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빔을 가져 약대 안장 아래 넣고
드라빔을 가져 약대 안장 아래 넣고
(창세기 31장 25-35절) 라반이 야곱을 뒤쫓아 이르렀으니 야곱이 그 산에 장막을 친지라 라반이 그 형제와 더불어 길르앗 산에 장막을 치고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속이고 내 딸들을 칼에 사로잡힌 자 같이 끌고 갔으니 어찌 이같이 하였느냐 내가 즐거움과 노래와 북과 수금으로 너를 보내겠거늘 어찌하여 네가 나를 속이고 ……… 라헬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마침 생리가 있어 일어나서 영접할 수 없사오니 내 주는 노하지 마소서 하니라 라반이 그 드라빔을 두루 찾다가 찾아내지 못한지라
『라반이 야곱을 뒤쫓아 이르렀으니(라사르)』
사탄의 지배 받는 자가 그리스도를 찾아 헤매는 그런 모습이다.
『야곱이 그 산(하르)에 장막(오웬)을 친지라』
하르는 세상을 분리하는 산으로, 오웬은 하나님이 보여지는 성전을 의미한다. 야곱이 장막을 치고, 맞은편에 라반도 장막을 쳤다.『라반이 그 형제와 더불어 길르앗 산에 장막을 치고』여기에서 장막은 하나님의 성전이 아닌 것이다. 우상이 있는 산당과 같은 의미다.
라반이 야곱에게『자기를 속이고, 도망하여, 자기 딸들과 손자들을 끌고 갔으니, 너를 해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이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외삼촌 라반이 조카 야곱에게 말하는 것은 사탄이 그리스도에게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리스도가 자기의 백성을 칼(헤레브:하나님의 말씀)로 사로잡아(샤바:포로) 가듯이 잡아갔는가 라는 말이다. 포로는 두가지의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 나라에서 이 땅에 던져질 때는 율법의 포로가 되는 것이고, 그리스도로 인하여 율법으로부터 자유함을 입으면, 하나님께 사로 잡혀가는 것이다.
에베소서 4장 8절에서『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율법에 의해) 자들을 사로잡으시고(복음의 말씀으로) 사람들에게 선물(성령)을 주셨다 하였도다』이사야 61장 1절에서도 같은 의미의 말씀이 있다.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했다고 말한다.
라반이 야곱에게『내가 즐거움과 노래와 북과 수금으로 너를 보내겠거늘 어찌하여 네가 나를 속이고 가만히 도망하고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으며 내가 내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지 못하게 하였으니 네 행위가 참으로 어리석도다』
사탄은 자기의 자식들을 빼앗기는 마음을 이렇게 아름답게 미화하려고 하지만, 그리스도에게는 그런 말이 필요없다. 율법의 그물에 갇혀있는 자를 끌어내는데, 아름다운 말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입맞춤은 거룩한 입맞춤이 되어야 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그리스도)과 말씀을 가지려는 자가 입맞춤하는 것이다. 야곱의 아내와 자식들은 이제 야곱의 소속이다. 그러나 라반은 사탄의 소속이다. 그들은 입맞춤을 할 수 없는 상대인 것이다. 그래서, 라반은 입맞춤도 못하게 했다고 비난한다. 율법과 복음은 서로 만날 수 없다. 복음은 율법 위에 있기 때문이다.
『너를 해할 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사탄은 그리스도의 자식들을 헤할 능력이 없다. 요한복음 10장 29절에『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요한일서 5장 18절에서도『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어제 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너희 아버지라는 말은 원어에는 없지만, 번역상 좋은 번역이다. 사탄도 그리스도에게 그런 표현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이지, 라반의 하나님이 아닌 것이다. 라반의 하나님은 드라빔이다.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나라에서 왔다가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일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말하는 것이 온당지 않다는 것이다.
『이제 네가 네 아버지 집을 사모하여(카사프) 돌아가려는 것(할라크)은 옳거니와 어찌 내 신(테라빔:우상)을 도둑질하였느냐』
카사프는 손바닥과 버팀목으로 분리된 자가 삼켜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사모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삼켜져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것이다. 할라크는 세상에서 말씀의 막대로 분리되어 가는 것이다.
『외삼촌이 외삼촌의 딸들을 내게서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여 두려워하였음이니이다』
야곱이 두려워하는 것은 정말 빼앗길까봐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사탄에게 다시 넘어갈까봐 걱정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다고 말하면서도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세상과 분리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자가 있다. 예수님은 검을 주러 왔다고 말씀하신다. 세상과 전쟁하러 오신 것이다. 따라서 이 번역은 좋은 번역이 아니다.
『외삼촌의 신을 누구에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 우리 형제들 앞에서 무엇이든지 외삼촌의 것이 발견되거든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소서 하니 야곱은 라헬이 그것을 도둑질한 줄을 알지 못함이었더라』
하나님을 믿으면서,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시내산에서 모세가 십계명을 받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황금 송아지를 만들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야곱은 라헬이 그것을 도둑질(가나브)한 줄을 알지 못함이었더라』
도둑질하는 것은 율법을 가진 자가 성전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라헬이 드라빔을 가져간다. 라헬이 드라빔을 가지고 가는 것은 창세기 25장 26절에서 야곱이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태어나는 장면과 유사하다. 발꿈치를 잡는 것은 서로 연합되는 의미를 갖는다. 야곱(그리스도) 안에서 에서(이방인)도 구원을 받는 것이다.
드라빔을 가진다는 것은 드라비(우상)을 섬기는 자(사탄에게 속하는 자)가 그리스도를 만나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라반(사탄)의 눈으로는 도적질이 되고, 야곱의(그리스도) 시선에서는 강제로 하나님께 삼켜버리는 것이다. 곧 그들이 마귀의 소굴에서 성전이 되는 것이다. 사탄은 그리스도에게 빼앗기는 그의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는 것이다. 라헬의 장막은 요셉(그리스도 상징)을 낳은 장막(성전)이다.
『라헬이 그 드라빔을 가져 낙타 안장 아래에 넣고 그 위에 앉은지라』
낙타는 율법을 의미한다. 드라빔은 율법 아래 있는 자를 상징하고, 레헬이 안장 위에 앉는 것은 율법 위에 있는 것이다. 율법 아래 있는 자는 요셉(그리스도 상징)를 통해서 율법 위의 사람으로 바뀌는 것이다.
『라반이 그 장막에서 찾다가 찾아내지 못하매 라헬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마침 생리가 있어 일어나서 영접할 수 없사오니 내 주는 노하지 마소서 하니라 라반이 그 드라빔을 두루 찾다가 찾아내지 못한지라』
생리는 여자 만이 겪는 일이다. 생리는 아이를 갖는 것과 관계가 있다. 라헬이 아들을 두명 낳는데, 하나는 요셉과 벤냐민이다. 벤냐민(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름)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라고 말할 수 있다. 라헬이 벤냐민을 놓다가 죽게 된다.
여기에서 정리할 수 있는 것은 여인에게서 벤냐민과 테라빔의 관계인 것이다. 라헬의 생리로 인해서 그들은 테라빔을 찾을 수 없게 된다. 요셉을 이어 태어나는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인 벤냐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요셉을 이어서 나오는 자는 테라빔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결코 테라빔과 같은 존재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예수를 믿는다고 말을 하면서 테라빔과 같은 자들이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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