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은 누구인가?

사탄은 누구인가?

. 하나님 앞에서 죄란 무엇인가

교회 사람들은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미혹으로 범죄하여, 아름다운 세상이 사탄의 지배하에 들어가 감옥과 같이 되었으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죄인이 되어 고통을 받고 있다고 믿으며, 그래서 오늘날 까지도 영적 전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창세기 1-3장은 하나님 나라에서 어떻게 세상이라는 물질세계가 만들어 졌는가를 비유적으로 설명한다. 하나님 나라에서도 범죄한 천사의 이야기가 성경에서 두 곳에 등장하는데, 유다서와 베드로후서이다. 유다서 16절에서『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그리고 베드로후서 24절에서는『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천사들 중에 누군가가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와 같은 개념인 창세기 217절에서『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라고 하셨으므로『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의미를 깨달으면, 하나님의 법도를 알게된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는 율법을 상징한다. 율법을 통해서 선과 악을 구분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법도는 선만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자는 선이지만, 법을 어기면 악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법을 어긴다는 말은 천사들이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고, 자기들이 만든 법을 따른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법을 따를 때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권능을 부여받게 되지만, 악한 천사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처럼 흉내내어 스스로 권능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도 선의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게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욕망이다. 그들이 마음 속에 간직한 욕망을 드러내게 만든 자가 있었다.

창세기 31-5절의 내용을 살펴보면, (사탄)이 하와(천사의 상징)에게 묻는다.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은 하나님의 피조물을 의미한다. 간교하니라 라는 히브리어 아룸은 교활한, 영리한, 지혜로운 이라는 의미다. 즉 상대방에게 함정을 파서 그 악한 마음을 알아내는 것이다. 사탄은 공중 권세를 잡은 자로 표현되는데, 그는 악한 천사들이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알지만, 그것을 드러내게 한다. 사탄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에 대해서 하와의 의도를 묻는 것이다. 그런데, 하와는 그것을 먹으면 죽는다 라고 말했다. 그런데,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3:4)』이 말이 뱀을 미혹하는 자로 오해하게 만든다. 히브리어는 로 무트 테무툰(무트)이다. (לֹֽא־מֹ֖ות תְּמֻתֽוּן) 우리말로 다시 번역하면,『죽지 않고 죽는다』 라는 것이다. 번역이 잘못되었다. 영어번역에서 kjvYe shall not surely die. Niv You will not surely die. 우리말 번역은 영어 번역을 다시 번역한 것으로 영어와 마찬가지이다. 결국 하와가 그 열매를 먹었지만, 죽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천사)는 흑암에 갇히므로 영적으로 죽은 것이다.

눈이 밝아진다는 것은 평소 생각한 것 같이 사탄의 말을 듣고 자신도 하나님 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나님같이 라는 말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나 자신도 하나님처럼 선악을 알게된다는 것이다. 즉 자신이 기준이 되어 판단하겠다는 말이다. 이전에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는데, 하나님과 분리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의 행동이 선악과를 먹는 것이었다. 선악과를 먹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이 주신 옷을 벗어버리고, 자신들이 만든 옷을 입었다 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옷을 입어야 천사가 되지만, 천사의 옷을 벗으면 벌거벗은 자가 된다.

그러나 막상 악한 천사들이 하나님이 주신 옷을 벗어버리고 자신들이 만든 옷을 입어보니 하나님처럼 되기는 커녕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영적으로 하나님을 벗어난 것 때문에 두려운(부끄러운) 상태가 된 것이다. 선악을 알게하는 지식으로 나무를 바라보니 자기 속의 죄가 떠오르는 것이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치마라는 말이 없다. 무화과나무 잎을 엮었다는 말은 벌거벗은 수치를 면하게 하는 것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죄의 수치를 면하게 하려는 모습이다. 이사야 646절에서『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범죄한 하와에게 묻는다. 313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힛쉬아니) 내가 먹었나이다』히쉬아니(הִשִּׁיאַ֖נִי)는 기본형이 나샤로서 미혹하다, 기만하다 라는 의미다. 하와의 입장에서는 뱀에 미혹된 것처럼 보이지만, 뱀은 그녀의 마음 속 정체를 드러내게 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 세상 속에서 나타난 죄

교회 사람들은 법을 어기는 것이 죄라고 말을 했다. 반대로 법이 없으면 죄가 없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이 말은 참으로 어리섞은 말이다. 예수님은 마음에 음욕을 품은 것을 죄라고 말씀하셨다. 법은 마음에 품은 것까지 규정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마음의 죄까지도 포함된다고 말을 할 수 있다. 마음의 탐욕, 즉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욕망이 죄의 근원인 것이다. 이게 결과로 나온 것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셨다. 이 말은 범죄한 천사들의 영을 흙속에 가두므로서 흑암 속에 있게 하고, 그들의 수명이 다 할 때 회개하여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장차 여인의 후손(약속의 씨)를 주실 것인데, 그를 바라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을 하셨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는 거의 없었다. 노아의 홍수 시대를 비롯해서, 믿음의 선진들이 살던 시대를 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기만의 왕국을 세우려 했는지 잘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니므롯이 세운 바벨탑을 들 수 있다. 세상 모든 나라에서 자기만의 신을 세우거나, 스스로 신적인 존재가 되고 싶어한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을 본 사람이 거의 없으므로 여호와에 대한 믿음이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택하여 구원의 메시지를 온 천하에 보냈지만, 이스라엘도 실패하였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어서 회개하여 돌이키도록 하였지만 그들은 돌이키지 않았다.

. 사탄은 누구인가?

 

1. 사탄은 대적자 역할을 한다.

구약성경에서는 대부분 사탄이 사람(대적)으로 표현되었다. 사무엘상 294절에서『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에게 노한지라 블레셋 방백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을 돌려보내어 왕이 그에게 정하신 그 처소로 가게 하소서 그는 우리와 함께 싸움에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가 전장에서 우리의 대적(히브리어:사탄)이 될까 하나이다 그가 무엇으로 그 주와 다시 화합하리이까 이 사람들의 머리로 하지 아니하겠나이까』사탄을 대적으로 표현했다. 대적은 블레셋을 의미한다. 이외에도 대적으로 표현한 곳은 사무엘상 518, 열왕기상 114, 시편 1096절 등이 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을 섬길 때마다, 하나님은 대적자를 시용하셔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셨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회개하고 돌이키고, 다시 우상을 섬기면 대적자를 통하여 그들을 치는 것을 반복한 것을 볼 수 있다.

 

2. 사탄은 세상의 왕으로서, 공중권세 잡은 자이다.

또한 영적으로 공중권세 잡은 자로 표현된다. 요한계시록 128-9절『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사탄은 하나님의 천사장이나, 천사들이 가지고 있던 죄의 마음을 이끌어 냈지만, 결국 그들을 죄인으로 몰고 간 것이다. 결국 악한 천사들은 세상이라는 감옥에 가게 되고, 사탄은 그들을 관리하는 자로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 그것을 공중 권세 잡은 자로 표현된다. 요한계시록 1210절『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3. 사탄은 죄인을 참소(고소)한다.

그리고 영적인 존재로도 표현된다. 특히 욥기에서 참소자로 등장한다. 사탄은 욥을 통해서 율법적인 신앙을 가진 자를 하나님께 참소하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 속에 있는 자는 사탄의 지배를 받는 자라고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사탄(마귀)은 참소(카테고론 κατηγορν)하는 자이다. 마귀는 율법 아레 있는 죄인들을 하나님께 참소한다. 사탄이 욥을 참소한다. 요한복음 545절에서『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할까 생각하지 말라 너희를 고발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가 바라는 자 모세니라』모세가 사탄의 역할을 한다. 모세는 율법의 대명사이기 때문이다. 율법이 계속 신도를 고소하는 것이다. 하늘에서 그리스도가 전쟁을 이겼다. 그래서 하늘에서는 더 이상 율법의 필요성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참소당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승리하셨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과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이는 복음의 능력이다.

 

4. 사탄은 율법 속에 있는 자들을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요한복음 8 44『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에피뒤미아스)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아르케스 ρχς) 살인한 자요(안드로폭토노스 νθρωποκτνος) 진리가(알레데이아 ληθείᾳ) 그 속에 없으므로(엔 아우토 ν ατ) 진리에(엔 테 알레데이아 ν τ ληθείᾳ) 서지 못하고 거짓을(프세우도스 ψεδος)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엑 톤 이디온 κ τν δων)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프세우스테스 ψεστης)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개역개정)

에피뒤미아스는 욕망, 갈망 등의 의미다. 아르케는 우두머리, 첫번째라는 의미를 갖는다. 안드로폭토노스는 살인하는자, 살인자를 의미한다. 엘레데이아는 진리, 엔 아우토는 그의 안에서, 엔 테 알레데이아는 진리 안에서, 프세우도스는 거짓말, 엑 톤 이디온은 자기에게 관한, 자신으로부터, 사적인, 구별된 이라는 의미다. 프세우스테스는 거짓말쟁이이다.

그래서 다시 번역해보면,『너희의 아비는 마귀(디아블로)이다. 너희는 너희 아비가 갈망하는 것을 행하는구나. 그는 첫번째 살인자이며, 자기 속에 진리가 없으므로 진리 안에 거하지 아니하고 그가 말할 때마다 자기의 것으로 거짓말을 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이라.

마귀는 곧 사탄이다. 사탄은 세상의 왕이요, 율법에 따라 행하는 감옥의 관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는 하나님의 특별 사면과 같은 진리의 말씀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오직 율법에 따라 죄를 짓는 자를 고소할 뿐이다. 그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이지만, 악한 천사들을 영적 죽음으로 내몰아간 첫번째의 살인자에 해당한다. 하나님 처럼 되고 싶은 악한 천사의 마음을 알았지만, 그들의 죄를 돌이켜야 할 자가 오히려 악한 천사들이 죄를 짓게 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진리에 서 있지 못하고, 다른 피조물에게는 거짓말쟁이가 된 것이다. 마치 함정을 파서 상대를 넘어뜨리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하나님은 물질세계를 만들어 악한 천사들을 가두고, 사탄으로 하여금 관리하게 한 것이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함정을 놓고 빠뜨리려고 하는 모습과 유사한 것이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진리에 서 있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사탄의 자식이라고 맹렬하게 말씀하셨다. 사탄은 죄인들이 자유함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하지 않는다. 회개하여 돌이키는 자에게 하나님이 사면의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을 전하지 않고, 함정을 파서 계속 율법 속에서 빠져 나가지 못하게 하는 자인 것이다.

 

4. 사탄은 성도에게 육체의 가시를 준다

고린도후서 127-10절에서『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사도바울도 역시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육체를 가지고 있으므로, 사람의 일을 생각할 때가 있었을 것이다. 육체적으로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그리고 육체적으로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가끔은 비관적인 생각도 스쳐지나가는 것이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사도바울에게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가시를 통해서 자극을 주신 것이다. 

 

5. 사탄은 신도가 사람의 일을 할 때 다가간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신 자(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주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는데,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갑자기 반기를 든 것이다. 즉 죽으시면 안된다는 말이다. 마태복음 1621-23절에서『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베드로가 한 순간 하나님의 일을 부인하는 것과 같은 일을 하므로, 사탄(검사)이 베드로를 기소하려고 하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드로를 보호하려고 사탄을 물리치는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꾸짖었다. 사람의 일을 생각하므로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닭이 세번 울 때까지 예수를 세번 부인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세번 부인한 베드로는 마태복음 2675절에서『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그러나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베드로를 찾아가 다시 한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도록 임무를 맡기셨다.

베드로와 같은 경우가 사도행전 2110-14절의 내용이다.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성령을 통하여 바울이 이방인의 손에 넘겨줄 것이라는 말을 들은 많은 제자들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도록 권했다. 바울은 이미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로서, 자기 목숨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자로서 사명을 다 하려 했는데,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고 한 제자들은 바울의 죽음을 걱정하여 말리는 것이다. 즉 그들은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제자들은 또한 이를 전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게 하나님의 일인 것이다.  

요한복음 6 29-30절에서도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무엇을 믿으라는 것인가?  6 38-40절에서『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데오론) 믿는(피스튜온 에이스 아우톤)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6 40절의 헬라어 성경을 보면 τοτο γάρ στιν τ θέλημα το πατρός μουνα πᾶς  θεωρν τν υἱὸν κα πιστεύων εἰς ατν χ ζων αἰώνιον, κα ναστήσω ατν γ [ν] τ σχάτ μέρ. 이것을 다시 번역해 보면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아들 속으로 들어가 믿는 모든 자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일으키리라 하시니라.』데오론(θεωρν)은 주의 깊게 바라보는 의미이다. 피스튜온 에이스 아우토 (πιστεύων εἰς ατν)는 그(아들) 속으로 들어가 믿는 자라는 의미다. 그래서 단순히 예수를 바라보고 그를 믿는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서 연합되는 믿음을 가지는 자가 되는 것이다.

마지막 날은 모든 사람에게 종말을 의미하나, 아들 속으로 들어가는 자에게는 육적 죽음을 의미한다. 즉 로마서 6 4-5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아들 속으로 들어가 믿는 자는 그리스도 안(in christ)에서 믿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한 자와 연합되는 믿음인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3 23-25절에서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결국 하나님의 일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영생을 얻게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두번 죽으라는 것이다. 물세례로 죄에 대해서 죽고, 불과 성령으로 이전의 혼(육적 몸)이 불에 타죽고, 성령의 능력으로 새로운 혼(영의 몸)으로 옷(그리스도의 옷)을 갈아입으라는 말이다. 갈라디아서 3 27절에서『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베드로전서 1 9절에서도 혼의 구원을 말한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프슈케)의 구원을 받음이라』헬라어 프슈케를 한글 번역에서는 영혼, , 목숨, 마음 등으로 혼란스럽게 번역하므로 의미가 전달되지 않는다. 프슈케는 혼이다. 결국 다시 살아나는 것은 영이다. 하늘로부터 오는 혼(그리스도의 옷)을 입을 때, 영이 살아나는 것이다. 요한복음 6 63절에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이게 영원한 생명인 것이다. 

 

6. 사탄(마귀)은 신도를 시험한다.

사탄의 시험은 예수님 뿐만 아니라, 교회의 신도에게도 나타난다. 시험의 목적은 예수님의 예를 통하여 볼 때, 잘못된 구원론을 믿고 있는 자를 가려내는 것, 복음과 율법을 겸히 받아드리는 자를 가려내는 것, 하나님과 세상을 겸히 섬기는 자를 가려내는 것이다. 그래서 잘못된 자를 하나님께 고소하는 것이다. 첫째 잘못된 구원론은 예수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것이다. 물과 성령으로 하늘로부터 태어나야 구원에 이른다. 둘째 복음과 율법을 동시에 받아드리는 것은 예수 그리스의 피를 통하여 죄를 용서받았지만, 현재와 미래에 대한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율법의 규정을 지키거나 항상 생각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셋째, 하나님과 세상을 겸히 섬기는 자는 영적 우상숭배에 해당되는 것이다. 성도는 성경 말씀으로 완전한 무장을 하고 있으므로 문제가 없을 것이나, 성령으로 나지 않은 신도들은 마귀의 시험을 통과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마귀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세상이라는 감옥으로부터 자유함을 입을 수 없는 것이다.

 

.. 사탄과 여인의 후손(예수 그리스도)이 만나다.

마태복음 4 1-11『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사탄과 예수는 세상적으로 말을 하면, 검사와 변호사 역할이다. 하나님은 대통령으로 비유할 수 있다. 법에 따라, 대통령이 죄인들을 기소하는 역할을 검사제도를 만들어서 권능을 주었다. 온 세상은 죄인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감옥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대통령이 감옥에서 회개하는 자에게 사면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 사면의 권능을 변호사 역할을 하게 될 그의 아들에게 맡겼다. 그런데, 검사는 당연히 자신의 역할에 도전하는 이 변호사가 탐탉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정말 권능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스럽게도 하고 해서, 앞으로 수없이 많이 만날 것인데, 변호사가 검사에게 자신의 직책을 소개하고, 검사는 변호사를 시험해 보는 것이다. 이렇게 검사와 변호사가 대면하게 해 주는 역할을 대통령 비서실장이 맡았다. 변호사는 죄인들을 사면하기 위한 대책을 오랫동안 준비해왔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성령은 대통령 비서실장을 상징한다. 사십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여 주리다 라는 말은 변호사가 회개하는 죄인들을 발굴해야 하는데, 많은 준비를 했다는 말이다. 변호사는 목적을 달성하는데, 배가 고픈 것이다.

검사는 변호사에게 세가지의 질문을 하면서, 서로의 팽팽한 기 싸움은 진행되었다.

첫번째 질문은 당신이 죄를 사면할 권능을 가졌다고 하는데, 여기 죄인 한 사람을 데리고 왔으니, 어디 이 자리에서 사면해 보라는 것이다. 그런데, 변호사는 아무 죄인이나 사면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는 죄인을 사면한다는 말로 대답했다. 회개하는 마음은 자기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한 죄를 깨닫고, 그 분께로 돌이키는 것이다. 그러나, 검사는 변호사의 말에 응수하지 못한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이 돌들은 율법 아래 있는 죄인들을 의미한다. 떡덩이는 생명이 있는 떡으로서 죄를 벗고 의인이 된 자를 의미한다. 즉 죄인을 사면해서 의인으로 되도록 해 보라는 것이다. 이게 예수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식으로 오해하게 만드는 것이다. 변호사인 예수님은 하나님 말씀을 먹는 자가 의인이 되는 것임을 말한다(하늘의 생명)을 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말씀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 말씀은 구약성경일 것이다. 모든 죄인은 동물을 죽여서 희생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 이 희생제사를 통해서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말이다. 말씀 속에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두번째 질문이다. 당신이 죄인들을 사면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 만일 당신이 죄를 범하면 당신 스스로 사면을 하게 할 것인가 묘한 질문을 한다. 이 질문은 변호사도 세상의 법 아래 있는 자라는 것을 은근히 유도한 질문이다. 대통령은 변호사를 세상이라는 감옥에 파견할 때, 세상법에 적용받지 않도록 정해놓았다. 그런데, 변호사가 만일 검사의 유도 질문에 넘어가면, 법 집행이 가능해지며, 언제라도 검사가 변호사라도 법의 규정을 어기면, 기소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변호사는 검사의 유도 질문에 대해서 대통령의 권한에 대해서 시험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을 한다. 그래서 이번에도 검사는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사람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는 행위는 자살행위이다. 율법에서 금하는 것이다. 예수가 율법을 어기게 되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까 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탄은 예수도 철저히 율법을 지켜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식의 유도 질문인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수동적 순종을 말하고 있다. 사탄의 질문에 넘어간 자들이다. 능동적 순종이란 그리스도가 영생을 얻게 할 조건으로 죄인을 위하여 율법을 준수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며, 수동적 순종이란 그리스도가 죄의 형벌을 지불하여 그의 모든 백성의 부채를 갚음으로서 수난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스스로 고난과 죽음에 자신을 종속시킨 것은 그의 능동적 순종의 일부이고, 그리스도께서 율법에 종속되어 살았으며 종의 형상으로 활동하셨다는 것은 수동적 순종의 일부라는 것이다. 능동적 순종의 의미 속에 내포하고 있는 사상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역과 예수님의 율법적 순종이 합해져야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정말 이단적인 발언들이다. 예수님은 율법 위에 계신 분이었지만,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율법에 따라 죽으셨다.

세번째 질문이다. 대통령께서 죄인들을 기소할 수 있도록 모든 권한을 나에게 주었는데, 당신이 대통령의 사면권을 가지고 있으면, 나의 권한은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은가, 당신이 대통령이나 다를 바가 없으므로,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차라리 기소권을 당신에게 다 넘겨줄 테니 당신이 북치고 장구치고 하세요 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변호사는 내가 비록 사면권을 부여받았지만, 대통령은 절차를 중요시하므로, 당신의 권한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는 죄인을 풀어주어서 은혜를 베풀고자 하는 마음에서 이렇게 큰 결단을 내린 것이니, 대통령이 지시한 대로 당신이 맡은 바를 열심히 잘 하시요 라고 응수했다. 그러자 검사는 아무 말을 할 수 없으므로 그 자리를 떠고 말았다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이 성경 귀절은 마태복음 48-10절의 말씀이다.

그런데, 누가복음 45-8절을 보면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사탄이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라고 말을 하는 것은 하나님이 사탄에게 죄인을 기소하는 기소권을 넘겨준 것을 의미한다.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에서 절하다라는 헬라어는 프로스쿠네세스(προσκυνσς 기본형은 프로스쿠네오) 라는 단어이다. 아첨하다, 부복하다, 예를 표하다, 예배하다 등의 의미를 갖는다. 여기에서는 절하다 라는 의미보다, 미안하다는 의미로 예를 표하는 정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님과 세상을 겸히 섬기는 자에 대한 시험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영적 간음에 해당된다.

오늘날 교회에서 영적 전쟁을 말하면서 거의 대부분 사탄과의 전쟁이라고 말들을 한다. 죄인은 감옥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당연히 검사와 다투게 된다. 죄인이 검사를 바라볼 때는 마치 저승사자처럼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율법에서 벗어나 하늘로부터 태어난 자라면, 예수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사탄(검사)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죄에 대해서 죽었으므로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도의 적은 다름 아닌 육적 자아인 것이다. 영적 자아가 육적 자아와 싸워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이다. 가나안에 들어가서 일곱 족속과 싸우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이에 해당된다. 만일 육적 자아도 좋고 영적 자아도 좋다고 생각하면, 하나님도 좋고 우상도 좋은 영적 간음을 하는 모양이다. 비진리에 속지 말고 진리에 서야만 살 수 있다.


. 신약에서 사탄과 그의 영들의 모습

신약성경에서는 사탄과 마귀와 귀신과 더러운 영들로 표현되어 있다. 요한계시록 202절을 근거로 보면 사탄은 마귀와 동일한 대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마태복음 2541절에서 마귀와 그의 사자들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사탄(마귀)과 그를 따르는 천사의 영들(토 디아블로 카이 토이스 앙헬로이스 아우투 τ διαβλ κα τος γγλοις ατοῦ) 이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앙헬로이스는 천사를 의미한다. 예수님이 사탄으로부터 시험받는 내용은 사탄과 여인의 후손에서 상세하게 설명드렸으므로 생략함

[사탄 σαταν사타나]

1. 마태복음

410

ττε λγει ατ ησος· παγε, σαταν· γγραπται γρ· κριον τν θεν σου προσκυνσεις κα ατ μν λατρεσεις.(넷슬 알란드 성경)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된바 너는 주 네 하나님께 경배하고 오직 그분만을 섬길지니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개역개정)

1623

δ στραφες επεν τ Πτρ· παγε πσω μου, σαταν· σκνδαλον ε μο, τι ο φρονες τ το θεο λλ τ τν νθρπων. (넷슬 알란드 성경)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개역개정)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신 자(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주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는데,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반기를 든 것이다. 즉 죽으시면 안된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4장에서 사탄을 만났을 때도, 사탄은 예수님이 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일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하나님의 일은 회개하는 죄를 사면하는 일이고, 예수님이 세상에 있을 때는 직접 죄를 사면할 수 있지만, 예수님이 이 땅을 떠날 때는 그 일들을 제자들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예수님이 살아있을 때는 회개하는 자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 수 있었지만, 예수님이 세상에 없을 때는 제자들은 회개하는 자를 알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이 회개하는 자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이 죽음과 연합된 자를 죽은 자로 여기시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제자들에게 임재하셔서 죄 사하는 권능을 주시는 것이다.

요한복음 2022-23절에서『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예수님은 베드로가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사탄이 예수님을 죄를 사해주는 변호사와 같은 분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과 연결되어, 베드로가 사탄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결국 예수님이 죄사함의 권능을 가진 분이라는 것을 믿지 못하는 자는 다 사탄과 같은 마음을 갖는 것이다. 베드로는 십자가의 죽음으로 그 결과 제자들에게 죄사해 주는 권능이 이어진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하나님의 일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죄사해 주는 권능이지만, 사람의 일은 이적을 통해서 자신을 내세워 권능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칼을 차고 다닌 제자였다. 힘을 과시하는 것이다.

2. 마가복음

410

ττε λγει ατ ησος· παγε, σαταν· γγραπται γρ· κριον τν θεν σου προσκυνσεις κα ατ μν λατρεσεις .(넷슬 알란드 성경)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개역개정)

415

οτοι δ εσιν ο παρ τν δν· που σπερεται λγος κα ταν κοσωσιν, εθς ρχεται σατανς κα αρει τν λγον τν σπαρμνον ες ατος.(넷슬 알란드 성경)

『길가에 있는 것들은 이들이니 곧 말씀이 뿌려질 때에 듣지만 즉시 다가오는 사탄에게 그들 속에 뿌려진 말씀을 빼앗겨 버리는 자들이니라』(개역개정)

예수님이 씨뿌리 비유를 하셨다. 뿌린 씨가 길가에 뿌려지면 그 씨는 해가 비칠 때 뿌리를 내리지 못하므로 타 죽는다. 이는 마치 예수님이 죄 사해주는 하나님의 권능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탄을 연결시켜서 말을 하는 것이다. 사탄은 죄인을 기소하고 관리하는 검사역할을 한다. 그에게는 죄를 사면해주는 것이 이상하게 들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죄를 고소하는 역할을 부여받았으므로 죄를 사면해주는 것은 자신의 역할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죄를 사해주는 것을 믿지 못하는 자에게 예수님은 사탄을 연결해서 말씀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죄를 사해주는 것을 믿지 못하는 자는 그 말씀의 씨가 사탄에게 빼앗겨 죄인은 죄에 대해서 기소당하고 검사인 사탄의 지배하에 있게 된다는 말씀이다.

833

δ πιστραφες κα δν τος μαθητς ατο πετμησεν Πτρ κα λγει· παγε πσω μου, σαταν, τι ο φρονες τ το θεο λλ τ τν νθρπων.(넷슬 알란드 성경)

그분께서 돌이키사 자기 제자들을 바라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너는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들을 마음에 가지지 않고 사람들에게서 난 일들을 가지는도다 하시니라. (개역개정)

마태복음 1623절의 내용과 동일하므로 생략함

3. 누가복음

1018

επεν δ ατος· θερουν τν σατανν ς στραπν κ το ορανο πεσντα. (넷슬 알란드 성경)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개역개정)

사탄은 죄인을 기소하려고 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죄를 사해주는 권능을 받아서 회개하는 죄인을 사면해주는 법정 싸움이 진행되었는데, 판사이신 하나님이 예수님의 제자들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다. 칠십인들의 전도활동에 의하여 사탄이 곳곳에서 패배당하는 것을 예수님께서도 보고 계셨다는 의미다. 칠십인의 전도활동은 언뜻 보기에는 별로 대단치 않아 보이는 사람들이 시골 동네들을 돌아다니며 몇 마디 말을 전하고 몇 사람 병 고쳐 주는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실상에 있어서 그들의 전도는 죄 사함에 있는 것이다.

누가복음 109절에서『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죄사함을 맏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사탄을 곳곳에서 격퇴시키는 것과 같이 엄청난 승리였다고 예수님께서 크게 칭찬해 주시는 말씀인 것이다. 그것은 마치 『번개가 땅에 떨어지는』것처럼 사탄의 역할이 급속도로 추락하게 되는, 실로 압도적이고도 명백한 승리였던 것을 말해주신다.

13 16

τατην δ θυγατρα βραμ οσαν, ν δησεν σατανς δο δκα κα κτ τη, οκ δει λυθναι π το δεσμο τοτου τ μρ το σαββτου;(넷슬 알란드 성경)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개역개정)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임 바 된 자는 죄인으로서 감옥에서 18년을 지내고 있는 자라는 의미다. 매임에서 풀어주는 것은 죄를 사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시고, 선 마른 자를 고치시며, 귀신들린 자의 몸에서 귀신을 나가게 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그런 일을 하면 안된다고 예수님을 비난했다.

그리스도는 안식의 주인이시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도 안식이 된다. 예수님이 안식의 주인이므로, 안식일 지킨다는 말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안식의 주체이므로 안식일에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쫒아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도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을 하면서도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면 안식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안식하지 못한 상태에 있음을 말해준다. 오늘날, 사람들이 안식일을 대체해서 주일이라는 것을 만들었으며, 율법과 같이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같은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다.

223

Εσλθεν δ σατανς ες οδαν τν καλομενον σκαριτην, ντα κ το ριθμο τν δδεκα·(넷슬 알란드 성경)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개역개정)

비록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가롯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갔다. 그 이유는 사탄이 죄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가롯 유다의 죄는 예수님을 팔려는 것이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죄를 사해주는 권능을 가진 분이었지만, 가롯 유다는 예수님이 하시는 모습을 육의 눈으로 바라봄으로 전혀 영적인 눈을 가지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가롯유다가 예수님을 팔아서 십자가로 가도록 하고, 그곳에서 큰 권능으로 로마 군대를 무찌르고 나올 줄로 생각한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은 죄 사함을 위한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가롯유다가 그 일에 앞장선 셈이 된 것이다.

요한복음 1327

κα μετ τ ψωμον ττε εσλθεν ες κενον σατανς. λγει ον ατ ησος· ποιες ποησον τχιον. (넷슬 알란드 성경)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개역개정)

가롯 유다가 예수님이 주시는 떡 조각을 받기 전에 이미 예수님을 팔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하와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자 하는 의도를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것과 같은 것이다. 가롯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하나님의 일을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과 맞추려 한 것이다. 그는 떡 조각을 먹은 후에 예수를 팔 결심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탄은 그에게 죄를 발견하고 유다에게 들어간 것이다.

요한계시록 202

κα κρτησεν τν δρκοντα, φις ρχαος, ς στιν Διβολος κα Σατανς, κα δησεν ατν χλια τη(넷슬 알란드 성경)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개역개정)

사탄의 명칭을 정의해 주는 대목이다. 사탄을 용, 옛뱀, 마귀라고 말하고 있다. 20 1-3『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타 에드네)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천년 동안 사탄을 무저갱에 넣는다는 것은 사탄이 활동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죄인에 대한 기소권의 중지다. 천년이라는 개념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통치의 개념이다. 천년동안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나라가 천년왕국이라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의 개념으로, 천년왕국이라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의미한다. 그래서 사탄이 하나님 백성에 대해서 기소하지 못하는 것이다.

[마귀 διαβλ디아블로]

1. 마태복음

41

Ττε ησοῦς νχθη εἰς τν ρημον π το πνεματος πειρασθναι π το διαβλου. (넷슬 알란드 성경)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개역개정)

2541

Ττε ρε κα τος ξ εωνμων· πορεεσθε π’ μο [ο] κατηραμνοι ες τ πρ τ αἰώνιον τ τοιμασμνον τ διαβλ κα τος γγλοις ατο. (넷슬 알란드 성경)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개역개정)

왼편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일을 믿지 않는 자들이다. 예수님이 죄를 사해주는 권능을 가지고 있음을 믿지 못하므로, 하나님이 죄인들에게 죄를 심판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죄를 심판하기 전에 사탄의 기소를 받게 된다. 마귀와 그의 사자들은 오늘날 검사와 검찰 공무원에 해당될 것이다.

누가복음 42

μρας τεσσερκοντα πειραζμενος π το διαβλου. Κα οκ φαγεν οδν ν τας μραις κεναις κα συντελεσθεισν ατν πενασεν. (넷슬 알란드 성경)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개역개정)

에베소서 427

μηδ δδοτε τπον τ διαβλ. (넷슬 알란드 성경)

『마귀에게 틈을 주지말라』(개역개정)

426절에서 분을 내는 이야기를 하다가 27절에서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하고서는 28절에서 다시 도둑질 하지 말라고 한다. 바울이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마귀에게 틈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지를 점검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면, 여전히 율법 아래 있으므로, 죄의 냄새를 맡는 마귀에게 틈을 주는 것이다. 오늘날도 대부분 교회에서 날마다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고 말을 하는 자들은 여전히 성소의 마당을 왔다갔다 하는 자들로서 율법의 지배를 받는 자들이다. 그래서 항상 죄를 짓는지 않는지를 생각한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로마서 81절에서 성령을 따르는 자에게 죄를 묻지 않는다고 약속하셨는데도 믿지 않는 것이다. 좀 성경을 잘 읽어보고 마귀에게 기소당하지 않도록 율법으로부터 벗어나라는 말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기 위해서는 육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가 됨을 기억해야만 하는 것이다.

에베소서 611

. νδσασθε τν πανοπλαν το θεο πρς τ δνασθαι μς στναι πρς τς μεθοδεας το διαβλου·(넷슬 알란드 성경)

『마귀의 간계(메도데이아스)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파노플리안) 갑주를 입으라』(개역개정)

메도데이아스는 계획과 방법을 갖춘 투자 또는 양육, 여행, 기만, 간계, 속임수 등의 의미를 갖는다. 마귀는 택한 자도 넘어뜨리려고 한다. 성경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는 성도라면 넘어가지 않겠지만, 일반 신도들은 마귀의 시험에 넘어갈 수 있다. 마귀의 시험은 예수님의 예를 통하여 볼 때, 잘못된 구원론을 믿고 있는 자를 가려내는 것, 복음과 율법을 겸히 받아드리는 자를 가려내는 것, 하나님과 세상을 겸히 섬기는 자를 가려내는 것이다. 그래서 잘못된 자를 하나님께 고소하는 것이다. 첫째 잘못된 구원론은 예수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것이다. 물과 성령으로 하늘로부터 태어나야 구원에 이른다. 둘째 복음과 율법을 동시에 받아드리는 것은 예수 그리스의 피를 통하여 죄를 용서받았지만, 현재와 미래에 대한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율법의 규정을 지키거나 항상 생각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셋째, 하나님과 세상을 겸히 섬기는 자는 영적 우상숭배에 해당되는 것이다. 성도는 성경 말씀으로 완전한 무장을 하고 있으므로 문제가 없을 것이나, 성령으로 나지 않은 신도들은 마귀의 시험을 통과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마귀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세상이라는 감옥으로부터 자유함을 입을 수 없는 것이다.

요한138

ποιν τν μαρταν κ το διαβλου στν, τι π’ ρχς διβολος μαρτνει. ες τοτο φανερθη υἱὸς το θεο, να λσ τ ργα το διαβλου.(넷슬 알란드 성경)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하마르타네이)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뤼세) 하심이라』(개역개정)

여기에서 죄를 지으면, 마귀자식이라고 말을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자들은 마귀 자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곧 죄를 짓는 자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가장 중요한 의미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는가이다. 바울은 날마다 죽노라 라고 말을 하므로서,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상기했다. 아르케(ἀρχς)는 처음부터가 아니라 리더, 인도자라는 의미다. 하마르타네이는 죄를 범하다, 과녁을 벗어나다 라는 의미다. 『처음부터 범죄함이라』라는 말은 우두머리(하나님)로부터 벗어나다 라는 의미다. 마귀는 악한 천사들의 마음을 간파하였으나, 죄를 짓지 못하도록 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죄를 드러나게 하므로서 천사들이 죄를 짓는 잘못을 범한 것이다. 뤼세는 풀어주다, 자유함을 주다 라는 의미다. 마귀의 소속 하에 있는 죄인들을 회개하므로 풀어주는 것을 의미한다.

[귀신 δαιμνιον 다이모니온]

마태복음

933

κα κβληθντος το δαιμονου λλησεν κωφς. κα θαμασαν ο χλοι λγοντες· οδποτε φνη οτως ν τ σραλ. (넷슬 알란드 성경)

『귀신이 쫓겨나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거늘 무리가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하되』(개역개정)

귀신들린 자는 엄밀히 죄인으로서, 감옥에 있어 간수들이 죄인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죽을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자에게 변호사인 예수님이 죄를 사면했을 때, 간수들은 그 증표를 보고 죄수를 풀어주는 것이다. 대통령이 죄를 사면하는 것은 참으로 흔한 일이 아니다. 세상에서도 사람들이 사면에 대해서 다 놀라는 것이다.

1118

λθεν γρ ωννης μτε σθων μτε πνων, κα λγουσιν· δαιμνιον χει. (넷슬 알란드 성경)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개역개정)

세례요한은 심판이 임박했다고 말하는데, 백성들은 가슴을 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 보여주셨는데, 유대인들은 귀신들린 자의 행위로 바라보고, 세리와 죄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바라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자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자들에게 심판이 임하게 되는 것이다. 이 말은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세상이 다 그렇다는 것이다. 세례요한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하니, 바리새인들이 귀신들린 자라고 비난한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심판의 임박을 외치는 세례요한을 바라보니 마치 비이성적인 모습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과 포도주를 즐기는데, 저 사람은 무엇하는 자인가 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함부러 이야기하는 것은 바리새인들에게 죄로 보인다. 그래서 귀신들린 자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마가복음 729

κα επεν ατ· δι τοτον τν λγον παγε, ξελλυθεν κ τς θυγατρς σου τ δαιμνιον. (넷슬 알란드 성경)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개역개정)

예수님이 죄사해주는 권능을 가졌으므로, 죄수를 지키는 간수는 죄인죄인부터 나가는 것이다.

누가복음 435

κα πετμησεν ατ ησος λγων· φιμθητι κα ξελθε π’ ατο. κα ῥῖψαν ατν τ δαιμνιον ες τ μσον ξλθεν π’ ατο μηδν βλψαν ατν. (넷슬 알란드 성경)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개역개정)

귀신들린 자는 하나님을 떠난 모든 자를 의미한다. 예수님이 귀신을 쫒아냈다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자를 사탄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것이다. 사탄은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왔는지를 잘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심판을 시작하기 위해서 왔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결국 예수님은 변호사이자, 판사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기소권을 가진 사탄은 예수님에게 대항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 더러운 영 πνεματι καθρτ프뉴마 아카다르토]

1. 마가복음

123-26

Καὶ εὐθὺς ἦν ἐν τῇ συναγωγῇ αὐτῶν ἄνθρωπος ἐν πνεύματι ἀκαθάρτῳ καὶ ἀνέκραξεν λέγων· τί ἡμῖν καὶ σοί, Ἰησοῦ Ναζαρηνέ; ἦλθες ἀπολέσαι ἡμᾶς; οἶδά σε τίς εἶ, ὁ ἅγιος τοῦ θεοῦ.καὶ ἐπετίμησεν αὐτῷ ὁ Ἰησοῦς λέγων· φιμώθητι καὶ ἔξελθε ἐξ αὐτοῦ.καὶ σπαράξαν αὐτὸν τὸ πνεῦμα τὸ ἀκάθαρτον καὶ φωνῆσαν φωνῇ μεγάλῃ ἐξῆλθεν ἐξ αὐτοῦ.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개역개정)

더러운 귀신은 어두운 영을 의미한다. 가다라 지방에서 귀신들린 자가 예수께 말하고 있다. 마태복음 8 29 『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귀신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유대인들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귀신들린 사람의 의미는 하나님 나라를 떠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자를 말한다. 그래서 사탄의 종이 되어 있다. 즉 율법주의자를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귀신을 쫒아낸 것에 대해서 의미를 깨닫지 않으면, 숨겨진 비밀을 알 수 없게 된다.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핵심은『율법주의 유대인들이 모두 귀신들린 자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귀신을 쫒아내 주므로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는 것이다. 귀신을 쫒아내므로서 병이 떠나가고, 맹인이 눈을 뜨고, 그래서 결국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127-28절에서는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새 교훈은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복음이 들어가므로 율법을 믿던 자가 변화되는 장면을 보여주신다.

311

κα τ πνεματα τ κθαρτα, ταν ατν θερουν, προσπιπτον ατ κα κραζον λγοντες τι σ ε υἱὸς το θεο. (넷슬 알란드 성경)

『더러운 귀신들(영들)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개역개정)

더러운 영들이라고 번역되었지만, 어두운 영들이다. 즉 죄를 담당하는 간수에 해당되는 천사를 의미한다. 천사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52

κα ξελθντος ατο κ το πλοου εθς πντησεν ατ κ τν μνημεων νθρωπος ν πνεματι καθρτ, (넷슬 알란드 성경)

『배에서 나오시매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개역개정)

예수께서 갈릴리호수 건너편 가다라(거라사)지역에 가셨을 때의 일이다. 가다라 지역은 10개의 작은 도시(데가볼리)로 이루어진 부유한 도시였다. 이 지역에는 헬라와 동맹한 작은 도시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가다라 지역에는 유대 땅이면서도 로마의 군부대가 주둔해 있었고 이 지역의 분위기는 퇴폐적이고 거칠었다. 또한 각종 종교와 문화와 사상이 혼합되어 있었다. 소비와 향략의 퇴폐적인 문화의 땅이 바로 가다라였던 것이다. 이로 인해 신앙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병들고, 고통하며,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 일행은 가다라의 한 해변 지역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 곳에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님에게 나타났다. 그는 무덤 사이에서 살고 있었는데 몹시 사나워서 사람들이 아무도 그 길로 다닐 수가 없었을 정도였다.

누가복음5 6-10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자기를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그 사람이 예수님을 보자 소리질러 하는 말이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하며 자신들을 내쫒지 말아달라고 간청했다. 귀신들렸다는 말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않고, 사탄의 지배하에 있는 죄인들을 말한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자체가 사탄의 권세 아래 있는 것이다. 군대 귀신으로 표현했다. 가다라 지방은 이방인들이 많이 살았던 지역이다.

누가복음 511-17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이에 간구하여 이르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매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여러 마을에 말하니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러 와서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이에 귀신 들렸던 자가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그들에게 알리매 그들이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예수님이 귀신에게 나오라고 하므로 군대 귀신이 나왔다. 그런데 그 귀신들이자기를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그런데, 누가복음 8 31절에서는『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라고 되어 있다. 즉 심판 때가 되지 않았으므로 자기들의 기소권을 뺏지 말아달라는 간청이었다. 군대 귀신들이 돼지 떼에 들어가도록 허락해 달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허락하셨다.

그런데『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바다는 율법을 상징한다. 바다에 빠져 죽는다는 말은 율법 아래 빠지는 것이다. 그래서 바다는 율법 아래 죽은 자들이 갇혀 있는 곳이기도 한 것이다. 관련해서 애굽의 군대가 다 수장 당해서 죽은 것을 나타낸다. 사탄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대상으로 기소하고 그들을 관리한다.

돼지는 누구인가? 돼지는 유대 율법주의자를 말한다. 그리스도를 발견했지만 여전히 율법을 신봉하고 있는 자들이다. 마태복음 7 6절에서『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시켜 주었는데,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불평하는 것이 바로 개와 돼지들이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광야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917

Κα πεκρθη ατ ες κ το χλου· διδσκαλε, νεγκα τν υἱόν μου πρς σ, χοντα πνεμα λαλον·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다른 영)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개역개정)

제자들이 귀신을 쫒아내지 못하자, 귀신들린 아이를 예수님께 데리고왔다. 예수님이 귀신들린 아이를 치료해주었는데, 제자들이 예수님께 『왜 자신들은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지 못합니까 라고 물었다. 예수님은 기도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 교통이다.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과 대화할 수 없다는 말씀이다.

오늘날 목사나 신도들 중에 사탄아 물러가라 라고 말을 하는 자들도 있지만, 죄를 사해주는 권능을 가지기 위해서는 성도의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지고 예수님이 성령으로 성도의 심령 속의 지성소로 들어와야 한다. 즉 물과 성령으로 태어난 자가 그렇게 한다는 말이다. 교회에 들어와서 예수믿는다고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성도는 현재적 부활을 믿고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지고 예수님이 성전에 재림하여 들어왔음을 믿을 때, 권능이 주어지며, 회개하는 죄인에게서 사탄을 내쫒을 수 있다. 그렇지 못한 자는 서소의 마당을 밟은 자일 뿐이다. 그들은 날마다 죄를 회개하고 죄를 피로 씻어야 한다고 믿는 자들인 것이다. 그들은 율법주의자들과 같은 것이다.

2. 누가복음

82

κα γυνακς τινες α σαν τεθεραπευμναι π πνευμτων πονηρν κα σθενειν, Μαρα καλουμνη Μαγδαλην, φ’ ς δαιμνια πτ ξεληλθει, (넷슬 알란드 성경)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더러운 영들)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개역개정)

일곱이라는 숫자는 완전함을 의미한다. 개선의 여지가 없는 완전한 죄인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를 어두운 영으로부터 자유함을 주셨다. 그녀는 하나님께 대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여 예수님께 나아갔던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사람들은 제자들과 귀신으로 부터 해방된 자, 병고침을 받은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이 하나님 나라를 받는 것이다. 그 이유는 회개하여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942

τι δ προσερχομνου ατο ρρηξεν ατν τ δαιμνιον κα συνεσπραξεν· πετμησεν δ ησος τ πνεματι τ καθρτ κα ἰάσατο τν παδα κα πδωκεν ατν τ πατρ ατο. (넷슬 알란드 성경)

『올 때에 귀신이 그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버지에게 도로 주시니』(개역개정)

제자들은 귀신을 쫒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예수님이『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믿음에 대해서,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믿음은 자기확신과는 다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교회 사람들의 믿음은 자기 확신에 근거하고 있다. 믿음은 자기 확신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믿음이 없는 세대는 예수님이 죄를 사해주는 권능을 가지고 있으며, 예수님으로부터 권능을 부여받은 제자들도 죄를 사해주는 능력을 가지는데, 제자들도 그것을 믿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제자들이 귀신을 쫒아내지 못한 것이다. 믿음이 없는 세대가 비정상적 세대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꾸짖는 것은 믿음이 없는 비정상적인 세대를 꾸짖는다.

아넼소마이(ἀνξομαι)는 아나(~위에)와 에코(소유하다)의 합성어이다.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위에서 소유할 것인가 라는 말이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항상 함께 일을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세상이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이므로, 나는 너희와 언제까지 있을지, 너희를 위에서 언제까지 소유할지 아는가 라는 말이다. 예수님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게 될 것을 말씀해 주신다. 임마누엘의 신앙을 말하고 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있는 임마누엘 신앙을 의미한다. 성도는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그 성전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 성도 역시 죄를 사해주는 권능을 가지는 것이다. 그런데, 제자들이 어두운 영(죄수를 지키는 간수)을 죄인의 몸으로부터 나가게 하지 못하므로 예수님이 직접 이 일을 하시는 것이다.

[ 용 또는 옛뱀 ]

요한계시록 201-2절에서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용을 옛뱀, 마귀, 사탄으로 표현했다.

요한계시록 12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세메이온)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디아데마타)이 있는데』

붉은 용은 사탄인가? 다른 이적(세메이온)이 나타난다. 붉은 용에 대한 이야기다. 붉은 용은 여자와 상반되는 존재(거짓 선지자)를 의미한다. 디아데마타는 세상 왕이 쓰는 왕관이다. 머리가 일곱이라는 말은 일곱 교회를 상징하는데, 각자가 왕노릇한다는 의미다. 왕노릇하는 자들은 거짓 사역자를 의미한다. 뿔이 열이라는 말은 왕노릇하는 사역자 옆에서 권세를 행사하는 자들도 있다는 것이다.

첫째 세메이온(이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요한계시록 12 1절『하늘에 큰 이적(세메이온)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스테파노스)을 썼더라』세메이온(σημεον)은 표적(표시)을 의미한다. 크게 세가지로 사용되었다. 기적(계시록 13-14), 싸인, 일어났거나 일어날 사건에 대해 통찰력을 갖도록 하는 것(표적)이다. 여기는 세번째에 해당되는 세메이온(표적)이다. 표적은 실체에 대한 그림자 역할을 한다. 보이는 것은 상징을 의미다. 상징을 통해서 실체를 보여주려고 한다.

12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121-6절은 땅에 대한 전쟁의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7절부터 17절까지는 하늘에 관한 전쟁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늘은 단수로 사용된다. 토 우라노(τ ορανῷ) 는 하나님이 계시는 지성소를 나타낸다. 복수로 나타낼 때는 성도의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다. 다니엘 1021절에서 미가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오직 내가 먼저 진리의 글에 기록된 것으로 네게 보이리라 나를 도와서 그들을 대항할 자는 너희의 군주 미가엘뿐이니라』미가엘은 전쟁에 관한 천사를 나타낸다. 다니엘 121절에서는 이스라엘을 보호하는 천사로 나타난다.『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그래서, 미가엘은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요한138절에서『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아르케)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뤼세) 하심이라』아르케는 처음부터 라는 의미가 아니라, 우두머리 라는 의미다. 마귀는 우두머리(하나님)가 직책을 정해준 것이고, 하나님의 아들(미가엘:그리스도)이 나타난 것은 마귀(사탄:)의 소속에 있는 자를 풀어주기 위함이라는 의미다. 뤼세는 풀어주다, 파괴하다 라는 의미다.

천사장은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천사로 나타날 때는 가브리엘이나 미가엘로 등장하는 것이다. 가브리엘이나 미가엘은 엘이라는 글자가 포함되어 있다. 가브리엘은 좋은 소식을 전할 때, 미가엘은 영적 전쟁을 할때 등장한다. 가브리엘이나 미가엘은 같은 영적인 존재로서 그리스도의 계시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죄인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는 변호사(그리스도)와 죄인을 구속 기소하려는 검사()와의 법적 논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12 8-9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이기지 못한다는 말은 더 이상 힘을 갖지 못하다 라는 의미다. 마귀는 미가엘 천사장과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 미가엘이 그리스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마귀의 정체를 설명하고 있다. 사탄이라는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미혹한 옛뱀이라는 것이다. 큰용, 옛뱀, 마귀, 사탄은 같은 존재이다. 사탄은 하나님의 천사장이나, 천사들이 가지고 있던 죄의 마음을 이끌어 냈지만, 결국 그들을 죄인으로 몰고 간 것이다. 결국 악한 천사들은 세상이라는 감옥에 가게 되고, 사탄은 그들을 관리하는 자로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 그것을 공중 권세 잡은 자로 표현된다.

12 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사탄(마귀)은 참소(카테고론 κατηγορν)하는 자이다. 마귀는 죄인들을 하나님께 참소한다. 욥기에서도 사탄이 욥을 참소한다. 요한복음 545절에서『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할까 생각하지 말라 너희를 고발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가 바라는 자 모세니라』모세가 사탄의 역할을 한다. 모세는 율법의 대명사이기 때문이다. 율법이 계속 우리를 고소하는 것이다. 하늘에서 그리스도가 전쟁을 이겼다. 그래서 하늘에서는 더 이상 율법의 필요성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참소당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승리하셨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과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이는 복음의 능력이다. 귀신의 능력을 제어할 수 있는 복음의 능력이 성도에게 있는 것이다. 성도(교회)는 사탄을 쫒아낼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서 반드시 사탄이 쫒겨나야만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하늘(우라노이 ορανο)은 복수의 하늘이다. 성도의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지성소)이다. 하늘들에 속한 자들은 즐거워하라는 것이다. 성도의 하나님 나라는 땅과 연결되어 있다. 땅에서도 살고, 하나님 나라에도 있는 것이다. 하늘의 존재가 땅으로 내려왔으며, 땅에 나그네로 살던 자가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모습이다. 첫사람 아담과 함께 내려 온 자들이 마지막 사람 아담과 함께 올라가는 모습인 것이다.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땅과 바다는 사탄의 무대인 것이다. 그래서 땅에 살고 있는 성도는 사탄과 부딪힐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바다는 성전으로 말을 하자면 성전 밖이다. 이방인이 사는 곳이다. 바다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곳이고, 땅은 율법이 지배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늘은 성령이 지배하는 것이다.

12 13-14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배경은 땅이다.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남자를 낳은 여자는 표면적으로 마리아이기도 하지만 영적으로는 복음으로 사람을 낳는 성도를 의미한다. 따라서 남자(성도)를 낳은 여자(그리스도)를 박해하는 것이다. 박해라고 번역되었지만, 논쟁을 벌이는 것이다. 검사는 죄인에서 죄를 분명히 입증하고, 변호사는 죄에 대한 사면의 조건을 통해서 자유함을 주려고 논쟁을 벌인다.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큰 독수리의 두 날개는 성령에 의지하여, 기도로서 사탄과 싸울 수 있는 능력을 받는 것이다. 광야는 척박한 곳이지만,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의미한다. 광야에서 고생하지만,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받는 것이다. 마치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한 후에 사탄의 시험을 받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12 15-16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여자와 뱀과 땅이 등장한다. 뱀은 여자의 뒤에서 물을 토하는 것이다. 뒤에서 추적한다(아다프)는 의미다. 입과 물은 말씀을 의미한다. 강같이 토한다는 말에서 사탄은 자기의 말을 계속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뱀(사탄)이 여자(그리스도)를 굴복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땅은 이스라엘(율법)을 상징한다. 그리스도는 율법에 따라 죽으셨다. 이게 사탄을 논쟁에서 이길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12 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남은 자손은 헬라어 스페르마토스(σπρματος 기본형은 스페르마:)이다. 여자의 씨의 남은 자들(λοιπν το σπρματος ατῆς)이라고 되어 있다. 여자의 씨(후손)는 그리스도의 남은 자들이다. 남은 자들의 특징은 계명을 지킨다고 말을 한다. 계명을 지킨다는 말은 테룬톤(지킴) 타스(관사) 엔토라스(계명): (τηροντων τς ντολς) 로서 테룬토는 법 조항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가를 보호하다 지키다 라는 의미다. 사도행전 126절에서『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진 것은 확증된 말씀을 의미한다.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바다는 세상을 의미하며, 모래는 사탄의 사자들을 상징한다. 짐승(그리스도의 대적자)이 바다로 올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진 자와 싸우려고 하는 모양이다.

182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바벨론은 감옥과 같은 곳이다. 그래서 그곳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모이는 곳이 된다. 그곳에는 죄인들을 관리하고 감시하는 귀신과 더러운 영이 함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외치는 것이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두번 외치는 것은 강조이다. 사탄이 그리스도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래서 회개하는 죄인이 무너진 감옥으로부터 자유함을 입게 된다.

또한 거짓선지자들도 함께 무너진다. 마태복음 242절에서『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큰 바벨론은 돌성전인 예루살렘 성전을 의미한다. 바벨론은 왕들이 모이는 것이다. 가짜 하르마겟돈이다. 그들의 특징은 의식화된 종교를 가지고 있으며, (그리스도) 대신에 벽돌(자기의 의)로 쌓았다.

20 1-3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타 에드네)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천년동안 사탄을 무저갱에 넣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탄이 활동하지 못하게 된다. 사탄이 죄인을 고소할 수 있는 권한이 일정기간 중지되는 것이다. 천년이라는 개념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통치의 개념이다. 천년동안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나라가 천년왕국이라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의 개념으로, 천년왕국이라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의미한다. 성도가 천년왕국이 될 때, 사탄은 성도를 공격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20 7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천년왕국의 교회인 성도는 하늘로부터 난 자로서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사탄의 지배에서 벗어났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잠시 사탄의 기소권을 회복해 준다. 사탄은 여전히 죄인을 기소하는 것이다. 그래서 검사와 변호사는 다시 치열한 전쟁이 일어나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권능을 부여받은 제자들인 성도 역시 사탄과 그의 사자들과 싸우는 것이다. 결국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이 승리하게 된다.

20 9-10

『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고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텐 팀넨 투 퓌로스 카이 데이우)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텐 팀넨() 투 퓌로스() 카이 데이우(하나님의 말씀)에서 데이우를 유황으로 번역되었으나, 하나님의 말씀이다. 불못은 성령의 불을 의미한다. 즉 성령의 불과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사탄은 그리스도에게 항복하는 것이다.


. 영적 전쟁의 의미

 

영적 전쟁은 말 그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이다. 세상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나름대로 종교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으며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 기독교를 종교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에게 영적 전쟁에 대해서 질문을 한다면, 그 대상에 대해 거의 대부분 사탄 또는 악한 영으로 말할 것이다.

 

영적 전쟁도 육적인 전쟁과 마찬가지로 피아식별을 할 줄 모르면 전쟁에서 싸울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영적 전쟁을 하게 되는 나는 누구이며, 그 대상은 누구와 싸우는가를 알지 못하면 전쟁에서 지는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영유아기를 지나 청소년기에 접어들면 자아에 대한 의식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래서 자기라는 정체성에 접하게 되는 것이다. 나를 모르면 전쟁에 나갈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태어나면서 나타나는 자아는 바로 육적 자아라는 것이다. 이 육적 자아는 대략 일곱가지의 특성을 갖는 집합체 형식으로 되어있다. 육체의 본성, 혈연관계, 경험과 지식, 사상과 이념, 종교심, 자기의 의, 지배하고 싶은 욕망 등이다. 이것은 성장하면서 발전하기도 하고, 위축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육적 자아는 하나님과는 적대적인 대립을 세우기 때문에 육체 속에 갇혀있는 영에 대해서는 무시하거나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 말씀도 거부한다.

 

우리는 영의 존재에 대해서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어야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바르게 설 수 있다. 성경은 인간에 대해서 육체와 영이 결합된 존재라고 말을 한다. 그런데, 영은 흙이라는 육체 속에 갇혀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영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흑암 속에 있는 것이다. 비유로 말을 하자면, 세상에 살다가 죄를 범하여 감옥에 들어가 있는 어떤 사람과 같은 모양이다. 그래서 그 사람은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다가 세상에서 입던 옷과 모든 것을 빼앗기고, 번호가 적힌 죄수복을 입고 일정기간 감옥에서 사는 것과 같은 것이다. 감옥에서 그 사람의 정체성은 죄수복에 적힌 번호가 될 것이다. 인간의 육체 속에 갇힌 영도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하여 육체 속에 갇혀 있으며, 혼이라는 옷을 입고 있는 것이다.

 

감옥 속에 갇혀있는 자가 자신의 이전의 정체성을 깨닫기 위해서는 부모를 기억하고 자신이 살던 집을 생각하고, 함께 살아온 가족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 역시 영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때만 영적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어렴풋하게 느끼게 된다. 그럴 때 정체성의 혼란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천국의 비밀에 대해서 씨뿌리는 비유로 설명한다. 흙을 갈고,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경작하면서 생명의 싹이 자라듯이 육체 속에 갇힌 영에 대해서 수없이 많은 묵상과 성경의 말씀을 읽으므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성경 속에서 말씀을 하기를 영이 육체 속에 갇힌 근본적인 원인은 영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을 한다. 그게 탐심이며, 우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하나님께 대하여 죄라고 성경은 말하는 것이다. 죄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떠난 것을 의미한다. 성경은 창세기 2 17절에서 하나님께 대한 죄인은 두번 죽어야 한다고 말을 한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죽고 죽으리라) 하시니라. 한글 번역 성경은 반드시 죽으리라 라고 되어 있으나, 히브리어 성경은 죽고 죽으리라 라고 되어 있다. 이렇게 두번 죽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떠나 흙에 갇힌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려는 마음이 생기는 자이다. 하나님께 대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자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이게 회개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에 동참하게 된다.

 

첫번째 죽음은 죄에 대해서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물세례이다. 로마서 6 3-7절에서 세례와 죄에 대해서 말을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사람은 스스로 죽을 수 없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내세워 십자가의 죽음으로 회개하는 인간들을 대속하는 것이다. 단지 예수가 인간을 대신해서 죽는 것 뿐만 아니라, 함께 죽었음을 믿게 하여 죄인도 역시 죽으므로 죄를 사면받게 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성도가 된 자는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다. 백보좌 심판은 율법 속에 있는 모든 자들이 받게 된다.

 

두번째 죽음은 혼의 죽음이다. 이것은 불세례이다. 이전의 옷을 벗고불에 태워버리는 것이다. 혼은 육체와 영이 만나서 인간이 되는 가죽옷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이 첫사람 아담에게 입혀주신 옷이다. 그런데, 이는 육체로 비롯된 옷이므로, 그 옷을 벗고 하늘로부터 오는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성령세례인 것이다. 이것을 그리스도의 옷이라고 부른다. 그리스도의 옷으로 갈아입는 자는 새로운 옷(영의 몸)을 입으므로 영이 빛을 받아서 살아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 43-44절에서는 영의 몸에 대해서 사도바울이 설명하였다. 영의 몸을 부활한 자의 몸이라고 말을 할 수 있다. 육체가 있으므로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자신이 부활한 자라는 것을 믿지 않으면, 옷을 갈아입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부활한 것을 믿을 때, 성도의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지게 된다. 이를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천국)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를 셋째 하늘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성도의 심령 속의 성전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이게 재림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지 않는 자는 성도의 심령 속에 천국이 임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육체 속에 육체로부터 나타난 자기의 정체성과 성령으로 하늘로부터 태어난 영적 자기 정체성이 혼재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피아식별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참된 나는 하늘로부터 태어난 영적 정체성이고, 나의 적은 다름 아닌 육으로부터 비롯된 정체성인 것이다.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착각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피아식별을 하지 못하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는 대상은 육적 자아이며, 부인해야 하는 주체는 영적 자아인 것이다. 이 둘은 육체가 죽을 때까지 싸우게 된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났지만, 불행하게도 세상은 영에 대해서 감옥과 같은 곳이다. 세상에도 감옥을 관리하는 자가 있다. 교도소장이 있으며, 부하 직원도 있을 것이다. 죄수를 법으로 통제하고, 불법을 저지를 때는 법으로 처벌하고, 노역도 시킬 수 있다. 영적으로 비유하자면 이들은 죄인에 대해서 악역을 맡은 공무원이라고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교도소장은 사탄, 그 밑에 있는 자들은 악역을 맡은 천사들이다. 그래서 어두운 영(마귀 등)이라고 표현한다. 모두가 자신이 맡은 바 역할을 다 할 뿐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육에 대해서 두 번 죽은 자에 대해서는 세상(교도소)을 떠나기 전이라도 죄없음을 인정하는 도장을 찍어준다. 더 이상 죄인이 아닌 것이다. 그들은 악역을 맡은 간수들이 더 이상 간여하지 않으며, 할 수도 없는 것이다. 다만 육체로 인해서 세상에 살아갈 뿐인 것이다. 요한1 3 9절에서『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요한1 5 18절에서『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다만, 죄인의 굴레에서 벗어났더라도, 사탄이나 어두운 영이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육적 자아가 괴롭힌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기와의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다.

사람은 생각대로 결과가 주어진다. 성경을 로고스로 받느냐 아니면 글자 그대로 레마로 받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성령의 능력으로 로고스로 받을 때는 율법에서 벗어나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지지만, 레마로 받을 때는 여전히 율법 속에 있는 자로서 사탄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지만, 사탄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모습이 되는 것이다.

율법 속에 있는 자는 영적 전쟁을 말할 수 없다. 그들은 여전히 죄인이기 때문이다.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진 자에게 영적 전쟁이란 말이 어울리는 것이다.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진 성도에게는 영적 전쟁의 대상이 두가지가 있다. 첫째는 거짓 선지자에 대한 전쟁이고, 두번째는 육적 자아에 대한 전쟁이다.

첫째 거짓선지자에 대한 전쟁이다. 마태복음 715절에서『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오늘날 거짓 선지자들은 성경 말씀을 왜곡하여 전하는 자들일 것이다. 왜곡된 성경 말씀은 잘못된 번역 성경을 사용하는 경우, 잘못된 교리와 의도적 왜곡 등을 들 수 있겠다. 열왕기상 221-40절의 내용을 보면 이스라엘 왕 아합이 아람나라와 전쟁을 하여 전략 요충지인 길르앗 라못을 빼앗기 위해 유다왕 여호사밧 왕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여호사밧이 선지자를 통하여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한지를 물어보았다. 아합이 자기를 지지하던 400명의 선지자를 모으고 물었을 때, 그들이 올라가소서 주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 라고 했다. 여호사밧이 이외에 우리가 물어볼만한 선지자가 없느냐 라고 하니, 아합이 이믈라의 아들 미가 선지자가 있으니 저는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않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저를 미워하나이다 라고 말을 했다. 그래서 여호사밧이 미가 선지자에게 물으니 온 이스라엘이 목자없는 양같이 산에 흩어졌다라고 예언을 했는데, 미가의 말을 믿지 않고, 숫적으로 많은 400명의 선지자의 말을 믿고 나가서 전투를 하다가 아합은 죽고 말았던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목사들 중에 경력이 화려하고 말솜씨는 뛰어나지만 진리를 전파하지 않는 자들이 있다. 진리를 전파하지 않으면, 모두 거짓 선지자가 된다. 대부분 교회 사람들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말을 하지만,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예수님은 나는 너를 모른다 라고 말을 할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죄에 대해서 옛사람이 죽고(물세례), 불세례로 혼에 대해서도 죽어야만 한다. 그렇게 되어야만 성령 세례로 하늘로부터 나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율법에 대해서 벗어났는데도 여전히 율법을지켜행하여야 한다고 가르치는 자들이 있다. 날마다 죄를 회개하고 예수의 피로 용서받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십일조를 반드시 내야한다고 가르치고, 안식일을 철저히 지켜나가야 한다고 가르치고, 절기도 잘 지켜나가야 하고, 이런 식으로 가르치는 것이 바로 다른 복음인 것이다. 이 모든 율법은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데, 안식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 이 세상에 오셨으면,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안식을 누리는 것이다. 그런데,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오심을 믿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규칙, 규정은 때로는 필요하지만, 구약의 율법처럼 강제적으로 규정화하여 사람들에게 멍에를 씌운다면 모두가 율법주의자들이 된다. 그리고 기복신앙으로서 마치 구약시대 출애굽하여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과 아스라 우상에게 빌었듯이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서 세상의 복을 비는 기도를 하는 것이다. 이것은 거의 만연된 기복신앙이다.

두번째는 육적 자기와의 전쟁이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셨다. 성도가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져도 인간의 육체로 비롯된 일곱가지의 육적인 모습은 쉽게 떠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와의 전쟁을 하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 견고하게 자리 잡은 것은 육체의 본성, 혈연관계, 지식과 경험, 사상과 이념, 종교심, 자기의 의, 지배하고 싶은 욕망 등이다. 이전의 “나” 라는 정체성이 바로 이 일곱가지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성도의 정체성은 하나님(엘로힘)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성도가 되고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져도 이 일곱가지의 악한 모습을 부셔야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전쟁에서 승리로 이끌고 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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