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인과 세리 비유

바리새인과 세리 비유

 

누가복음 18 9-14절『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자기의 의에 대한 비유의 말씀이다. 바리새인과 세리를 비교하면, 세리는 의롭다 하심을 위해서 한 일이 없었다. 오직, 세리는『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의를 얻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세리와 같지 아니하고,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리가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 나라에서 악한 천사()가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께 범죄했다. 하나님은 영들을 어두운 곳에 가두어버렸다. 그곳이 이 세상이다. 하나님이 물질세계를 창조하시고, 흙속에 영을 가두어 버렸다. 그래서 인간이 태어날 때 혼적인 존재가 된 것이다. 하나님처럼 된다는 말은 하나님이 없어도, 하나님처럼 스스로 의를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인간들이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일들이 계속되었다. 첫사람 아담 이후 인간들이 번성하기 시작했으며, 하나님은 한 민족을 택하여, 율법을 주시고 자기의 의에 빠진 자들을 깨닫게 해 주셨다. 율법을 철저히 잘 지키면 의로운 자가 되도록 해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율법을 지키다가 자신들은 도저히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죄인들이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여 그리스도를 찾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전히 율법을 지켜서 의로운 자가 되어보겠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모습은 이 세상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가지 형태로 노력하여 자기가 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영들이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약속하셨다. 창세기 3 15절에서『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후손이 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택하여, 씨의 언약을 하시고, 할례를 하게 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리스도(메시야)로 이 세상에 오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야로 여기지 않았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영을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로마서 8 3-4절에서『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자는 율법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의를 이루게 된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켜서 의를 이루겠다고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이렇게 고백하는 자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가가신다. 세리에게 다가가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그에게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되시는 것이다. 세리는 자신의 능력으로 의를 이루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에게로 간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 430년간 가두었다. 고통스럽고 괴로운 상태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라는 것이다. 애굽에 갇힌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에 갇힌 것과 같은 개념이다. 율법을 지키려고 하다가 도저히 지킬 수 없는 것임을 고백하고 부르짖고, 그리스도를 찾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3 23-24절에서『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은 스스로 할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회개하여 돌아오라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자마다 돌아가게 된다. 아들을 믿는다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하나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는 의미다. 자기의 의를 내세우는 모든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기를 부인하라,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부활생명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현재적 부활을 믿지 않는 자는 마치 바리새인들과 같이 율법 속에 빠져 있는 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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