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방주

6 14-16

עֲשֵׂ֤ה לְךָ֙ תֵּבַ֣ת עֲצֵי־גֹ֔פֶר קִנִּ֖ים תַּֽעֲשֶׂ֣ה אֶת־הַתֵּבָ֑ה וְכָֽפַרְתָּ֥ אֹתָ֛הּ מִבַּ֥יִת וּמִח֖וּץ בַּכֹּֽפֶר׃

וְזֶ֕ה אֲשֶׁ֥ר תַּֽעֲשֶׂ֖ה אֹתָ֑הּ שְׁלֹ֧שׁ מֵאֹ֣ות אַמָּ֗ה אֹ֚רֶךְ הַתֵּבָ֔ה חֲמִשִּׁ֤ים אַמָּה֙ רָחְבָּ֔הּ וּשְׁלֹשִׁ֥ים אַמָּ֖ה קֹומָתָֽהּ׃

צֹ֣הַר׀ תַּֽעֲשֶׂ֣ה לַתֵּבָ֗ה וְאֶל־אַמָּה֙ תְּכַלֶ֣נָּה מִלְמַ֔עְלָה וּפֶ֥תַח הַתֵּבָ֖ה בְּצִדָּ֣הּ תָּשִׂ֑ים תַּחְתִּיִּ֛ם שְׁנִיִּ֥ם וּשְׁלִשִׁ֖ים תַּֽעֲשֶֽׂהָ׃

아쉐(만들라) 레카(너를 위하여) 테바트(방주) 아체(나무) 고페르 킨님(칸들) 타아쉐(만들라) 에트(~안에) 핱테바(방주) 웨카파르타(칠하고) 오타(그것) 미바이트(안에) 우미훗츠(밖에) 바코페르(역청으로) 웨제(이것은) 아세르(관계사) 타아쉐(만들 것이라) 오타(그것) 쉐로쉬() 메오트() 암마(큐빗) 오렉(길이) 핫테바(방주의) 하미쉼(오십) 암마(큐빗) 라흐바(길이) 우쉐로쉼(삼십) 암마(큐빗) 코마타흐(너비) 초하르(창문) 타아쉐(만들라) 라테바(거기에) 웨엘(~) 암마(큐빗) 테칼렌나(완성할지니라) 밀마엘라(위로 부터) 우페타흐(문을) 하테바(방주의) 베치다흐(그 옆으로) 타심(내고) 타흐티임(가장 아래) 쉐니임(두번째) 우쉐리심(세번째) 타아쉐하(만들지니라)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개역개정)

『너는 고페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가장 아래층, 두번째층, 세번째층으로 할지니라』(수정안)

요한복음 317절『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이 말씀과 창세기 6장 과는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창세기 6장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떻게 구원하시는지를 잘 이해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심판을 위한 분이 아니라 구원의 하나님이신 것이다.

『아쉐(만들라) 레카(너를 위하여) 테바트(기본형:테바 8392방주) 아체(나무) 고페르』 8392년은 아마 외래어 파생어;‘상자’:-방주, 상자로 표현되었다. 방주는 네모난 상자모형의 배다. 방주를 영어로 표현할 때, Ark라고 한다. Ark가 쓰여진 단어들이 모세의 갈대상자와 노아의 방주 그리고 여호와의 언약궤( the ark of the covenant of the LORD )이다. 방주는 출애굽기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방주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출애굽기에서 모세를 보호하는 장치가 갈대상자(방주)이다. 모세는 물에서 건져내심을 받은 자라는 의미다. 결국 모세는 이스라엘을 물에서 건져내는 자로 부름을 받는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이유는 물에서 건지는 자로 부름을 받는 것이다. 노아는 모세의 예표가 되는 것이다.

방주는 고페르나무(잣나무:백향목)로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다. 고페르(1613)는 아마‘유숙하다’라는 뜻의 사용하지 않는 어근에서 유래; (건축에 샤용하는) 나무, 또는 목재의종류, 백향목 인듯함

웨카파르타(וְכָֽפַרְתָּ֥ 기본형 카파르, 칠하다: 3722)는 동사이고, 고페르(גֹ֔פֶר방주)은 명사이다. 바코페르(בַּכֹּֽפֶר 기본형은 코페르, 역청 3724)도 명사이다. 카파르, 코페르, 코페르 세 단어가 등장하므로 혼란스럽다. 고페르(방주)를 규정할 수 있는 단어가 코페르(역청)이다.

3724(역청)를 보면, 3722에서 유래; 본래 의미는‘덮개’,(문자적으로) 마을(안으로‘둘린’것으로서);(특히)‘역청’(‘칠하기’위해서 사용된 것으로)과‘해나’식물(염색하는데 사용되는 것으로); 상징적으로‘속전’:- 뇌물, 역청, 몸값, 속전, 만족, 총액, 마을이다. 여기에서 덮개와 속전이 중요한 단어로 등장한다. 3725 키푸르 {kip-poor'} 3722에서 유래;‘속죄’(복수로만); 구원

3722는 기본어근;(특히 역청으로)‘덮다’ 상징적으로‘속죄하다’, 또는‘용서하다’,‘달래다’, 또는‘지워버리다’:- 가라앉히다, 속죄하다, 정결케 하다, 취소하다, 용서하다, 자비롭다, 진정시키다, 칠하다, 정하게하다, 제거하다, 화목하다(화목을 이루다), 화목

출애굽기 3012절에서『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조사할 때에 조사 받은 각 사람은 그들을 계수할 때에 자기의 생명의 속전(코페르)을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그것을 계수할 때에 그들 중에 질병이 없게 하려 함이라.』속전은 덮개로 표현된 속죄와 연관된다. 출애굽기 2936절에서『매일 수송아지 하나로 속죄하기(카파르) 위하여 속죄제를 드리며 또 제단을 위하여 속죄하여 깨끗하게 하고 그것에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라』레위기 2327절에서『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욤 키푸르)이니 너희는 성회를 열고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사람이 죄를 범했을 때, 값을 지불하는데, 하나님과 화목을 위해서 소나 양 등 가축을 제물로 드렸다.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일년에 한번 들어가서 법궤를 덮고 있는 시은좌(속죄소:코페르트) 위에 피를 뿌렸다. 죄를 속죄할 때는 피를 뿌림으로 속죄했다. 고페르 코페르 카파르에서 파르 라는 단어가 소를 의미한다. 카프는 손바닥이다. 소에다가 손을 덮으면 죄인의 죄가 소에게 전이(안수)되는 것이다.

대속죄일에 두마리의 염소에게 했다. 하나는 하나님께, 하나는 아사셀을 위한 염소가 되었다. 아사셀 염소는 광야에 보내게 되어, 그 염소는 광야에서 죽는다. 이 장면은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인 것이다. 요한복음 129절에서는『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로마서 325절에서『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힐라스테리온)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헬라스테리온이 카파르와 같은 의미를 갖는 단어다. 히브리서 95절에서도 사용되었다.『그 위에 속죄소(힐라스테리온)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백향목은 히브리어로 고페르, 에레츠, 코페르라는 단어로 사용되어 있고, 백향목은 성전, 언약궤에도 사용되었다.『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역청(코페르)은 고페르(백향목) 나무의 진을 섞어서 만든 것이다.『백향목 나무의 진(고피르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한다. 역청은 몸값 속전이라는 의미가 있다. 즉 백향목 나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역청은 속전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의미한다.『칠하라』라는 히브리어 단어의 의미는『진정시키다, 화해하다, 속죄하다』라는 의미가 있다. 로마서 324절에서『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하나님은 애굽에 갇혀있는 백성들을 출애굽시켜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신 것이 속량에 해당된다. 속량은 피값을 지불한 것이다. 이게 어린양의 피인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들을 물질세계에 가둔 것은 애굽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갇힌 것과 같은 것이다. 요샙(그리스도를 상징)을 통하여 애굽에 들어간 것이나 첫사람 아담(요셉)을 통하여 세상(애굽)에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나 같은 개념이다. 그리고 마지막 아담(여호수아:예수)을 통하여 가나안(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여정은 같은 개념인 것이다. 어린양의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인 것이다. 그래서 방주는 그리스도 안으로 표현된다. 속량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방주 안으로 들어간 자와 같다는 의미다.

역청(코페르)과 관계되는 단어가 있는 부분을 찾아보면 창세기 19 24절에서『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요한계시록 2010절에서『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창세기의 말씀들은 불과 유황으로 표현되어 있다.

창세기 19 24절에서『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여기서 유황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고피르트』(백향목 나무의 진)이다. 백향목 나무의 진은 예수 그리스도가 대속의 죽음으로 흘리는 피를 나타낸다. 그 피와 불이 하늘에서 비같이 내렸다는 것이다. 불은 성령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천지(물질세계)를 만드실 때 물(말씀)과 성령으로 만드셨다. 베드로후서 3 7절에서『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하늘과 땅을 불사르기 위하여는 창조하신 말씀과 동일한 것이다. 즉 창조는 물(말씀)과 성령으로 물질세계를 창조하셨다. 물질세계는 하나님 말씀과 성령에 의해 다시 없어진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2010절에서『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여기에도 유황으로 번역된 단어가『고피르트』(백향목 나무의 진)이다. 불은 마찬가지로 성령을 의미한다. 못은 물이 담겨져 있는 곳으로『고피르트』가 있는 못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된 못을 말한다.

물질세계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창조되고, 말씀과 성령으로 심판받아 사라질 것이다. 여기에 백향목 나무의 진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는 자는 심판받지 아니할 것이다.

이 이야기가 창세기 1장의 이야기가 되며, 요한계시록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의 이야기가 이해되면 종말의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하나님의 심판은 약속의 씨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다. 그리스도와 연합되지 않는 자들은 자기의 의를 내세우는 자들이다.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들은 예수와 함께 죽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자들을 의미한다. 단지 예수라는 이름을 믿는 것은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지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많지만 택하심을 입은 자들은 적다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방주는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 들어가는 것이다. 방주는 그리스도 안이기 때문이다. 방주는 십자가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십자가 속으로 들어가는 자라야 택함을 입은 자라는 이야기다.

사단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없이 하나님처럼 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인간이 자기의 육체를 가지고 열심히 해서 의를 이룰 수 있다 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는 율법과 이러한 상관관계가 있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는 율법을 상징한다. 그 열매는 율법을 지켜서 의를 이루고자 하는 사단이 주는 생각이다. 

하와가 사단의 유혹에 따라 간 것이고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 부터 그 마음에서 생각하고 계획하는 것이 악하다』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을 떠난 것이고 하나님이 없는 세상에 태어나서 항상 자기가 모든 것을 판단하고, 모든 것을 자기 주장대로 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본능 속에 숨어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의 생각대로 하지 못하면 견딜 수가 없게 된 것이다. 항상 자기의 생각을 말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하다는 것이다.

창세기 6장 노아의 홍수 사건을 통해서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지체들이 하나님 없이 스스로 의를 이룰 수 있다 라고 해서 하나님 없는 세상으로 내보내 주었는데, 하나님께 스스로 의를 이룰 수 있다고 한 주장은 다 잊어버리고, 그냥 자기 멋대로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께 자기의 주장을 내세운 영이 인간의 몸에 갇혀버림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일어난 일을 잊어버렸지만 육체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주장대로 하나님 없이 행동하는 결과가 바로 육체적 죄악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이 세상에서 나타나는 육체의 행동은 범죄한 영의 모습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 가족 8명을 남기고 다 심판을 하시고 아브라함을 시작으로 이스라엘을 택하여 새로운 체제로 씨의 약속인 구원을 시작하시는 것이다. 하나님 없으면 모든 것은 심판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신다.

노아의 홍수와 방주를 통해서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그리스도가 물질 세계에 첫사람 아담(사람)으로 내려옴(가장 아래층), 그리고 출애굽과 가나안(마지막 아담 그리스도:둘째 층)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의 여정, 세상에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구원을 얻게 되는 성도들(셋째 층), 이 세가지를 연속적으로 연계하면서 홍수의 사건을 바라보아야 한다. 단지 문자적으로 바라보면 홍수의 사건이 하나님의 심판이고, 경건한 자 여덟명은 방주로 구원받았다는 이야기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대로 잘 살아야지 라는 것으로 귀결된다. 홍수의 사건에서 하나님은 세가지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는 것임을 기억해야만 한다. 셋째 층은 셋째 하늘로을 의미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의 심령 속에 세워진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성경에서는 천국이라는 용어와 하나님 나라가 등장한다. 천국은 마태복음 3 2절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라고 하고, 5 3절에서『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고 말했다. 헬라어를 보면 『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 βασιλεα τν ορανν)』이다. 헤 바실레이아는 왕국이고, 톤 우라논은 문법적으로 관사가 있는 복수 명사로서 성도들의 심령 속으로 들어오는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라고 번역된 것은 사도행전 19 8절에서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라고 되어있다. 헬라어를 보면 『테스 바실레이아 투 데우(τῆς βασιλεας το θεο)』로 되어 있다. 성부 하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 왕국이라는 의미다. 보통 교회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투 데우는 관사(투το)가 있는 것으로 성부를 의미한다. 관사가 없을 때는 성자를 나타낸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이렇게 두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아야만 하는 것이다.

천국이라고 번역된 톤 우라논은 성도의 심령에 성전이 세워지고, 그 성전에 임하시는 호 로고스가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바로 성도의 심령 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셔서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서 호 로고스가 바로 하나님 나라이며, 곧 호 로고스가 성령의 능력으로 다스리는 나라인 것이다. 누가복음 17 20-21절에서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창세기 6 15절에서는『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규빗은 길이를 측정하는 단위로 사용되었지만, 하나님 말씀의 잣대라는 의미도 있다. 삼백에서 삼은 아버지와 아들과 아들을 믿는 성도가 하나님 말씀 안에서 하나가 되어 성취되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열의 열(10)은 성취되는 것을 의미한다. 오십에서 오(5)는 은혜를 상징한다. (4)는 고통과 죽음을 상징하는데, 그것이 끝나면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진다. 그 은혜가 바로 율법이다. 그래서 율법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이 바로 은혜라는 것이다. 삼십(30)도 삼백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도가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의미하는 방주에 들어가는 자들은 아버지와 아들과 하나가 되어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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