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주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710-12

וַֽיְהִ֖י לְשִׁבְעַ֣ת הַיָּמִ֑ים וּמֵ֣י הַמַּבּ֔וּל הָי֖וּ עַל־הָאָֽרֶץ׃

בִּשְׁנַ֨ת שֵׁשׁ־מֵאֹ֤ות שָׁנָה֙ לְחַיֵּי־נֹ֔חַ בַּחֹ֨דֶשׁ֙ הַשֵּׁנִ֔י בְּשִׁבְעָֽה־עָשָׂ֥ר יֹ֖ום לַחֹ֑דֶשׁ בַּיֹּ֣ום הַזֶּ֗ה נִבְקְעוּ֙ כָּֽל־מַעְיְנֹת֙ תְּהֹ֣ום רַבָּ֔ה וַאֲרֻבֹּ֥ת הַשָּׁמַ֖יִם נִפְתָּֽחוּ׃

וַֽיְהִ֥י הַגֶּ֖שֶׁם עַל־הָאָ֑רֶץ אַרְבָּעִ֣ים יֹ֔ום וְאַרְבָּעִ֖ים לָֽיְלָה׃

와이히(~되었다) 르쉬바트(칠후에) 하욤(날들) 우메(물들) 함마불(홍수의) 하유(~이었다) (위에) 하아렛츠() 비쉬나트(세에메오트() 쉐쉐() 르하예(생명의) 노아 바호데스(달에) 하쉐니(둘째) 브쉽아흐(일곱) 아사르(열번째) () 라호데스(달의) 바욤(날에) 하쩨() 닙크우(터지다) (모든) 마예노트(샘들) 테홈(깊은) 라바() 와아룹보트(창들) 하샤마임(하늘) 닙타후(열렸다) 와이히(~되었다) 하게쉠() (~위에) 하아렛츠() 아르바임(사십) (날들) 웨아르바임(사십) 라옐라(밤들)

『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개역개정)

『칠 일 후에 물이 땅에 덮혀 홍수가 나니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사십 주야 동안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수정안)

숫자가 등장한다. 칠은 언약(안식)의 숫자라고 알려져 있다. 완전한 숫자로서 완전하게 될 때 홍수가 임한다. 홍수는 세례와도 같다. 육은 인간의 숫자로서 하나님을 만나려면 일이 더 필요하다. 육은 안식이 되느냐 아니냐의 귀로에 선 숫자가 된다. 노아가 육백세에 홍수를 만난 것이다. 홍수를 통하여 성령을 만나는 것이다. 요한복음 1613-14 절에서『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성령)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어떤 사람은 말씀을 받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말씀을 버리는 것이다.

『바욤(날에) 하쩨() 닙크우(터지다) (모든) 마예노트(샘들) 테홈(깊은) 라바() 와아룹보트(창들) 하샤마임(하늘) 닙타후(열렸다) 』시편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큰 깊음은 심판으로 표현된다. 시편 365-7절에서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진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심판은 큰 바다와 같으니이다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구하여 주시나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로 표현하고 주의 심판을 큰 바다로 비유한다.

창문에 대해서는 말라기 310절에서『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하늘의 문이 곧 하늘의 창(וַאֲרֻבֹּ֥ת  와아릅보트:기본형은 아루바)이다. 십일조의 실체는 그리스도이시다. 십자가를 통해서 모든 것이 완성되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첫열매로 하나님께 바쳐졌다. 우리가 십일조를 드리는 것에 대해서 예수님이 속전으로 드린 것이다. 십일조는 선물에 해당한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선물을 받는데, 진리의 성령이 바로 산물인 것이다. 십일조를 창고에 드리는 것은 수장절과 관계가 있다. 진리의 선물이 창고에 가득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창고가 되는 것이다. 생명의 양식이 쌓이는 것이다. 쌓이는 양식을 나누어주는 것이다. 이게 하늘의 복이 된다. 십일조를 많이 하면 하늘의 복을 준다는 것이 아니라, 십일조를 상징하는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생명의 열매가 넘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십일조를 여전히 말을 하고 있다면 예수님이 이루신 것을 부인하는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하늘의 문이 열린다는 말은 복(은혜)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이 말은 심판과 하늘의 복을 동시에 말해주는 것이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심판)과 부활()을 동시에 받아드린다. 곧 예수와 함께 죽은 자가 하늘의 복을 받는 것이다. 홍수는 심판과 복이 되는 것이다.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너는 자는 심판을 받고(세례) 새하늘과 새땅()으로 나가는 자가 되는 것이다. 첫사람 아담의 흔적인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죽은 자는 마지막 아담의 흔적인 새사람의 옷을 입는 것이다.

마태복음 545절에서『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해와 비를 모두에게 다 비춰주고 내려주신다. 그런데, 그 결과는 다르다. 마태복음 724-27절에서『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비가 심판이 되기도 하고 복이 되는 것이다. 자신이 심판받을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자에게 복이 되는 것이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와이히)』와이히(ַֽיְהִ֥י기본형은 하야)는 홍수가 덮히다, 비가 쏟아졌다라 모두 하야를 사용하고 있다.

홍수는 물이 땅에 덮히는 현상의 결과를 의미한다. 홍수라는 것이 땅에 덮히는 것이 아니라 물이 덮히는 결과인 것이다. 그래서 홍수라는 말보다 물이 덮히는 것으로 표현함이 바람직하다.

사십은 출애굽사건에서 사십년의 광야 생활과 관계있다. 홍수는 맛나가 내리는 것과 관계가 깊다. 그리고 예수님도 사십일간 금식하시고 마귀 시험을 받았다. 시험 사건은 하나님 말씀이 내리는 맛나와 같은 것이다. 비진리는 떠나가고 복음으로 섬김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복음은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복음이 된다. 마태복음에서 천국이라는 용어가 사용된다. 이 말은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비는 말씀을 의미한다. 이사야 5510-11절에서『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성경은 비를 이른비 늦은비로 표현하며 성령의 선물로도 나타낸다.

그러나 비는 심판으로도 나타난다. 에스겔서 1311-13절에서『그러므로 너는 회칠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그것이 무너지리라 폭우가 내리며 큰 우박덩이가 떨어지며 폭풍이 몰아치리니 그 담이 무너진즉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것에 칠한 회가 어디 있느냐 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분노하여 폭풍을 퍼붓고 내가 진노하여 폭우를 내리고 분노하여 큰 우박덩어리로 무너뜨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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