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창세기 16장 1-3절
וְשָׂרַי֙ אֵ֣שֶׁת אַבְרָ֔ם לֹ֥א יָלְדָ֖ה לֹ֑ו וְלָ֛הּ שִׁפְחָ֥ה מִצְרִ֖ית וּשְׁמָ֥הּ הָגָֽר׃
וַתֹּ֨אמֶר שָׂרַ֜י אֶל־אַבְרָ֗ם הִנֵּה־נָ֞א עֲצָרַ֤נִי יְהוָה֙ מִלֶּ֔דֶת בֹּא־נָא֙ אֶל־שִׁפְחָתִ֔י אוּלַ֥י אִבָּנֶ֖ה מִמֵּ֑נָּה וַיִּשְׁמַ֥ע אַבְרָ֖ם לְקֹ֥ול שָׂרָֽי׃
וַתִּקַּ֞ח שָׂרַ֣י אֵֽשֶׁת־אַבְרָ֗ם אֶת־הָגָ֤ר הַמִּצְרִית֙ שִׁפְחָתָ֔הּ מִקֵּץ֙ עֶ֣שֶׂר שָׁנִ֔ים לְשֶׁ֥בֶת אַבְרָ֖ם בְּאֶ֣רֶץ כְּנָ֑עַן וַתִּתֵּ֥ן אֹתָ֛הּ לְאַבְרָ֥ם אִישָׁ֖הּ לֹ֥ו לְאִשָּֽׁה׃
웨사라이(사라) 에쉩(아내) 아브람 로(부정) 예라다(임신하다) 로(그에게) 웨라(그녀가 가졌다) 쉬프하(여정) 미추맅(애굽 여인) 우쉐마(그녀의
이름) 하갈
와토메르(말했다) 샤라이(사래) 엘(그에게) 아브람 힌네(보다) 나(지금) 아차라니(나에게
억압하다) 야훼 밀레뎃(아이를 갖다) 보(안으로 가다) 나(간청하다) 엘(에게) 쉬프하티(하녀) 우라이(아마도) 입바네(내가 아이를
가질 것이다) 밈멘나(그녀에 의헤) 와이쉬마(주의를 기울이다) 아브람
레콜(소리) 사라이(사래)
와티카(데리고) 살라이(사래) 에쉐트(아내) 아브람 에트(격조사) 하갈
함미추맅(애굽여인) 쉬프하타(하녀) 미케스(후에) 에세르(십) 샤님(해) 르쉐벹(거주하다) 아부람 베에레츠(땅 안에서) 가나안
왙티텐(그녀가 주었다) 오타(그녀를) 아브람 이샤(남편) 로(그의) 르이샤(아내)_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십 년 후였더라』(개역개정)
여기에서 말하는 주제는 언약에 관한 이야기다. 하나님이
아브람과 맺은 언약은 땅과 자손인데, 사래가 아들을 낳지 못하자, 아브람이
하갈을 취하여 언약의 자손으로 이어가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갈이 임신을 하자 하갈이 사래를 핍박하고, 사래가 다시 하갈을 광야로 내어쫒는 이야기가 이후에 전개된다. 하갈은
이주하다, 도망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4장 21-30절에서 사래와 하갈에 대해서 율법과 약속으로 비유로 말한다.『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기록된 바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산고를 모르는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하갈은 옛언약, 육체를 따라 자녀를 낳고(이스마엘),
사라는 새언약을 상징하며 약속의 자녀(이삭)를
낳는다. 이삭이 태어나기 전에 이스마엘이 먼저 태어났다. 아브람이
75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갔는데, 10년이 지나도록 아이를
갖지 못하자 사래가 하갈을 아브람의 첩으로 준 것이다. 10년이 되었을 때는 아브람은 85세, 사래는 75세였다. 10년이 지나므로 아브람의 나이가 86세로 될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분명히 자녀의 약속을 하셨는데, 10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없자, 그들 나름대로 해석을 해서 아이를 갖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으로 추정된다. 창세기 15장 4절에서『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아브람의 씨는 사래 외에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상속이 끊어지지 않으려는 인간적인 생각인 것이다. 그래서
일부다처제가 나온 것이다.
창세기 3장 6절에서『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라카)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나탄) 그도 먹은지라』이 말은 창세기 16장 3절과 비유하면『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라카)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나탄)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십 년 후였더라』하와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은 것은 사래가 하갈을 데리고 가는 것과 같고, 남편에게 주매 라는
말과 아브람에게 하갈을 주는 것과 같은 의미다. 하갈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와 같은 의미로서
율법을 상징하는 것이다. 아담과 아브람은 그 열매를 받아드린다. 아브람은
첫사람 아담(그리스도)을 의미한다.
교회 사람들은 아담이
하와가 주는 열매를 먹으므로 원죄가 생겼다고 믿는다. 그래서 온 세상 사람들이 죄인이 되었다는 말이다. 로마서 5장 14절에서『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아담은 마지막 사람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말을 한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로마서 5장 20-21절에서『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라고 언급했다.
이 말은 죄를 통한
죽음(십자가)과 그리스도의 부활을 연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첫사람 아담은 마지막 사람 아담과 연계선상에 있는 것이다. 첫사람
아담은 죽어야 하는 옛사람인 것이다. 마지막 사람 아담은 부활하신 새사람인 것이다. 그 옛사람의 죽음은 곧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첫사람
아담과 마지막 사람 아담은 바로 같은 그리스도 라는 사실이다. 첫사람 아담과 함께 세상에 온 영들이
흙속에 갇혀 인간이 되었고, 그 인간 속에는 옛사람의 흔적이 있으며,
마지막 사람 아담은 그 옛사람의 흔적을 끊게 될 죽음을 짊어진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아버지를
떠난 탕자에게 아버지 스스로 그 죄값을 짊어진다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그 첫사람 아담은 죄의 원흉인
원죄를 전해주는 자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첫사람 아담을 통해서 하나님을 떠난 자라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사람 아담을 통해서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하여 십자가에서 죽는 자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난 옛사람의 죽음을 의미한다.
로마서 6장 4-7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하와는 교회를 대변하고 있고, 아담은 하와가 주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하나님께 대하여 죽어야 할 하나되는 자가 된다. 교회를 위해 죽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교회와 한 몸이 된 그리스도인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 없이는 부활도 없는 것이다. 만일 아담이 하와가 주는 열매를 먹지 않았다면, 둘은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가 되어야 죽고 부활하는 역사가
일어난다. 그게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인 것이다.
에베소서 5장 31-32절에서『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요한복음은『교회를
내게 주신(나탄) 자』로 표현한다. 요한복음 6장 39절에서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나탄)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한복음 17장 6절『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17장 9절에서도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17장 24절에서도『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나열되어 있지만, 결국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며, 성도의
심령 속에 있는 옛사람과 새사람과의 관계이기도 하다. 에덴동산에서 뱀이 하와를 유혹하는 것은 성도의
심령 속에 있는 옛사람을 자극하며, 스스로 율법을 통해서 판단하려고 하는 모습과 대비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악과를 먹은 자는 율법주의에 빠진 자와 같은 모습인 것이다. 모든
성경의 이야기는 다름 아닌 나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영적인 생명을 보지 못하고 육적인 눈으로 율법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나에 대한 것이다. 하와가 뱀이 주는 선악과를 먹은 것은 사래가 언약을 생각하지
많고 자신의 육적인 생각을 따른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횃불언약)을 생각하지 않고 인간은 율법적인 사고로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예수를 믿고 죄의 대속을 받았지만, 율법에 비추어 날마다 죄를 짓는지 않짓는지 살펴보고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죄를 지으면 예수의 피로 용서받으려고 하는 행동을 계속하게 된다. 이것은 율법적인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간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그리고 오직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죄와 함께 죽은 자임을 날마다
기억해야만 한다. 내 스스로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하는 옛사람의 모습을 가진 자는 예수와 함께 죽은 자가
아닌 것이다. 날마다 우리의 옛사람이 죽은 자임을 기억해야만 한다. 인간은
죄에 대해서 스스로 어쩔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달아야만 한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라는 사도바울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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