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방주의 문을 닫으시니라

7 13-16

בְּעֶ֨צֶם הַיֹּ֤ום הַזֶּה֙ בָּ֣א נֹ֔חַ וְשֵׁם־וְחָ֥ם וָיֶ֖פֶת בְּנֵי־נֹ֑חַ וְאֵ֣שֶׁת נֹ֗חַ וּשְׁלֹ֧שֶׁת נְשֵֽׁי־בָנָ֛יו אִתָּ֖ם אֶל־הַתֵּבָֽה׃

הֵ֜מָּה וְכָל־הַֽחַיָּ֣ה לְמִינָ֗הּ וְכָל־הַבְּהֵמָה֙ לְמִינָ֔הּ וְכָל־הָרֶ֛מֶשׂ הָרֹמֵ֥שׂ עַל־הָאָ֖רֶץ לְמִינֵ֑הוּ וְכָל־הָעֹ֣וף לְמִינֵ֔הוּ כֹּ֖ל צִפֹּ֥ור כָּל־כָּנָֽף׃

וַיָּבֹ֥אוּ אֶל־נֹ֖חַ אֶל־הַתֵּבָ֑ה שְׁנַ֤יִם שְׁנַ֨יִם֙ מִכָּל־הַבָּשָׂ֔ר אֲשֶׁר־בֹּ֖ו ר֥וּחַ חַיִּֽים׃

וְהַבָּאִ֗ים זָכָ֨ר וּנְקֵבָ֤ה מִכָּל־בָּשָׂר֙ בָּ֔אוּ כַּֽאֲשֶׁ֛ר צִוָּ֥ה אֹתֹ֖ו אֱלֹהִ֑ים וַיִּסְגֹּ֥ר יְהוָ֖ה בַּֽעֲדֹֽו׃

베에쳄() 하욤() 하쩨흐() (들어갔다) 노아 웨쉠(그리고 셈) 훼함(그리고 함) 웨예펫(그리고 야벳) 브네(아들들) 노아 웨에셋(아내) 노아 우쉐로쉣() 느쉐(아내) 바나(그의 아들들의) 잇탐(그들과 함꼐) (~안으로) 하테바(방주) 헴마(그들이) 웨콜(모든) 하하야(짐승) 레미나(그 종류대로) 웨콜(모든) 하메레스(기는 것) 하모레스(기는) (~위에) 하아렛츠() 레미네후(그 종류대로) 웨콜(모든) 하오프() 레미네후(그 종류대로) (모든) 치포르() (모든) 카나프(종류) 와야부(그들이 갔다) (~) 노아 엘(안으로) 하테바(방주) 쉐나임() 믹콜(모든) 하바사르(육체) 아세르(관계사) (~되다) 루아흐() 하임(살아있는) 웨하바임(그들이 들어갔다) 자카르(수컷) 우느케바(암컷) 믹콜(모든) 바사르(육체) 바티(그들이 안으로 들어갔다) 카아세르(관계사) 치와(명령했다) 오토(그에게) 엘로힘(하나님이) 와이스고르(닫았다) 야훼(여호와) 바도(그에게)

『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 야벳과 노아의 아내와 세 며느리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그들과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가 그 종류대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개역개정)

『뼈의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 야벳과 노아의 아내와 세 며느리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그들과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가 그 종류대로 무릇 생명의 영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수정안)

베에쳄(בְּעֶ֨צֶם 기본형은 에쳄) 에서 에쳄은 뼈를 의미한다. 내 뼈중의 뼈요 할 때 그 뼈이다. 그래서 곧이라는 말이 잘못된 번역이다. 뼈의 그날에 라고 해야할 것이다. 의미는 똑같다는 말이다. 같은 곳에서 분리되었으므로 같다는 말이다. 그래서, 뼈는 같다라는 의미다. 출애굽기 12 17절에서도『너희는 무교절을 지키라 이(에쳄) 날에 내가 너희 군대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음이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영원한 규례로 삼아 대대로 이 날을 지킬지니라』에쳄이라는 말은 같다 라는 말이다. 무엇이 같은가? 이 날이라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떠나 이 세상에 온 하늘의 군대라는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이 하늘의 군대를 이끌었던 그 날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을 군대라고 표현했으나 사실을 하나님 나라를 떠난 탕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탕자들을 이 세상 죄 가운데서 나오게 하신 그 날을 의미한다.

방주에 들어가는 날은 육으로는 죽고, 영으로는 태어나는 날이다. 칠일이 되는 날 즉 안식이 되는 날에 방주에 들어가는 것이다. 칠일은 창세기 21절에서 하늘의 군대와 땅의 군대가 이루어지는 날이다. 바로 죄 가운데 있는 이 세상에서 벗어나는 그 날을 의미하는 것이다.

뼈중의 뼈, 즉 하나되는 날은 혼인잔치로 비유된다. 혼인잔치 날 방주에 들어간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마태복음 256-10절에서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혼인잔치에 대해서 문이 열리는 자와 문이 닫히는 자로 나뉘어진다. 심판과 구원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요한계시록 19장에서도 같은 표현이다. 구원의 기준은 기름(성령)이다. 기름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오늘날도 말씀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성령이 없는 말씀은 심판이 될 뿐이다.

 기운이라고 표현한 루아흐는 영을 의미한다. 노아와 자식들과 모든 짐승들이 방주에 들어갔다는 것은 모든 영이 있는 생명체들(네피쉬하이)이 방주 안으로 들어갔다. 이 생명체는 창세기 1장에서 창조된 생명체와 같은 생명체를 의미한다. 즉 새창조인 것이다. 방주에 들어간 생명체는 창세기 1장에서 창조된 그 창조물이나, 방주에 들어가면 그 생명체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될 때 이전의 사람은 죽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다시 창조되는 것과 같은 의미다. 몸의 형태는 바뀐 것 같지 않으나, 이미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죽고, 다시 태어나는 생명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다시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축복을 하신다.『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창세기 1장에서도 암수라고 표현되었으나 창세기 2장에서는 남자와 여자로 표현된다. 남자와 여자의 의미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표현할 때 사용되는 것이다. 에베소서 5 31-32절에서『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하나님을 떠난 모든 영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창세기 7장에서 모든 네피쉬하이(살아있는 생명체)가 영으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순간을 말하는 것이다. 노아의 방주는 장차 그리스도가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의 영들을 구원하러 갈 것이라는 것을 예표하는 것이다.

노아와 그의 가족 칠명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자를 상징한다. 칠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동물을 통해서 다시 설명하신다. 사람을 동물로 표현하였다. 제사물로 사용되는 정한 동물을 그리스도, 부정한 동물을 하나님을 떠난 죄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죄인이 회개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죽음으로 부정한 동물은 정한 동물과 하나가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두가 하나라는 말이 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문은 그리스도이시다. 문을 열고 닫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에게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권세를 주셨다. 요한복음 10 3절에서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마태복음 8 12절에서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하나님이 직접 육신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와서 그들의 영들을 데리고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이다. 문을 여는 것은 첫사람 아담으로 이 세상에 오시고, 문을 닫는 것은 마지막 아담으로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방주를 닫는 때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있는 생명체가 하나가 될 때 닫는 것이다.

예수님은 양의 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양의 목자는 문으로 들어간다』고 하셨다.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너희들이 진정으로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고 싶은 거냐? 그렇다면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베푸는 구원을 받아들이고 나에게 배워라.』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지도자임을 자처하는 그들에게 참된 리더십이 무엇인지 이렇게 일러주고 계시는 것이다.

선한 목자와 삯꾼의 차이는 분명하다. 삯꾼에게 양은 자기 양이 아니다. 그저 양을 치고 삯을 받는다. 늑대가 오면 목숨을 걸고 양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저 살기 위해 양을 버리고 달아나버린다. 그러나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린다. 삯꾼을 삯을 위해 양이 필요하지만 참된 목자는 양을 위해 자신이 있어야 함을 안다. 참된 목자와 양 사이에는 앎이 있다. 이 앎은 목자와 양간의 영적인 하나됨을 말한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840절에서『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지금 예수를 죽이려한다는 것이다. 히브리 백성들은 예수님은 거짓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수를 믿어서 왔는데,『나를 죽이려 한다』고 말씀했다. 예수님의 말씀은『내 말에 거하지 못하면』다 죽이려 한다는 것이다. 히브리 백성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하고,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을 목격하고『저분이 하나님이 보내신 자이구나』라고 믿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말씀에 거하는 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도 성경 말씀이『믿는다고 하는 사람의 생각』과 다르게 이해되면,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씀과 자신의 생각이 다르면, 받아드리지 않는 것이 말씀에 거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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