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사도행전 16장 8-10절『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보에데손)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바울은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게 되자 지체하지 않고 즉시 마게도냐 빌립보로 떠나 그곳에 이르게 된다. 바울은 아시아로 가기를 원했는데, 환상으로 아시아에 가는 마음을 접는 것이다. 그래서『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라고 말을 한다.


보에데손은 구원하다, 원조하다 라는 의미다. “도우소서”라는 말은 구원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고린도후서 6장 2절『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마태복음 15장 25절『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보에데이)』가나안 여자가 자기 딸이 귀신들려 있는데, 도와 달라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귀신을 쫒아내어 구원해 달라는 의미다.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은 빌립보인데, 자색 옷감 장사를 하던 루디아의 집에서 복음의 전파는 시작된다. 사도행전 16장 13-15절『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루디아는 하나님을 섬기는 여인이었지만, 성령세례를 받지 못했다. 그런데, 주께서 그녀의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와 그녀의 가족 모두가 성령세례를 받는 모습이다.


마음을 연다는 의미는 그 동안 마음의 문이 닫혀있었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복음 5장 26-29절『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무덤은 죽은 자가 묻혀있는 곳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 속에 갇힌 잠자는 영을 의미한다. 그의 음성을 듣는 자는 문을 열 것이다. 문을 여는 자는 그가 주인임을 아는 자인 것이다.


요한복음 10장 26-28절『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음성을 듣고 문을 여는 자는 누구인가? 마음의 문은 누군가가 문을 두드릴 때 반응하여 문을 열게된다.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베드로전서 3장 18-19절『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옥이 바로 육체에 갇힌 마음의 문을 의미하며, 예수님이 영으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문을 두드린다.


베드로는 이 말을 노아의 방주와 연결시킨다. 베드로전서 3장 20절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노아가 120년간 회개를 외치며,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홍수로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고 노아 자신과 오직 그의 가족 일곱명만 구원받았다는 것이다. 그만큼 마음의 문을 열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오늘날도 예수님이 제자나 성도들을 통해서 마음의 문을 계속 두드리고 있다. 영적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라는 것이다. 잠자는 자가 문을 열면, 예수님이 부활생명을 주셔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게 하실텐데, 반응이 없는 것이다.


반응하는 자와 반응이 없는 자의 차이는 무엇인가? 베드로전서 3장 21절에서『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세례는 물에서 죽고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으로 거듭나는 자는 선한 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양심이 죽어있는 자는 선한 양심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양심이 조금이라도 살아있으면,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이 주신 양심으로 복원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양심이 죽었는지, 아직 살아있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계속 복음으로 문을 두드려 보는 것이다. 양심이 조금이라도 살아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할 것이다.


양심이라는 말은 선한 마음을 의미하는데, 하나님이 첫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으며, 이 형상은 성전을 의미한다. 이 성전에 누가 앉아있는가 라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태어나자 말자, 죄인이 되는 것은 이 성전에 하나님이 없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자기라는 육적 자아가 그 성전에 앉아서 왕노룻하고 있는 것이다.


씨뿌리는 비유에서 마음 밭을 잘 갈고 정리하여 좋은 밭은 열매를 많이 수확한다고 비유했는데, 그 마음 밭이 바로 심령 속의 성전을 의미한다. 말씀을 듣고 깊히 묵상하여 하나님 말씀에 반응하는 것이 마음 밭을 가는 것이다. 그래서 왜 자신이 세상에 있는가 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을 떠난 죄인됨을 깨달을 때, 비로소 살아있는 양심이 작동되는 것이다.


히브리서 3장 6-8절『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생명이 복음이며, 이 말을 들을 때, 거역하지 말고 받아드려야만 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과 연합되는 것과 현재적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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