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고린도후서 7장 1-2절『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아가페토이)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몰뤼스무 사르코스 카이 프뉴마토스)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코레스테) 우리는 아무에게도 불의를 행하지
않고(에프데이라멘)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고 아무에게서도
속여 빼앗은(에플레오넥테사멘) 일이 없노라』
아가페토이(ἀγαπητοί)는 주님이 사랑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바울을 포함해서 고린도교회 성도를 의미한다. 몰뤼스무 사르코스 카이 프뉴마토스(μολυσμοῦ σαρκὸς καὶ πνεύματος)는 육과 영을 더럽히는 것을 의미한다. 사르코스는
육체를 의미하는 body가 아니라 죄의 몸(fresh)을
의미한다.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은 죄의 몸으로 인하여 영이 죽어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하여 죄의 몸이 죽었다고 믿는 것이다. 로마서
6장 6-7절「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열심히 죄의 몸을 죽이기 위해 노력하여 거룩함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죄의 몸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믿으므로, 하나님이 성도를
거룩하다고 인정하시는 것이다. 자신이 경건하고 거룩해졌음을 믿고, 육의
몸과 싸우자는 것이다.
이것은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는 옛사람이 있고, 새사람도 등장한 것이다. 이
옛사람이 바로 죄의 몸을 의미하며, 성도의 정체성은 이제 옛사람이 아니라 새사람인 것이다. 새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난 자를 의미하며, 성령을 따르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성도의 심령 속에 옛사람의 모습이 나타난다. 정체성의 변화는 가져왔지만, 마치 가라지처럼 계속 등장하는 것이다. 출애굽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갔지만, 가나안 백성과 공존하면서 살았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의 생활 문화 종교를 배척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그들의 종교 문화에 휩쓸리고, 우상을
섬기는 자들도 나타난 것이다.
성도 역시 심령 속에 이와 같은 육의 몸을 따르려는 속성이 있는 것이다. 이는 육체가 죽을 때까지 등장한다. 로마서 8장 3-5절「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바울은 육신으로부터 벗어나라고 말한다. 이는
영적 전쟁인 것이다. 날마다 육으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만일
성도가 육신에게 져서 넘어지면, 사탄의 가시가 그 성도에게 미친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날마다 죽노라를 기억해야만 한다.
코레스테(Χωρήσατε)는 하나님이 거하실 방을 만들다 라는 의미다. 그들이 속이 좁아졌으므로 바울의 일행에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이다. 에프데이라멘(ἐφθείραμεν)은 다른 사람의 신앙을 약화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에플레오넥테사멘(ἐπλεονεκτήσαμεν)은 다른 사람을 자기의 사욕에 이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린도후서 7장 3절『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를 정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전에 말하였거니와 너희가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쉬나포다네이)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쉬나포다네이(συναποθανεῖν)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쉬젠(συζῆν)은 함께 사는 것을 의미한다.
복음의 핵심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다. 날마다
이 같은 상황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는 날마다 자신의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호 로고스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날마다 찾으므로, 하나님께서 성도의
상태를 알려주시고, 나아갈 방향을 지시하시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7장 5-6절『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사륵스)가 편하지 못하였고(아네신) 사방으로
환난(들리보메노이)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그러나 낙심한(타페이누스) 자들을 위로하시는(파라칼론)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테
파루시아 티투)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육체로 번역된 사륵스는 육신으로 육의 몸이다.
이전의 육의 몸은 죽고, 새롭게 태어난 몸을 의미한다. 새롭게
나타난 사륵스가 전도의 상황에서 외부로부터 압박을 많이 받으므로 안식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네신은
안식하다는 의미를 갖는다. 사방으로부터 환난을 당하는 것은 날마다 심령 속의 임재하신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갈 수 밖에 없는 지경에 놓이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고린도교회 성도에게도 이렇게 자신이 경험한 심령
속의 그리스도의 임재를 경험하고 나아갈 것을 말하며, 그의 제자인 디도를 부르는 것이다. 디도 역시 이 부분에 많은 어려움을 겪다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나가게 됨을 설명한다.
파라칼론(παρακαλῶν)은 권면한다는 의미이고, 타페이누스(ταπεινοὺς)는 비천한 자들이다. 하나님이 비천한 자들을 권면하시는 것이다. 파루시아(παρουσίᾳ)는 주님의 임재를 의미한다. 테 파루시아 티투(τῇ παρουσίᾳ Τίτου)는 디도가 주님의 임재 상태가 된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디도를 통해서 주님이 권면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권면이 고린도교회 교인들에 대한 권면이었다. 디도가 권면하는 것은 고린도교회 공동체에 성도들의 영적인 상황이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에 디도와 같은 자가 나타나 신도들의 영적인 상태를 권면하면, 당장 그를 배척할 것이다. 그의 권면을 받아드리지 않는 것은 그들의
마음이 완고해졌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는 율법주의, 기복주의, 영지주의로 물들어 있기 때문에 스스로 벗어나려고 하지도 않고, 영적
상태를 이야기 해주어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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