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가 육백세라
창세기 7장 6-9절
וְנֹ֕חַ בֶּן־שֵׁ֥שׁ מֵאֹ֖ות שָׁנָ֑ה וְהַמַּבּ֣וּל הָיָ֔ה מַ֖יִם עַל־הָאָֽרֶץ׃
וַיָּ֣בֹא נֹ֗חַ וּ֠בָנָיו וְאִשְׁתֹּ֧ו וּנְשֵֽׁי־בָנָ֛יו אִתֹּ֖ו אֶל־הַתֵּבָ֑ה מִפְּנֵ֖י מֵ֥י הַמַּבּֽוּל׃
מִן־הַבְּהֵמָה֙ הַטְּהֹורָ֔ה וּמִן־הַ֨בְּהֵמָ֔ה אֲשֶׁ֥ר אֵינֶ֖נָּה טְהֹרָ֑ה וּמִ֨ן־הָעֹ֔וף וְכֹ֥ל אֲשֶׁר־רֹמֵ֖שׂ עַל־הָֽאֲדָמָֽה׃
שְׁנַ֨יִם שְׁנַ֜יִם בָּ֧אוּ אֶל־נֹ֛חַ אֶל־הַתֵּבָ֖ה זָכָ֣ר וּנְקֵבָ֑ה כַּֽאֲשֶׁ֛ר צִוָּ֥ה אֱלֹהִ֖ים אֶת־נֹֽחַ׃
웨노아(노아) 벤(세) 셰셰(육) 메오트(백) 샤나(년) 웨함마불(홍수가) 하야(왔을 때) 마임(물의) 알(위에) 하에레츠(땅) 와야버(갔다) 노아 우바나오(그의 아들들) 웨이샤토(그의 아내) 웨느쉐(아내들) 바나오(아들들) 이토(그와 함께) 엘(안으로) 하테바(방주) 미프네(관계사) 메(물들의) 함마불(홍수의) 민(~의) 합브헤마(동물들) 하트호라(정결한) 위민(그리고) 합브헤마(동물들) 아세르(관계사) 에넨나(~않은) 테호라(정결하지) 위민(그리고) 하오프(새들) 웨콜(모든 것) 아세르,(rhksrPtk) 로메스(기는 것) 알 (위에) 하아다마(땅) 쉐나임(둘) 쉐나임(둘) 바우(그들이 갔다) 엘(에게) 노아 하테바(방주) 자카르(숫컷) 우네케바(암컷) 카아세르(관계사) 치바(명령했다) 엘로힘(하나님) 에트(격조사) 노아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 세라 노아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며』
노아의 홍수는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들이 첫사람 아담(그리스도)과 함께 물질세계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비가 사십 주야 땅에 쏟아졌다. 그리고 방주는 흑암이 된 세상에 물 위를 정처없이 떠 다니는 모습이다.
이는 창세기 1장 1-2절의 모습을 보여준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그래서 방주에 들어간 노아는 마지막 아담(그리스도)과 같은 모습이다. 방주의 역청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한다. 모든 사람이 죄악으로 죽어야 하지만 예수 그리스고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살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방주에 들어간 노아는 새하늘과 새땅을 바라보는 자가 되는 것이다.
첫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그리스도)을 가진 자가 된다. 이는 노아, 아브라함, 모세 등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첫사람 아담은 노아로, 여인의 후손(약속의 씨)은 방주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것은 사십 주야 비가 내리는 모습이다. 그래서 방주만 흑암 속에서 떠다니는 것이다. 첫사람 아담이 흙속에 들어간 것이다. 흙이 물을 만나니 형태가 만들어지고 그 속에 영이 들어가니 깊음 위의 얼굴이 되는 것이다.
개역개정에서 말하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는 히브리어 성경에는 “땅이 심연의 얼굴 위에 흑암 공허 혼돈으로 존재했고, 하나님의 영은 그 물의 얼굴 위에 운행하시니라” 라고 되어 있다. 페네(얼굴)이 1장 2절 앞부분의 번역에서 빠져 있다.
『심연의 얼굴 ְּפְּנֵ֣י תְהֹ֑ום 』(페네 태홈)은 『깊은 물의 얼굴』을 의미하며, 얼굴은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단어로서, 영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심연의 얼굴은 깊은 물 속의 얼굴로서 물질세계에 갇혀있는 영을 의미하다. 흑암의 물 위를 떠다니는 방주가 이런 모양이라는 것이다. 방주 안에 들어간 사람들과 동물들은 다 구원을 받는다. 마찬가지로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면 구원받는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베드로는 홍수를 세례로 의미를 부여했다. 베드로전서 3장 20-21절에서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세례는 죽은 자라는 의미가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를 하나님이 새생명으로 부활시켜주시는 것이다. 첫사람 아담과 하와와 동물들, 노아의 방주와 그 안에 들어간 사람들과 동물들은 모두 물에서 죽은 자(물세례)였으며, 방주에 들어가면서 불에 타 죽은 자(불세례)였으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므로 하나님이 새생명(부활)으로 창조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새하늘과 새땅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 방주에 있는 자들, 첫사람 아담 속에 씨의 약속을 받은 자들은 새하늘과 새땅에 살게 되는 것이며, 이들이 천년왕국이다.
양심(쉬네이데시스)이라고 말한 쉬네이데시스는 하나님과 함께 보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양심은 선한 마음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런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가 없는가의 의미가 된다. 첫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그리스도이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님의 형상은 사라지고, 종교심(헬라어 사륵스)으로 되어졌다. 그래서 신을 찾는 마음은 있는데, 우상을 만드는 것이다. 우상숭배하는 자는 쉬네이데시스가 화인맞은 것이다. 영적으로 죽은 자라는 것이다. 베드로가 세례의 의미를 말하는데,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라고 말을 했다. 그래서 이 말은 하나님을 향한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기 위한 간구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형상(그리스도)를 되찾으려면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한다 즉 홍수에서 죽은 자가 되는 것이다.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너야만 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0장 2절에서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그래서 십자가에서 죽은 자는 하나님이 부활시켜 주신다. 방주에서 구원받는 것이다. 출애굽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세례는 물에서 죽고 하늘로부터 태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로마서 6장 3-4절에서『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라고 되어 있는데, 헬라어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서 라는 의미가 된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해야만 한다. 세상에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 말씀 앞에서 부인하는 자가 바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가 된다. 창세기 6장에서 등장하는 네피림이나 용사는 결국 자기 자신을 형상화 한 것이다. 자기의 의를 세우는 것이야말로 우상을 섬기는 자가 되는 것이다.
『홍수(וְהַמַּבּ֣וּל 웨함마불:기본형 마불)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 세라』홍수가 어떤 이에게는 심판이 되고, 어떤 이에게는 새 창조에 들어가는 자가 된다. 시편 29편 10절에서『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원하도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이 말은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한다. 노아가 육백세라고 했다. 육은 창세기 1장에서 육일에 짐승과 사람이 등장한다. 그래서 여섯째 날에 사람과 동물이 구분된다. 도움이 필요한 베필이 신랑을 만나지 못하면 육이 되고, 신랑을 만나면 칠이 되어 안식이 되는 것이다. 신랑을 만나는 자가 사람으로, 만나지 못하는 자가 동물로 표현되는 것이다.
신랑을 만나는 것이 언약의 결과이다. 언약은 하나님의 형상을 이어준다. 창조 칠일을 연결시켜 볼 때, 아담(1)으로부터 노아(2), 아브라함(3), 모세(4), 다윗(5), 예수(6),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7)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육백세의 육이 그리스도(방주)를 상징하므로 방주를 만나는 자는 심판이 새창조로 이어지지만, 방주를 만나지 못하면 그저 심판(둘째 사망)이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뱀으로도 설명한다.
불뱀이 되기도 하고 놋뱀이 되기도 한다. 음행을 하는 자에게 불뱀이 되지만, 회개하는 자에게는 놋뱀이 되는 것이다. 육은 인간을 상징한다. 육이 칠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만나야만 되는 것이다. 노아가 육백세라는 말은 인간으로서 심판받아야 할 존재인데, 하나님을 만나 방주에 들어가서 새 창조물로 되는 것이다. 육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칠)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동물(하나님의 형상이 없는 자)로 퇴보되어 심판받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것이다. 그래서 육은 인간으로서 갈림길에 서 있는 존재라는 것을 표현하는 숫자이다. 십자가의 죽음인가 아니면 부활의 영광인가 라는 말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표상인 것이다.
이것을 알게해 주시는 분이 성령이시다. 요한복음 16장 13-15절에서『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진리의 영(성령)이 있는 자는 성령이 해석해 주는 것이다. 이런 자에게는 하늘의 문이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마가복음 15장 38절에서『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그래서 육은 십자가의 죽음을 의미하지만 하늘이 열리는 날이기도 한 것이다. 6장 7절에서 죽은 자가 죄로부터 벗어나 새생명을 얻는 것이다.
『노아는 아들들(밴)과 아내(이샤)와 며느리(웨느쉐:이샤)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방주에 들어간 자는 벤과 이샤다. 큰 의미에서는 이들이 모두 하나님의 아들들인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들은 원래 하나님의 아들들인 천사들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난 물질세계에 오므로 그들이 흙에 갇힌 자들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벤이 되므로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이샤는 벤 안에 있으면 벤이 되는 것이다.
노아는 안식을 의미한다. 노아의 홍수는 안식을 주기 위함이다. 창조 일곱째 날 안식하는 것이다. 안식은 창조의 완성이다. 하나님 나라를 떠나 물질세계에 온 자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죽는 자가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창조의 완성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물질세계를 만드시고 첫사람 아담과 동물을 창조하신 것은 너희들은 죽어야 할 존재라는 것을 말해주시고, 마지막 아담을 통해서 살려주시는 분이 온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안식은 방주(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데, 그 이전에 물에서 죽은 자가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죽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부활하는 것이 곧 안식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창조 칠일인 일곱째 날에 창조가 끝남과 동시에 안식이 되는 것이다. 창조가 끝나는 날은 하늘의 군대와 땅의 군대가 다 이루어지는 날이다. 하나님 나라와 이땅에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져 하나가 되는 말인 것이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는 성도의 심령 속에 세워지는 하나님 나라이며 곧 셋째 하늘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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