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아그립바 왕에게 설명했다
바울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아그립바 왕에게 설명했다
사도행전 25장 1-3절『베스도가 부임한 지 삼 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새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더라』
네로가 황제로 있던 당시 벨릭스에 이어 유대의 총독으로 부임한 베스도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했다. 대제사장들과 유대인들은 권력을 위임받은 베스도 총독에게 청탁하여 호의를 베풀어 달라고 요청했다. 지난 2년간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보내달라는 것이다. 대제사장들과 유대인들은 베스도 총독에게 청탁할 것들, 논의할 것들이 많았을텐데, 바울을 죽이려는 음모를 먼저 꺼낸 것을 보면, 지난 2년간 그들의 바울을 향한 얼마나 분노와 노여움이 컸는지 짐작 할 수 있다.
베스도는 바울이 가이사랴에 무사히 감금되어 있으니, 그를 고발하고자 하면 자신과 함께 내려가자고 말했다.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은 더 높고 강한 권력을 가진 유대의 총독 베스도에게 호의를 베풀어달라고 요청했다. 호의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해결하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를 카리스 즉, 은혜로 여기려 했을 것이다. 반면, 바울은 지난 2년 동안 강한 권력자를 찾아 호의를 구걸하지 않았다.
베스도는 예루살렘에서 약 8-10일쯤을 보내고 가이사랴로 내려갔다. 이튿날 바울을 불러 재판장에 세우자, 예루살렘에서 함께 온 유대인들이 그를 에워싸고 여러 가지 죄목들을 걸어서 고발했다. 그러나 충분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
바울은 공회앞에서 자신을 변호했던 것처럼 또 총독 벨릭스 앞에서 변호했던 것처럼, 동일하게 변호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도, 신앙 공동체 안에서도, 그리고 세상법적으로도 전혀 죄가 없다고 변론한 것이다. 그러자 베스도도 바울이 유대인들의 마음(카린)에 좋게 보이도록, 바울에게 묻는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 이유는 사도바울은 분명한 자신의 사명을 알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값없이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로마까지 갈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바울은 3차례 전도여행을 통해 이방인들의 사도로 많은 교회들을 세웠고, 이제 임금들 앞에 서서 복음을 전했으며 이제 로마황제에게 까지 갈 것을 처음 부르심을 받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마침내 사도바울은 죄목을 찾지 못하고 증오와 분노로 가득한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인들 앞에서 그리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바울은 호의로 해결하려 했던 베스도 총독 앞에서 단호하고 담대하게 말했고, 그는 로마로 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황제 앞에 당당히 서겠다고 단호하고 담대하게 선포한 것이다.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한 것이 신임총독 베스도에게는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해결하기 어려운 난감한 문제를 상위법정으로 넘길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베스도는 유대인과 바울 간에 고소와 변론에 대한 상소자료를 준비해야 했다. 그때 마침 유대 종교와 문화를 잘 알고 있는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찾아왔다. 베스도에게는 지금 자신의 상황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찾아온 것이다.
아그립바 왕은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아들이며 A.D. 48년에 삼촌이 다스리던 레바논과 안틸레바논 사이의 작은 왕국을 이어받아 다스리고 있었다. 또한 그는 유대의 대제사장 임명권과 회당의 통치권도 로마로부터 위임을 받아 가지고 있었으며, 53년에는 빌립과 루사니아가 다스리던 지역을 포함하는 더 큰 영토를 받기도 했다. 아그립바 왕은 친 로마 성향을 지니고 있어서 새로운 로마 총독이 부임할 때마다 그를 예방하여 경의를 표하곤 했다. 그리고 함께 동석한 버니게는 헤롯 아그립바 1세의 큰 딸이며 남매가 함께 베스도 총독을 찾아온 것이다.
베스도 총독은 자연스럽게 아그립바 왕에게 바울 사건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부임 후 첫 번째로 맞이한 사건을 잘 처리하고 싶은 마음도 있을 테고,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에게 자신의 유능함을 알리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소하는 내용들은 로마법에 근거한 처벌을 내리기에 충분한 사항들이 아니었다. 또한 그들이 제시하는 증거도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유대인들이 고소하는 내용은 유대인들의 종교에 관한 문제이며,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내용임을 아그립바 왕에게 설명했다.
바울이 말한 부활은 죽은 육체가 다시 살아있다 라고 말을 한 것이 아니라, 영이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 영의 몸을 입고 역사함을 의미한다. 부활은 죽었던 예수가 부활의 몸으로 다시 살아난 것인데, 이는 부모로부터 받은 몸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받은 몸이라는 사실이다.
문제의 핵심은 신도들이 부모로부터 받은 몸이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었다고 믿는 것이다. 왜 그렇게 믿는가? 그것은 현재의 눈에 보이는 육체를 중요시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육체는 곤충의 허물과 같은 것이다. 그 속에 신비한 몸이 있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전의 몸은 죽고, 새로운 몸으로 태어나는 것이 부활인 것이다. 그래서 살아난 영이 신비한 몸과 다시 결합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살아난 영이 신비한 몸과 결합을 하면, 이전의 죽은 몸은 어디로 갔는가 신도들은 의문이 들 것이다. 이게 바로 성령의 불세례이다. 누가복음 12장 49-50절『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불은 불세례를 의미하며,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세상의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한 죽음이다.
구약시대 희생양은 피가 제단에 뿌려졌으며, 살은 제단에서 불에 태워졌다. 육체가 불에 태워짐으로 먼지로 돌아간 것이다. 모든 인간들의 죽음도 이렇게 먼지로 돌아가는 것이다. 죄인들은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고, 새로운 존재가 되어서 자기의 집으로 돌아간다. 이는 한 의식으로서, 마음으로 그렇게 되었음을 믿는 의식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불세례는 실제 새로운 존재가 되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불세례는 죽었다가 부활한 그 기간 동안에 무덤에서 일어난 것으로, 아무도 본적이 없지만, 천사는 증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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