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사도행전 15장 28-29절『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에파난케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에독켄)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에파난케스(ἐπάναγκες)는 필요한 것들, 필요하여, 필연적으로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에독켄(ἔδοξεν 기본형은 도케오)은 (좋게)여기다, 상상하다, 생각하다 라는 의미로서, 마태복음 18장 12절에『너희 생각(도케오)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토(여격 정관사) 프뉴마티(성령)으로서 영어로 표현하면 to the Spirit이다.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이 부분의 헬라어 성경은 ἔδοξεν γὰρ τῷ πνεύματι τῷ ἁγίῳ καὶ ἡμῖν 인데, 헬라어 성경에서 가르(γὰρ), 이 부분의 번역이 빠져있다. 가르(γὰρ)는 ~을 위하여, ~때문에 라는 영어의 for에 해당되는 단어이다. 이 문장에서 보면, 주어가 성령과 우리라고 표현되어 있으나, 잘못된 표현이다. 다시 번역하면,『성령에 따른 생각으로 인하여 우리가 필요한 것들이라 생각하는 것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노니』
성령에 따른 생각은 아무 짐도 지우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가끔 짐을 지우는 모습을 연출할 때도 있었다. 그것은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에게 이질적인 모습을 나타내지 않도록 그들의 생활방식에 자연스럽게 행동한 것이다.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율법적인 행동을 한다거나 이방인들에게 제물을 먹는 모습이라든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이 보기에 제물을 단순한 고기가 아닌 우상 제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차라리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은 피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앙의 초보상황에서는 잘못된 율법주의 신앙으로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피와 목매어 죽인 것도 마찬가지이다. 구약에서 피째 먹지 말라고 했는데, 이 규정을 기억하고 피째 먹는 것을 율법주의로 연계시키면, 복음의 의미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음행을 멀리하는 것은 당시 사회가 음행에 만연되어 있었으므로 이것을 멀리하라는 의미보다는 음행은 영적 간음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영적 간음이란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을 하면서도, 우상을 따르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복신앙이 대표적인 것이다. 교회 초신앙을 가진 자들은 대부분 이런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들이었다. 기복신앙은 하나님께 세상에서 잘 되도록 복을 비는 것이다. 세상의 복은 권력과 명예와 돈으로 대변된다. 기복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향해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이다.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프락케테 에로스데 πράξετε. Ἔρρωσθε.)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프락케테 에로스데는 강하게 행동하게 될 것이다 라는 말이다.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이나, 피째 고기를 먹는 것이나, 기복신앙의 문제도 능히 헤쳐나갈 수 있다는 말이다. 스스로 삼가는(디아테룬테스 헤우투스) 것은 네 자신을 지킨다는 말이다. 지킨다는 것은 마음을 뺏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킨다는 말은 어떤 규칙을 철저히 지킨다는 의미보다, 마음을 지켜, 마음이 흔들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십계명을 지킨다는 말의 의미가 바로 이런 것이다. 대부분 신도들은 십계명을 지킨다는 것을 규정에 따라 철저하게 그대로 행동한다는 의미로 받아드린다. 그렇게 할 수 없음에도, 그들은 철저히 지키도록 온 힘을 다하여, 목숨을 다하여, 마음을 다 하여, 뜻을 다하여 지켜야 한다고 믿고 행동하는 것이다.
대요리문답 92-98에는 도덕법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도덕법은 신앙생활의 법칙으로서 철저히 지켜야 하는 것이며, 이렇게 하므로서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도덕법은 십계명에 요약되어 포함되어 있다고 말한다.
문 99. 십계명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법칙을 준수해야 하는가? 답. 십계명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법칙을 준수해야 한다. 여덟가지를 들어서 설명하는데, 그 중 첫번째의 것을 보면, 율법은 온전한 것으로 누구나 전인격적으로 그 의를 충분히 따르고 영원토록 온전히 순종하여 모든 의무를 철두철미하게 끝까지 완수하여야 하며 무슨 죄를 막론하고 극히 작은 죄라도 금한다 라고 표현한다.
신도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율법을 완수하셨는데, 다시 십계명의 모든 규정을 철저히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지킬 수 없는 규정을 지켜야하는지 아니면 안지켜도 되는지 속으로 앓고 있는 것이다.
구약시대는 십계명의 규정을 철저히 지키도록 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렇게 지시한 것은 너희들은 죄인들로서 이것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신다. 그래서 희생제물을 통해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예수님이 율법에 대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므로 율법을 완수하셨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마찬가지로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들이다. 그래서 율법을 완수한 것으로 간주된다. 율법을 완수했는데, 율법을 다시 지키려고 한다면,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전의 상태는 죄인된 상태이다. 예수님이 이렇게 죄인된 상태에서 자유를 주셨는데, 왜 신도들은 다시 죄의 굴레로 들어와 율법의 멍에를 쓰려고 하는가?
도덕법이든 십계명이든 이 규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뜻을 생각해보면, 죄는 탐욕에서부터 비롯됨을 발견할 수 있다. 단순히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 죄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죄는 탐욕, 즉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규정 하나 하나를 통해서 이것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모든 율법의 규정들을 다 외울 수는 없지만, 대표적으로 표현된 십계명을 마음에 새겨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의 조명을 받아서 행동하면, 육적인 것에 마음을 뺏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적 전쟁은 내 마음 안에서 이루어진다. 육의 마음과 영의 마음의 전쟁인 것이다. 육체 속에 있는 생각과 하늘에 앉힌바 되는 영의 생각이 날마다 전쟁을 하는 것이다. 날마다 죽노라 라는 것을 기억하지 않으면, 날마다 넘어지게 된다. 그래서 사탄의 가시가 성도에게 날아든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