌거벗은 것을 알게해 주겠다는
말씀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을 떠난 존재(죄인)라는 것을 알게 해 주시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이라는 것을 알지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은 것은 그들에게 율법이 주어졌음에도, 그들은 죄를 깨닫지 못하고,
자기의 의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시고『너로 인하여 큰 민족을 이루고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았으므로 하나님이 야곱을
이스라엘이라고 이름 붙여주셨다. 그리고 야곱의 아들, 요셉으로
인해서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거처를 옮기고, 430년 만에 출애굽해서 다시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 때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에서 지켜야 할 율법을 주신 것이다. 그런데,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였을 때, 장래의 일을 하나님이 약속을 하셨는가? 창세기 3장 7절을 통해서 하셨는가?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성경의 흐름을 통해서 볼때,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하시고 싶은 것은 너희들은 죄가 무엇인지를
모른다 라는 것이다. 죄는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다. 하나님
나라를 떠나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죄라는 것이다. 죄의 결과가 어떤 것인 것 심판을 통해서 알게 해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죄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민족을 택해서 율법을 주고 언약을 세워서 죄를 깨닫게 해주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세기 3장 15절에서『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라고 최초로 언약을 하시고, 노아의 홍수로 인간들을 심판하시고, 무지개 언약을 하셨다. 물로는 심판하지 않겠지만, 다른 심판이 있음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언약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이스라엘을 언약 백성이 되게하셨으며, 그 증표로서 율법을 주신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난 것을 알지 못했으며, 결국 자기의 의에
빠져버렸으며, 여러 차례 이스라엘은 심판을 받고, 멸망에
멸망을 거듭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서 이제는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신 것이다. 이방인들도 하나님을 떠난 사실을 깨닫고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죄는 이 세상에서 지은
죄도 있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을 떠난 죄를 말한다. 그래서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므로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겠다 라든가. 우상을 통해서 사탄을 섬겨, 사탄과
하나가 되려는 것이다.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그 날의 날은 첫째날, 둘째 날과 같은 날(욤)이다. 욤이란 말은『날, 기간, 때』라는
의미를 갖는다. 바람이 불때는 히브리어로 『루아흐』다. 즉
『루아흐』라는 히브리어는 바람, 숨쉬다(호흡), 불다, 영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창세기 1장 2절에서『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여기에서 영은 루아흐다. 창세기 1장 2절에서는 영으로 번역하고,
3장 8절에서는 바람이 불 때로 번역되어 있다. 그래서『그
날 바람이 불때』라는 말은『성령이 오실 때에』라고 번역이 되었어야 한다.
르루아흐 하이욤(לְר֣וּחַ הַיֹּ֑ום )은 『여호와의 날』이다. 이사야 2장 12절에서『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리니
그들이 낮아지리라』이사야 13장 6절에서『너희는 애곡할지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니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여호와의 날은 심판과 관계가 깊다. 에스겔
30장 3절에서『그 날이 가깝도다 여호와의 날이 가깝도다
구름의 날일 것이요 여러 나라들의 때이리로다』구약성경에서 여호와의 날은 신약성경에서는 주의 날로 되어있다.
여호와(히브리어
야훼)가 헬라어 큐리어스(히브리어 아도나이)로 번역되었다.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아도나이라고 불렀으며, 기록할 때는 공란으로 두었다가 70인경을 만들 때 YHWH로 표기했다. 알렉산드리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YHWH에 Adonai에서 모음 a와 ai를 YHWH에 붙여
YHaWHai로 만들고 그래서 야훼라고 부른 것이다. 한글 개역개정에서 이를 여호와로 번역했으나, 신약성경의 큐리어스는 영어성경을 따르다 보니 주라고 번역하여 여호와(구약)와 주(신약)라는 두가지
표기가 혼용되게 된 것이다.
한글 개역개정은 여호와와 주를 혼용해서 번역하므로서
독자들이 혼란스러워 한다. 히브리어로 보자면 같은 야훼인데, 어떤
곳은 여호와, 어떤 곳은 주 라고 번역한 것이다. 신약성경은
헬라어로 되어있다. 헬라어 큐리어스가 히브리어 야훼와 같은 분이다. 큐리어스를
번역할 때 여호와로 번역해야 했는데, 영어 성경을 따라 번역하므로 영어 성경에 큐리어스를 LORD 또는 Lord로 번역했고,
개역개정에서 이를 따라 주로 번역한 것이다. 사도행전 2장
20절에서 ὁ ἥλιος
μεταστραφήσεται
εἰς σκότος καὶ ἡ σελήνη εἰς αἷμα, πρὶν ἐλθεῖν ἡμέραν κυρίου τὴν
μεγάλην καὶ ἐπιφανῆ.『주(Lord)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사도행전 2장 34-36절을 보면 οὐ γὰρ Δαυὶδ ἀνέβη εἰς τοὺς οὐρανούς, λέγει δὲ αὐτός· εἶπεν [ὁ] κύριος τῷ κυρίῳ μου· κάθου ἐκ δεξιῶν μου,ἕως ἂν θῶ τοὺς ἐχθρούς σου ὑποπόδιον τῶν ποδῶν σου.ἀσφαλῶς οὖν γινωσκέτω πᾶς οἶκος Ἰσραὴλ ὅτι καὶ κύριον αὐτὸν καὶ χριστὸν ἐποίησεν ὁ θεός, τοῦτον τὸν Ἰησοῦν ὃν ὑμεῖς ἐσταυρώσατε.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퀴리오스 κύριος) 내 주(토 퀴리오 τῷ κυρίῳ)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개역개정)
퀴리오스(κύριος)는 성부 하나님, 토 퀴리오 (τῷ κυρίῳ)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주는 성부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같은 표현을 하고 있다.『주와 그리스도』에서
영어성경(kjv)에서는 주는 LORD로, 예수님을 의미하는 주는 Lord로 표기되어 있다. 그런데, niv성경에서는 둘다 Lord로
표기되었다.
그런데, 시편 110편 1절에서『여호와(יְהוָ֨ה׀)께서 내
주(לַֽאדֹנִ֗י)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לְדָוִ֗ד מִ֫זְמֹ֥ור נְאֻ֤ם יְהוָ֨ה׀ לַֽאדֹנִ֗י שֵׁ֥ב לִֽימִינִ֑י עַד־אָשִׁ֥ית אֹ֝יְבֶ֗יךָ הֲדֹ֣ם לְרַגְלֶֽיךָ׃
구약성경 시편에서는 신약성경 사도행전 2장
34절에서 말하는 주를 라도니(לַֽאדֹנִ֗י 아도나이)로 표기한 것이다. 시편 110편 1절의
앞부분에 있는 여호와(야훼)와 라도니(아도나이)는 원래 아도나이인 것이다.
이름 표기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여러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사도행전 2장 34절의 경우 영어성경(niv)에서는
여호와를 주(Lord)로, 그리스도도 역시 주(Lord)로
표기하여 혼란스럽게 한 것이다. 그런데, 킹제임스 번역에서는
여호와를 주(LORD), 그리스도를 주(Lord)로 표기하여
차이를 두고 있다. 한글 개역개정은 왜 헬라어를 직역하지 못하고 영어성경을 번역하여 혼란을 주고 있는
것인가?
성경 기록에 공란으로 되어 있던 것을 후대에 표기하는 과정에서 여호와와
아도나이로 구분했던 것이고, 같은 분이다. 히브리인들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이름을 아도나이라고 불렀다. 야훼라는 이름은 70인경
이후에 이름 붙여진 것으로 여겨진다.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거니시는 하나님은 임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의미다. 그래서『하나님이 나타나시는 소리를 듣고』라는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 직접 나타나시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출애굽기 19장 18절에서『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하나님이 나타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서 떨었다. 그래서 백성들은 모세에게 자기들을 대신해서 하나님을 만나라고 요청했다.『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부끄러워서 숨은 것이 아니라 두려우신
하나님으로 인해서 숨은 것이다.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듣는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묵상하고 자신의 상태를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벗었다는
것은 영의 몸을 벗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자가 되었으므로 하나님이 두려운 것이다. 하나님이 왜 아담 앞에 나타나셨는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타나신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을 떠난 자, 곧 하나님
백성이 아니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므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고
출애굽시켜주시고, 드디어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려고 두려우신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이다. 하나님은 아담과 그의 아내에게 창세기 3장 15절에서 언약을 맺으신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그리고 하나님이
하나님을 떠난 지체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서 일어난 일을 3장 11-14절에서
일깨워주고 있다.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동산 나무는 하나밖에 없었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다. 그러나 그 속에 생명나무가 숨어있는 것처럼
되어 있다. 『사이에』 라는 말은 『가운데』라는 말이다. 창세기 1장 6절에서『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여기에서도『가운데』하는 표현이 있다.『숨었다』라는 것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 뒤에 숨었다』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숨었다』라는 것은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즉 하나님 나라에서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았던 영들이『자기의 의』를 나타내고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다는 것이다. 에덴동산의 일을 통하여 하나님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있었던 영이 영의 몸을 벗고, 육의
몸을 입으면 영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잊어버린다. 그래서 영이 죽었다 라고 표현한다. 하나님이 창세기 1-3장에서 아담과 그의 아내에게 하시는 말씀은
벌거벗었는데, 그 벌거벗은 이유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자기의
의)를 먹고, 육신을 입었기 때문인데, 그 사실을 모른다 라는 것이다. 인간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자 말자, 하나님 나라를 떠난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 뒤에 숨어있는 그들에게,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의지하지 말고, 회개하여 돌아서서 생명나무의
열매를 찾아서 먹으면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주셨는데,
오히려 백성들은 율법 뒤에 숨어버렸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율법을 통해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장차 오실 그리스도(생명나무)를 발견하여 먹으라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하나님이 아담이 어디에 숨었는지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숨어있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나타내려고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영들이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은 것은 사탄의 미혹에 의한 자기의 의를
나타내려고 한 것이다. 결국 하나님이 미혹의 당사자가 사탄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3장 11-13절에서『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나님이 에덴의 동산(이 땅에서의 동산)에서 벌어진 일을 통해서 인간(아담)에게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의도는 네가 하나님 나라를 떠난 것을 알지 못하지만, 사탄의 미혹을 받아서 결국
물질세계로 왔으며, 그러나 자기의
의를 이루려고 하지만, 그것을 포기하고,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어야만 하나님의 의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설명을 마치시고, 아담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옷을 입혀주셔서, 하나님의 의를 얻게 하셨다. 가죽옷은 동물의 희생제사를 통해서 아담과 하와가 가진『자기의 의』가 죽으므로,
다시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은
죄인들이 생각하는 자기의 의가 죽는 것이다. 예수님이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씀은 곧 자기의 의를 말한다. 자기의 주인됨을 내려 놓아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에덴의 동산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은 세상에 있는 모든 인간들에게 하시는 말씀과
동일하게 적용된다.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 나라로부터 떠나 이 세상에 갇혀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갇혀있으므로 모든 인간들이 죄인들이라는 것이다. 죄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 심판받을 수 밖에 없다. 오직 생명나무를 발견하는 자만 하나님께서 믿음을 선물로 주신다. 그렇지 않은 자는 모두 갈라디아서 3장 23-24절에서 처럼 갇힌 자라는 것이다.『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그러나 율법을 통해서, 율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그리스도를 발견하면, 하나님이 생명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와 더불어 언약을 맺으셨다. 그리고 창세기 15장 18절에서『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다. 창세기 24장 8절에서『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하나님은 회개하는 모든 민족에게 새언약을 맺으신다.
누가복음 22장 20절에서『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예수와 함께 죽는 자가 새언약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영의 몸을 벗고 하나님을
떠나므로 하나님이 두려운 것이다. 창세기 3장 7절에서『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하나님 나라에서
눈이 밝아져(자기의 의에 눈을 뜨므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떠나고자 하므로 두려워하는 것이다. 왜 자기의 의에 눈을 뜨게 되었는가?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의의 옷을 벗었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는 아담이 벗었으므로(영의 몸을 벗고 육의 몸을 입음으로) 무화과나무(이스라엘을 상징)의 잎(율법)을 엮어서, 율법을 잘 지켜서 하나님이 주시는 의에 이르게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치마로 삼았더라』라는 하나님이 율법을 허리에 차도록 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율법을 통해서 죄를 깨닫도록 해주셨는데, 창세기 4장부터 인간은 결국 깨닫지 못하고 온갖 죄악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나타나신 것은『너는 나를 떠났다』라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이 나타나시므로 두려워서 숨은 것은 벗은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떠난 존재들은 하나님이 두려운 것이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것을 알려주시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의 옷을 벗고, 스스로 의에 이르려고 하는 인간들에게 자기의 의를 통해서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것이 죄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이다. 곧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자가 하나님을 벗어나
스스로의 힘으로 완전하게 되어 보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완전하게 되어 보겠다고 하는 영들을
물질세계에 보내어 스스로 의를 이루어보라고 하신 것이다. 그런데, 에덴의
동산(이 땅)에서 인간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것과 동일하게
뱀에게 미혹당하므로, 하나님이 육체를 가진 인간에게 나타나실때,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알려주시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결코 스스로 하나님처럼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해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해보다가 안된다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 온 영들은 하나님 나라에 자기의 처소가 있는데, 다
벗고, 이 세상에 와서 흙으로 된 육신의 장막을 입었다. 다시
돌아가면 하나님 나라의 옷(장막)을 입을 것이다. 이것이 거듭남이고, 부활이다. 그런데, 계속 스스로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돌아갈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영들이 이 땅에 와서 살다가,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이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계획하셨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나타나시는
것은 이것을 설명해주시는 것인데, 그들은 오히려 두려워서 숨어버렸다.
숨은 것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의를 이루어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표현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불 가운데 나타나시매, 두려워서
떨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셔서, 그
율법을 통해서 죄인됨을 깨닫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돌아오기를 원하셨는데, 백성들은 두려워서 떨었을 뿐만 아니라, 모세가 내려오기를 더디하자, 스스로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하나님으로 여기고 우상숭배한 것이다. 백성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떠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 백성이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계속 돌이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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