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사도행전 15장 10-11절『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멍에가 바로 율법이다. 율법으로는 구원받을 자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왜 율법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 이유는 육의 마음이 자기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육의 마음으로 스스로 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하는 것이다.


육의 마음은 성경에서는 육적 몸(죄의 몸:옛사람)으로 표현된다. 로마서 8장 7-8절『육신(사르코스)의 생각(프로네마)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사르코스는 영어로는 fresh로 표현되는데, 육적 몸이다. 육적 몸의 생각이 육의 마음이다. 프로네마는 영어로 mind로 표현되었다. 생각(한자어 유래)이나 마음(한글 유래)은 같은 의미를 갖는다.


로마서 8장 9-10절『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프뉴마티)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프뉴마티는 하나님의 영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은 어떻게 다른가? 모든 영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생명의 빛인 하나님의 영을 보내면, 예수님이 생명의 빛을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는 자에게 비추는 것이다. 마치 태양이 달에게 빛을 비추고, 달이 그 빛을 받아 이 땅에 있는 사람에게 비추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빛은 알갱이로되, 태양과 같은 속성이다. 세상에서 땅의 생명을 일으키게 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영은 부활생명을 불러 일으켜, 죽었던 영을 살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인 생명의 빛은 택하신 사람에게 말씀하시고, 감동을 주시고, 구원으로 인도하신다.


그러나 육의 몸은 흑암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영은 흑암 속에서 죽어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신도에게 비춰지면 흑암은 물러가고(육의 몸은 죽고), 죽었던 영은 살아나는 것이다. 이게 부활이다. 육신은 하나님의 영과는 함께 할 수 없는 것이다. 육신은 하나님의 법을 따를 수 없다고 말을 한다. 하나님의 법은 율법으로서, 하나님이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죄를 깨닫게 해주시는 것이지만, 유대인들은 죄를 깨닫기보다는 율법을 지켜 하나님의 의에 이르려고 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것은 육적 마음이 그렇게 사람들을 끌고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자는 하나님의 법을 따르겠지만,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고, 스스로 율법을 지켜 의를 이룰 수 있다고 하는 자들은 율법주의자들이 되는 것이다.


대요리문답에서, 문 72. 의롭다하는 믿음이란 무엇인가? 답. 의롭다하는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과 말씀으로 말미암아 죄인의 마음속에 이루어지는 것이니 곧 구원하시는 은혜이다. 믿음으로 자기의 죄와 비참함을 깨닫게 되고 잃어버린 상태에서 자신을 회복할 능력이 자신이나 다른 모든 피조물 가운데 없음을 확신케 되고 복음의 약속이 진리임을 승인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그의 의를 받아 의지함으로 죄사함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목전에 의로운 사람으로 수납되고 인정되어 구원을 받게 된다.


대요리문답에서 죄인의 마음 속에 성령과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죄인의 마음은 육적 마음으로서 하나님의 법을 따를 수 없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데, 어떻게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이 생기겠는가? 이 믿음은 자기가 믿는 믿음으로서, 율법으로 의를 이루려고 하는 그런 육의 마음의 믿음인 것이다. 육의 마음(육의 몸)이 죽어야만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


육의 마음이 죽어야만 하나님의 영이 임한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율법을 지켜 의에 이를 수 없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께 대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이는 믿음으로 이것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통해서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죄인은 희생제물이 없으면, 의에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먼저는 희생제물과 더불어 죽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죄 사함을 받는다. 죄 사함을 받아야 하나님이 성령의 빛을 보내시어, 믿음을 주시는데, 그 믿음이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으로 부활생명이 되는 것이다.


대요리문답 72에서 보듯이 죄인은 죄의 몸이 죽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교리에 의하면, 죄인의 마음 속에서 회개도 이루어지고, 믿음도 생기고, 의도 받게되고, 죄사함도 받는다는 것이다. 성막이 갈라지듯이 육의 마음과 영의 마음에 대한 정체성이 구별되지 못하면, 여전히 율법 아래 있는 죄인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신도들은 날마다 죄를 자복하고 용서받아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예수의 은혜는 대속의 죽음과 부활이며, 죄인이 날마다 죄를 용서받아서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죄인과 대속의 죽음을 하는 예수님과 연합된 죽음이 있어야 죄가 없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하나님이 죄를 용서하지 않으며, 반드시 죄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의 아들을 죄있는 모양으로 십자가에서 죽게 한 것은 다름아닌 회개하는 죄인이 십자가에서 죽은 것으로 간주하기 위함이다. 비록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모습이지만, 그를 바라보는 죄인도 함께 죽었음을 신도들은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즉 죄인의 죄의 몸이 죽은 것이며, 그래서 죽은 자가 죄 사하심을 얻는 것이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성령의 빛을 비추어 죽었던 영을 살리시는데, 이게 바로 부활의 성령세례가 된다.


세례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는 의식이다. 물에서 옛사람이 죽고, 성령으로 부활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세례는 마음의 할례를 의미한다. 할례는 육체에 죽음을 표시하고 언약이 있는 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할례의 약속이 성취되어서 이제는 필요없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바울 당시에 할례의 의식을 해야만 한다고 말하는 유대인들이 있었던 것이다. 할례는 율법의 한 부분이지만,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유대인들은 복음으로 구원받는다고 말을 하면서도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 안에서 복음을 믿는다고 말을 하면서도 율법을 지켜 행하려고 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들은 잘못된 교리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깨달음이 있어야 하는데, 교리를 통해서 깨달으려고 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성령을 받았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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