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고린도전서 61-4절『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비오티카) 일이랴 그런즉 너희가 세상(비오티카)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다른 자는 교회 안에서 불의한 자를 의미한다. 불의한 자들과 다툼이 있을 때, 고발하여 법정으로 가지 말고, 성도들 앞에서 해결하라는 것이다. 비오티카(βιωτικὰ)는 현재 발생한 세상 일을 의미한다.

성도가 완전해지면, 천사도 판단하게 되는데, 현재 있는 일을 왜 성도가 해결하지 못하겠는가 라는 의미다. 그런데, 판단할 수 없는 자들을 재판관으로 세워서 판단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경히 여김을 받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고린도교회 안에서 발생한 일을 자체 해결하지 못하고 외부로 끌어내어 부끄러운 짓을 하는가 라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교회의 일을 사회 법정으로 끌고 가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정말 부끄러운 일인 것이다.

교회 일에 대해서, 사회법으로 고발하는 것 자체가 허물이라는 것이다. 교회 자체에서 해결하고 해결이 안되면 차라리 교회 안에 불의한 자들에게 속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그만큼 교회의 문제는 교회 자체에서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바울은 강조한다.

바울은 교회에서 불의한 행동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말을 한다. 불의한 자들은 탐욕에 의해 지배를 당하는 자들이다. 탐욕이 우상숭배인 것이다. 바로 하나님 처럼 되고 싶은 악한 마음인 것이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들이 바울이 고린도전서 69-10절에서 열거하는 것들이다. 음행하는 자, 우상 숭배하는 자, 간음하는 자, 탐색하는 자(말라코스)나 남색하는 자,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 술 취하는 자, 모욕하는 자, 속여 빼앗는 자, 이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 바울은 말한다.

말라코이는 탐색하는 자라고 번역했는데, 여색하는 자를 의미하지만, 누가복음 7 25절에서는 부드럽다 라는 말로 표현되었다.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말라코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라고 말한다. 말라코이를 영어 성경 niv fine(좋다) 이라는 말로 표현했고, kjv soft(부드러운)로 번역했다.

바울이 열거하고 말하는 것들은 근본적으로 탐심에 의해서 마음이 오염된 자를 의미한다. 탐심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에서 유래되었지만, 결국 자기라는 우상이 마음 가운데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 탐심이 여러 상황에서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다. 교회 안에서 이런 일들은 결국 가정을 파괴하고, 법정으로 까지 나가게 됨을 말해준다.

교회 안에 신도들의 탐심은 바울이 열거한 것 외에도 수많은 종류의 모습으로 행동할 것이다. 탐심은 하나님을 대적하므로, 결국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 마음에 대해서, 바울은 로마서 6 7-8절에서 죽은 자같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성도는 이러한 탐심에 물든 신도들을 올바른 길,진리로 인도해야만 하는 것이다. 성도는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므로, 그들을 세상적인 기준으로 대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이 스스로 잘못된 길을 빠져 나올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이런 탐심에 물든 자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육의 눈으로 바라보면 누구나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로마서 8 6-8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611절에서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로 정결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거룩하다고 칭해주시고 성령세례를 주시는 것이다. 성령의 사람들은 세상의 법에 의지하지 않는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말에 의해서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울은 음식의 예를 들면서, 음란과 비교했다. 음식이 배를 위하여 있는 것인지, 배가 음식을 위하여 있는 것인지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성도들은 무슨 음식을 먹을까 고민하는 자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몸을 음란한 일에 내어주는 것은 다른 일이라는 것이다. 성도의 몸은 주님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성도의 몸은 눈으로 보면 육적 몸이지만, 하늘로부터 태어난 영의 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성도의 영적인 몸 안으로 들어오시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는 그분과 함께 부활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몸은 거듭난 성도의 영의 몸을 의미한다. 비록 눈으로는 부모로부터 받은 육을 바라보나 성도는 영의 몸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심지어 바울은 고린도전서 616-17절에서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소마)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미안) 육체(사르키)가 된다 하셨나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헨 프뉴마)이니라』라고 말을 한다.

소마는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를 의미한다. 창녀와 합하는 것은 육체이지만, 뒤의 한 육체에서 육체는 사르카ρκα). 사르카는 육의 몸, 죄의 몸을 의미한다. 미안αν)은 하나라는 의미다.『한 육체(사르키 미안)』라는 말은 남자와 여자가 하나가 되는 의미를 갖는데, 하나님을 떠난 자(여자를 상징)와 그리스도(남자를 상징)는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바울이 창녀를 예로 든 것은 교회의 지도자가 십자가의 복음과 다른 이상한 교리를 섞는 것에 대한 말을 하는 것이다. 바울이 성적 문란을 예로 들었지만, 탐욕에 따른 비진리를 말하는 교회 지도자와 신도들을 향해서 말하는 것이다. 비진리가 신도들을 파멸로 인도하게 되며, 교회를 붕괴시키는 것이다. 오늘날 비진리는 교회 공동체 안에 성경이 아닌 교리로 오염시키거나, 교역자들이 자기 생각을 섞어서 비성경적으로 마치 진리인양 말하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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